1  하나님의 본체

 

 1) 하나님은 무형의 주체시다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떠한 형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크다고 하면 무한대요, 작다고 하면 무한히 작은 분이십니다. (10-13)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가? 누가 꼬집어서아야'하고 소리치는 것보다도, 배가 고파 밥을 먹는 것보다 사실적으로 느낄 있는 하나님이 있느냐?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계시다고 , 문제는 해결됩니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아 없는 같지만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머리에 있느냐, 심장 가운데에 있느냐? 마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가운데 없는 데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세계가 하나님의 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힘이 보여요? 하나님은 에너지의 본체이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도 없습니다. (105-175)

 

지혜로운 하나님,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은 중앙에서 마음대로 거동할 있는 무형적인 존재로 계시면서 주관하는 것이 제일 편리하겠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무형이니만큼 존재세계를 마음대로 뚫고 오더라도 조금도 지장이 없습니다. 여러분, 몸뚱이로 하나님이 와서 마음대로 지나가더라도 여러분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러분들의 몸뚱이를 마음대로 밟고 지나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은 생각 끝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계시는 것이 제일 편리할 것이다 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됐다 하는 논리는 가당한 논리입니다. (138-141)

 

우리는 공기가 통하는 것을 모릅니다. 공기가 통하고 있지만 그걸 느낍니다. 공기가 통하는 것도 느끼는데 하나님이 통하는 것을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것이 최고의 편리한 방법입니다. 그러면서 우주를 보자기로 싸고도 남을 있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면 됩니다. 무형의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우주보다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38-167)

 

여러분! 사랑 가지고 있어요? 생명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의 혈통을 이을 있는 정자나 난자 가지고 있지요? 양심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랑을 적이 있어요? 생명, 혈통, 양심을 봤어요? 존재의 현상은 알지만 만질 수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마음으로 느껴서만 있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 또는 하나님을 봤느냐 봤느냐 물을 , 봤다고 없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면 마음이 압니다.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바람벽도 뚫어볼 있고, 가만히 앉아 몇천 전에 죽은 성인들을 운행하게 수도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그렇게 있습니다. 영원을 시간으로는 포착할 없지만 영원 안에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보여도 마음은 압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하느냐 답변하기 곤란하지요? 하나님은 무형의 신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통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씨의 속에도 들어가고, 심장 속에도 들어가고. 어디든지 가는 없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서 사느냐? 집이 어디냐? 하나님이 사는 집은 우리 마음의 한복판입니다. 남자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남성적 심정이 머무르고, 여자의 마음에는 여성적 심정이 들어가 산다는 것입니다. (128-317)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천하를 요리하시는 하나님이 여기 있다고 합시다. 힘으로 말하자면 태백산도 날려 버리고 지구성도 구멍을 있는 능력의 하나님인데, 그러한 하나님을 여러분의 눈으로 보면서 살라고 한다면 있을 같아요?

하나님이 보이길 잘했다는 것입니다. 보이면 여러분은 신경쇠약에 걸려서 시간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이건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얘기는 내가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심각하게 겪었던 경험담입니다. 남의 말을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더듬어 나온 경력 보고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38-222)

 

만일 세계에 공기가 되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나님이 짖궂은 분이라면 세계 통일은 문제없습니다. 아마 5 이내에 통일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기를 몽땅 끌어 가면서너희들 통일 거야, 거야?' 하게 되면 세계 인류가 합창으로통일하겠습니다.'라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시에 통일할 있겠지만 하나님이 공기 가지고 그렇게 하시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없습니다. 이렇게 공기는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공기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도둑놈같이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천주의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눈에 보이게 된다면 하나님을 서로 빼앗겠다는 싸움을 하겠어요, 하겠어요? 싸움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기를 잘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보였다면 미국과 소련이 서로 자기 하나님이라고 싸우겠어요, 싸우겠어요? 싸운다는 것입니다. 싸움을 누가 말릴 있겠어요? 하나님은 전지하사, 이런 싸움이 있을까봐 무형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기를 바라는 것은 망령된 행위입니다. 보이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41-260)

 

우주는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크기가 210 광년이나 되는 대우주입니다. 1광년은 빛이 1 동안 가는 거리를 말합니다. 1 동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있는 빛인데, 빛이 1 동안 나아가는 것이 1광년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주를 지배할 있는 주인은 얼마나 크겠느냐? 키가 크다면 얼마나 크겠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크다면 하나님 자신이 거추장스러운 몸을 끌고 다닐 있겠느냐? 철커덕 철커덕 다닌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느냐? 한번 움직이면 우주가 전부 놀라 자빠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보이지 않는 주인이 되자.' 생각했던 것입니다. (138-16)

 

하나님이 얼마나 무거울까요? 그걸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무거워요? 근수로 달면 근이나 될까요? 억만 톤이 될까요? 무겁다면 몸으로 다니려면 큰일이지만 하나님은 무형이시기 때문에 이상적입니다. 지갑에 넣고 다녀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무형이기 때문에 아무리 좁은 바늘귀로도 오갈 있습니다. 마음대로 운행할 있다는 것입니다. 크다 하면 크고 작다면 무한히 작기도 하여 우주 어디든 마음대로 운행할 있다는 것입니다. (136-101)

 

제일 귀한 물건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면서 한시도 물건과 떨어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최고 보물이라 있는 하나님을 갖고 있다면, 그분을 어디에 모시고 싶어하느냐? 안전하게 모실 있는 창고가 있다면 어디일 것이냐? 창고는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을 안전하게 모실 있는 창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이기 때문에 유형의 존재를 자기보다도 중요시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야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 사람은 자기 몸뚱이보다도 보이지 않는 마음과 하나님을 중요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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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는 자연히 알게 되어 있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고 본성의 선한 부모를 통해 태어났던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란은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자연히 안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젖먹는 법을 배워 가지고 나옵니까? 나오자마자 눈앞에 젖이 있으면 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자동적으로 알고, 자동적으로 해결하고, 자동적으로 가야 입장인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망각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하는 결과의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참한 사실입니다. (20-306)

 

사람은 우주의 피조만물 가운데에서 걸작품입니다. 얼마나 걸작품이냐 하면, 여러분이 헤아릴 없을 만큼 크고도 멋진 걸작품입니다.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사람을 만들었다면, 하나님 자신이 말하는 , 보는 , 느끼는 것을 사람이 모르게 만들 있겠습니까? (53-51)

 

하나님을 닮은 아담과 해와가 인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다면, 모습을 통해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인지될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가 없게 됩니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언제나 있고, 부르면 나타나도록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기준이 된다면 누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겠습니까? 부인할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있다.'하는 것은 말뿐이 아닙니다. 원리를 통해 주체와 대상 관계를 중심삼고 , 하나님은 불가피하게 있어야 된다는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기 전에 있었던 분이요, 모든 감각, 나의 일체를 주관하는 분이다 하는 입장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알고 인식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 인식하고 아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가 추우면 춥다 하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것을 느껴 가지고 알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계시다면 신이 계신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세포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경지가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체휼적 입장을 어떻게 우리가 확정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58-291)

 

여러분이 자다가도아버지!' 있고, 혼자말로도아버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밥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을 잊어버리면서 생활 이면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아버지!' 하게 되면, 아버지 손이 잡힙니다. 꿈같은 사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하면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이러한 표현적 권에서 체휼적 감정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체휼의 감도, 느끼는 도수, 양의 여하가 사람의 신앙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심정을 가졌다면 어디에 옮겨 가서내가 이것을 해야 된다.' 하게 때는, ‘하늘이여, 같이해 주시옵소서.'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은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느끼게 때는고마우신 하나님' 하게 되는 것입니다. (58-299)

 

통일교회 원리는 하나님을 무형의 절대적 주체로, 이성성상(二性性相) 중화적 주체로 계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분성적 실체(分性的實體) 아담과 해와를 만들어 놓고, 이들이 장성하여 사랑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연결될 , 종적인 입장에서 중심이 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아담과 해와가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의 남성 성품은 아담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여성 성품은 해와의 마음 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갈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마음 속에 임재할 있다는 것입니다. (138-240)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라고 말하지요? 중화적 입장에서 사랑을 중심삼은 통일적 존재라는 것은 아직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적 존재라는 그것을 첨부해야 됩니다. (22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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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무형의 하나님은 체가 필요하다

 

   체를 쓰기 위해 아담 해와 창조

 

하나님은 어째서 아담과 같은 () 필요로 하는가. 만물은 형상적인 꼴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형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크다고 하면 무한대(無限大), 작다고 하면 무한히 작은 분이십니다. 그런 분의 어떤 표준적인 형을 형성하고 형체를 나타낸다 하여도 실체를 가진 만물은 하나님에게 직접 주관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실체를 가진 피조세계에 실체를 가진 주인적 인격과 형을 갖춘 존재가 있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상 만물의 주관뿐만 아니라 무한한 영계도 주관하시지 않으면 됩니다. 천사장이나 여러 형체를 가진 실체, 그리고 무형의 실체까지도 주관하려면 중심적인 타입, 형상()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35-156)

 

아담을 중심으로 영육 양면의 세계, 무형실체세계(無形實體世界) 유형실체세계(有形實體世界) 주관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인격적인 실체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되기 때문에 아담 완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 완성, ()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실 그의 형태, 인상(人相), 인격 등이 무형세계의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담을 만들었습니다. () 없으면 () 세계를 주관할 없는 것입니다. (35-158)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었느냐? 하나님은 무형으로 계신 분이기 때문에, 실체의 형상을 가진 아버지 어머니가 가지고는 형상의 자녀를 사랑할 없기 때문에 () 입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창조목적은 첫째, 아담이 몸으로써 무형의 하나님이 체를 입는 것이고, 둘째는 체를 입음으로 말미암아 진동적인 충격이 옵니다. 말만 가지고는 되는 것입니다. 충동적인 자극에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중심축을 가진 수직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면적이 없습니다. 면을 찾자는 것입니다. (232-183)

