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Box: TP portrait 10 성약인의

1 인생관

 1) 인생이 무엇이냐

  ① 지금까지 인생문제는 미로

 

내가 왔으며, 내가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느냐? 태어난 것을 여러분 스스로 태어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됩니다. 태어나기는 했으되 무슨 동기로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나를 낳게 동기와 목적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나기는 났으되 내가 나고자 해서 것이 아니요, 살기는 살되 내가 살고자 해서 사는 것이 아니요, 죽기는 죽되 내가 죽고자 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들어 무엇을 자랑할 것이냐? 자기 자신이 나고 싶어 나지도 못하고 자기 자신의 무엇을 갖고 살지도 못하고, 죽음의 길을 피할 수도 없는 자신을 가지고 무엇을 자랑해 보아야 처량할 뿐입니다. 났으니 살아야 운명이요, 그렇게 살다 가야 운명입니다. (7-178)

 

오늘날까지 철학은 역사시대를 통해 인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해 왔습니다. 참된 인간의 가치, 인간을 어떻게 완성할 있으며 인간 자체로부터 승리하여 만우주에 자랑할 있는 승리의 완성격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수많은 철인들이 나와 고심하면서 별의별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에 와서 인간을 통해 사상체계를 세워 놓았던 모든 주의, 주장들이 이미 실험을 필하였고, 이미 낙제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탈락해 버렸습니다. (141-125)

 

인간이 이렇게 어영부영 살면서 죽기를 싫어하고, ' 살아야 ? 근원이 어떻게 돼서?' 하는 등의 의문이 많습니다. 모든 의문은 인간의 철학 서적을 통해서는 해결 못합니다. 철학이라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길을 개발한 것입니다. 종교는 뭐냐? 하나님을 알아 더불어 사는 생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종교생활입니다. (186-12)

 

인생을 이렇게 살다 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문제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동기가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으니 목적도 나만의 것이 아님에 틀림없습니다. 사는 있어서 행복한 자리를 싫어하는 자가 어디 있으며, 호화찬란한 자리에서 살고 싶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마음대로 없는 것이 나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자랑하고 싶고, 마음대로 살고 싶고, 마음대로 남아지고 싶은 나입니다. 이런 심정의 교차점을 지닌 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80 살았다고 했을 , 가운데 밤에 자는 시간을 제하고 나면 40년으로 줄어듭니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자는 것도 사는 건가요? 자는 것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자는 것은 죽은 목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4시간 가운데 살겠다고 허덕이는 시간은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먹는 시간을 시간씩 버리고 나면 어때요? 먹는 데도 시간은 잡아야 됩니다. 가운데 친구 잔칫날, 이웃 동네 어른의 환갑날, 누구 죽은 , 장사지내는 , 병들어 누워 있는 , 별의별 날을 제하고 나면 일생에서 산다고 하는 날이 절반이나 같아요? 요전에 계산해 보니까 산다고 하는 날이 7년이 나옵니다. 7 가운데 진정으로 살았다고 있는 날이 며칠 나오느냐 말입니다. (49-336)

 

일생이라는 빠릅니다. 철들어 세상 물정 알고 이렇고 저렇고 하다 보면 사십이 넘고 오십이 넘어 10년은 잠깐입니다. 10년이면 육십 잠깐이고, 육십 되면 칠십 잠깐이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139-153)

 

자기 운을 100만큼 타고 사람이 120만큼 살다 가면 후손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운은 고무줄과 같아서 조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80만큼 살다 간다면 20만큼의 복을 남겨, 운세를 후손 앞에 상속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78-333)

 

운명은 변경할 있지만 숙명은 변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변할 있어요? 자기 아버지의 아들딸로 태어난 것이 변할 있어요? 나라의 주권이 아무리 강하고, 나라의 관습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아버지의 아들딸은 변경할 없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복귀의 길은 숙명적인 길입니다. (172-55)

 

출발을 잘못하면 난데없는 곳으로 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가 대해(大海) 항해하더라도 출발한 항구에서부터 나침반을 중심삼고 가야 목적지를 향하여 방향성을 그려 놓고야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출발한 항구가 어디냐? 모르고 있습니다. 나침반을 가지고 피안의 세계에 도달할 있는, 목적지를 그려 있는 방향성이 어디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꼬불꼬불 제멋대로 왔다갔다했습니다. 이렇게 , 인간은 제아무리 한다고 해봤자 인간으로 끝나는 겁니다. (172-28)

