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우주의 근본 질서
1)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대전개
①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본체
㉮ 하나님은 중화적인 사랑의 본체
우주를 관찰해 보면 모두가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광물이라는 차원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경우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분자는 양이온과 음이온의 결합을 통해 형성되었고, 식물의 경우 생존과 번식은 암수를 대표하는 암술과 수술의 결합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이성성상은 동물의 경우 더욱 분명합니다. 어류?조류?포유동물 등 모든 동물은 수컷과 암컷으로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최고의 창조물인 우리 인간도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최초의 남자 아담과, 최초의 여자 이브는 인류의 시조입니다. 이러한 이성성상의 존재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왜 이런 방식으로 창조 하셨을까요? (201-204)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서 뭐하려고 했겠어요? 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자예요, 남자예요? 여자도 되고 남자도 됩니다. 남자 성품만 가졌다면 여자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그늘에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자도 바라보고 남자도 바라볼 수 있는 두 가지의 성품을 함께 지녔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종적인 자리에서 남자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는 이성성상을 가진 중화적 주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십니다. 남자도 필요하고 여자도 필요해 가지고 어디든지 가서 맞아 언제든지 주체의 자리에 있으니 주체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격위에서는 남성격입니다. 그리고 횡적이란 여성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188-92)
하나님은 한 분일까요, 두 분일까요? 한 분입니다. 한 분인데, 어떻게 두 사람에게 들어가겠어요? 이 사람한테 들어갔다가 저 사람한테 들어가고, 저 사람한테 들어갔다가 이 사람한테 들어가고 그러겠어요? 또 세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한테 어떻게 들어갔다 나왔다, 나왔다 들어갔다, 그러시겠어요?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원리에서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체라는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여기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중화적 본체입니다. 이것은 참 멋진 결론입니다. (41-290)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남성격 주체다 이겁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이 누구 같으냐? 우리와 같다, 나와 같다, 여러분들 같다 이겁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격이라는 말은 반드시 상대격을 개재시켜 가지고 되는 겁니다. 그런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상대격이라는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주체격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124-83)
창조원리에서 원리강의할 때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주체로서 격위에 있어서는 중화적 존재가 되어 있다.'고 간단히 말합니다. 중화적 주체가 되어 있다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앉아서 그냥 하나님이 남성과 여성의 중화적 존재가 되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무엇 중심삼고 중화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중화적 존재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193-153)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느냐? 창조를 해 가지고, 창조이상 완성을 해 가지고 뭘하자는 것입니까? 하나님 자신도 사랑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원리로 말하게 되면,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입니다. 주체적 존재입니다. 이렇게 딱 한마디로 정립됩니다. 남성격을 갖춘 주체적 존재다 이겁니다. (149-9)
무엇이 통일적 기원을 가져오느냐? 혼자 계신 하나님을 통일적 자리에서 무엇이 기쁘게 해주느냐? 원리로 말하면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로서 격에 있어서는 남성격입니다. 그 남성격이라는 것이 어떻게 남성격이 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남성격이면 주체이며 플러스인데, 상대 없이는 플러스가 없는 것입니다. 그 개념 가운데 무엇 때문에 플러스 격에 있느냐? 사랑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 하나님도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싶다, 절대적으로 하나되고 싶다 하는 그런 바탕이 없게 될 때에는 통일이니 융합이니 화합이니 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건 근원이 없기 때문에 분산되어 버리고 맙니다. (195-20)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인간이라고 할 때, 인간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사랑의 상대를 지은 목적은 기뻐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기뻐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신다고 하였는데, 이성성상의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천지만물을 창조한 것입니다. (223-300)
사랑이 남자와 여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남자와 여자는 그냥 두 존재입니다. 남자와 여자만 연결시켜 가지고는 사랑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종합해 가지고 중심에 서서 움직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화합해 가지고 사랑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하면, 하나님 이성성상에서부터인 것입니다. 남성 성품과 여성 성품이 화합하던 그것을 상대적으로 전개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10-317)
통일교회 문선생은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성성상을 중심삼은 중화적 주체다.'라고 딱 결론을 지은 겁니다. 오른쪽으로 보면 남자로 보이고, 왼쪽으로 보면 여자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성성상이 그렇잖아요? 안팎으로 돼 있으니 위에서 보면 남자로 보이고, 아래서 보면 여자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자도 '됐어!' 하고, 남자도 '됐어!' 한다는 것입니다. (139-56)
원인과 과정과 결과가 확실한 내용을 갖고 나오는, 과학적 논리와 같은 논리를 갖고 나오는, 그런 종교인이 나오지 않으면 종교세계를 구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원리가 그렇습니다. 이러이러하니 이렇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존재하신다, 우주의 존재가 주체와 대상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고, 사람은 사랑의 파트너로 지었다 하는 결론이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를 초월해서 사랑으로, 영원한 세계와 묶을 수 있는 힘의 작용으로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 계속하는 것이 천년만년 사랑의 작용으로 이어졌는데, 그것이 보통의 힘 같으면 약화될 텐데 약화되지를 않습니다. (219-178)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그런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를 통일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만능의 하나님이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뭐든지 할 수 있지만, 본래의 원리원칙에 있어서는 사랑은 둘이서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성상을 이루게 되어 있고, 사랑도 그 조건 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224-155)
하나님이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로 계신다면 이성의 중화적 존재의 중심은 뭐냐?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왔습니다. (193-303)
원리에서 논하고 있는 이성상상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 이성성상의 하나님인 동시에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는 분입니다. 그 주체의 본질이 사랑입니다. 절대적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36-37)
원리의 총론이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했어요?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인 동시에 사랑적 주체입니다. 사랑이란 이 말도 집어 넣어야 합니다. 그걸 반드시 집어 넣어야 됩니다. (223-160)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이성성상을 분립한 중화적 존재가 되려면 무엇을 중심삼은 중화적 존재여야 되는가? 사랑을 중심삼고 중화적 존재라야 합니다. 그러면서 격위에 있어서는 남성적 주체격이어야 합니다. (194-64)
하나님이 인간을 왜 창조했어요? 이러한 근본 문제, 내가 왜 태어났느냐 하는 근본 문제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입니다. 우리 원리를 보면, 하나님이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라고 말하지요? 중화적 입장에서 사랑을 중심삼은 통일적 존재라는 것은 아직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적 존재라는 것을 첨부해야 합니다. (223-268)
남자의 사랑과 생명의 기원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이지요?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인 동시에 사랑의 근본인 분이 하나님입니다. 원리강론에 참사랑의 기원이라는 말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참사랑의 기원이 하나님이라는 말을 집어넣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리강론을 수정할 수 있는 주인공은 나밖에 없습니다. 그거 알아요? (224-228)
문제의 출발점은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인간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짓기 위해서는 인격적 신이어야 됩니다. 인격적 신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것입니다. 인격적 신이 되려면 인간 같아야 됩니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고 몸이 있는 것처럼, 이런 소성이 있느니만큼,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도 인간과 더불어 공동목적을 가질 수 있는 본체라면, 인간을 닮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성성상이라는 개념은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167-243)
하나님이 인격적인 신이라면, 하나님은 누구를 닮았을까요?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합한 그러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성성상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여자와 남자를 합해 놓은 두루뭉수리가 아닙니다. 합해 놓았지만 주체격을 갖춘 분입니다. 이 주체격 무형의 신 앞에, 주체격을 대신해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돼 가지고 그 무형의 하나님 앞에 상대격을 갖추어서 묶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이요, 우리 인간 아담 해와의 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166-208)
동양 철학에서는 인격적 신을 몰랐습니다. 인격적 신이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음양이라고 하는데, 막연한 음양은 인격적 기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뿌리의 모든 것을 갖춰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요렇게 됐으면 남자 여자의 모든 소성을 갖출 수 있는 그런 뿌리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이성성상, 이 논리는 위대한 논리입니다. (145-196)
② 피조세계는 이성성상을 닮아 나왔다
우주에 근본되는 신이 계시다면, 그 신은 주체와 대상적인 관념을 가진 존재라는 이미지가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원리에서 말하는 이성성상은 위대한 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기 시작하는 데에서 존속이 벌어집니다.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 밑에서 되었기 때문에 모든 우주는 이중적입니다. 이중적으로 되어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106-296)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성상을 닮았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이성성상의 분립체로 전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 그 다음에 상하 관계?전후 관계?좌우 관계의 상대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적 제도의 여건을 가진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랑을 목적으로 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106-57)
주체와 대상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것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이것을 이성성상이라고 합니다. 이 주체와 대상은 인간 자체에서 만들어진 주체와 대상이 아닙니다. 여기에 그 바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바탕이 이성성상이고, 이성성상 가운데는 본성상과 본형상이 있어야 됩니다. (33-36)
주체와 대상이 있어서 서로 작용하지 않으면 힘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힘은 혼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힘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대상이라 할 때, 내가 마음에 나쁘다고 느껴져도 주체가 있어야 되고, 좋다고 느껴져도 좋다고 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원리에 이성성상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21-344)
우리 원리로 보면,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입니다. 주체라는 것이 무엇을 중심삼고 성립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성립됩니다. 그러니까 횡적인 기반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극적인 기반을 다방면으로 갖고 싶어서 확대 전개시킨 것이 피조세계입니다. (193-217)
어떤 씨든지 두 조각이 한 꺼풀에 씌워져 있습니다. 콩 같은 것도 두 조각입니다. 하나님이 우주의 근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않고는 근본 씨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53-232)
생명의 씨는 반드시 두 쪽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천지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서 한 분의 인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씨의 근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씨에는 배아가 있는데, 배아에는 뿌리가 될 부분, 순이 될 부분이 있습니다. 자체가 다 존속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대로 놔두더라도 완성한 실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62-147)
하나님이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물도 플러스 마이너스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을 합하여 연결시키면 7수가 됩니다. 이것은 단계로 보면 3단계요, 벌여 놓으면 4위기대입니다. 이 3수와 4수가 조화를 이루어 통일이 되면 7수가 됩니다. 7수는 창조목적 완성수입니다. (26-187)
우주는 전부 플러스 마이너스로 되어 있습니다. 분자를 보더라도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 상대권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원자를 보더라도 양자와 전자로 되어 있습니다. 우주 구성의 근본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식물은 수술과 암술, 동물은 수컷과 암컷,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가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되어 하나의 체제권으로 수습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수습되어야 합니다. 그 창조의 의지에 일체화된 상대권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창조의 기쁨은 있을 수 없습니다. (247-183)
통일교회에서 하나님을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부 다 과학적인 분석 결과에 의해 틀림없이 그렇게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하나되면, 하나님의 힘이 그것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체가 없고 대상이 없는 곳에는 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나님 자체 내에 있는 주체와 대상의 힘이 주고받음으로써 영존합니다. (39-166)
원리는 이성성상을 말합니다. 이성성상이 왜 필요하냐? 이성성상이 없으면 창조의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성성상이 있기에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는 뼈와 같고, 하나는 살과 같기 때문에, 주고받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형태가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성성상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 상대세계가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성성상은 창조적 묘미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27-340)