 

영계에 가도 하나님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입니다. 힘이 보여요? 하나님은 에너지의 본체이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도 없습니다. ()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세계를 지도하고 주관하기 위해서는 실체를 써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어 지상에 살다가 천상에 가면 아담 형상을 입은 하나님이 됩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는 아담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이하하하' 웃는 것은 하나님이하하하' 웃는 것이고, 그것은 우주가하하하' 웃는 것이 됩니다. (105-175)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하나님으로는 우주를 상대로 자극을 느낍니다. 마음 자체만 가지고는, 아무리 자극을 해도 무형만으로는 감동이 없습니다. 같은 것이니까, 같아서 자극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상충된 , 더운 물과 찬물이 합하면 폭발하지요? 그런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41-9)

 

하나님은 영계에서도 무형입니다. 모형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양을 가진 인간의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모양을 갖지 않으면 중심이 없는 것입니다. (222-328)

 

하나님의 최후의 창조목적은 () 쓰는 것입니다. 실체세계를 주관하기 위해서는 무형의 하나님으로서는 되기 때문에 만민의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체를 쓰고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감각기관을 가지고 자극을 느낄 있는 주체와 대상으로 서기 위해서는 체를 입어야 됩니다. (25-294)

 

실체세계를 지으신 하나님이 무형이 되어 가지고는 실체세계를 지배할 없습니다. 그래서 체가 필요합니다.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도 실체를 씀으로써 실체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실체가 아담과 해와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했더라면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마음 자리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중심한 왕권을 이루는 것입니다. 왕권이 성립됨과 더불어 부모권이 성립되는 것이요, 부모권과 더불어 본연의 아담은 장자권이 됩니다. 오늘날의 차자권이 필요없습니다. 아담 자체가 장자 중의 장자이고, 해와도 장녀 중의 장녀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들딸은 인류의 부모 중의 부모가 됩니다. 부모인 동시에 영원한 세계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214-7)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체를 가지게 했느냐? 없는 하나님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있으면 좋을 텐데, 체를 지어 가지고 문제가 되게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은 무형의 신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체를 입은 인간 조상이 수는 없습니다. 체를 입고 오는 아들딸을 대하려니까 체를 입은 하나님의 자리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몸이 하나님의 몸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의 마음과 같은 자리보다 한층 차원이 높은 세계의 단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223-128)

 

하나님은 무형이어서 형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형체를 입고 나타나야 합니다, 형체를 가진 인간과 만물을 주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의 형체를 입고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과 해와와 하나님이 일체가 되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마음과 같은 분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마음의 자리에 하나님이 임재해 가지고 하나되었기 때문에 결국은 아담의 내적인 주인, 내적인 아담과 같은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90-187)

 

사람을 창조했느냐? 우주는 실체가 있으니 실체 주인인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관리 주도할 있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영계에서 무형으로 계시기 때문에 지배할 없으니 실체의 탈을 쓰고 실체의 몸을 씀으로 말미암아 저나라에서, 지구성에서 생산되어 오는 자기 아들딸 되는 후손들을 실체를 가지고 지배할 있는 왕이 되기 위해 사람을 지은 것입니다.

왕의 얼굴이 아담의 얼굴입니다. 왕을 만들었으니 왕후가 필요합니다. 왕후가 누구예요? 해와가 왕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지상의 조상인 동시에 천상세계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19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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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은 종지조상, 유형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첫째, () 입기 위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셨고, 둘째로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여 둘이 하나될 있는 사랑의 실체가 되면 하나님이 임재하여 인류 앞에 사랑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적 실체부모가 아담과 해와가 실체의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이상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을 통해 영계와 지상세계가 연결되기 때문에 영계와 지상세계를 연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도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에게 임재하심으로써 인류의 참된 부모, 실체의 부모로 계시다가 아담과 해와가 저나라에 가면 영계에서도 아담과 해와의 형상으로 체를 쓰시고 부모의 자리에 현현할 있는 것입니다.

실체를 하나님의 몸으로 만든 아담이 인간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은 실체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의 세계를 주관하기 위해서는, 실체의 몸뚱이가 있어야만 보고 듣고 하겠기에, 하나님의 실체로 지은 이가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누구냐? 해와는 아담의 아내입니다. 실체의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실체를 하나님이라면 해와는 실체를 하나님의 아내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아내를 얻는다니 기가 막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담은 실체를 하나님의 몸뚱이요, 해와는 실체를 하나님의 아내로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22-236)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필요로 하는 데는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의 이상을 성사하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형의 하나님이 형상을 쓰고 나타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와 관계맺을 있는 기초, 핵심이 아담과 해와라는 것입니다. (92-145)

 

하늘나라에 무형의 하나님이 혼자 있어 가지고 뭘합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의 부모가 되려면 체를 갖고 느낄 있어야 됩니다. 이런 인간과 같은 체를 입어야 되겠기 때문에, 체를 입으려니 부득이 아담과 해와를 이중적 존재로 짓지 않을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33-86)

 

() 가진 아버지가 됨으로써 보이지 않는 무형과 유형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가 하나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그런 체를 갖출 있는 모습으로 아담과 해와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과 해와를 하늘나라의 왕궁에, 왕좌에 오르게 하여, 왕과 왕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셔서 지상세계와 무형세계를 통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만드는 것입니다. 왕국은 사랑의 왕국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만이 영과 육이 합하게 되어 있지 다른 가지고는 합할 없습니다. (143-74)

 

해와는 미래에 있어서 하나님의 왕녀입니다. 왕녀인 동시에 장래 하나님의 상대였습니다. 해와를 사랑의 상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사랑을 나눠 주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합니다. 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나라에 가보면 하나님은 무형입니다. 공중에서 태양 같은 빛이 24시간 언제나 있습니다. 공중에서 하나님이 전부 무형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를 가진 인간의 사랑의 대상으로는 허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사랑이상의 절대 작품이요, 파트너로서 체를 가진 아담과 해와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모양이냐 하면 아담과 해와의 모양입니다. 하나는 내적인 아버지요, 하나는 외적인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적인 부모요, 하나는 외적인 부모라는 것입니다. (199-294)

 

하나님은 사랑을 같이하기 위해 천지를 창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를 무형의 하나님이 영원한 사랑의 실체로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의 중심 실체로 등장시키는 것이 인류의 선한 참조상, 참부모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부모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통일교회에는 참부모의 교리가 있습니다. (38-139)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만들었느냐? 무형의 가지고는 실체세계를 주관하지 합니다. 무형의 가지고는, 보이지 않는 가지고는 보이는 세계, 창조물, 우주세계를 지배할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삼고 () 입어야 됩니다. 그래서 창조를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체를 입으면 내적 외적 자극이 벌어집니다. 자극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166-202)

 

무형의 하나님은 실체가 없으니 형체를 대신한 것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개인적인 부모요, 가정적인 부모요, 종족적인 부모요, 민족적인 부모요, 국가적인 부모요, 영계에 가서도 앞으로 참부모의 형상으로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위대한 것이 뭐냐 하면, 레버런 문의 형상을 하나님이 쓰겠다는 것입니다. (98-196)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하나님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유형의 하나님이 뭐예요? 타락하지 않은, 우리가 말하는 참부모입니다. (201-83)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영적이고 무형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과 중생의 체험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중심인물을 세워 인간이 그를 통해 가르침을 받고 중생을 체험할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유형, 무형의 참부모입니다. (91-101)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만든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 인간의 형상을 보면 () 가졌습니다. 그러나 무형의 하나님은 체가 없습니다. 체를 입지 않고는, 체를 갖지 않고는 영계나 지상세계를 치리할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더라도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체를 입어야 한다는 것인데, 체를 입은 대표가 누구냐 하면 아담과 해와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의 체를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는 인류의 시조인 동시에 천지를 주재하는 하나님입니다. 실체를 가진 하나님, 영원한 무형세계의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 입고 나타난 자리에서, 부모의 자리에서 세계를 통치할 책임이 아담과 해와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133-86)

 

하나님은 하나님과 인간이 주체와 대상으로서 종적인 사랑의 관계를 완성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종적인 사랑을 완성하여 아담과 해와의 횡적 사랑의 결실을 가져오고자 하신 것입니다. 순간이 바로 내적 부모이신 하나님이 외적 부모인 아담과 해와와 완전 일체를 이루기 위해 임재하시는 사랑이상 성취의 순간입니다. 무형의 부모이신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에 영존하시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 아담과 해와는 참부모, 참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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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은 ??의를 가진 인격신

 

오늘날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분이요, 절대적인 분이요, 창조주요, 지고지선한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피조 인간, 피조물과 창조주는 관계를 가질 없다고 봅니다. 피조물은 속된 것이고, 창조주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개념을 중심삼고 , 아무리 지고지선하신 하나님이요, 아무리 저속한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내용이 같아야 됩니다. 심정적 내용이 같아야 합니다. 인격을 갖춘 사람과 성품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38-240)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냐? 인격적 신입니다. ??의를 합한 내용을 갖춘 인격적 신입니다. 그런 인격적 신이 최고로 원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 인간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놀라운 사실입니다. (143-144)

 

하나님은 제일원인적인 존재인데 그가 인간을 어떻게 만들었겠느냐? 하나님같이 만들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같이 만드는 데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서 형상대로 만들었습니다. 말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아버지를 닮은 동시에 아버지는 누구를 닮았겠어요? 나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답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색해 보게 ,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같은 분이다 하면 이건 들어오는 것입니다. (127-232)

 

하나님이 누구를 닮았겠느냐.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하나님이 사랑하는데 하나님 닮은 것과 사랑하겠어요, 하나님과 닮지 않은 동물과 사랑하겠어요? 하나님은 좋아할 있고, 사랑을 나눌 있는 상대적인 것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런 상대라면 인간을 중심삼고 신은 인격적인 신이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인간과는 모든 요소가 퍼센트 화합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의 소성에 있어 전부가 화합할 있는 신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정의(知情意) 가진 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62-258)

 

하나님이 계신다면 인간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인격적 신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격적 신이 되려면 인간과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고, 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소성이 있느니만큼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도 인간과 더불어 공동목적을 가질 있는 본체라면 인간을 닮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성성상이라는 개념은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167-243)

 

하나님은 사람같은 인격을 가졌을까요? 사람 같으면 하나님이 남성이겠어요, 여성이겠어요? 그러면 남성같이 달린 것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은 무슨 성상이라고 그랬어요? 이성성상의 주체인데 오목 볼록이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걸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이 웃겠어요, 웃겠어요? 하나님이 웃는 것을 봤어요? 하나님도 눈이 있겠어요, 코가 있겠어요, 입이 있겠어요, 귀가 있겠어요, 몸뚱이가 있겠어요?