   

  ②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일생을 거친 후에 나는 어떠한 곳으로 것인가? 이것이 인간들이 해결해야 중요한 문제입니다. 종교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철학도 역사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동원돼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도 이런 운세에 사로잡혀 이끌려 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차피 가야 자신이라 할진대, 몸은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마음은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생명은 어디를 향해 기울어지고 있으며 심정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소원 혹은 소망과 이념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어차피 가야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죽는 몸은 흙에 묻힘으로써 끝날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묻히는 그날 마음도, 생명도, 심정도, 이념도, 혹은 소원까지도 같이 묻혀 버리고 것인가? 사라져 버리고 것인가? 여기에 확실한 내용과 확실한 해결점과 확실한 목적관을 세워 놓지 않는 , 이는 불행한 사람이 아닐 없는 것입니다. (8-194)

 

매미 알이 매미가 되기 위해서는 굼벵이시대, 유충시대가 있습니다. 유충시대에는 구덩이에 살고 혹은 구덩이에 있는 구멍 속에 산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가야 길은 그게 아닙니다.

대공(大空) 있는 길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날기 위해서는 아무리 구멍을 파고 들어가거나 물에서 헤엄을 치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과정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데, 그게 절대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없어서는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유충시대에서 성충시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유충시대에 있는 만반의 체제가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대되는 요소인 껍데기를 벗고 정비할 있는 한때를 반드시 거쳐야 됩니다. 허물을 벗어야 됩니다. 속에서 때는 넓적해야 되고, 위에 다니기에 필요한 모양이 적격이겠지만, 공중에서 날게 때에는 그래 가지고는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맞게끔 모든 것이 갖추어져야 됩니다. (120-236)

 

우리는 무엇을 중심삼고 태어났으며, 무엇을 중심삼고 가야 것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삼고 가야 것이냐? 이것은 하나님을 빼놓고서는 절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빼놓고는 동기 없는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동기를 갖지 못한 사람은 어떤 일을 성사시키려고 하더라도 결과는 거두어질 없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건물을 지을 때는 설계자가 설계한 설계도에 따라 건축을 하게 됩니다. 설계의 원본도 없이 지어진 건축물은 설계자가 목적한 건물이 없는 것입니다. (21-100)

 

가을 절기가 왔다는 사실은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겨울은 생명이 있는 자만이 통과할 있는 노정입니다. 생명을 가지지 못한 것은 여기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에 새로운 생명을 주입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은 새로운 사랑을 중심삼은 새로운 주의와 사상, 그리고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우주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겨울 절기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겨울 절기를 통과할 있는 생명력을 가지게 되면 그걸 통과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가면 갈수록 봄날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봄날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35-45)

   

 2) 인간은 원인되는 존재가 아니다

 

  ① 본래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태어난 인간

 

본래 우리 인간은 자의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 부모면 부모 자신들이 이러이러한 아들딸을 낳겠다는 계획 아래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부모의 요구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의 섭리를 중심삼고 우리가 존재하게 근원을 파고 들어가 보면, 우리 인간은 섭리의 기원과 일치되고, 기원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가는 역사와 관계를 맺는 중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하나의 생명체로 위에 보내졌다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과정에 있는 자신,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 개체가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하나의 개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34-155)

 

인간 자체가, 자기가 태어난 것이나 자기를 주장할 있는 기원이 어디냐? 대우주 원칙 앞에 인간을 주장할 있는 기원은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우리 인간은 태어난 결과적 존재인데, 결과적 존재가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정신 빠진 녀석들입니다. 전부 미치광이라는 것입니다. (83-191)

 

태어나기를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고, 천지만물을 지었느냐 하는 문제, 결론은 간단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아무 것도 아닌 모양의 같은 존재는 있으나 없으나다'하고 생각하지요? 그러지 말아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데는 부모 앞에 자식이 잘났다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야 못났든 잘났든 사랑하는 것입니다. 병신자식을 부모의 가슴이 아픈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지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은 여러분이 잘나고 못난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본성에 사랑의 바탕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음을 받았고 우주는 창조되었느냐 하는 알아야 됩니다. 사랑의 이상을 완성시키기 위해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30-44)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었고, 하나님이 나를 지었어요? 사랑 때문입니다. 나는 태어났느냐?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나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가정에서 사랑할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사회에서 사랑할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국가에서 사랑할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세계에서 사랑할 있는 사람이다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97-266)