원리로 말하면 전체를 연결하는 것이 만유원력입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들어가서 그것이 전부 만유원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핵심은 마찬가지입니다. (293-11)
남자에게는 여자의 성상이 있습니다. 여자도 남자의 이성성상의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남자가 살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이기 때문에 여자한테도 남자한테도 살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상을 가진 남편도 여자가 이성성상의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부인의 가슴 속에 머물 수 있습니다. 여자도 남자의 마음 속에 머물 수 있습니다. 하나입니다.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256-58)
아담 해와, 남자의 조상 여자의 조상입니다. 남자의 씨앗 여자의 씨앗입니다. 반쪽 씨앗입니다. 모든 것이 한 껍데기 안에 두 조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된 하나님 가운데 이성성상이 있는 것인데, 그 이성성상에는 배아가 있습니다. 씨가 있고 핵이 있습니다. (253-249)
하나님도 무형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실체 상대권, 절대적인 유형의 실체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성성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형의 성상을 유형의 실체로 전개하는 창조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우주의 피조세계를 생각해 보면, 광물세계도 전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가지고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분자로 볼 때는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이 주체와 대상의 관념이고, 원자로 볼 때는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념입니다. (228-140)
하나님은 여자 성품도 있고 남자의 성품도 지니고 있는 이성성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가운데 있는 남자의 성품을 모아 가지고 남자를 만들었으며, 여자의 성품을 모아 가지고 여자를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주체와 대상으로 갈라지며, 이 주체와 대상이 서로 수수작용을 하면, 이것이 다시 합쳐서 작용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교회의 원리에서 말하는 정분합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통일교회 원리가 앞으로 철학에 있어서나 종교에 있어서 문제가 될 것입니다. (41-290)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사랑의 뜻을 이루어 나가기 위한 것인데, 인간은 하나님 속에 있는 그냥 그대로를 드러낸 것과 같은, 하나도 안 빼고 전부 자기를 닮은 것과 같은 모양의 아들과 딸로 지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성성상이라는 말은 이 지구상에서 처음 듣는 놀라운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 이게 어떠한 말이냐? 천지 이치가 다 들어가 있는 말입니다. (144-236)
사랑이라 할지라도 혼자 있는 데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둘이 화합하는 기준을 중심삼고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이 작동할 때는 쌍쌍이 다리가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만유의 전부는 사랑이상에 화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쌍쌍이 되도록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성성상이라는 말을 붙였지요? (177-271)
전체를 규합해서 하나의 원칙적인 기본을 따져 보면 주체와 대상의 관계, 여기서 존재와 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에 의해 존재하고 작용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것을 중심삼고 이성성상이라는 개념을 캐치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성성상이 그냥 있느냐? 스톱하고 있느냐, 움직이느냐? 움직인다면 어째서 움직이느냐? 왜 움직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손해보기 위해서 움직이느냐, 이익보기 위해서 움직이느냐? 작용하고 운동하는데 손해보기 위해서 운동한다는 법칙이 있다면, 우리의 이상작용이라든가 소망을 향해서 전진하는 작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손해본다면 이것이 점점 작아져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작아져 가지고는 스톱해 버린다 이겁니다.
그러나 이 작은 것이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면 점점 커 갑니다. (125-72)
하나님 자신은 한 몸입니다.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시기 때문에 자체 내에서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생각으로는 '남성격 주체의 자리다. 여성격 대상이다.' 해 가지고 사랑을 느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남성과 여성이 분립된 입장에서는 자극적인 충격을 느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가 하나님 자신을 제쳐놓고 자기들끼리 더 충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사랑의 주체되시는 하나님은 나빠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 둘이 하나된 그 자리를 상대로 해 가지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주체자이시기 때문에, 그 상대가 보다 가치적인 사랑을 느끼게 될 때, 하나님도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를 중심한 사랑의 제일 법도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랑의 교육을 받지 않고는 그 자리에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51-173)
힘이란 본래 작용하면 감소가 되는데, 사랑의 힘만은 작용하면 강해집니다. 무한히 확산된 것은 그 안에 무한히 집약된 힘이 있기 때문에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순환작용의 내적인 힘을 자체가 갖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논리를 적용했으니 우리 통일교회에서 이성성상의 논리가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입니다. 문선생이 지혜가 있기 때문에 그걸 다 캐치해 놓았습니다. (164-87)
참사랑이 얼마나 좋으냐 이겁니다. 하나님도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기분 좋지요? '아이고 문총재가 그러는데 하나님이 사랑 때문에 태어났대!' 하나님 붙들고 분석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이성성상까지 선생님이 분석했습니다. 이성성상에도 또 이성성상이 있지요? 여러분도 전부 남성 호르몬 여성 호르몬 나오지요? 모르면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다 통하게 돼 있습니다. (222-179)
창조원리의 이성성상이 왜 있어야 되느냐, 어떤 것이 주체이고 어떤 것이 대상이냐 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따지고 따져 가지고 더 따질 수 없을 때 돌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암만 파더라도 돌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년만년 그렇게 되니까 할 수 없이 '아, 이 길밖에 없구만. 더 찾을 필요 없다.' 하게 될 때 원리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리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173-127)
③ 하나님의 우주 창조 동기는 사랑
하늘과 땅 자체도 스스로 있고 싶어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어떠한 힘의 원천에 입각하여 생겨났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기에서도 더 한층 올라가 반드시 중심적인 주체를 갖추어 하늘땅을 움직이든가, 혹은 여기에 창조를 하든가 하는 힘의 작용체, 근본의 작용체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그분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다르게 표현하는 명사가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이 우주의 중심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체가 작용하고 이동하더라도 그 이동하는 데에 따라 이동하지 않고, 움직이는 상대적인 세계의 중심에서 억천만 년 움직이지 않는 중심적인 본체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54-298)
우주의 근본을 헤쳐 봤을 때 하나님은 왜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는 근본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은 왜 생겨났느냐.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하나님은 무엇을 하느냐? 이런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맹목적인 신앙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덮어놓고 하나님을 믿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러한 추리적인 결론에 이어서 적절한 신에 대한 내재적 성품, 외향적인 뜻에 대한 세계와의 관계, 신에 있어서의 안과밖의 관계, 이 관계라는 게 문제입니다. (191-13)
인간이 제1의 존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제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원인적 존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제2의 존재입니다. 결과적 존재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의 원인적 존재는 무엇이냐? 신이 있다면 신 자체가 원인적 존재이며 절대자입니다. 그러한 절대자가 있다고 한다면 절대자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할 것이냐? 무엇을 중심삼고 인간이나 피조물과 관계를 맺으려고 할 것이냐? 이것이 근본 문제입니다. 신학에서 취급해야 되고, 철학에서 취급해야 될 중요한 문제입니다. 신과 인간, 원인과 결과를 연결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이겁니다. (198-283)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어떻게 생겨났느냐? 사랑에 의해서 생겨났습니다. 우주의 근본은 어떻게 이뤄졌느냐? 사랑의 씨앗이 있어 그것이 상대를 중심삼고 흡수하다 보니 하나님 자체가 성상과 형상으로 구성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어 있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형성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서 받은 여러분의 생명의 씨, 한 세포가 커 나와서 지금 여러분이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렇게 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눈이 생겨나고 코가 생겨나고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딱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207-27)
참사랑이라는 것은 제일 깊은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 참사랑의 기원이 뭐예요? 하나님, 갓(God)입니다. '갓' 하면 한국에서는 옛날 사람들이 쓰던 모자를 갓이라고 그래요. 모자는 꼭대기에 쓰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뜻입니다. 여기에서 성상과 형상이 왜 갈라지느냐가 문제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어디냐? 우주의 근본이 어떻게 생겨났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겨났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을 봤습니까? 그거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여러분이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우주의 모든 요소의 진액을 종합해 태어난 이것이 바로 '나'입니다. (207-24)
사랑의 중심은 하나님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생성 이전부터 있는 유일적이요 영원적이며 불변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심정의 흐름입니다. 내적인 심정이 외적으로 흐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본질은 심정입니다. 이러한 신이 바로 존재론적으로 다룬 우주생성의 근본 원인인 통일적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 근본 원인에서의 우주의 생성이 바로 하나님의 우주창조였음은 재언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신은 어떻게 우주와 인간을 창조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심정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심정이 있는 곳에서만 생명이 나타날 수 있으며, 생명이 있는 곳에 발전 운동(창조)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창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는 바, 그 이유는 심정이란 본래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창조목적은 심정을 충족시키는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기쁨은 피조물, 특히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을 때 오는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성을 닮은 인간과 국가가 하나님이 창조코자 하는 목표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상이 그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이란 당연히 향유하도록 되어 있는 세계를 추구하는 열망인 것입니다. (65-258)
우주의 근본이 뭐냐? 이 우주가 생겨나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느냐? 하나님? 하나님만 있었어요? 사랑이 보여요? 사랑은 실체가 없는데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은 컨셉(concept;개념)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사랑은 컨셉입니다. 하나님에게도 사랑은 컨셉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93-132)
하나님이 창조를 왜 했느냐? 사랑 때문에 했습니다. 사랑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는 사랑은 종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환경적 여건이 없습니다. (193-303)
하나님은 절대자인데, 무엇이 그리워서 사람을 창조했느냐? 무슨 황금이나 지식도 필요하지 않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갖추지 않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하나님이 무엇이 필요해서 사람을 지었는냐? 즉 창조의 근본 동기가 무엇이냐? 그것은 권력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소유도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사랑의 기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혼자서는 사랑을 못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창조의 동기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49-149)
하나님은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그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무엇이 없어서 사람을 창조했느냐? 사랑 때문에 창조했습니다. 사랑은 상대가 없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상대가 없는데 작용하게 되면 손해가 납니다. 전부 자기를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절대 손해나는 곳에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상대가 나타나면 없는 것 같은데도 뛰쳐 나옵니다. 하나님에게도 사랑이 있는데, 남성적인 하나님이 가만히 혼자 있을 때는 그 사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상대가 바로 사람입니다. (60-76)
전지전능한 하나님, 무소부재한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사람을 지었을까요? 하나님에게 돈이 필요하고, 금덩이가 필요하고, 다이아몬드가 필요합니까? 그런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면 지식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지식의 왕이기 때문에 지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다면 권력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에게 권력이라는 것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입니다. 하나님에게 부족했던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상대적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고는 이 창조세계와 인간세계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가지고 찾아오지 않고는 존재세계와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표준으로 정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121-100)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아무리 절대자라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기쁨을 느낄 수 없으며, 설령 기쁘다 하더라도 기쁨의 자극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창조를 했습니다. 절대자가 아무리 '나는 절대자다. 나는 사랑의 주인공이다. 생명의 주인공이다.'라고 한다 해도 절대자 혼자서는 사랑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요, 천지가 내 몸 속에 있다는 생명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38-152)
하나님이 자신만 생각했다면 천지창조를 했겠어요? 창조는 힘의 투입을 말합니다. 예술가는 최고의 걸작품을 만드는 것이 소원입니다. 예술가는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 온갖 정성을 투입합니다. 전부를 투입하는 데서만이 완전한 걸작품이 나옵니다. 더 이상 할 수 없다 했을 때 비로소 걸작품이 생겨납니다.