기성교회 신자들 가만 보면 엉터립니다. 하나님이 눈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진짜 봤어 하면 모릅니다. 하나님이 누구 닮았어? 누구 닮긴 하나님 닮았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이 누구 닮았어요? 아들딸 닮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격적 신이어야 합니다. 인격적 신으로서 하나님이 나에게 인격적 최고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격적 최고의 기준이 뭐예요? 그것은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사랑입니다. (182-47)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도 인격적 신이어야 됩니다. 사람과 같아야 합니다. 인격적 신이라는 것은 ??(知情意) 갖추어 감정이라든가 또는 뜻을 중심삼고 목표라든가, 그런 모든 것이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174-142)

 

하나님은 모르는 없습니다. 지식의 대왕이시고, 능력의 대왕이시며,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입니다. , 무소부재합니다.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분이 필요한 것이 뭐예요? 다이아몬드? 그건 언제든지 만들 있습니다. 황금? 보석? 아닙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혼자서아이구, 사랑있어 좋다.'하며히히히' 그러겠어요? 하나님이 필요한 뭐냐? 하나님도 인격적 신이라 하면 입이 있겠지요? 코도 있고,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손발도 있고, 마음도 있고, 심정도 있을 것입니다. 인격적 신이라면 말입니다. (142-9)

 

하나님이 도대체 어떠한 분이냐?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해 가지고 그저 한마디면 세계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그런 하나님을 우리는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 본심은 어떠한 하나님을 원하느냐? ‘사랑을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 이상 되는 사랑을 하지 않을 없는 분이구나. 우리나라에 의로운 국왕이 있으면, 의로운 대통령이 있으면 국왕 이상, 대통령 이상 되는 분이구나.' 이런 분을 원합니다. 대통령은 4년마다 갈리기 때문에 얼룩덜룩하여 그거 존경할 것이 되지만 말입니다. (147-259)

 

오늘날 세계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하나님은 ??(知情意) 갖춘 하나님이심에 틀림없습니다. ? 인간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륜을 중심삼은 지정의가 아니라 천륜을 중심삼은 지정의입니다. (9-272)

 

절대적인 하나님이 슬퍼할 있겠느냐, 없겠느냐?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슬픈 자리를 피할 있겠어요, 없겠어요? 슬픔을 상관할 있겠어요, 없겠어요?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그거 그냥 넘어갑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슬픔이 없어야 된다 한다면, 하나님은 ??의를 가진,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인간의 아버지가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보다도 많은 희로애락을 느낄 있는 주체가 돼야 됩니다. (203-260)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증거하는 종교 단체는 없습니다. 불교나 유교, 모두 똑같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면, 벌써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그들은 인격적인 하나님, ??(知情意) 겸비한 하나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신인일체(神人一體)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게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227-112)

 

통일교회가 자랑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똑똑히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를 갖춘 인격적 신인 동시에 사랑의 주체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사랑의 신은 천정(天情) 중심이다 이겁니다. 천정의 중심자리는 왔다갔다 없습니다. (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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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일체의 인격신을 요구한다

 

하나님도 ??(知情意) 가진 분이시니만큼 나름대로의 소원이 있고 사정이 있고 심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이냐? 인간의 사정보다도 먼저 이것만 알면 됩니다. 이것만 알면, 자연스럽게 사람의 소원이 무엇인지 대번에 있습니다. ? 사람의 목적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이기 때문에 맞먹습니다. 인간의 사정을 알고 소원을 알고 심정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사정,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있는 것입니다. (151-177)

 

사랑을 논하려면 인격적인 신이 아니고는 됩니다. 정서와 인격적으로 사람과 같은 소성을 가진 신이어야 되는데 그러한 신을 제시한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것은 위대한 발견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는, 하나님을 내적 아버지와 외적 아버지로 보고 실체에 일치하는 사랑으로 통일적인 권한을 만들려고 하는 기준, 확실히 기준까지는 발견 했지만 그런 내용을 암암리에 해명할 있는 표제를 걸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일신(唯一神) 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세계적 종교요, 세계가 종교를 중심삼고 뭉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로 말미암아 세계가 하나될 있는 길을 세워 나간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139-230)

 

오늘날 수많은 () 있지만, 심정을 통과할 있는 하나의 도가 역사노정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도가 기필코 나타나야 됩니다. 만일 그것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계신 것입니다. 인간이 지켜야 사회적인 윤리와 도덕을 가르쳐 주는 도도 있고, 무한한 영계를 가르쳐 주는 도도 있지만, 윤리도덕과 무형세계에 대한 가르침을 통합하여 하나의 심정의 골자 위에 올려 놓는 종교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 종교를 찾아보니 기독교였습니다. 기독교는 심정의 종교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실체를 갖춘 참부모를 잃어버렸는데, 기독교는 참부모를 소개해 있는 종교입니다. (9-126)

 

철학의 최후의 종착점은 신을 발견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은 어떠한 신이냐? 절대적인 , 불변의 , 유일의 신입니다. 신을 발견하는 있어 신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인격적 신이어야 됩니다.

우리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안팎을 갖추고, 뜻을 갖추고, 이상을 갖춘 인격적 신이어야만 되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통할 있는, 정서적인 면이나 뜻적인 면이나 혹은 지식적인 면에서 우리 인간과 통할 있는, 완전히 관계를 맺을 있는 신이 아니고는 아무리 신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와는 완전히 상관을 지을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격적 신이 되어야 한다는 표제 밑에서 철학은 신을 숭상하지 않아왔다는 것입니다. (138-141)

 

하나님이 누구를 닮았어요? 아들딸 닮았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격적 신입니다. 하나님이 두리뭉수리하면 되겠어요? 기독교가 놀라운 것은 인격, 사랑을 중심삼고, 지정의를 중심삼고 정서적인 인격적 신을 논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합니다. 그리고 유일신을 논했습니다. (177-232)

 

하나님이 인격적 신이라면 하나님에게 사랑이 필요하겠어요, 필요하지 않겠어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나 하나님을 대해 아버지라 하면, 아버지가 필요하듯이 나도 필요한 것이요, 내가 필요하듯이 아버지도 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184-192)

 

인격적인 신이 있다면 신을 중심삼고 무엇이 연결돼야 되느냐? 여러분, 하나님 하게 되면 높은 말하잖아요? 거기에 몸뚱이가 연결되겠어요? 아닙니다. 마음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되시는 1 원인이신 존재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이 수직과 같은 마음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것이고, 지구성이 태양계를 중심삼고 각도를 맞추고 축을 이뤄 공전하면서 하루 이틀, 365일을 도는 것과 마찬가지로 돌며 사는 것이다 이렇게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194-147)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가지 않으면 세계가 미래의 희망을 남길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논리로서 결론을 짓게끔 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통일교회가 나와서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실존성과 ()?()?() 완성 기준에 인격적 신을 인정하고 심정권을 중심으로 이상세계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처음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확실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1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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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인데, 어떻게 해서 그런 관계가 맺어졌느냐?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서 우주의 중심이 뭐냐고 묻게 되면, 부자지관계(父子之關係)라는 답을 얻게 됩니다. 우주의 중심이 뭐냐? 한마디로 부자의 관계입니다.