 

나라는 것은 부모에게서 무엇을 받아 가지고 태어났느냐? 생명의 연결체로서 태어났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는 자리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력의 가치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생명력은 사랑에 의해서, 생명력과 사랑은 우주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로서의 어떤 목적, 대우주목적의 협조체로서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생명력을 중심삼은 결합에 의해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110-72)

 

우리가 태어나길 태어났다구요? 무엇 때문에 태어났다구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여기서 '!' 하면 하나님의 머리에 '!' 하고 통할 있는 사랑이다 이겁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가지고 못에다 '!' 던지면 파문이 가장자리로 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 가운데 사랑을 '!' 던지면 우주에 파문이 것이다 이겁니다. 그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으로 파문을 일으키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103-254)

 

하나님은 누구냐? 창조주다. 창조주는 누구냐? 종교세계에서 개념을 잡기를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러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무슨 아버지예요? 어떻게 아버지예요? 이게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빌려 아버지예요, 이웃 동네 아버지예요, 양아버지예요, 무슨 부모예요? 그렇지 않으면 처갓집 부모예요, 시집 부모예요? 아버지라는 말은 다양합니다. 근본을 해결 못하고는 아무리 환경이 확대된 세계에서 해결하려 했댔자 그것은 해결이 나는 것입니다. 천만 년을 가도 해결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과 하나님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 , 여러분은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느껴져요? 나보다도, 내가 있기 전에 확실한 것이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나보다 먼저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게 때는, 내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전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있다고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올바른 정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제쳐 버리고 내가 있다고 하는 주장은 어리석은 주장입니다. (188-190)

 

인간은 1 원인적 존재가 아닙니다. 2 결과적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가 있음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근본에 들어가서 우주의 근본되는 하나님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최초로 해결지어 놓아야 것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어머니 이상, 아버지 이상, 조상 조상 해서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이 되지요? 이런 논리를 추구한다면 나를 주장하기 전에 하나님을 결정지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다, 그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어떠한 아버지다 하는 것을.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188-190)

 

본연의 출발점을 바로 잡아라, 바로 찾아라 이겁니다. 인간은 결과적 존재이므로 원인의 기점에 갖다 맞춰라 이겁니다. 원인의 기점을 맞추되, 기점이 맹목적 기점이 되어서는 됩니다. 신이 인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격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도 지정의의 모든 양심적 작용의 내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기도 원인적 내용 이상의 동기여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한번 출발한 것이 그릇되었다면 영원히 시정할 없습니다. (172-32)

   

  ② 인간이 태어난 본연의 목적

 

하나님은 우주의 제일 원인이시며 삼라만상의 창조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만물을 창조하였으며, 목적은 바로 사랑의 구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근원이시지만, 아무리 전능한 하나님이실지라도 혼자서는 결코 사랑의 기쁨을 느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며 대상으로부터 자발적인 사랑을 돌려 받기를 원하십니다. 대상으로서 최고의 피조물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의 삶에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성숙하여 하나님과 영원한 참사랑의 관계를 실현하는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근본원리인 것입니다. (166-131)

 

잘사는 것도 중요하고 무엇인가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먼저는 종적인 하늘 부모 앞에 효의 도리를 해야 됩니다. 종적인 하늘 부모 앞에 충의 도리를 해야 됩니다. 종적인 하늘부모 앞에 성인 이상의 도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태어난 본래의 목적입니다. , 그러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58-231)

 

인생이 참되게 길이 어디냐? 인간이 어디서 태어났느냐? 사랑에서 태어났고, 인생이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사랑의 길을 가야 되고, 어떻게 죽어야 되느냐? 사랑을 위해서 죽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대우주가 환영할 있는 사랑입니다. 소우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공인하고, 천사세계가 공인하고, 만물이 공인하고, 모든 사람이 공인하고, 우리 부모가 공인할 있는 대우주 가운데서 태어나고 가운데서 살아가고, 가운데서 사랑하고, 가운데서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 태어난 목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83-164)