창조는 투입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힘을 투입해야 창조가 가능합니다. 힘을 투입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완전한 투입을 하는 데서 완전한 대상이 성립한다는 원칙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주체로서 대상을 만들기 위해 완전히 투입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위해 있겠다고 운동을 시작한 것이 창조입니다.
창조한다는 것은 힘의 투입을 말합니다. 투입을 했는데, 얼마나 투입했느냐?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을 때 '이렇게 되어라, 저렇게 되어라.' 하고 장난식으로 창조한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참된 생명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사랑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이상을 완전히 투입했습니다. 우리도 정성 안 들이고 피와 살을 투입하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하기 전과 창조하고 난 후가 다릅니다. 창조하기 전에는 자기를 생각했지만 창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상을 위했습니다. 내가 있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다, 아들딸을 위해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자기보다도 더 훌륭한 사랑의 상대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요소, 보이지 않는 무형의 요소를 백 퍼센트 실체화시키기 위해서 투입하고도 더 투입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뜻하는 것은 투입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그 자리에서만이 참사랑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내용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주의 근본원리입니다. (203-197)
사랑을 점령하려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됩니다. 왜 그러한 사랑을 가져야 하느냐? 사랑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니고 커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학세계에서의 자연현상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용하면 작용할수록 작아지지요? 자연세계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작아지지만, 참사랑의 세계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 갑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삼고 창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37-106)
우주가 어떻게 출발했느냐? 하나님을 두고 볼 때 전부가 위하는 데서부터, 투입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자기를 소모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면 자기를 소모해 가지고 상대를 만들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둘 다 소모하는데, 소모하고 얻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만 가지면 아무리 소모해도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개념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해나는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투입하는 것은 손해인데, 하나님이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사랑에는 모든 것을 채우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소모시켜서 투입했지만, 그 대신 사랑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투입할수록 점점 작아지는 것이 아니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갑니다.
그렇지 않고 참사랑이 작아진다는 원리라면, 하나님 자체가 투입해가지고 소모되는 것입니다. 반대가 됩니다. 참사랑은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커가는 것입니다. (237-106)
사랑에는 창조능력이 있기 때문에 지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아무리 투입해도 소모된 에너지 이상 언제나 보충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싫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싫으면 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을 위하는 길에는 싫은 마음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위하는 길에는 영원히 싫은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에는 원수의 개념이 없습니다. 악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것은 참사랑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237-106)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중심삼고서 투입, 투입, 투입해야 합니다. 투입을 하면 돌고 도는 겁니다. 공기를 예로 들어서 절대 저기압과 고기압이 있다면 그 중간의 기압이 생깁니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하늘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 퍼센트 이상 투입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항상 하늘이 채워주는 것입니다. 우주의 원칙이 그러합니다. 완전히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는 영원한 운동이 연결되기 때문에 그 기준에서 영생의 논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 영원한 생명, 그렇지 않으면 통일원칙을 어디에서 끄집어 낼 수 있겠습니까? 위하게 되면 빙빙 돌지요? 빙빙 돌아서 어디로 갑니까? 점점 작아져서 올라갑니다. 올라가는 것입니다. 빙글빙글 돌아 넓게 퍼지면 내려가지만, 점점 쓱 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동적으로 아담 해와의 어깨 위에 양쪽 발을 올려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5-27)
하나님이 왜 계시느냐? 무엇 때문에 계시려고 하느냐? 사랑 때문에 계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의 상대를 창조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창조의 본질적 이상이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를 시작했다는 것을 그동안 우리가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모든 피조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208-231)
하나님의 소원은 참되게 줄 수 있는 세계적인 발판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참소할 수 없고, 받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자리를 소원합니다. 그러한 자리를 세계적으로 넓혀서 온 만민을 거기서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거두려는 소기의 목적입니다.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입니다. 지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왔다고 생명이 제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생명에서부터 했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의 발원지, 동기는 사랑입니다. 생명이 생겨난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세계 제일이 되는 것이 뭐냐? 하나님이 제일입니다.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겁니다. 올라가서 뭘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우주를 내 것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도 다 욕심 있지요? 그 욕심, 욕망 모두를 완성하는 데는 돈 가지고, 자기 지식 가지고, 자기 권력 가지고 안 됩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원리의 진수요, 인생철학의 근본입니다. 지금까지 이것을 몰랐습니다. 간단한 내용입니다. (144-132)
2) 우주는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다
① 쌍쌍제도가 우주 존재 원칙
만물은 광물세계나 식물세계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주체와 대상 관계의 인연을 통해서 이상적 분모를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만물은 결과의 존재입니다. 결과의 존재는 원인적 내용 없이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원인적 존재를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권 내에서 동서남북 상하 전후좌우를 막론하고 언제나 화합하고 화동하기 위해서 모든 광물세계도 페어 시스템(pair system;쌍쌍제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존재합니다. 이렇게 쌍쌍제도로 구성돼 있다는 것입니다. 광물세계도 동물세계도 식물세계도 인간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173-35)
창조를 하는 데는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을 모델로 했습니다. 천지만물은 동서 사방에 벌여 다리 놓아 가지고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광물?식물?동물계 전부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 쌍쌍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종적인 길과 횡적인 길을 쌍으로 엮으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지그재그하는 놈, 이렇게 운동하는 놈, 별별 형태의 작용을 거치면서 쌍쌍제도를 중심삼은 만물은 이상적 사랑을 찾아가는 인간의 교재들입니다. (173-211)
모든 피조물이라는 것은 주체 대상의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모든 피조물, 존재세계는 그 나름의 사랑을 절대시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삼고 주고받고 하나되기 위해 주체와 대상관계,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되어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다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209-89)
우주에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반드시 필요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체와 대상의 인연을 따라서 존재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우주는 쌍쌍제도의 컨셉을 중심삼고 지어졌습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겨났다고 하는 결론을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광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이 주고 받습니다. 식물세계도 반드시 암술과 수술을 중심삼고, 동물도 암놈과 수놈을 중심삼고 다 존재하는 것입니다. (207-9)
광물세계도 양이온과 음이온, 전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107개나 되는 원소도 아무것에나 가서 붙지 않습니다. 실험실에서 아무리 강제로 붙여도 안 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상대가 되면 하나되지 못하게 억지로 별별 짓을 해도, 하나님이 말려도 재까닥 붙습니다. 그거 알지요? 전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도 그렇고 동물도, 식물도 그렇습니다. 전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다 음양의 이치를 통해 있습니다. (203-295)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페어 시스템으로 돼 있다는 겁니다. 쌍쌍제도로 돼 있기 때문에 광물세계?식물세계?동물세계를 막론하고 그들이 연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 대상과 사랑이라는 개념을 중심삼고 전부 연결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189-190)
사랑을 가지고는 안 통하는 데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는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세계도 쌍쌍제도입니다. 식물도 쌍쌍이지요? 동물도 쌍쌍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급은 다르지만 수직의 사랑을 중심삼고. 차원은 다르지만 이 대우주의 사랑을 중심삼고 어느 공간이든 전부 그렇다는 것입니다. 평형선상의 위치에 자기 존재를 결정해 가지고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모두 사랑 때문에 그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198-304)
모든 피조세계는 쌍쌍의 조직체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광물세계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플러스 마이너스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중력을 가진 지구성 위에서도 강한 인력관계를 갖고 있는 지남석은 그 인력이 지구 중력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작용이 표면상에 나타날 뿐이지, 지남석 이외의 모든 요소들도 플러스 마이너스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의식화 운동도 전류를 통한 플러스 마이너스 작용을 통해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쌍쌍제도의 중심이 뭐예요? 그 중앙에는 자기 나름대로 둘을 연결시키고 보호할 수 있는 중심축이 있나니, 그 축이 바로 사랑의 축입니다.