천지의 중심과 우주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면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 부자의 관계라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육친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과의 관계인 알겠지만, 하나님과의 근본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는가 하면, 혼자 있으면 자극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쁨이란 상대 관계에 의해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기쁨의 자극을 얻을 없습니다. 하나님의 상대적 위치에 서면 비로소 최고의 사랑을 받을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성상이 그대로 실체화됩니다. 하나님이 슬퍼지면 인간도 슬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떼려야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제아무리 연구해 보아도 결론은 여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의 관계라고 했는데, 부자의 관계가 가진 특정한 내용이 무엇이냐? 아버지와 아들이 만날 있는 최고의 장소는 사랑이 교차되는 중심, 생명이 교차되는 중심, 이상이 교차되는 중심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과 생명과 이상은 자리에 있습니다. 자리에 가면 하나님도 사랑이요 나도 사랑이요, 하나님도 생명이요 나도 생명이요, 하나님도 이상이요 나도 이상입니다. 그것을 결정할 있는 최초의 인연이 부자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게 , 얼마만큼 주고 싶어 하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이만큼이면 됐다 하는 한계를 두고 주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무한정으로 주고자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몽땅 주고도너로 말미암아 안에 살고 싶다.' 합니다. 그렇게 되게 하는 본질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 들어가서는 종살이를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밥상 위에 올라가 똥을 싸도 그것을 바라보고 기쁨을 느낍니다. 사랑은 법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에게 사랑을 주었다고 해서, ‘나는 완전히 주었는데 너희는 주느냐? 이럴 있느냐?' 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가진 하나님은 아직까지도 주고 싶은 사랑을 주어 안타까워합니다. 자아를 주장할 없는 하나님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주고자했던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완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으니 인간세계에 대해 사랑을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기에 생각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나는 줬으니 이제는 너희가 가져와라.'하는 하나님이라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의 중의 , 중의 , 골수 중의 골수를 몽땅 투입하여 창조한 인간이기에 인간이 하나님을 끌면 끌려오지 않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창조했습니다. 사랑 때문에 창조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존재세계 앞에 나타날 사랑의 본질로 나타납니다.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실현체요 투입체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의 연장체입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의 이상의 구현체입니다.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과 생명과 이상의 기반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보면 볼수록 생명이 약동하고, 보면 볼수록 이상적인 상대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절대적인 상대로서 사랑 관계를 중심으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자리가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아들딸이 되는 자리입니다. 만일 이상의 자리가 있다면 인간의 욕망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최고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상의 것이 있다고 하면 우리 인간에게 주지 않으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응당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무가치하게 짓지 않았다는 것을 있습니다. 무가치하게 지었다면 하나님은 이상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에 무엇이든지 압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고 지었다면 하나님은 불완전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지을 절대적인 상대로 지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지극히 선한 분이요, 모든 만물의 근본이 되는 분이요, 사랑의 주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우주의 귀한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참으로 믿을 있고, 사랑할 있고, 모든 것을 맡길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제일 귀한 것을 고스란히 넘겨주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면 아들딸을 짓는 데에 있어서 시시하게 만들고, 못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같은 동등한 자리요, 동위(同位) 자리에 있게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최고의 것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53-216)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시라면 절대적인 분이 인간을 지었느냐?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지식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권력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있는 하나의 길이기 때문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인간은 아들딸이라는 것이 하나의 축을 이루는 것입니다. 축이 만일 연결됐더라면, 인간과 하나님이 사랑으로 일체된 관계를 어떤 것이 작용하더라도 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할 완전히 투입함으로써 보다 가치있고 이상적인 완전형으로 전개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지어놓고 그들을 위해 있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던 때에서 상대를 위하는 때로 전개되었습니다. 이상적인 존재는 자기를 위하지 않습니다. 이상적인 존재는 남을 위하는 데에, 대상을 위하는 데에 있습니다. 원칙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절대자이고, 전지전능한 분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좋을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명사, 혹은 좋다는 말은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는 말입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 있어야 좋고 행복하다는 말을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서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느냐?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혼자 있어서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성악가가 아무도 없는데 혼자 노래를 불렀다고 합시다. 그래서 행복하겠느냐?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좋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좋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투입해서 사랑의 대상을 창조했습니다. 그렇게 것은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혼자서는 합니다. 아무리 절대자라도 절대자 앞에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 사랑을 있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지을 아무렇게나 지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말씀으로 지었다고 했는데, 아무렇게나가 아닙니다.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1 20퍼센트, 몇백 배를 투입해서 지었습니다.

기성교인들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생각할 ,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말씀으로 지었다.'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술 부리듯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닙니다. 있는 지성을 다하고 자기 일신을 전부 투입해서 아들딸을 창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사랑합니다. 우리도 정성을 들이고, 피와 살을 투입하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중의 , 중의 , 사상 중의 사상, 전체 중의 전체를 투입했기 때문에 희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이상적 출발점을 어디에 두었느냐?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 나한테 와서 달라붙어라' 하는 흡수가 아닙니다. 투입입니다. ‘달라붙어라' 아니라 투입입니다. 말을 돌이켜 하면, ‘위해 존재하는 원칙' 이상적 출발점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투입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나는 사랑이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밤에도 좋아하고, 낮에도 좋아하고, 일하면서도 좋아하고, 쉬면서도 좋아하고 춤추면서도 좋아하고, 울면서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나에게는 사랑이 있다. 몽땅 있다.' 것입니다. ‘몽땅'이라는 말은 속에 전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그런 사랑을 몽땅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기에 사랑을 맛보면 죽더라도 놓을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으로서 아까울 것이 없고, 갖추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만 전부의 가치보다도 귀하게 내세우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 이외에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108-223)

 

창조이상 완성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그것은 하나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이상 완성이기 때문에 창조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물의 중심은 인간입니다. 때문에 인간의 완성이 없는 하나님의 완성은 있을 없습니다. 신인일체(神人一體)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과 일치될 있는, 신의 뜻에 일치될 있는, 신의 뜻을 중심삼고는 과정적 뜻이 아니라 완성적 뜻의 중심의 핵과 일치될 있는 그게 무엇이냐? 그게 하나님의 전능성(全能性)이냐? 전능성가지고도 안됩니다. 전권(全權)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무소부재한 소성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게 무엇이 돼야 되느냐? 하나님 자신도 살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물론 영계가 있어서 시공의 관계를 초월한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가느냐? 무한한 힘이 있다, 무소부재하다, 전권적인 권한이 있다,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간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데는 시작도 그렇고, 과정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참된 사랑의 대상을 갖추게 되면 기쁘기 때문입니다. (126-219)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사랑을 그저 주고 주고 나누어 주더라도 자꾸 보충할 있는 사랑의 창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창고에서 사랑을 많이 도적질해 가지고서, 밤이고 낮이고 자꾸 사랑을 빼다가 나눠주고 나눠주고 하나님이 녀석아! 도둑놈, 사랑 도둑놈!'하며 처벌하겠어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기 때문에그래 해라, 해도 좋다. 얼마든지 해봐라. 네가 영원히 해봐라. 네가 들어오고도 남는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주체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이기 때문에 객체에게 주고도 남아야 주체다. 너희들 객체 되는 사람에게 주고도 남아야 주체로서의 하나님이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된다. 내가 그렇다!'하시는 것입니다. ‘내게서 사랑을 도적질해다가 하나님의 사랑 발전소와 같이 자꾸 나누어 준다면 얼마든지 보급해 주겠다.' 그래서이거 전부 없어지면 내가 가져오고 싶은데 하나님의 사랑 파이프에 나를 연결하면 어때요?' 그것도 하려면 하라.'한다는 것입니다. (11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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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제일 가깝게 계신

 

진리 중의 최고의 진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부모요, 부부요, 자녀입니다. 이상은 없습니다. 그러면 진리의 중심은 뭐냐? 사랑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 최고의 진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요, 선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같은 말입니다. 진리가 성립되려면 사랑과 생명이 없이는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핵심인 생명의 본체, 사랑의 본체, 진리의 본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인간의 아버지인 동시에 어머니입니다. 핵심은 부모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간단한 분이 되십니다. (21-178)

 

하나님은 수염이 났을 것입니다. 그게 어울립니다. 하나님이 수염을 만지는데 아들이 수염이 좋아요.'하게 되면 수염이 길어질 것이고, ‘짧은 수염이 좋아요.'하면 짧은 수염이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의 얼굴은 남자를 대할 때는 우락부락하게 보이고, 남성격을 좋아하는 아담에게는 남성같이 보이고 해와 같은 여자에게는 여성이 좋아할 있는 모습을 보이고 그랬을 것입니다. (110-276)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이가 살일까요? 그래요. 70밖에 모르는 사람은 70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허허, 70이다.' 그럽니다. 다섯밖에 모르는 사람이하나님 살이오?' 하면 하나님도허허, 다섯 살이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이상 모르니까요.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수로 헤아림을 받을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상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거 기분 좋지요? 우리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173-239)

 

하나님도 농을 좋아합니다. 유머를 좋아합니다. 유머의 대왕님이 누구냐 하게 , 그게 누구겠어요? 하나님입니다. 전지전능하니까 유머도 하십니다. 웃을 때도 떼굴떼굴 구르며 웃고, 떼굴떼굴 구르며 웃고, 틀어지게 웃고 나동그라지게 웃게 만들 있는 대왕님이 누구시라구요? 하나님입니다. 그런 대왕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171-138)

 

하나님은 외적으로 남성을 닮았으면 내적으로는 여성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하고 전지전능하기도 하지만, 석가모니의 웃는 웃음에 꽃을 수놓을 있는 자비의 마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 중의 여자 같은 마음도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양면이 사는 것입니다. (206-43)

 

하나님이 우주의 대주재이고 전지전능하셔서 갖지 않은 것이 없는 능력이 많으신 분이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효자의 자리에 아들이 물어보지 않고 가슴을 헤친다고 해서에이! 야야! 언제 봤다고 그러는 거야?' 그러겠어요? 언제 봤느냐고 말하더라도 모른 척하고 자꾸 헤쳐 가지고 옛날에 자기 아버지 만지듯이 이렇게. ‘ 옛날에 우리 아버지 만지듯이 만지고 싶어서 그래요.'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기분 나빠 하겠어요?

아버지가 행복해 것입니다. 점점 크면 자기 무릎 앞을 떠나 넘어가고, 건너가고, 넘어 가려고 하는데 넘어갔던 자식이 담을 넘고, 문턱을 넘고, 옷을 넘어 옛날같이 자기 만지려 , 아버지가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죽을 할아버지라도어서 만져라, 어서!' 기분이 좋아 가지고 그럴 것입니다. (169-45)

 

하나님은 창조주인데 보탤 어디 있고, 끌어당길 어디 있어요? 크려면 흡수해 가지고 끌어당기든가 누가 보태 주든가 해야 됩니다. 자기가 흡수하든가 3 존재가 갖다 보태 주든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자체에 있어 붙일 것도 없고 끌어당길 것도 없는데 자체가 어떻게 있는 개념을 세우느냐 겁니다. 이거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그걸 얘기하면 여러분이 함부로 얘기해 가지고 곤란하겠기 때문에 얘기를 거지, 연구해 보세요. 숙제를 주니까 연구해 보라구요. 논문들 봐요, 내가 점수 매겨 줄게. (218-227)

 

본래 절대자 하나님은 어떻게 시작됐겠어요? 왕창 한꺼번에 후닥닥 뛰쳐나와 태어났겠어요? 그거 궁금하지 않아요? 그런 하면 기성교인들은우우-. 창조주는 성스러운 분인데 모독도 이만저만한 모독이 아니다.' 수작 그만두라구! 하나님이 생겨났겠나, 그냥 그대로 있었겠나? 궁금하지 않아? 문제를 대하려면 논리적 배경을 갖춰야 됩니다.