 

사람은 자기가 좋을 때는 부모 형제 친척을 찾아 함께 즐기고자 합니다. 좋은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은 영원한 것이요, 영원한 것은 심정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와 자식입니다. 부모와 나입니다. 하나님과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나는 아들입니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아버지를 찾아 없는 관계를 맺어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12-104)

 

선생님이 언젠가 길을 가다가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께 '어디 가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가긴 어딜 . 아들네 집에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가시면 무엇을 하십니까?'하고 다시 물으니 '주는 밥을 먹고 어쩌다 잡아주면 닭도 맛있게 먹지.'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면 먹고 나서 무엇을 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먹고 나면 별거 없지.' 이런 식의 대답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119-289)

 

가게의 장부를 정리할 때에도 수입이 얼마이고, 지출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결산을 합니다. 이렇게 장부를 정리하는 데에도 수지결산을 철저히 하는데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합니까? 일생 동안 것을 수지결산 보았습니까? 적자입니까, 흑자입니까? 적자라면 땅을 치고 통곡해야 합니다.

사람은 죽는 자리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죽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살려고 허덕이는 것은 적자 인생이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절대성을 중심삼고 심정의 세계에 있어서 흑자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19-289)

 

인간은 누구를 위해 사느냐? '나를 위해 살지.'하면 그것은 낙방입니다. 자기를 위해 산다는 사람 앞에 가정이 있을 있어요? 소망의 가정이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을 있어요? 나라는 나옵니다. 거기에 세계가 있을 있어요? 세계가 있을 없습니다. 세계가 나올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천지의 공약은 ' 개인주의 악당이여 물러가라!' 하고 제지하는 것입니다. 개인을 위주하는데 거기에 가정이 들어갈 있어요? 거기에 어떤 이상적인 나라가 들어갈 있어요? 송곳 끝같이 좁은 데를 들어갈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없다는 것입니다. (57-66)

 

여러분은 사랑을 알아야 됩니다. 모든 것이 이동하는 목적, 존재하는 목적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찾아서 움직이고, 사랑을 찾아서 존재하고 있다는 철칙을 여러분은 언제나 갖고 있어야 됩니다. 새들이 서로 좋아하고 짹짹거리며 날아다니는 것도 사랑 때문이며, 지남철의 플러스 마이너스가 서로 합하는 것도 사랑으로 하나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전부 누구를 만나고 하는 것도 하나되기 위해서입니다. (67-159)

   

  ③ 사랑 때문에 산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사람이 어디로부터,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되느냐?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나님 중심한) 때문에, 사랑으로 말미암아 태어났으니 사랑의 길을 찾아서 사랑의 목적지로 가는 것입니다. 이러면 순환법 도상에서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개념이기 때문에 사랑을 찾아서 중심에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에서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125-65)

 

내가 일생동안 사는 것은 때문에 사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목적 때문에 이동하고 살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져요? 그렇게 사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힘드는 일이 있고, 눈물이 있고, 혹은 비참함이 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비참이 아니요, 비통이 아니요, 슬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67-159)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절대적인 참사랑, 참사랑을 위해서 살자!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갑에 있는 손수건도 사랑을 위해서 있다, 내가 일하는 것도, 땀을 흘리는 것도 사랑을 위해, 참사랑을 위해서 한다 이겁니다. 내가 말하는 것도 참사랑을 위하고, 먹는 것도 참사랑을 위하고, 노는 것도 참사랑을 위하고, 전부 그러는 것입니다. (107-205)

 

인간은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되느냐? 개인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가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단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국가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세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하늘땅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인간이 합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목적이 최후에 남을 것인가? 개인을 위주하는 것은 흘러가는 것이요, 가정을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단체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나라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세계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까지 남을 하나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 인간(人間) 합동해서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그런 목적만이 인간 역사의 최후에까지 남을 있는 것입니다. (41-323)

 

여러분의 마음이 최후에 안착할 있는 종착점이 어디냐? 하나님을 찾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해도 거기에 여러분의 마음은 안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최후의 종착점은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만사가 허사입니다. (24-17)

 

인생의 최후의 목적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의 중심이 되는 그분과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과 같이 사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분과 만나는데 어떤 자리에서 만나느냐, 사는데 어떤 자리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분과는 중심의 자리에서 만나고 중심의 자리에서 살자는 것인데, 중심의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양심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는 천운을 따라가서 하나님과 일치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것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결론은 그것입니다. (24-17)