그래서 광물세계의 원소들도 상대기준이 되는 것끼리는 스스로 하나되지만, 상반된 원소끼리는 아무리 하나님이 명령하고 또 어떠한 실험실 주인이 명령을 하고 암만 천년 공을 들여도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197-164)
우주는 사랑을 떠나서는 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곤충들도 수놈과 암놈이 있지요? 어떤 때는 뜰 같은 데 나가서 흙을 한번 파 봅니다. 많은 벌레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많은 벌레가 있는데, 그것도 암놈과 수놈이 있습니다. 그것도 새끼 낳고 젖 먹입니다. 그것들도 말한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을 감촉하니, 이거 수놈과 암놈이 이렇게 좋아하니 그 무슨 힘 가지고 그런 조화를 일으키는 거예요? 곤충세계에도 사랑이 있지요? 수놈이 암놈을 따라가고, 암놈이 절대 수놈을 따라갑니다. (191-220)
광물세계도 쌍쌍으로 돼 있습니다. 양이온과 음이온을 중심삼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삼고 이 꼭지만 딱 뽑게 되면 하나님도 끌려오고, 참부모로부터 모든 세계 인류가 전부 신경의 힘줄에 달려 끌려오는 것입니다. 모두가 쌍쌍제도로 돼 있습니다. 급은 낮지만 사랑의 천리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203-244)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모든 것은 쌍쌍제도입니다. 광물세계도 쌍쌍제도여서 급은 낮지만 양이온과 음이온도 사랑을 표시하면서 엉클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레버런 문이 이 세상에 나와 가지고 역사 이래로 처음 발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참사랑을 절대시하고 그것에 절대 복종하고 살겠다는 그 기원을 발표한 것은 레버런 문이 역사상에 처음입니다. 그것은 관념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사랑을 찾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203-103)
미물도 그 나름대로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우주의 쌍쌍제도라는 창조이상권 내에서 같은 자리, 같은 요소를 지닌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너는 크고 나는 작지만 둘이 하나되어 나누어 줄 수만 있으면, 억천만세가 가더라도 나를 나누어 줄 수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다릅니다. 원소세계가 하나될 때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자기 짝짝을 따라가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데데하게 이게 뭐예요? 그러니까 본질에 일치가 안 되니 이게 사고입니다. (209-189)
세상만사를 보게 되면, 전부 쌍쌍제도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거느리고 삽니다. 하나님이 볼 때 '야! 너도 나를 닮았구나. 너도 혼자는 외롭지?'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우주는 급은 낮지만 전부 이상적 쌍쌍제도로 전개시켜 놓은 충만한 자연박물관이다 이겁니다. 자연박물관인 동시에 사랑의 박물관입니다. 어때요? 지나가면서 길가의 소나무나 그 많은 미루나무를 언제나 보듯이 그렇게 무심히 봤지요? 이것을 바라볼 때 '너도 나와 같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쌍쌍적인 인연을 갖고 사는구나! 너와 나를 비교할 때 오늘날 나는 혼자 살고 있고 이렇게 타락한 생활을 하게 되니 너한테 부끄럽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세계에 이르게 되면 낙후된 인간이라도 가치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보고 존경할 수 있는 인간이 되면 얼마나 미화된 세계가 되겠습니까? 보는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하나님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안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세계는 쌍쌍제도로 되어 있다 이겁니다. (209-189)
이 우주는 다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세계도 플러스이온 마이너스이온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소가 다른 것은 아무리 과학자가 연구하고 뭘 하더라도 하나 안 됩니다. 그렇지만 자기와 상대성을 이루게 되면 암만 떼어놓으려 해도 하나되는 것입니다.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데, 그 쌍쌍제도의 중심이 뭐냐? 사랑입니다. 식물도 전부 남성과 여성 같은 성품을 중심삼고 화합해 가지고 씨를 맺게 됩니다. 이래 가지고 본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둘이 합해야 본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갈라놓았으니까. 그래서 정(正) 분(分) 합(合)입니다. (198-112)
여러분이 환경권을 만들어야 됩니다. 하나님도 환경권으로 태양?지구?공기?물을 만든 것입니다. 환경권에는 언제나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공식입니다. 모든 피조 만물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세계도 그렇고 동물세계도 그렇고 인간세계도 그렇습니다. 왜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느냐? 참사랑의 완성을 위한 것입니다. 주체 없이는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할 수 없습니다. 공식입니다. 그와 같이 완성된 조상이 지금까지는 이 지구상에 없었습니다. (293-225)
수놈과 암놈이 하나되어야 모든 천지의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수놈 암놈이 하나 안 되면 천지의 조화가 생길 수 없고,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 우주세계에 화동할 수 없습니다. 거기서는 제거되는 것입니다. (226-15)
혼자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혼자 존재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존재세계는 쌍으로 존재합니다. 왜 쌍쌍제도로 되어 있느냐? 사랑 때문입니다. 무슨 사랑 때문이에요? 본연의 하나님이 즐거워할 수 있는 본연의 사랑, 참사랑 때문에 존속하는 것입니다. (248-284)
만물은 홀로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만물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으로 돼 있습니다. 전부 쌍쌍제도로 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인간들이 모릅니다. 쌍쌍으로 우주를 창조한 데서 절대신앙관이 나오는 것입니다. 쌍쌍제도가 생긴 것은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98-11)
이 세상을 가만 보면 쌍쌍제도로 되어 있잖아요? 환경권 내는 반드시 쌍이 있습니다. 그 쌍의, 주체와 대상은 밸런스를 취하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으로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밸런스가 딱 되게 되면, 사랑을 추구할 수 있는 밸런스 기준만 되면, 세계 모든 것이 평형이 되어 딱 평면이 됩니다. 우주에 수평 얼음판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딱 하나되게 될 때에는 수평 얼음판이 모나지 않고 둥그런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저 끝은 자연히 빙글빙글 도는 데 방해될 수 있는 작용의 형태를 갖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순환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원심력 작용을 백 퍼센트 가중할 수 있는 원형을 닮아서 하나되게 돼 있습니다. (144-213)
쌍쌍제도는 주체 대상의 개념인데 이 주체와 대상이 도대체 뭐 하는 거냐? 이것이 있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의 개념이 있어 가지고 주체 대상이 있고, 주체 대상이 있어서 작용을 하고, 작용이 있어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자는 이것밖에 못 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론을 전부 정리해 놓아야 합니다. '아하! 이렇게 되어 작용이 있고 작용이 있기 전에 주체 대상이, 주체 대상이 있기 전에 사랑이 있어야 된다.' 이것을 반대로 이야기하면 힘이 있으려면 작용이 필요하고,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주체 대상이 있어야 되고, 주체 대상은 사랑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47-119)
환경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지은 모든 세계는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간단한 내용입니다. 광물세계도 쌍쌍으로 되어 있고, 식물세계도 쌍쌍으로 되어 있고, 동물세계도 쌍쌍으로 되어 있고, 인간세계도 쌍쌍으로 되어 있는데 그 쌍쌍이 뭐예요? 남자와 여자입니다. (251-120)
힘보다도 작용이 먼저입니다. 작용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이 우주는 쌍쌍제도의 원칙, 공식에 서 있습니다. 쌍쌍제도로 돼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습니다. 세계가 얼마나 간단한가 보십시오. 광물 세계도 쌍쌍으로 돼 있습니다. 전부 그렇게 돼 있습니다. 식물도 쌍쌍제도, 동물도 쌍쌍제도, 인간도 쌍쌍제도로 돼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성성상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이며 공식입니다. (299-154)
모든 창조물은 페어 시스템으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관리하고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오관도 전부 다 쌍쌍으로 돼 있습니다. 그들을 감지할 수 있게끔 말입니다. 쌍을 못 가진 것은 이 우주 창조세계에서 추방돼 없어지는 것입니다. (279-41)
모든 것은 주체와 대상,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완전한 것이 쌍이니 거기에 따라가야 됩니다. 몸뚱이와 마음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양심적이고 더 선과 가까우냐? 몸뚱이보다도 마음이 선한 면에 서기 때문에 마음을 절대 따라가면 천국이요, 몸뚱이를 따라가면 파괴, 없어지는 존재, 지옥, 파멸이다 이겁니다. (303-33)
② 주체와 대상은 사랑의 관계
p.1578
이 우주가 왜 생겨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건 종교 세계나 모든 학문의 세계, 혹은 철학세계의 근본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이 인간인데, 인간이 왜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조차도 다 모르고 있습니다. 또 인간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광물세계?식물세계?동물세계 3단계로 연결된 전부가 쌍쌍제도로 돼 있습니다. 왜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지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알았지만 그 모든 것은 사랑 때문에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53-219)
우주의 근본이 뭐냐 하면, 전부 다 사랑 때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놈과 암놈이 있어야 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동물에게는 수놈과 암놈이지만 식물에게는 뭐예요? 수술과 암술입니다. 광물세계는 분자를 두고 보면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입니다. 그게 수놈과 암놈입니다. 전부가 수놈과 암놈입니다. (273-91)
작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작용은 그냥 혼자서는 못 하는 것입니다. 플러스와 플러스가 만나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상대적 관계에서만 작용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우주 현상의 근본이 힘으로 되어 있다기보다도 어떠한 작용이 시작되어 조화의 세계로 확대되어 나가는데, 작용의 형성은 플러스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주고받는 데서 작용이 시작하기 때문에, 작용하는 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대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115-198)
이렇게 조그마한 것도 수놈과 암놈이 있습니다. 수놈과 암놈,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분자도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 전부 상대적으로, 주체 대상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는 분이냐? 하나님은 어떤 분이에요? 플러스와 마이너스, 암놈과 수놈을 만든 것을 보니,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하나님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뭐냐? 주체와 대상이고, 수놈과 암놈이다, 이겁니다. (278-100)
우주의 근본으로 들어가면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모든 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좀더 들어가 보면, 주체와 대상 관계가 왜 필요하느냐? 작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작용은 운동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 중에서 운동을 안 하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운동하고 있지요? 선생님과 여러분 사이에도 반드시 이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고 무엇인가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240-168)
주체와 대상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전기로 말하면 플러스 마이너스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빛이 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빛이 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전기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기 이 작은 전구 안에 있는 플러스 마이너스가 연결돼 가지고 말입니다. 여기에서만 하나돼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더 큰 변전소를 통해 발전소까지, 결과적인 입장이지만 근본적 발전소와 연락될 수 있는 데서만이 영원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결론입니다. (73-331)
우주의 근본은 힘보다는 주체와 대상 관념입니다. 우주적 근본은 주체와 대상 관념에서 시작하고, 주체와 대상에게는 격이 있어야 됩니다. 주체격과 상대격이 있어야 됩니다. 그 주체격이 하나님이요, 상대격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왜 인간을 창조했느냐? 하나님은 주체이시니까 상대가 없으면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자극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으로? 미와 사랑과 진리로써 자극을 느끼기 때문에 인간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67-50)
우주의 근본인 힘이라는 것도 물질세계에서 주고받는 사랑적 인연과 마찬가지 형태의 작용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존재든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지니지 않으면 이 우주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48-9)
우주의 근본 개념이 뭐냐? 철학자들도 우주의 근본 개념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는 것을 모릅니다. 참사랑! 하나님이 왜 존재하느냐 하면 사랑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하고, 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사랑의 개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개념 완성은 뭐냐 하면 수놈과 암놈, 음성과 양성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247-119)
인류의 모든, 우주의 근본이 주체와 대상, 여기에 다 들어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전부가 상대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을 안 가진 것이 없습니다. 광물세계도 그렇잖아요? 분자면 분자도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이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고, 식물의 세계는 다 수술과 암술, 동물세계는 암놈과 수놈, 인간세계는 여자와 남자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 상대적입니다. (260-252)
우주의 근본은 무엇이냐? 우주는 무엇에서 시작했느냐? 사랑입니다. 과학자들은 우주는 힘으로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작용하는 것을 보고 힘이 있는 줄 아는 것입니다. 힘이 있으면 작용을 안합니다. 그래, 작용이 먼저예요, 힘이 먼저예요? 남자가 남자로 클 때는 사랑의 힘은 작용 안 하는 것입니다.