윤박사? 어떻게 생겨났겠어? 물리학 박사님이 그것 알아야 되잖아? 박사님이 그렇게 얼굴 가리면 창피하잖아? 통일교인도 없이자연히 계신다?'하겠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발전해 나와야 됩니다. 그렇게 얘기해야 맞는 것입니다. (218-227)

 

조화무쌍한 힘을 가진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도 연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격적인 신으로서 사람과 같다면, 전지전능한 그분도 그것을 대할 속에 가셔서 안식의 잠을 자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눈을 바로 뜨고 멍청한 자식아, 밤낮 쉬지 말고 탕감복귀해.' 이럴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치가 그렇잖아요? 숨쉬는 이치와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내쉬면 들이쉬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일했으면 쉬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는 것도 전부 쉬는 기쁨을 느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모든 것이 상대적 수수관계의 인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164-67)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 ,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냐? 전지전능한 , 무소부재한 , 그것도 좋아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능치 못함이 없으신 .

그러나 아무리 능치 못함이 없는 힘을 갖고 있고, 아무리 모든 것에 무불능통한 이런 입장에 섰다 하더라도 자기만을 위하라고 하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천이면 , 만이면 수많은 인류 아마 수천억이 텐데, 인류들이 모여 사는 그런 영계가 있다면 영계에서 하나님이, 나는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인 존재이니 너희들은 나를 절대적으로 위해야 된다.'이렇게 전부 하나님만을 위해야 되는 입장에 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 인간의 양심의 본질로 , 그걸 영원히 환영할 없습니다. 그건 반드시 상충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느 때든 상충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38-70)

 

하나님이 사랑할 있는 상대는 우리 인간밖에 없습니다.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 자신이 다른 하나님을 만들 없습니다. 그래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의 하나님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다고 보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똑같은 하나님이 밥을 먹을 같이 먹고, 손질하게 되면 같이 손질하고, 일어서게 되면 같이 일어서고 따라다니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앉게 되면 같이 앉고 이렇게 억천만 똑같이 행동하게 되면 살아가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하루도 가서 눈이 뒤집어질 것입니다. , 말을 어떻게 해요? 말을 하게 되면 며칠이나 말할 같아요? 사흘이나 가겠나? ‘저것, , 똑같잖아! 죽겠다.' 것입니다. (141-9)

 

종교의 중심은 뭐냐? ()입니다. 하나님입니다. 물론 신에 대한 이름은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름이 문제가 아닙니다. 신은 둘이 없는 것입니다. 근원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의 신입니다. 하나의 신을 두고 말하게 나라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신을 표시하는 명사는 달리 나타나지만 본체(本體) 하나인 것입니다. (210-197)

 

하늘과 자체도 스스로 있고 싶어 있게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있게 동기와 근원을 통해, 어떠한 힘의 원천에 입각하여 생겨났다는 생각하게 , 여기에서도 한층 올라가 반드시 중심적인 주체를 갖추어 가지고 하늘땅을 움직이든가, 혹은 여기에 창조를 하든가 하는 힘의 작용체, 근본의 작용체가 계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그분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다르게 표현하는 호칭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우주에는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중심은 전체 존재세계 앞에서, 존재가 작용하고 이동하더라도 이동하는 데에 따라 이동하지 않고, 움직이는 상대적인 세계의 중심에서 억천만 움직이지 아니하는 중심적인 본체가 있지 아니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154-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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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법도 안에서의 전지전능이다

 

   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하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게 동기가 뭐냐? 근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 없습니다. 때문도 아닙니다. 지식 때문도 아니며 알고 싶어서 만든 것도 아닙니다. 무슨 권력 때문도 아닙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그분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지혜의 왕이고 능력의 왕이고 황금의 왕입니다. 다이아몬드도 얼마든지 만들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에게는 다이아몬드가 필요 없습니다. 언제나 있는데 그것이 필요합니까? 없어야 필요한 것입니다. 지식이라는 역시 우주의 모든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운동하고 작동하는 하나의 구성체를 전부 컨트롤 있는 법리, 법도를 만드신 지식에 비하면 오늘날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해 봤자 자연계의 법칙 하나 찾아서 그것 가지고 박사 됐다고 야단하고 큰소리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술도 그렇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이 있는 아니고 자연에서 배워 것입니다. 전부 자연에서 배워 것이지, 자연에 없는 것은 없습니다. (182-101)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힘이 필요해요? 우주를 움직일 있는 주체이신데, 그래요? 힘의 대왕이시니까 힘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역사에 제아무리 영웅 호걸이 잘났다 하더라도, 역사에 있어서 대국들을 치리하던 모든 군왕, 제왕들이 흘러갔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춤추다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돈도 지식도 필요없습니다. (176-133)

 

하나님 자신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무소부재하십니다. 그에게는 모르는 것이 없고, 능치 않음이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갖춘 주체로서 절대적인 자리에 계신 하나님에게 있어서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체라고 하더라도 주체 자체가 주체가 되는 동시에 상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되느냐? 사람에게는 동쪽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필요하고 동서가 있으면 남북이 필요하고 남북이 있으면 전후 상하가 필요해 가지고 하나의 구형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구형을 표준으로 해서 움직입니다. (201-7)

 

별나라에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다이아몬드 별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지었다면 다이아몬드 하나만 만들어 놨겠어요? (49-255)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뭐예요? 학자, 유명한 학자? 유명한 학자도 별거 없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연구하고 어떻다 해도 하나님이 만든 모든 자연계의 어떤 공식이라든가 원칙을 발표했을 뿐이지 그것 자체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학자도 좋아합니다. 다음에 대통령?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하나님이 좋아하겠어요? 세계 대통령? 우주 대통령 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신데 뭐가 필요해요? 권력도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다음에는 뭐예요? 돈이요? 말도 된다는 것입니다. (141-230)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성이 나서 한번 땅을 치시면 옥살박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대통령이고 세계의 잘났다는 사람들도 한번 소리치면 국물도 없이 흘러가 버릴 것입니다. 그분에게 권력이 필요해요? 하나님 앞에는 권력이 필요 없습니다. 그거 졸개새끼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누가 좋아하느냐 하면 악마가 좋아합니다. (210-7)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을까요? ‘힘을 자랑하느라고, 전지전능성을 자랑하기 위해서 한번 만들어 봤지!' 하면 그게 멋져요? 그럴 힘에 의해 생겨난 물건들이하나님 고맙소. 힘으로 쳐갈겨 만들어 줘서!' 이러면서 고맙다고 하겠어요? 하나님이 지혜가 많아서 너를 만들었지` 기분이 좋아요? 능력이 많아서 너를 이렇게 만들었지` , 기분이 좋아요? 능력이나 지혜로 만들었으면 내게 기쁨이 뭐고 무슨 상관이 있어?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지 능력이야? 하나님의 지혜지 지혜야? 나를 보면 무력하기 짝이 없는 나인데.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75-143)

 

오늘날 기독교에서 하나님 아버지,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는데,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이지, 무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법을 세워 놓았으면, 영원하신 분이 제정한 법은 영원한 것입니다. 자기가 세워 놓은 것을 마음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순응하고 넘어가려는 하나님의 권위, 그게 놀라운 것입니다. 공의를 세우는 있어서는, 천리의 원칙에 부합될 있는 공법을 세우는 있어서는, 절대 하나님이 먼저 밟고 넘어간 후에 만민이 따라가게 되어 있고, 우주가 따라가게 되어 있지, 그것을 2 돌릴 없습니다. 그러한 인간 창조의 이상적 기준이 있습니다. (162-172)

 

하나님 혼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기성교회 목사님들이 생각하기를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창조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 언제라도 마음대로 있지.' 이럴지도 모르지만 천만에요. 천지의 모든 존재물들은 법칙, 대원칙에 의해서 작용합니다. 제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원칙을 파괴하고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나라의 대통령이라도 헌법을 위주하여 제정한 모든 , 입법을 통해 제정한 법을 중요시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금 야단 아니예요? (166-94)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하나님이 사랑을 하고 싶으면 만들면 되지 사랑을 만들었느냐? 그건 마음대로 만들었다가는 하나님이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드니까, 그건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이구, 하나님은 전지전능한데 만들다니.' 그러면 이원론이나 다신론으로 결론이 떨어질 텐데. 하지만 의심하면 그렇습니다. (173-190)

 

요즘 사람들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유일무이하시고, 다음에 영원불변하다고 하는데, 절대적이어서 하는 거예요? 유일해서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유일한 것과 우리가 무슨 관계가 있어요? 문제입니다. 전지전능하면 해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영원불변하면 해요? 하나님 자신에게는 좋지만 우리 인간들에게 하등의 관계가 없다면 그건 헛된 것입니다. 필요없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신앙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전부 가려 주어야 됩니다. (223-249)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전권자이시고, 무소부재합니다. 그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요? 나와 무슨 관계가 있냐는 것입니다. ‘, 전권이 있으니 나를 지배하기에 좋겠구만, 무소부재하니 어디서든지 나를 감찰하기에 좋겠구만, 모르는 것이 없으니 나를 세밀히 분석하고 꼼짝못하게 만들겠구만.' 하나님이 나를 전지전능으로 지배만 하신다면 좋을 있어요? (130-209)

 

하나님은 천지를 무엇으로 주관하느냐? 법으로 주관하는데, 법도 사랑으로 치리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치리의 방향을 후원하기 위해 우주의 법도 존속합니다. 하나님이 인간 창조를 이유는 사랑이 그리워서입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텐데 무엇 때문에?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2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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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만이 절대 기준이다

 