 

인간이 최후에 도달하고 싶은 것은 최고 되시는 분의 사랑의 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분이 누구냐 하면 우리 아버지인 동시에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65-46)

 

본래 인간의 특권은 누구를 막론하고 천상왕국세계에 있어서 황태자로 태어날 있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공주로 태어날 있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가치입니다. 그것이 본래 인간의 권위였습니다. (68-326)

 

심정을 통하게 되면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문화의 배경이나 역사적인 환경, 혹은 시대의 위치 여하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것들로도 인간의 가치를 결정할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늘을 알고, 땅을 알고, 하늘의 목적과 땅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을 아는 데에 있어서만이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15-83)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해서 그것을 중심삼아야 됩니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이념에 대한 새로운 가치 혹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야 합니다. 가치관이 신의 뜻과 일치될 있는 내용을 가지고 출발하게 , 가치관은 인간을 중심삼은 가치관과는 모체가 다른 것입니다. 인간의 뜻을 중심삼고 세워져 있는 가치관과 다른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 있어서 확실한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세계관을 넘어설 있는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가치관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장은 세계로 돌아가자, 이상세계로 돌아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이상세계도 없는 것이요, 행복의 세계도 없는 것이요, 영원한 세계도 없는 것이요, 사랑의 세계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행복의 요인,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요건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지 않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워하고, 이것을 찾아 나온 것이 인류 역사상에 나타난 종교라는 기관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68-138)

 

우리 통일교회는 절대적인 가치관을 제시함과 더불어 참부모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이 어디가 종착점이냐?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지닐 있고, 영원한 사랑을 지닐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게 , 하나님이 허락한 자리에서 상대이상을 묶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 멋대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서 관계를 갖고 출발할 있는 것은 부자의 인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졌으니, 몰락되었으니 그것을 표준하여 다시 꿰매지 않으면 됩니다. (68-138)

   

 3) 인간의 가치는 위대하다

 

  ①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적 가치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이 지팡이를 짚고 천년만년 그리워할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보니까 요것이 우주의 근본이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팎 관계가 됐으니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상하관계와 좌우관계가 되니까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중심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깊은 골짜기의 자리에 하나로써 단단히 묶어줄 있는 자리는 종횡의 중심 자리입니다. 요걸 묶어 놓지 않으면 종횡의 기준이 사랑의 이상형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횡적인 것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렇게 지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48-224)

 

하나님은 절대적인 창조의 관을 소유한 절대자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대상 가치의 존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의 피조만물 가운데 무엇을 주고도 바꿀 없는 것입니다. 가치로 보면, 상대적 존재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없는 존재입니다. '상대적 가치' 말이 어려운 말이지만, 상대적 가치라는 것은, 상대라는 말을 중심삼고 대상의 가치라는 것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봐야 하나님 혼자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투입하고 하나님 자신의 힘을,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입니다. 소모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없는 대상의 가치적 존재로 지은 것이 인간입니다. 이와 같이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가 인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런 관을 두고 가치적인 존재로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68-134)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 때문에 지었습니다. 인간은 지음 받았느냐? 사랑 때문에 지음 받았습니다. 인간이 만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받을 있는 대상자로 지음 받았다 이겁니다. 이게 인간의 특권입니다. (132-245)

 

사람이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을 원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의 창조세계라는 것은 실체를 중심삼은 사랑의 표시가 형상으로 나타나고, 형상의 표시가 상징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실체가 기뻐하면 형상되는 것도 자동적으로 기뻐하고, 형상되는 존재가 기뻐하면 상징적인 것도 자동적으로 기뻐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을 무엇이 하느냐? 사랑만이 한다는 것입니다. (166-36)

하나님이 사랑을 찾아가는 대상을 만들려고 누구를 닮게 만들겠어요? 하나님 닮게 만들어요? 하나님을 닮게 만든다면, 하나님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남자 성품이 있어야 되고 여자 성품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를 닮았는데 자기 본성상에서부터 전부 빼내가지고 보이지 않는 성상, 보이지 않는 생각의 형태를 실체로 전개시킨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170-140)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의 모든 () 상징적으로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눈은 누구를 닮았다구요?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얼굴 가운데서 보게 되면 눈은 깊은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관찰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코는 아담과 해와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중심입니다. 다음에 입은 만물입니다. 횡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팔 삼십이(4×8=32), 서른 개의 이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만물을 중심삼고 4수를 중심삼고, 다음에 귀는 사방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위는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의 정보처가 있는 것이다 이겁니다. (201-83)