남자로서 작용하면서 크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작용하면서 점점 성년으로 커 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성을 만날 때 횡적인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힘이 나타나는 것은 반드시 작용을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작용은 어디서 나오느냐? 주체 대상의 관계입니다. 사람도 마음과 몸, 모든 것이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이 눈도 두 초점을 맞춰야 되고, 코도 초점을 먼저 맞추는 겁니다.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247-119)
재창조의 공식은 무엇이냐? 우주는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되어 있습니다. 분자를 보더라도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상대권으로 되어 있지요? 원자를 보더라도 양자와 전자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주 구성의 근본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식물은 수술과 암술, 동물은 수컷과 암컷, 사람은 남자와 여자지요? 전부 다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되어서, 결국 하나의 체제권으로 수습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수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창조의 의지에 일체화된 상대권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의 기쁨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247-183)
참사랑에는 수직적인 사랑과 수평적인 사랑의 두 종류가 있는데, 우주는 이 원칙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우주의 구성도 그렇게 되어 있고, 식물세계, 동물세계, 광물의 세계, 이 모든 전부가 주체 대상의 관계로 되어 있고, 수직과 부체 관계를 중심삼고 원형을 닮았다는 사실은, 급은 낮지만 모든 것은 사랑을 모델로 해서, 우주의 근본을 따라서 전송이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17-96)
이 세계, 우주를 보십시오. 광물세계도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 식물세계도 수술과 암술, 동물세계도 수놈과 암놈 다 있습니다. 요즈음은 세균까지 암컷과 수컷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전부가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 나름의 급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돼 있습니다. 이러한 쌍쌍제도의 우주를 보면, 이것들은 인간의 이상적 사랑이 하늘땅을 대표해서 하나될 때 같이 연결돼 가지고 받들기 위해 그렇다는 것입니다. 집을 지으려면 처음에 기초를 닦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위해 이런 쌍쌍제도를 전부 만든 것입니다. 동물도 수놈과 암놈이 다니다가 암놈이 피해를 보면 수놈이 그저 목숨을 내걸고 사수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새끼를 보면 새끼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입니다. 사랑의 도리는 그런 것입니다. 그건 본래 근본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22-123)
작용이 있기 전에 우주의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중심삼고 우주의 근본되는 그분도 주체되는 마음과, 대상되는 몸이 사랑의 개념을 중심삼고 영원히 공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에서만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209-87)
우주 구성체 자체가 맹목적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방대한 우주가 상대적,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대응하면서, 주고받는 운동을 하면서 영속적인 그 법도의 궤도를 따라 영속하는 것입니다. 법도의 궤도를 따라가야 영속한다는 것입니다. 법도의 궤도를 따라가지 않으면 영속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가 벌어집니다.
우리도 밥 먹고 소화가 정상적으로 되어서 영양 요소가 정상적으로 혈관을 통해서 보급되어야 영속이 벌어지는 것처럼 정상적으로 보급되어야 합니다. 잘 주고 잘 받아야 영속이 벌어집니다. (182-116)
하나님이 천지를 왜 창조했느냐? 근본인 사랑 때문에 창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존재세계는 쌍쌍제도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쌍 없는 것이 없습니다. 쌍쌍제도로 꽉차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을 둘러싸 가지고 사랑이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이 중심되는 인간을 중심삼은 사랑의 기둥을 박고 거기에 다 둥치와 같이 붙어서 살게끔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창조이상이었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뭐야? 하나님의 뜻이 뭐야?' 할 때 그 뜻이 권력으로 가면 망해야 됩니다. 지식으로 가도 망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종착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85-165)
주는 것이 왜 흥하고, 줌으로 말미암아 왜 크느냐 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본래 이 우주를 창조한 당시의 근본과 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려는 것이 잡아당기는 거예요? 주는 것입니다. 주면 자꾸 커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는 개념으로 바뀌면 미국은 점점 커집니다. 자꾸 받으면 모든 것은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게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원칙에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가 나를 협조합니다. 우주가 나를 협조하기 때문입니다. (183-323)
우주의 근본 90도 각도는 참사랑입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측정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동물세계도 다 수놈과 암놈으로 되어 있지요? 왼쪽에 있든가 오른쪽에 있든가, 양질이든가 음질이든가. 그래 가지고 다 자기 계열에 따라 종횡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다 사랑하잖아요? 여기에 종적 수직선과 횡적 평형선이 있다고 한다면, 여기가 자기 존재 위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존재하는 박물관입니다. 새들도 사랑을 중심삼고는 생명을 겁니다. 짐승도 그렇습니다. 전부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식물도 그렇습니다. 광물세계도 그렇습니다. 원소에도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이 있습니다. 원소도 전부 다 자기의 상대를 중심삼고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198-360)
우주의 근본이, 운동의 기원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모든 천체세계도 태양을 중심삼고 위성들이 운동을 합니다. 그것이 하나의 핵이 돼 가지고, 또 다른 상대적인 상응세계와 연결해 가지고, 또 이것을 중심삼고 크게 되면 또 다른 큰 세계와 연결되고, 이래가지고 전 우주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느냐? 무변광대한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어떻게 생겼느냐? 이것이 운동하는 것입니다. 전부 운동하면서 하나의 구형을 위해서 움직여 나갑니다. 그러면서 별들이 움직이는 그 세계가 어떤 때는 컸다가 어떤 때는 작아지는 것입니다. 숨을 쉰다는 것입니다. 땅도 컸다 작았다 합니다. 그거 알아요? 컸다 작았다 합니다. (222-174)
돌아가는 데는 뭘 중심삼고 돌아가고 싶겠어요? 참사랑을 중심삼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남자도 받겠다고 하고 여자도 받겠다고 하면 어떻게 돼요? 서로가 그렇게 받겠다고 하면 이마를 맞대고 이렇게 있어야 됩니다. 그건 서로 주관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존재는 주고받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먼저 주는 쪽이 주체입니다. 먼저 주는 사람이 주체라는 것입니다. (123-227)
여러분, 몸뚱이가 중요합니까, 마음이 중요합니까? 마음입니다. 마음의 중심에 참마음이 있으며, 그 참마음이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의 근본이 참사랑이기 때문에, 참사랑의 마음을 안 가진 사람은 여기서 추방당합니다. 우주에서 추방당하지 않게 하려니, 하나님이 그것 전부 다 가르쳐 주려니, 남자나 여자나 사랑할 수 있는,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는 훈련을 하기 위한 것이 결혼이다 이겁니다. 이래서 남자 여자가 합해 가지고 하나님의 참사랑, 즉 플러스 앞에 상대가 돼야 합니다. 이것을 완전히 주고받으려면 인간이 완전해야 됩니다. (123-107)
우리가 우주의 근본을 찾아 들어가면 하나님께 귀착되는데, 그분은 소유하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주 출발의 원인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남자와 여자,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계의 분자를 보면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구성되어 있고, 식물계는 수술과 암술로, 동물계는 수컷과 암컷으로, 그리고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박사, 수많은 학자들이 있었지만 이것 하나 생각해 낸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부정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부모, 조부모, 또 조부모, 그리고 인류의 조상되는 분과 더 나아가서는 우주의 근본되시는 하나님께 물어 보아도 전부 동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이 진리야말로 우주가 억만 년 지나도 원리원칙으로 남기 때문에 철칙입니다. 그리고 이 철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면, 옳은 사람과 그른 사람의 판정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279-244)
자기 것을 주장하는 것은 추방 당합니다. 우주 만물을 볼 때, 광물세계도 주체와 대상관계, 식물세계도 전부 수술과 암술, 동물세계도 수놈과 암놈, 인간세계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근본의 사랑의 주인이 자기가 아니고 상대인데, 이 상대를 부정했기 때문에 상대로서 알고 있는 그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추방해 버리는 것입니다. 소용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280-63) p.184
① 우주의 중심은 사랑이다
이 우주 전체, 하늘나라 전체의 중심축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은 생명의 근본이요, 혈통의 근본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랑의 축을 따라서 운동을 합니다. 운동이라는 것은 그냥 하지 않습니다. 운동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고 하기 때문에 그 나름의 위치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과 관계를 맺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사랑의 실적으로 존속하고 싶은 것이 모든 운동하는 것의 목적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작용이라는 것은 그냥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8-79)
우주의 근본은 사랑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느냐? 사랑이 중심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절대적인 하나님도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싶은 이상향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복종하는 곳에 완전한 행복이 있으며, 완전한 해방이 있는 곳에 완전한 행복이 있습니다. (198-237)
우주의 근본의 동기가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이겠느냐? 남자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움직일 수 있는 동기는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시작이요, 끝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진대, 그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거 왜 그럴까요? 그걸 풀지 못했습니다. (185-57)
왜 참사랑을 해야 하느냐? 우주의 근본이 참사랑의 원칙에서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통하면 우주의 모든 전체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론적입니다. 그래서 하나가 위라면 하나는 아래고, 하나가 오른쪽이라면 하나는 왼쪽이 되는 것입니다. 광물세계?식물세계?동물세계가 다 그렇습니다. 서로 주려고 하는 그런 세계가 기원이 되어서 출발했기 때문에, 서로 주려고 하면서 존재하는 것이 우주입니다.