하나님이 가지 꼼짝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요? 전지전능하시지만 한가지 마음대로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같아 보여요? 금을 만들겠어요, 다이아몬드를 만들겠어요? , 힘이 없나? 전지전능하신 분이 가지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예요? 사랑입니다, 사랑. 선생님 마음에도 사랑이 있겠어요? 있다고 봐요? 여러분의 마음에도 사랑이 있어요? 있기는 있습니다. 있기는 있는데 자기 혼자 사랑, 나혼자 사랑, 사랑!' 이러고 있으면 미친놈이 됩니다. (142-263)

 

하나님 혼자 사랑을 이룰 있어요? 전지전능하시고 유일무이하신 하나님 혼자서아이고, 기분 좋구나!`' 그러겠어요? 그러면 하나님도 미쳤다고 수밖에 없습니다. 레버런 문도 사랑을 느낄 있는 것을 갖고 있다고 해서 혼자서아이구 좋아라! 아이구, 사랑이야!' 그러면 저거 미친 녀석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렇지만 상대되는 종이 짜박지 하나라도, 이런 손수건을 중심삼고라도사랑하는 그대 손수건!' 이러면 누가 욕을 해요? 우주를 대신하여 등장할 있는 상대적 가치와 권위가 사랑의 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142-9)

 

아무리 절대자 하나님이라 해도 혼자서는 사랑을 가질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만 찾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사랑만은 하나님 혼자 소유할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의 소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의 자극과 사랑의 신호는 상대를 통해서만이 재현되는 것이지 자체만으로써는 현현할 없습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138-141)

 

과부 홀아비를 불쌍하다고 하는데 불쌍하다고 해요? 사랑이 속에 있지만 발동할 무언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하나님이라 해도 상대가 없을 때는 사랑이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천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누구를 중심삼고 상대하고 싶어 하느냐?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사랑의 작용을 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130-17)

 

하나님이 사랑을 좋아하는데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참사랑입니다. 그런데 참사랑이란, 어떤 것이 참사랑이에요? 참사랑이란 사랑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얘기하느냐?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거 이상한 말이지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참사랑의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사랑의 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있는 사람에게 뿌리를 심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177-232)

 

하나님이 천지를 누구 때문에 창조했느냐? 하나님 자신 때문에 했느냐, 상대적인 창조물 때문에 했느냐? 하나님은 물론 자기를 위해 지었다고 있지만 상대를 중요시하는 모든 창조의 기준을 두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상대의 주체가 누구냐 하면 인간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모든 인간의 행복을 중심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야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닙니까? (109-263)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사랑까지도 마음대로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뭐예요? 하나님이 전지전능 못하지 않느냐? ‘하나님, 당신은 전능하지 못하지 않소?'하면나는 전능하기는 하지만 사랑에는 전능하지 못하다.'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래요? (98-31)

 

하나님 혼자서는 하나님 노릇 합니다. 그게 무슨 재미예요? 먹을 것이 걱정이에요? 것이 걱정이에요? 입을 것이 걱정이에요? 든지 마음대로 공급받을 있는데 비행기를 타고 공중을 돈댔자 시간 돌고 나면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고 아무리 잘났다고 뻐기는 하나님이라도 재미가 있을 없습니다.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없습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귀하다고 하는 것을 창조해 두고 보는 재미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61-109)

 

하나님이 무엇이 그리워서 창조를 했느냐? 절대자인데 그가 무엇이 그리워서 창조를 했느냐 이겁니다. 그분은 황금도 필요하지 않고, 지식도 필요하지 않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갖추지 않은 것이 없는 분인데, 무엇이 필요해서 사람을 지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근본 동기가 무엇이냐? 권력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소유물도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무엇이 없었겠느냐? 사랑의 기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역시 혼자 있어 서는 사랑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 창조의 동기, 알파적 기원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49-142)

 

하나님에게 무슨 사랑이 필요하냐? 하나님도 사랑을 갖고 있지만 상대가 있어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 갖고 있어요? 그런데 혼자서아이고 좋다! 아이고 사랑이야!' 그러는게 좋아요?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가 나타나야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사랑의 상대가 없게 때에는 고독한 하나님이요, 슬픈 하나님인 것입니다. (94-207)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하시고, 아무리 절대자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좋은 일이 있을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명사, 혹은 좋다라는 말은 혼자 있어 가지고 설정되는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 있어야 좋고 행복하다는 말이 있을 있습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혼자 가만히 있다고 한다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음악가가 혼자 노래를 불렀다고 합시다. 그게 행복해요?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좋으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혼자 있어서는 되는 것입니다. (65-9)

 

하나님 자신을 존재하게 기원이 뭐냐? 무엇에서 생겼겠느냐? 하나님이 존재하기 위한 기원이 뭐냐? 전지전능이에요? 절대적 권한이에요? 절대적 권한이 있으면 ? 혼자 있는데. 혼자 있는 양반이 절대적 권한이 있어서 ? 아무도 없는데. 혼자 절대자 되어 있으면 지식이 있어서는 ?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위하라는 사랑이 아니고 위하려고 하는 사랑입니다. (218-227)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참사랑 앞에는 꼼짝못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참사랑의 자리에서는 꼼짝못합니다. 아내를 진짜 사랑한다 때는 아내 앞에 경배하고 싶겠어요, 하고 싶겠어요? 경배하고도 남습니다.

우주 가운데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참으로 사랑하지 않을 없는 아내가 어디서 왔노? 그거 없다고 생각할 때는 사지가 마비됩니다. 사실 없다고 생각할 때는 큰일납니다.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좋으니까 대통령인들 없이 궁둥이를 하늘로 하고임이여, 사랑하소서! 사랑하나이다!' 합니다. 그럴 조그마한 여자가 앉아서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211-71)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사랑을 혼자 마음대로 수는 없습니다. ‘전지전능하니까 사랑도 마음대로 있지.' 모르지만 그러면 문제가 큽니다. 사랑의 대상이 필요없다는 논리에 봉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절대적인 중심존재로서 자기 스스로의 사랑, 하나님적 사랑에 대한 자극과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랑의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208-231)

 

하나님 자신도 상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혼자는 이룹니다. 내가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아이고. 오늘 좋구만.' 이렇게 열렬히 말한다면 미쳤다고 아니예요?

그러나 상대가 있어서 열렬히 말해도 그것이 사리에 맞고 환경 여건에 부합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혼자좋아, 좋아! 아이고, 사랑 좋아!' 하고 춤추면 그게 뭐예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혼자로는 됩니다. 상대를 세워 놓아야만 자극적인 사랑을 느낄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141-78)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과 상대가 되는 힘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며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원불멸하고 자존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닌 무엇을 바라고 계시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 동시에 하나님께도 절대 필요한 것으로 참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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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절대복종이다

 

하나님도 사랑을 좋아하시니까 사랑에 미칠 있을까요? 천지를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훌륭한 하나님이 사랑에 미칠 있어요?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가 안에서는 조그마한 할머니에게 꼼짝 못하는 적도 있습니다. 그건 무슨 코에 걸려서 그러느냐? 사랑의 코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꼼짝을 못합니다. (137-81)

 

능력이 많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어떤 것을 좋아하시겠느냐? 하나님은 인간들보다 낫기 때문에 사랑을 좋아하지 않을 없다는 결론이 이론적으로 가장 타당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도대체 뭐냐? 영원 전부터 영원히 위하는 사랑을 갖고 계시고, 그러한 사랑을 하려고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90-82)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들이 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되고 싶으냐? 돈이에요? 하나님이내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권력을 중심삼고 부자의 관계가 돼야지.' 그래요? 지식? 그건 곁다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과 나는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 사랑만이 제일이다.' 그래야 됩니다. 사랑을 완전히 점령하는 날에는 천하에 아무리 권능이 많은 하나님이라도, ' 그런다는 것입니다. (69-174)

 

아무리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절대복종하라고 명령할 있어요? 나도 참사랑에는 절대복종하니 나처럼 너희들도 참사랑에 복종해라!' 이래야 아버지 되는 하나님으로서 당당한 하나님이 되지, 하나님은 지키지 않고! 아들딸 너희들은 사랑에 절대 복종해라!' 하면 그게 말이 돼요?

참사랑의 자리에 있는 하나님이 독재자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내가 참사랑에 영원히 절대복종 하듯이 아들과 딸도 참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복종할지어다!' , 아들딸이아멘-!'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아버지는 맘대로 하고 우리만 복종하라고 ?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벌어집니다. 이렇게 하나님도 참사랑에는 절대복종한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으면 됩니다. (211-71)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참사랑 앞에는 절대복종하는 것입니다. 어때요? 말이 듣기 좋아요, 듣기 나빠요? 참사랑은 동쪽에서 들으면 좋고 서쪽에서 들으면 나쁠까요? 서쪽에서 들어도 좋고 남쪽에서 들어도 좋고 북쪽에서 들어도 좋고, 위에서 들어도 좋고 아래서 들어도 좋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사시장철 넘어가서, 청년시대와 노년시대를 넘어서 참사랑은 영원히 듣기에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211-71)

 

절대적인 힘을 주장하는 하나님도 사랑이 정착할 있는 자리, 사랑이 있는 자리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좋아하는 것입니다. 절대 좋아하는데 얼마만큼 좋아하느냐? 절대적 전지전능 무소부재 있는 것보다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복종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라고 그러지요? 그러면 아버지 자신이 사랑을 중심삼고 살지 않으면서 아들딸에게얘들아, 너희들은 사랑에 절대 복종하고 살아라.' 하는 말을 있어요? 근원이 없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도 사랑에 절대 복종하며 내가 이렇게 사니 너희들도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교육을 있는 것입니다. (207-216)

 

절대적인 하나님도아이고 내가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모든 가졌지만 나도 절대적인 무엇에 순종하고 살면 좋겠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를 위하라고 하는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위하라는 사랑을 해서 되겠다는 것입니다. (201-110)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고 했으니까 전지성을 중심삼고? 지식을 중심삼고? 아닙니다. 그러면 중심삼고? 가지고? 가지고도 안됩니다. 아무리 봄이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꽃필 있는 환경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아무리 여름이 힘이 있다 하더라도 무성하게 있는 그런 시기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을을 맞게 되면 그게 전부 시들해지는 것입니다. 가을이 아무리 결실의 시기라 하더라도 겨울을 극복 못하는 것입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태양을 언제나 중심에 모시고 있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춘하추동을 극복할 있지, 외에는 못합니다. 말이 뭐냐 하면 아들딸, 누나, 동생, 형제끼리 싸우고 있는 판국에 부모의 전통 되시는 하나님이 거기에 들어가 중심이 되어서이렇게 해라!' , 통일이 되겠어요? 통일 안된다고 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이지. (221-175)

 

오늘날 현대신학이 망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뭐냐 하면하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니 그분은 사랑도 마음대로 있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혼자 마음대로 사랑할 있어요, 우리 사모님 없이? 있어요? 있다는 녀석은 미친 녀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혼자 사랑할 있어요? (209-64)

 

하나님이 전지전능한데 하나님과 같이 전지전능한 것이 있어서 둘이 사랑하게 되면, 세계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밸런스가 맞고 도리어 도망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가운데 걸려서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옆으로 빠져 버립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로 가고 강한 것은 약한 것에게로 들어가야 가운데 끼어서 꼼짝못하는 것입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을, 강한 것은 약한 것을 원합니다.