 

얼굴은 천지창조의 주인이 자기의 형상을 집어넣어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가운데는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가 있습니다. 눈은 상징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생물이 생겨날 눈이 먼저 생겨나는 것입니다. 천지의 중심은 하나님이시기에 눈은 하나님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 사람의 눈은 하나님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비록 어떤 사람이든 사람의 눈을 보면 사람이 양심적인 사람인지, 비양심적인 사람인지 대번에 있습니다. (39-220)

 

아무리 진리라 해도 진리의 핵심이 뭐냐?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본질적 사랑은 종적인 곳에 있는 것이요, 진리적 사랑은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보아 하나님을 알지니,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형상이니 아담과 해와를 보아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종적인 참의 사랑의 대상적 주체이기 때문에, 이들 , 남자 여자의 사랑을 동서남북을 통해서 세계의 축을 갖다 맞추게 때는 하나님과 영계가 통하고 만세계가 통한다는 것입니다. (179-258)

 

여러분은 주체와 하나되어야 되고 대상과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면 번식이 벌어집니다. 주고받으면 반드시 번식이 벌어집니다. 번식될 있는 자리는 기쁜 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지요? 각자일 때는 주체가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합해야 가정의 주체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둘이 합하면 주체가 되지 않으려 해도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42-88)

 

인간들 스스로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재현시킬 있는 운동, 하나님을 사랑할 있는 운동, 하나님께 접근할 있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몸과 마음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그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다 이겁니다. 사랑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중간이면 됩니다. 끝에 가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날 있는 진정한 마음, 하나님과 하나되겠다는 마음의 본성이 절대적이요, 그것으로서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라고 있는 경지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첫째되는 계명입니다. (149-213)

 

하나님과 인간이 박자가 맞아서 화동할 있는 기쁨의 박자 앞에 모든 것이 자기 모양대로 음률을 맞출 있고, 자기 모양대로 전부 상징적으로 형상적으로 춤을 추고 이럴 있는 그런 기쁨의 표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도 '아하, 내가 태어난 보람이 있구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의 잔치를 하는 잔칫날에 동참할 있는 인연을 가지고 기쁨을 서로 나눌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피조세계의 지극히 작은 만물이 바랄 있는 소원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166-36)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아들딸을 지을 있는 토대라는 것입니다. 관계되고 연결될 있는 토대라는 것입니다. 동물도 그렇고 광물도 그렇습니다. 광물세계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식물세계도 암술 수술이 있고, 동물세계도 암놈 수놈이 있습니다. 전부 다리를 놓아 가지고 모든 것이 결집되어 창조된 최고의 걸작품이 인간의 내적 형상과 외적 형상입니다. (144-231)

 

그러면 하나님이 밤과 낮을 지었느냐? 매일같이 해가 있으면 아침이 무슨 자극이 있어요? 광명한 아침이다, 빛나는 아침이다 광명하기는 뭐가 광명하고 빛나기는 뭐가 빛나요?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자극을 위해서, 사랑이라는 과제를 놓고 자극적인 상징과 형상으로 엮어지면서 조화될 있는 박자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124-80)

 

여러분의 생명의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타락하지 않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그럼 타락하지 않은 선한 부모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께서 이성성상의 주체이신 만큼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성성상을 전개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우주를 짓고 인간을 지은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남성적 성품을 전개시킨 것이요, 해와는 하나님의 여성적 성품을 전개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일반 사람들은 보통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분이니까 그렇게 말하겠지만, 분이라는 개념 가운데는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140-121)

   

  ② 인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

 