이런 논리에서, 보다 차원 높은 큰 존재에 전부 다 흡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 존속의 원천은 어디냐? 보다 높은 사랑을 중심삼고 주고자 하는 운동권 내에서 작용하는 것이 우주적인 존재입니다. (128-291)
우주가 존속하는 원칙은 이상적인 근본의 사랑과 접속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이요, 종적 횡적 모든 구형적인 전체 방향성의 운동권 내에 소속한 속성이었더라 이겁니다. 그러면 그 부모 앞에 여러분은 어때야 합니까? 거기에 보답해야 됩니다. 상대가 돼야지요? 하나되려면 부모와 같이 상대가 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참사랑의 상대가 될 때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없이는 완전히 통일할 수 없습니다. (288-89)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간은 하나님의 몸과 마찬가지요, 몸과 마찬가지의 실체를 상징형으로 그림자와 같이 보내준 것이 이 우주만상입니다. 이 우주만상은 무엇을 표방하고 지었느냐 하면, 하나님 자체를 표방하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형상적이나, 상징적인 위치에 있을 뿐이지, 그 근본 주체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153-119)
우주의 근본이 어디에서 시작했느냐? 진화론도 아니요, 창조론도 아닙니다. 진화보다 먼저 창조의 개념이 있기 전에 수놈과 암놈이 있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 수놈과 암놈은 왜 생겼습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이것이 공식입니다. (280-60)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더 훌륭한 사랑의 파트너를 원합니다. 여러분도 사랑의 상대가 여러분보다 잘나기를 바라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주체와 대상으로 완전히 하나되어 있는 것인데, 그것이 창조의 근본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둘이 완성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해방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자리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뒹굴고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얼마나 즐거운 세계이겠습니까? (276-123)
집을 지을 때는 수평이 맞아야 되고 수직이 맞아야 됩니다. 안 맞으면 다 넘어지지요? 우주가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근본문제에 들어간다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하늘 보좌에서 '아이구! 나 사랑 좋다.' 하고 노래합니까? 문총재 혼자 춤추고 이렇게 땀을 흘리면 미친 사람 아니예요? 손수건 하나 보면서 춤을 춘다고 해도 미친 것이 아닙니다. 요것 10분의 1, 100분의 1 되는 요만큼 되는 것을 보고 춤을 추고 웃고 하더라도 그건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창조는 상대가치의 절대기준에 해당하는 가치적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됩니다. (179-229)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면, 하나님이 결혼시켜 줌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해와의 몸 가운데 성상과 형상,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이 들어가 우리의 마음 자리에 창조주요, 아버지 몸 자리에 창조물이 됨으로써 아버지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돈도 아닙니다. 참사랑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참사랑을 중심삼고 형상이 이루어지고 가정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모르면 우주의 근본을 모르는 것입니다. (286-16)
세상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돈을 가지고 세계의 제일 대표자가 되겠다, 권력을 가지고 제일 대표자가 되겠다, 지식을 가지고 제일 대표자가 되겠다는 등의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주의 근본되는 하나님으로부터 관계되어 있는 모든 물건들은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대표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바라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79-33)
여러분, 사랑 좋다고 그러지요? 사랑 찾아 가잖아요? 어떻게 찾아가는 것이 우주의 근본되는 그 공식에 맞는 사랑의 직선길, 지름길이냐 이겁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184-58)
이 우주의 근본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절대자입니다. 그러나 힘이 있습니다. 힘이 근본이 아닙니다. 지식이 근본이 아닙니다. 그러면 돈? 이건 저세계에서 보면 퇴폐적인 뭐라고 할까? 폐물을 주으러 다니는 것입니다. 폐품 수집 다니는 사람들이 돈 모으겠다는 사람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돈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돈 안 씁니다. (191-18)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백 퍼센트 투입했습니다. 그러면 왜 투입했느냐, 지혜의 왕인데? 완전히 투입해서 하나님은 영(零)의 자리, 무(無)가 되고 저기는 120이 되니, 기압으로 말하면 여기는 저기압 중의 저기압인 진공상태가 되고, 저쪽은 고기압이 되니 휘익 순환작용이 일어나 자동적인 발전원칙, 자동적인 운동원칙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자꾸 밀어넣으면 이쪽으로 해서 감싸지요? 자기를 포위하는 그런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사랑이기 때문에 이런 원칙에 의해서 이렇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196-320)
근본은 개인입니다. 개인에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가정도, 종족도 전부 다 말입니다. 근본은 아무리 작게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각도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90각도. 그래서 이것을 종대로 해서 참사랑, 참사랑, 참사랑, 참사랑, 참사랑 이렇게 되어서 지구성 전체가 참사랑으로 하나되며, 우주든 어느 곳이든 참사랑으로 꽉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제든지 '좋아! 당신은 나와 닮았다!' 하게 되며, 어느 곳에 가도 종적으로나 횡적으로나 똑같게 되는 것입니다. (207-58)
인간은 역사를 통해서 우주를 넘어가더라도 사랑을 필요로 하고, 낮이나 밤이나 어디를 가나, 젊어서나 늙어서나 죽어서나 언제든지 사랑의 관념을 떠날 수 없게 된 존재입니다. 왜 그러냐? 근본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지금이라도 창조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사랑이 없으면 행사할 수 없습니다. 발전소와 같은 그런 사랑의 원동력을 중심삼고 전부 가는 것입니다. (133-64)
사랑도 물론 하나님이 만들 수 있다고 보지만 그 사랑을 소유한다는 것은 혼자 못 합니다. 둘이 소유해야 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혼자 못 찾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준이, 측정 원기가 뭐냐? 우주만상 존재세계, 영원세계에 측정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원기,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근본 문제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건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에 영향을 안 받습니다. 안 받아야 됩니다. (137-235)
왜 사랑의 줄에 매여 살게 되어 있느냐? 하나님도 좋아하고 우주도 좋아하고 이 세계도 화합할 수 있는 사랑줄에 인간이 매여 살게끔 되어 있는데, 그런 사랑줄에 안 매여 가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없는데 생활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근본이 틀렸는데 결과가 행복할 수 있습니까? 역사는 이런 관계로 돼 있습니다. (138-265)
몸과 마음이 하나된 그 자리에 들어가면, 그 자리는 석가모니가 경험한 자리입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그 경지에 들어갑니다. 그 가운데 들어가면, 사랑의 구형 내의 모든 힘은 이 중심을 통하지 않고는 작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통하지 않은 작용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주의 모든 작용은 이것을 기본으로 삼고 확대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중심삼은 축이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곧 핵심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간끼리 엮어진 사랑, 가정을 중심삼은 사랑, 가정을 중심삼고 확대된 종족, 민족, 국가의 사랑, 혹은 성인이 가르쳐 준 사랑을 가지고는 그 근본을 깨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41-113)
우주 근본에 있어서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이렇게 볼 때, 그걸 따지고 들어가면 생명이 먼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인데,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이 존속하는 데는 어떤 기반 위에서 살기를 원하느냐? 무슨 기반 위에서 살기를 원하느냐? 하나님은 평화의 기반 위에서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평화의 기반 설정은 무엇이 하느냐? 생명이 하느냐, 다른 무엇이 하느냐? 그것이 또 문제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이 높고 낮음을 초월하고, 공통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질서적 단계를 초월한 그 무엇입니다. 그것이 뭐냐? 참된 사랑입니다. (173-84)
여러분, 세포 번식이라는 것 알지요? 이거 하나를 똑 따더라도 그 자리에 다시 눈이 나오고, 코가 나오고, 다 나오는 것입니다. 머리카락도 나오고, 발도 나오고, 다 나옵니다. 모든 것이 다 똑같이 그렇습니다. 참사랑과 연결된 세포는 우주와 동등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참사랑이 그래야 되느냐? 참사랑은 원인인 동시에 결과이고, 근본인 동시에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216-288)
사랑은 우주로부터 시작해서 어떠한 존재든지 인연을 갖지 않은 존재가 없습니다. 미물인 풀 한 포기도 반드시 사랑을 중심삼고 산다는 것입니다. 광물도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을 중심삼고 생겨나서 다 사랑 때문에 움직이고 있습니다. (289-129)
참사랑으로 이룩된 심정권은 아무리 작아도 우주와 연결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파장은 만상과 영계까지 파급되는 것입니다. 영계를 포함한 천주는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참사랑의 원리 아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종횡, 전후적 참사랑 관계는 인간 상호간의 이상적 참사랑 관계의 근본이요, 그 완성은 4대 심정권을 이룬 이상가정에서만 이룩됩니다. (260-128)
사랑의 본질은 뭐냐? 어떤 사랑이냐? 사랑이 무슨 사랑이에요? 오늘날 미국에 만연되어 있는 프리섹스, 하룻밤 사랑이 사랑입니까? 그것은 근본의 사랑과는 무관합니다. 그러면 근본의 사랑, 참사랑은 어떤 것이냐? 사랑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입니다. 이 우주가 생겨나기를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하면, 사랑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는 '내가 처음과 나중이다. 시작과 끝이다.' 했는데, 그게 뭐냐? 이게 사랑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255-56)
왜 위해 살아야 되느냐?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 그것을 원치 않는데 왜 그래야 되느냐? 사랑의 줄이 매여 있습니다. 사랑의 줄이 만물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줄이 내 몸을 묶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전부가 손을 벌리고 어서어서 감아 달라고 합니다. 빨리 빨리 크자 이겁니다. 사랑의 우주를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사랑의 우주도 우주지만, 그건 파트너 세계지만 사랑의 근본이 하나님까지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278-142)
하나님이 매양 기쁘겠어요? 여러분은 매양 기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을 가졌을 때는 슬픔도 그 사랑으로 다 소화되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사랑의 절대 권한이 이 우주의 어떤 개별적 권력이라든가 지식이라든가 무엇을 가지고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그 이상의 것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의 욕구였더라 이겁니다. 그게 어디서 왔습니까? 근본에서 왔습니다. 그 근본의 어디서?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하나님도 그런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거기서 온 것입니다. (200-197)
처음부터 우리 인간이 요즈음의 공산주의같이 투쟁 개념에서 시작했겠느냐, 융합 개념에서 시작했겠느냐? 어떤 것입니까? 전기로 말하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투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조화와 융합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통해서 서로 조화되고 융합해 내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의 근본은, 본성이라는 것은 조화도 되고 융합되는 내용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124-111)
모든 우주 가운데에서 빚쟁이가 되지 않고, 빚을 지우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뭐냐? 그러면 내 근본이 없느냐? 아닙니다. 마음에 얼마든지 갖고 있습니다. '미안해', '고마워!' 할 수 있는 마음, 물을 보고 산야를 바라보고 들을 바라보고, 삼천리 강산, 더 나아가서는 대지구성을 바라보고 '고마워!' 할 수 있는 마음, 하나님 앞에 고맙게 생각하고 환경에 고맙게 생각하고, 불평하지 않고 모시고 살 수 있는 이런 주인의 마음을 가져라 이겁니다. 참된 주인은 그런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198-150)
② 인간은 만우주의 사랑의 중심
㉮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다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이 지팡이를 짚고 천년만년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보니까 요것이 우주의 근본이라 이겁니다. 이것이 안팎 관계가 됐으니,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상하관계와 좌우관계가 되니까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 하나로 단단히 묶어 줄 수 있는 그 자리는 종횡의 중심입니다. 요걸 묶어 놓지 않으면 종횡의 기준이 사랑의 이상형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횡적인 것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렇게 안 지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8-224)