여자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죽어 버려라 이겁니다. 여자 같은 남자를 사랑하겠다는 여자는 죽어 버려도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 손을 만지면 기분 좋아요? 여자끼리 손을 잡으면 기분 좋아요? 부드러운 여자 손이 부드러운 손을 잡으면 그거 얼마나 기분 나빠요? 부드러운 손의 느낌이 얼마나 기분 나빠요? 그건 죽기보다 싫습니다. 그러니까 죽어버리라는 것입니다. (167-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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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사랑으로 무소부재하신다

 

   사랑만이 경계를 넘나든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속에도 있습니다. 하늘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무소부재(無所)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기를 원할진대, 여러분이 바라보는 물건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니 물건을 내것으로, 천지의 모든 존재물을 내것으로 품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최고의 () 통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소유된 사람입니다.

나는 마리나 향기를 풍기는 포기를 보고도 마음으로 영원을 노래할 있는 경지에 들어간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만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8-167)

 

그러면 하나님의 편재성(遍在性) 어떻게 느끼느냐? 공기를 하나님의 입김과 같이 느껴라. 태풍이 불어오거든 그것을 하나님이 세계를 위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시면서 흘리신 땀과 같이 느끼라는 것입니다. 태양를 바라보거든 태양이 우주 전체의 생명의 요인을 상징하였음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태양에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데 하나의 교본이요 교재로 전개시킨 , 사랑하는 아들딸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교재로 세워 놓은 것이 자연입니다. 나뭇잎을 보고 자기 아들딸같이 여기고 혼자 중얼거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인에 가까운 것입니다. (59-102)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시니 우리도 무소부재한 것을 닮고 싶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니 우리도 전지전능하고 싶고, 하나님께서 유일무이하시니 우리도 유일무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닮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나를 하나님 닮게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이 천하를 다스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비슷비슷하게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26-147)

 

사랑을 통해 체휼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슬퍼하실 때에 내가 슬픔을 느끼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자기도 모르게 기뻐지는 것입니다. 효자는 천만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효자의 곁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재성에 있어 하나님은 어디에 있느냐? 지식적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극과 극을 넘어서 편재를 타당하게,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랑을 통하는 길에 부모의 사랑은 무소부재(無所不在)입니다.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만이 가능합니다. 사랑만이 아들을 완전히 지배할 있는 것입니다. 전능한 권한은 거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59-65)

 

사랑에는 위대한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불변적인 참사랑과 일치된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내가 가세할 있고, 언제든지 동거할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눈을 감지 않고도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비통한 심정을 체휼한 자는 길을 가다가도 멈추고 통곡을 하는 그런 체휼적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은 만일 자식이 외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면 느낌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자다가도! 아무개야' 하고 소리치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201-339)

 

그래 동맥(動脈) 위대하냐, 정맥(靜脈) 위대하냐? 어떤 위대해요?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위대하냐? 사람이 위대하냐? 그것 역시 같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이 동맥적이라면 우리 인간은 정맥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대등할 있는 그런 특권을 지닌 인간의 가치가 있습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나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게 무엇을 중심삼고 그러냐? 사랑을 중심삼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말이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109-118)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욕심장이 중에도 대왕 욕심장이입니다. 계시지 않은 곳이 없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입니다.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니 얼마나 욕심장이에요? 욕심꾸러기라고 하거나 욕심장이라고 해서는 되겠지만, 하여튼 욕심이 많으시다는 말입니다. (121-62)

 

하나님은 절대 복종할 있는 길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절대 주관하려고 하는 그런 절대, 독재적인 성격을 가진 하나님이 절대 복종할 없게 때에는 높은 것은 주관할 있으되 낮은 것은 주관할 없습니다. 무소부재라는 자체가 모순된 말이 됩니다. 하나님도 우리 닮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아들딸 닮았지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도 절대 복종하면서 살고 싶어 합니다. 없다 때는 하나님이 얼마나 고독하겠어요? (192-23)

 

자기가 그린 작품을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취해 바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그린 화가가 기분 나빠하겠어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와서 안방에 모시고 그랬소?' 하면서, 사연을 얘기하게 것이 아니예요? ‘아이고 좋아. 아이고 그리워, 아이고 같이 있고 싶어.' 한다고 해서 미쳤다고 하겠어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몰라도, 하나님이 만우주에 있는 편재성을 지식적인 주체로 계시기보다는 사랑으로 계시기 때문에내가 어떻게 사랑의 동감권(同感圈) 분야에서 체휼할 있느냐? 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재인식하고 재발견해 보라는 것입니다. (5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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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에는 사랑이 없는 곳이 없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인데, 절대적이냐? 사랑에 절대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하나님은 무소부재입니다, 무소부재.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223-208)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를 품고도 남습니다. 중심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기반을 포용하는 사랑의 중심자가 하나님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움직인다고 경우에는 작은 것도 전부 따라서 움직여야 됩니다. 하나의 안에 전부 들어가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전세계, 전우주를 커버한다고 해도 이론적인 말이 되는 것입니다. (205-27)

 

하나님이 없게 때는 우주는 것입니다.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게 된다면 우주는 것입니다. ?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혼자 있더라도 하나님이 있는 알게 때는 우주는 것입니다. 어디나 계신다는 말입니다. 어디나 계신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 가운데서는 무소부재의 감동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모르게 때는 모든 것이 것입니다.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91-292)

 

사랑의 주체가 없으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체가 있으면 모든 것이 찹니다. 사랑이 꽉차야 모든 것이 차기 때문에 무한히 있고, 참되게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주고받는 것은 이상의 실현이요, 이상의 번식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거리를 초월합니다. 사랑이 얼마나 빠르냐 하면 빛도 따라갑니다. 제일 빠른 것이 사랑입니다. 제일 밝은 것도 사랑입니다. 제일 완전한 것도 사랑입니다. 제일 완전히 차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뭐냐? 돌아갈 있는 윤활작용(潤滑作用) 궤도작용를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윤활역할(軌道役割) 됩니다. 자동차도 움직이게 하려면 기름을 쳐야 합니다. 운동하는데는 윤활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운동하려면 윤활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기쁨의 윤활작용을 하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뿌리가 무소부재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신경과 같습니다. 우리가 머리카락 하나를 당기면 전체가 끌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만 당기면 우주가 끌려오고, 사랑만 움직이면 우주가 화해 돌아가게 됩니다.

우주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 있는 하나의 주체가 있을 그건 어떤 주체냐? 절대적인 하나의 중심자가 아닐 없습니다. 사랑을 어떠한 마음의 자리에도 꽉꽉 채워 절대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무한한 절대자라야 됩니다. 오늘날 수십 억이 되는 인류의 마음을 채워 줘야 하나님의 사랑의 양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건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라는 말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말은 하나님에게 필요한 단어다 이겁니다. (11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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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기존 신관들의 문제점

 

   기성신관은 이율배반적이다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반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있는가?', ‘하나님이 전지, 전능, 무소부재하고 지선(至善), 지미(至美)하고, 사랑이며, 심판의 주이며, 인류의 아버지 등으로 표현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있는가?', ‘가만 있어도 좋을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였는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무엇일까?', ‘창조에는 방법이 있었을 것인데 방법은 무엇일까?', ‘절대선(絶對善)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약육강식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인간이 타락해서 죄의 세계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완전한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타락하게 되었는가?' 등이 그것입니다. (122-298)

 

하나님이 문제가 많습니다. 전지전능하다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히게 해요?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면 구원할 없어요? 그거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 전지전능하다면서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구원할 없다면 그런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입니다. 인간 앞에서 추방해야 하나님입니다. 믿긴 믿어요? (136-101)

 

하나님은 인간을 타락하게 해놓고 슬퍼하는가 하는 근원을 파헤쳐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전지전능하시다는 하나님이 이렇게 무능한 하나님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알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33-214)

 

지금까지 신학자들이나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 반대하는 사탄을 방어하지 못했느냐 하는 문제는 몰랐습니다. 이것이 영계를 통해 가지고도 문제입니다. 어느 때든지 하나님편으로 가려면 반드시 사탄이 방해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방면에서, 일방이 아닌 팔방에서 반대하게 되는데, 그걸 하나님이 간섭하지 못하고 제재하지 못하느냐? 이런 문제가 지금까지 수수께끼입니다. 영계를 통해도 그것만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133-86)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만 역사를 통해 인류를 이끌어 나왔는데 어찌하여 선의 목적을 이룰 있는 세계로 이끌어 가지 못하고, 종국에 와서는 이와 같이 낙망과 절망의 세계로 향하지 않으면 되게 됐느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신이 없다고 단정할 있는 내용도 되는 것입니다.