만일에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과 한몸이 되어,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을 이어받아 하나님이 창조 기뻐하셨던 것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런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54-56)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아들딸인 동시에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들이 장성하여 성전이 완숙하게 지어지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 속에 들어와 계시겠다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장성한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례식을 올리면 하나님과 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 되고 우리 인간은 실체를 하나님의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 16절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어서 구원받는 사람도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데, 본연의 인류의 참된 조상의 자리에 나아가는 그분들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54-131)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더라도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상하관계와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 '아버지, 아버지가 앉으신 자리를 나에게 한번 주세요. 나도 아버지의 자리에 앉고 싶어요!' 하는 욕망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 이놈, 된다!' 하게 되면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그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서 그래라, 어서 그래라!' 하시면서 자리까지도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자리까지 인간에게 주고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임재하시어 우리의 마음을 성전으로 삼고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54-81)

 

성경에는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해석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건 위대한 말입니다. 제아무리 하나님이라 해도 하나님과 내가 사랑을 속삭일 있는 사랑의 대상권이 되면, 사랑의 대상권과 하나되면 우주를 상속받을 있는 권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원칙기반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은 세계, 영계?무형세계?실체세계, 전부, 우주의 상속권을 획득할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137-47)

 

아담은 실체를 하나님의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3 16절에 있지요? 너희들의 몸이 성전이 되는 것을 모르느냐고 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우리 마음에 본연의 사랑이 싹트는 자리를 지성소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이 우주적인 사랑의 성전을 짓고 사랑의 힘을 뻗어 가지고 사랑의 꽃을 피우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어 가정과 세계에 번식하라고 축복해 목적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21-62)

 

제일 거룩한 곳이 어디냐? 지성소가 어디냐 예루살렘의 성전이 지성소가 아닙니다. 인간이 지은 그곳이 지성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사랑이 거할 있는 곳이 최고의 지성소입니다. 지성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죄가 얼마나 큽니까? (136-198)

 

하나님이 인간을 지은 것은 실체 하나님의 몸으로 지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 16절을 보더라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고 말했습니다. 성전이 뭐예요?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몸이요, 해와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부인이었다 이겁니다. 이렇게 됐더라면 자식은 하나님의 핏줄을 갖고 태어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혈족이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135-266)

완성단계에 이른 인간이 영계에 가면 어떻게 되느냐? 아담은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과 고린도전서에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전이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고 나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임재할 있는 성전이요, 집입니다. 하나님과 어떻게 닮아지느냐? 책임분담 완성단계에 이르러 하나님이 임하여 하나되게 되면,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명의 결탁, 일체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생명이 동화되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가정, 부부를 이룬다는 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 동화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랑의 힘은 하나님과 동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30-17)

 

인간이 완성하여 성년이 되면 그때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들어와서 사랑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함과 동시에 아담이 좋아하는 격동적인 사랑을 하나님이 있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최고의 신성한 성전입니다. 거룩할 ()자입니다. 그래서 참사랑 가운데는 어디나 하나님이 들어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참사랑을 좋아하느냐? 참사랑만 만나면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성년이 되어 사랑할 아담과 해와의 몸은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이 속에 들어와서 최고의 신성한 성전을 이루는 거룩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128-317)

 

해와가 누구냐 하면 아담의 아내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실체입니다.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마음에 임재해 있는 보이지 않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하나되는 겁니다. 합일(合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영적 세계, 무형의 세계와 유형의 세계의 합일의 기점이 아담의 본성적 기준입니다. 본성적 기준은 무엇이냐? 돈보따리, 욕심보따리가 아닙니다. 순수한 사춘기를 통해서 모든 세포 기능이 총동원돼 가지고 하나의 촉각으로, 안테나로 나타난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거기에 임함으로써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 16절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는 말이 있지요?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여러분이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어디 있소? 하면 답변이 멋있습니다. '여기 있다! 그렇게 야단이야.' 그런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밥을 먹었나? 밤에 이렇게 야단이야?' 하신다는 겁니다. '어디 있어요?' 하고 물으면 '어디 있긴 어디 있어? 깊은 마음 뒷면에 있지! 마음속에 있지!' 하신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디 있다고 했어요? 마음속에 있습니다. (224-194)

   

 4) 인간본성의 참된 생활

 

  ① 마음에 동화된 생활을 해야

 

자기의 제일 가까운 선생이 누구냐 하면 자기 마음입니다. 제일 친한 친구보다도 귀한 것이 자기 마음이고,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귀한 것이 자기 마음입니다. 마음한테 물어 보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하나님이 들어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소리를 들을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