하나님은 절대적인 창조의 관을 소유한 절대자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의 대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 위의 피조만물 가운데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가치로 보면, 상대적 존재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상대적 가치'란 말이 좀 어려운 말이지만 말입니다. 상대적 가치라는 것은, 상대라는 말을 중심삼고 그 대상의 가치라는 것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줘 봐야 하나님 혼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투입하고 하나님 자신의 힘을,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입니다. 소모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대상의 가치적 존재로 지은 것이 인간입니다. 이와 같이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가 인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런 관을 두고 가치적인 존재로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68-134)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 때문에 지었습니다. 인간은 왜 지음 받았느냐? 사랑 때문에 지음받았습니다. 인간이 만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로 지음받았다 이겁니다. 이것이 인간의 특권입니다. (132-245)
사람이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을 원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의 창조세계라는 것은 실체를 중심삼은 사랑의 표시가 형상으로 나타나고, 형상의 표시가 상징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 실체가 기뻐하면 그 형상되는 존재가 기뻐하면 상징적인 것도 자동적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을 무엇이 하느냐? 사랑만이 한다는 것입니다. (166-36)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唯人)이 최귀(最貴)라 했습니다. 만물 중에 인간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중심이냐? 사랑을 중심삼고입니다. 지식이라든가, 돈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고,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못 찾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못 갖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 나타나고 이루어지게 되어 있지, 혼자서는 하나님이라도 못 이룬다는 것입니다. (272-275)
하나님이 천지를 누구를 위해 지었느냐? 하나님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惟人)이 최귀(最貴)라 했습니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적 내용을 분석해 볼 때, 속성에는 상속권이 있고 동위권, 동참권이 있기 때문에 사랑에 접하면 아무리 높은 하나님, 아무리 위대한 하나님, 아무리 우주적인 하나님이라고 해도 사랑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179-148)
오늘날 통일교회의 가르침은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전권의 하나님이라도 사랑은 상대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권을 갖춰야 합니다. 그 상대가 아담 해와입니다. (121-173)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하고 절대자고 전지전능한 분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명사는, 혹은 좋다는 형용사는 혼자서 설정되는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 있어야, 좋고 행복하다는 말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있으면서 행복하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노래를 잘 부르는 음악가가 있어서 혼자 노래를 불렀다고 합시다. 행복하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좋다!'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65-20)
㉯ 인간성장의 길은 하나님 자신의 전개과정
인간 창조란 하나님 자신이 커 온 것을 실제로 재차 전개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흥미를 느끼고, 자극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가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 내적인 소성을 전부 실제 형상으로 전개시키는 것입니다. 자기 뼛속 깊은 데까지 짜내서 투입하는 것입니다. (225-198)
인간의 완성은 어디에 있느냐? 남자면 남자 자체로 완성할 길이 없고, 여자면 여자 자체로 완성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전부 다 반제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완전히 하나된 사랑을 중심삼고만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완성하는 데는 누가 절대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절대 필요한데, 하나님은 종적으로 절대 필요합니다.
아담이 완성되려면 종횡의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종횡의 사랑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회전운동, 구형운동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횡적으로 아담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해와입니다. 마찬가지로 해와에게도 절대 필요한 것이 아담입니다. (145-319)
아담 해와를 두고 하나님이 사랑한 것이 뭐냐? 아담 해와가 아들딸로 자라 왔다는 것은 하나님도 그렇게 자라 나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도 아기와 같은 때가 있었고, 형제와 같은 때가 있었고, 부부와 같은 때가 있었고, 부모와 같은 때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창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그렇게 커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같이, 부부같이, 또 아들딸같이 그렇게 창조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254-274)
아담 해와를 하나님이 지었다면, 어떤 단계로부터 지었는가? 아담 해와를 장성한 사람으로 지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기로부터 지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기를 밴 어머니가 품어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서 지었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고는, 이 모든 3단계의 질서를 통한 존재의 형성이라는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유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장성기가 있었고, 완성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천리의 도리입니다. (225-198)
아담 해와에게 유아기가 있었는데, 그 유아기는 어떤 유아기였겠는가? 무형의 하나님이 무형의 세계에서부터 유형의 과정을 거쳐 올 수 있는, 아기의 존재를 품고 키웠다는 논리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그러면 아기가 태어나 자라서 성숙해 가지고 결혼할 수 있는 자리까지, 부모가 될 수 있는 자리까지 어떻게 나가느냐? 하나님이 청년기?장년기?노년기와 같은 과정을 거쳐온 사실을, 하나님이 자라던 무형의 과정을 실체로 보기 위한 존재가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형성되어야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는 논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는 종적이고, 하나는 횡적이니, 종횡일신(縱橫一身)의 이론을 취할 수 있습니다. (225-198)
사랑하는 부부, 아담 해와가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형 실체가 성상 형상으로서 사랑을 가지고 하나되어 창조하고 부모 입장에 선 것과 같습니다. 제1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제2 창조주로 만든 아담 해와가, 실체의 제2 하나님의 입장에 선 아담 해와가 다시 아들딸을 갖고 낳음으로써 부모 입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 자녀를 통해 실체 아담 해와의 유아시대?형제시대?부부시대?부모시대 등 하나님의 지나간 과거를 또다시 실체로서 전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만지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녀는 제2의 자기 자신입니다. (258-240)
결혼한 부부의 자리는 엄청난 자리입니다. 역사시대에 인류가 소망하던 자녀로서의 희망봉이 꽃피는 자리요, 형제로서 꽃피는 자리요, 부부로서 꽃피는 자리입니다. 이래 가지고 부부로서 사랑했던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딸을 낳은 거기서부터 아담 해와가 창조하는 것입니다. 실체적 창조주의 입장이 되어 나를 중심삼고 평면적 창조주의 입장에서 아들딸을 낳은 것입니다. 제3 창조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 대신 실체 부모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보이지 않는 무형의 하나님이 자녀를 양육하던 것을 내 실체로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커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녀시대?형제시대?부부시대?부모시대로 발전해 나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과거사를 중심삼고 자기 아들딸을 낳아 키우면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아기시대의 제1 창조주, 무형의 창조주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제2 창조주, 볼 수 있는 창조주의 자리에서 아기를 키우고 형제로 키워서 부부를 이루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아들딸로서, 형제로서 키워 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형의 내적인 모든 요구의 실상을 실체적으로 아담 해와를 통해서 평면도상에서 보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들딸입니다. (263-148)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역사적 내정적인 원칙을 중심삼고 존재의 기원으로부터 지금까지 성장한 과정을 실체적으로 전개해 나오는 과정이 아담 해와 창조과정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아주 작은 세포가 합해져서 큰 세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기가 열 달 동안에 자라는 과정을 거쳐 나가면서 남자 여자의 형태로 갈라져 나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생명 유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논리에 대해 해석할 방법이 없습니다. 유전적 내용을 어떻게 전개시키느냐 하는 논리를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본질적인 무형의 형태와 유형적인 형태의 본질이, 일체적 내용의 인연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전개될 것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 앞에 상대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적 성상은 외적 형상과 모든 근원적인 면에서 영합도 되고, 통할 수 있는 내연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신이 실체를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내적인 모든 존재가 표현되어서 나타나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나타난 실체라는 것입니다. 무형의 실체가 유형의 실체로 전개되느니만큼 거기에 모든 전부를 투입해야 됩니다. (225-198)
하나님이 사랑을 찾아가는 대상을 만들려고 할 때 누구를 닮게 만들겠습니까? 하나님 닮게 만듭니다. 그 하나님을 닮게 만든다면, 하나님 가운데 있는 것처럼, 남자 성품이 있어야 되고 여자 성품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를 닮았는데 자기 본성상에서부터 전부 다 빼내서 보이지 않는 성상, 보이지 않는 생각의 형태를 실체로 전개시킨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170-140)
하나님과 인간이 박자가 맞아서 화동할 수 있는 기쁨의 박자 앞에, 모든 것이 자기 모양대로 음률을 맞출 수 있고, 자기 모양대로 전부 다 상징적으로 형상적으로 춤을 추고 이럴 수 있는 기쁨의 세계가 본연의 동산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도 '아하, 내가 태어난 보람이 있구나!' 이럴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의 잔치를 하는 잔칫날에 동참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그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피조세계의 지극히 작은 만물이 바랄 수 있는 소원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166-36)
아무리 진리라 해도 진리의 핵심이 뭐냐?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본질적 사랑은 종적인 곳에 있는 것이요, 진리적 사랑은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보아 하나님을 알지니,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형상이니 아담 해와를 보아서 하나님을 안다는 겁니다. 왜? 아담 해와는 종적인 참사랑의 대상적 주체이기 때문에, 이를 둘 다 완전히 딱, 남자 여자의 사랑을 동서남북을 통해서 세계의 축을 갖다 맞추게 될 때는, 하나님과 영계가 통하고 만세계가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179-258)
㉰ 인간은 피조만물의 중심
하나님은 누구 닮았다구요? 우리 닮았습니다, 남자 여자. 여러분 마음이 보이지 않지요? 마음 보고 싶소, 안 보고 싶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영적인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체(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체가 없습니다. 아담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아 체가 지금까지 없다 이겁니다. 마음 같은 우주에 마음 같은 주인, 마음 같은 스승, 혹은 관리자, 마음 같은 부모로 계십니다. (197-9)
만물은 하나님의 아들딸을 지을 수 있는 토대입니다. 관계되고 연결될 수 있는 토대입니다. 동물도 그렇고 광물도 그렇습니다. 광물세계에도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식물세계에도 전부 암술과 수술이 있고, 동물세계에도 암놈과 수놈이 있습니다. 전부 다리를 놓아 모든 것이 결집되어 창조된 최고의 걸작품이 인간의 내적 형상과 외적 형상입니다. 그것을 실체화시켜 남자와 여자 성상을, 그 모든 형상을 부여해 상징적이고 형상적이며 실체적으로 다 드러내 가지고, 다리를 놓게끔 해서 전부 다 연결되게, 관계를 맺도록 한 것입니다. (144-231)
하나님이 피조물의 중심인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요, 지식 때문도 아니요, 권력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사랑 때문에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 혼자 사랑받겠다는 입장이 되면 사랑해 줄 수 있는 아무런 존재가 없습니다. 결론이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필시 이 세계에 자기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자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볼 때, 피조세계에 그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배포 큰 존재가 누구냐? 온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여건을 갖춘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는 우주의 주인이다. 우주에서 제일이다.'라고 할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합니다. (148-308)