신이 없다면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이상이라든가 혹은 평화의 세계, 인간들이 추구해 나가는 유토피아적 내용이 미래에 가능한 것으로 인간들 앞에 맞아질 것이냐? 지금까지 오랜 역사노정을 통해서 생각하는 사람 혹는 무수한 철인들이 그와 같은 세계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미달해서 현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보게 , 미래에 우리들에게 그런 희망의 세계를 가져다 준다고는 없는 것입니다. (130-17)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사탄을 그렇게 두는 걸까요? 하루 저녁에 모가지를 잘라서 처단해 버리면 것인데 그냥 둘까요? 그거 둬요? 그게 종교에 있어서 제일 난문제인데, 그게 간단한 내용이예요? (127-79)

 

지금 수많은 종교인들은하나님'하면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다,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분이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슨 고통이니 슬픔이니 그러한 개념과 상관없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다, 이렇게 부릅니다. 그리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든 신자들은 죄악된 세상에서 회개를 해야 되고 신앙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부자의 관계에 있는데 하나님과 인간이 이렇게 이율상반(相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23-150)

 

오늘날 기독교에서하나님은 거룩하고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공의의 심판주로 보좌에 앉아서 만민을 심판하는 심판장이다.'라고 하는데, 여러분, 재판장이 좋아요? 재판장을 10 했다가는 병이 들어 죽습니다. 죽는다기보다 병이 들어 나가 자빠집니다. 병이 들면 그건 가짜들입니다. 남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했을텐데, 자기가 내린 판결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논법이, 해설법이 여러 가지 방향이 있는데, 자기 판결에 의해 사람의 생사문제를 결정짓는 놀음을 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주의 공법에 비추어 보게 법이 절대적일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사람은 10 판사 하면 병이 나야 된다 이겁니다. (198-279)

 

, 그러면 천지의 대주재 되는 하나님이 있다면 한번 물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보좌에 앉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심판주로 오셔서 나쁜 놈은 지옥 보내고 좋은 놈은 천국 보내고. 그거 보고 좋아하는 하나님이라면 미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초월한 절대선의 자리에 계십니다. (194-9)

 

기성교회 목사들은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가지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다고 그러는데, 그거 무슨 재미예요? 보좌에, 왕좌에 몇만 그냥 앉아 있으면 궁둥이가 물러질 아니에요? 여러분, 앉아 있는 좋아하거든 3 동안만 앉아 있어 보라구요. 그래서 하나님은 뭘하고 있느냐? 기독교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영원히 영광 가운데. 혼자 앉아 무슨 영광이예요? 영원 전부터 오늘날까지 자리에 앉아서 권력 좋구만. 전지전능하고 요사스러운. 그거 뭐해요?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를 부정할 없습니다. (191-9)

 

하나님이 자기 마음대로 같으면 지금까지 수만 역사, 인류역사를 말하게 되면 85 년에서 150 년까지 잡고 있는데, 그런 기나긴 장구한 세월 동안 인간을 요꼴로 만들어 왔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는 말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거 허황한 논법입니다. 하느냐 이겁니다. 하느냐? 조건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162-172)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것이냐?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거룩하신 분이고 우리 인간은 속되다고 하지만, 잘못 알았습니다. 저나라에 보라구요. 오늘날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하나님 아버지'라고 자기들도 하면서. 아버지라는 뭐예요? 거룩하고 상대할 없는 관계에서 아버지란 말이 벌어져요? 그건 벌써 처음부터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모순 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총재가 말하는 것은 사리에 닿습니다. (240-164)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나님이 처음으로 인간을 아들딸로 지었는데, 아들딸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것을 봤겠어요, 봤겠어요? 인간이 타락해서 쫓겨났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런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인 것을 기성교회 신자들은 모릅니다.

하나님이 영광 중에 있으면서 전지전능해서 무엇이든지 아는데, 그런 하나님이라면 수천 동안 이렇게 인간을 구원 못해 주느냐 이겁니다. 그걸 어떻게 답변할 거예요? 그것은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인간이 지었기 때문에 죄를 청산하는 것도 인간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226-292)

 

하나님이 절대 바라는 것이 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뭐예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바라는 뭐냐? 능력이에요? 오늘날 기성교회, 기성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공의(公義) 심판주로 와서 선한 사람은 천국 보내고 악한 사람은 지옥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 재판장이 좋아요? 세상에 재판장이 좋아요? 무슨 고약한 하나님이 가지고 지옥으로 보내고 천국 보내게끔 만들었어요? 논리적으로 전부 부당한 처사라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211-71)

 

기성신학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옵니다. 이것은 우주 생성의 본성적 원리에 위배되는 논리입니다. 기독교의 전통적 주류 사상이 사랑이라 했는데 속된 죄인과 거룩한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될 있어요? 이론적 근거를 대라 이겁니다. 이론을 대면 허무한 것입니다. 가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도 절대적인 하나님 자신이 절대 복종하고, 절대자인 하나님의 생명을 버리더라도 위하고 싶고 갖고 싶은 상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204-57)

 

오늘날, 기성 신학자들이 말하기를신앙 전체를 우리는 비판해야 때다. 지금까지의 신관, 인생관에 대한 모든 것을 재검토할 때에 들어왔다.' 합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사조는 피조물은거룩하신 창조주와 대등한 자리에 없다.'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 혼자서 사랑하겠느냐?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뭐냐? 하나님 혼자 하겠느냐? 묻게 된다면 대답을 어떻게 거예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77-308)

 

기독교에서는 절대적 하나님만 믿으면 무엇이든지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국가가 나왔고, 피를 흘린 것입니다. 사랑이란 논리를 찾을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제일이라고 하는 전제 아래서는 아무리 봤자 사랑의 하나님 꽁무니만 따라다녀야 아니예요? 사랑이란 것은 대등한 개념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그런 개념에서는 수평이 되고서 수직을 찾을 없습니다.

독재 역사가 나오고, 흘리는 역사가 기독교를 등에 업고 나옴도 하나님만을 절대시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대신 칼을 것도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은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도 절대자지만, 절대자로서 절대 사랑 앞에 굴복할 있는 것을 논의한다는 사실을,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있는 염원이 있다는 사실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겁니다. (219-127)

 

피조세계가 생겨나게 동기가 뭐냐?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해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오늘날 기성신학의 신관(神觀) 그래서 틀렸다는 겁니다. 절대적인 힘의 하나님, 힘만 가지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문화가 거쳐가는 데는 피를 흘려 왔습니다. 서구 문명이 기독교문화를 따라 발전해 왔지만 이제 기독교문화는 종말세계에 파탄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는 것을 이런 논리에서 예측할 있는 것입니다. (209-23)

 

역사는 과학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모든 근원을 파악하고 종의 기원을 탐구해 가지고 근본을 추구하는 과학의 발전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종교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지 않을 없는 일입니다. 거기에 주체적인 관을 가지고 세계가 어떻고 창조의 내용이 어떻다는 것을 설명해 가지고 하나님을 입증할 있는 종교가 나와야 텐데 그런 종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 있는 그런 종교의 내용을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11-132)

 

인간이 절대자에 의해서 창조되고 절대자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지음받았다면 인간의 창조에 동기와 목적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동기와 목적이 밝혀지려면 절대자가 어떤 분인가 하는 문제, 올바른 신관(神觀) 우선 세워져야 합니다. 올바른 신관이 세워짐으로써 그분의 창조의 동기와 목적이 밝혀질 것이고, 따라서 평화를 위해 절대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도 명백해질 것입니다. (110-249)

 

절대적이며 영원하고, 유일하며 불변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러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견지에서 참된 사랑, 참된 이상,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의 기원을 요구하지 않을 없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신관,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인생관,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물질관, 이것을 확실하게 하는 데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평화와 새로운 행복의 세계를 우리는 맞이할 있는 것입니다. (77-257)

 

종교분쟁의 근본원인도 역시 본체론의 애매성에 있습니다. 절대자는 오직 하나이며 둘이나 셋이 있을 없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절대자만이 바른 신이며 외의 신은 참신이 아니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종교마다 절대자가 있는 셈이 되어 절대자가 여럿이라는 배리(背理) 성립됩니다.

따라서 모든 종교의 신은 상대적인 신에 불과하였다는 결론이 되어 종교를 통해 세워지기로 되었던 절대적 가치관,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에 관한 이론은 상대적인 것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때까지의 종교는 혼란을 수습할 있는 절대적 가치관을 세울 없다는 결론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종교가 절대자에 대한 정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라 아니 없습니다. (122-298)

 

종교마다 교리가 성립되는 근거로서의 절대자가 있습니다. 유대교의 절대자는 여호와신이요, 기독교의 절대자는 (God), 하나님이요, 회회교의 절대자는 알라신입니다. 유교나 불교는 절대자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교의 덕목의 근본인()' 천명과 연결되기 때문에()' 유교의 절대자라고 있으며, 불교에서는 제법(諸法) 항상 변화하며  진리는 제법의 배후에 있는진여(眞如)'에서 찾을 있다고 하니 진여가 불교의 절대자라고 있습니다. (122-298)

 

새로운 종교를 위한 본체론은 종래의 모든 절대자가 각각 별개의 신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신임을 밝혀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신의 속성 일부를 파악한 것이 종교의 신관이었음과 신의 전모를 옳게 파악하여 모든 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워진 형제적 종교임을 밝힐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본체론은 하나님의 속성과 함께 창조의 동기와 창조의 목적과 법칙을 밝혀 목적과 법칙이 우주 만물의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인간이 지켜야 규범도 결국 우주의 법칙, 천도와 일치함을 해명해야 것입니다. (122-298)

 

통일교회 원리가 위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창조성이 구체적이라는 것입니다. 창조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어떻게 타락했느냐 하는 실질적인 논리가 있습니다. 다음엔 역사관이 있습니다.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방치해 두지 않고 재창조하시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목적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일목요연하게 파헤쳤다는 것입니다. (208-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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