하나님은 기쁨을 더하고 기쁨의 자극을 연속시키기 위하여 만물을 지었습니다. 순간적인 기쁨을 느끼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피조물을 대할 적마다 가슴 깊이 스며드는 기쁨의 자극과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최고의 심정을 기울여 지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5일 간 만물을 지은 후, 6일 째 되는 날에 기쁜 심정으로 인간을 지었습니다. 자신의 형상을 본따 지은 우리 인류의 조상은 지극히 아름다운 존재요, 지극히 귀한 존재요, 지극히 자랑스러운 존재요, 지극히 기쁜 존재요, 지극히 영광스러운 존재요, 지극히 사랑하고 싶은 존재였습니다. (9-194)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기 때문에 지식도 필요 없고, 능력도 권력도 필요 없고, 금전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입니다. 그 대상은 피조만물 가운데서 가장 귀하고 가장 영장이 되는, 사람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왜 사람을 좋아하는가?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혼자서는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112-291)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는 모든 체에 상징적으로 다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눈은 누구를 닮았다구요?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눈은 얼굴 가운데서 깊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관찰합니다. 그 다음에 코는 아담 해와를 상징합니다. 이게 중심입니다. 그 다음에는 입은 만물입니다. 횡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 팔 삼십이(4×8〓32), 서른 두 개의 이를 갖고 있습니다. 세상 만물을 중심삼고 4수를 중심삼고, 그 다음에 귀는 사방을 상징합니다. 이 목 위는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의 정보처가 있습니다. (201-83)
여러분의 생명의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타락하지 않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그럼 타락하지 않은 선한 부모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께서 이성성상의 주체이신 만큼 자기의 이성성상을 전개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우주를 짓고 인간을 지은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남성적 성품을 전개시킨 것이요, 해와는 하나님의 여성적 성품을 전개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일반 사람들이 보통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한 분이니까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 한 분이라는 개념 가운데는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140-121)
만일에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과 한몸이 되어,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을 이어받아, 하나님이 창조 후 기뻐하셨던 것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런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54-56)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더라도,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상하관계와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 '아버지, 아버지가 앉으신 자리를 나에게 한번 주세요. 나도 아버지의 자리에 앉고 싶어요.' 하는 욕망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네 이놈, 안 된다!' 하면 다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럴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서 그래라, 어서 그래라!' 하시면서 그 자리까지도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인간에게 주고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임재하시어, 우리의 마음을 성전으로 삼고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54-81)
심신일체가 되면, 우주의 힘이 보호해 줍니다. 우주의 힘이 보호해 주는 몸 마음이 되면, 부모도 우주의 인연을 가진 부모, 형제도 그런 인연을 가진 형제, 이렇게 모두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민족, 나라가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멋진 결론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넘어서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그런 일체권을 이루면 거기서도 통합니다. 어디에도 통하는 것입니다.
축구를 할 때 볼이 굴러가다가 멈추면 어떻게 돼요? 그 표면 전체가 합할 수 있는 데는 수직선을 통합니다. 그래서 구형체를 이상적인 존재라고 합니다. 표면의 어떤 곳에서도 그 수직선이 안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굴러다니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다 좋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심신일체권, 90각도가 되면 어디든지 다 맞습니다. 서양사람과 동양사람,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 미래의 사람 할 것 없이 어디든지 다 맞는 것입니다. (205-27)
본성이 가는 길을 가면, 우주가 하나로 벌어집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면 자기 마음과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는 마음과 말을 합니다. 뭘 하려고 생각하면 벌써 답변이 나옵니다. 그런 경지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갈 길을 모르겠어요? 벌써 갈 길이 확실해서 우주의 모든 작용의 힘들이 돕게 됩니다. 손을 끌고 시험장에 들어가면 벌써 모든 것이 협조합니다. 그래야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20-327)
우리가 자연을 보고 '아, 나는 사계절 필요 없다. 나는 봄만 필요하지,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은 싫다.'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한테 물어 보면 '난 사계절을 다 좋아한다.'고 답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싫더라도 여름을 좋아하는 것을 배워야 되겠고, 가을과 겨울을 좋아하는 것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눈이 오는 겨울이 되면, 하나님은 흰눈이 세계적으로 쌓인 것을 보고 좋아할 때 '아, 나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133-29)
하나님 같은 마음으로 자연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홍수가 나고 벼락이 칠 때는 '아이구, 저거 나는 싫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허, 저거 키스하고 결혼하는구만!'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싫다는 사람들에게 '하하하하, 네 이 녀석들아! 못된 녀석들아!' 한다는 것입니다. (133-29)
지혜의 왕이시고 전체의 중심이신 하나님이 참다운 사랑이나 참다운 이상이나 참다운 행복이나 참다운 평화의 기원을 주체와 대상, 이 양자 사이의 어디에 두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체가 계신 반면 대상이 있는데, 주체를 위하는 길과, 대상을 위하는 길, 이 두 길 가운데 이상의 요건을 어디에다 두느냐 하는 것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이상, 참된 사랑, 참된 평화에 있어서 주체를 중심으로 하고, 대상이 주체를 위하는 데 이상적 기원을 둘 것이냐, 대상을 중심으로 하여 주체가 대상을 위하는 데 이상적 기원을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신 하나님은 그 이상적 기원을 주체 앞에 대상이 위하라고 하는 입장에 세운다면, 하나님이 그러함과 동시에 모든 사람도 자기가 어떠한 대상을 지닐 수 있는 입장에 선다면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립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75-320)
하나 될 수 있고 평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그 길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참된 인간은 위해서 사는 존재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참된 이상도 위하는 데서부터, 참된 평화, 참된 행복도 위하는 자리에서 성립되지, 위하는 자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천지 창조의 근본이라는 것을 우리 인간은 몰랐습니다. (75-320)
남자와 여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를 위해 태어났고, 여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자기를 주장합니다. '나'라는 이 사상을 깨뜨려 버려야 됩니다. 이것만 깨뜨려 버리면 통일의 세계는 벌어집니다. (61-266)
자기의 가치를 자기에게서 추구하기보다는 상대에게서, 즉 상대적 기준에서 추구할 수 있는 길을 탐구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심정의 터전은 상대권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외롭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59-200)
조화라는 것은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재미라는 것도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행복 또한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절대자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상대적인 여건이 있어야 됩니다. 절대자 앞에는 절대적인 상대자가 있어야 되고, 절대적인 주체 앞에는 절대적인 대상이 있어야 행복이니, 조화니, 기쁨이니, 춤이니, 노래니 하는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38-155)
오늘날 기성교인들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본래부터 영광 중의 영광의 주체요, 행복 중의 행복의 주체요, 모든 사랑과 생명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대상을 갖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불행합니다.
하나님도 절대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을 찾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대상을 갖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상대적인 존재를 만들어야 됩니다. (38-157)
㉮ 피조세계를 지으신 뜻
피조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의 이상을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 구조입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하고, 원자도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작용하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존속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인간을 중심삼고 그 중심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창조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137-59)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시고 그 만물의 주인공으로 인간 시조를 에덴동산에 지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을 지으실 때는 하나님의 어떠한 희롱거리로 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취미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지어 만물을 대표하는 중심으로 세우게 될 때까지의 하나님의 수고와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온갖 정성을 다 들이시고, 또한 심혈과 당신의 생명의 핵심을 다 기울여 지으셨으며, 사랑과 애정을 몽땅 퍼부어 지으셨습니다. 어떠한 힘 가지고도 떼려야 뗄 수 없고, 갈라지려야 갈라질 수 없는 인연 가운데서 지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지으신 인간이기에 그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에게는 비로소 평화가 깃들 수 있는 것이고, 모든 정과 행복은 그 인간을 통하여만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128-207)
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골수 중의 골수를 몽땅 부어 지은 인간이기에, 이런 인간이 하나님을 끌면 안 끌려 오실 수 없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끌으시면 안 끌려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연 가운데서 내용과 목적이 일치할 수 있는 인간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지어 놓은 인간을 보고 하나님이 찬양할 수 있는 어떠한 말씀이나 시가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어떤 시인이나 문인도 표현하지 못하는 최고의 작품이 될 것입니다. 그 대상은 하나님도 아니요, 만물도 아니요, 오직 만물을 대표한 인간입니다. (20-207)
우주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몸과 마찬가지입니다. 보이는 몸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분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관념이 성립됩니다. 우주를 사랑한다는 것이 실감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머리도 이렇게 쓰다듬어 주곤 합니다. 옷도 뭐가 묻으면 그저 텁니다. 그거 왜 그러는 것입니까? 내 것이니까. 나와 같이 있기 때문에, 그런 관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고 마음이 하나되고, 몸이 하나되고, 만물이 하나되고, 이런 통일의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86-174)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몇억 광년입니다. 빛이 1초 동안에 30만 킬로미터를 가는데, 30만 킬로미터란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는 거리입니다. 우주는 그 거리를 1초 동안에 달리는 빛이 1년 걸려서 가는 거리를 천문학에서는 1광년이라 합니다. 그런 광년을 단위로 삼아 출발한 빛이 몇억 년이 되어도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할 만큼 큽니다.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는 지금까지 100억 광년 저세계의 별까지 발견했는데, 이제는 뭐 150억 광년 저세계의 별도 볼 수 있는 시대가 왔고, 그 이상의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대략 잡아서 210억 광년입니다. 이것은 원리적 수입니다. 그렇게 크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빛이 여기서 출발해 가지고, 그것이 하루 걸리는 것을 1광일, 한달이면 1광월, 이렇게 출발해서 1초 동안에 3억 미터, 빛의 속도가 3억 미터 갑니다. 거리로 말하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거리입니다. 일곱 바퀴 반이나 되는 거리입니다. 딱 하면 벌써 일곱 바퀴 반을 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빠른 빛이 하루 걸려도 허리가 구부러지고, 생각이 둔해 가지고 '나 모르겠다' 할텐데 백 년이 아닌 백의 몇만 배인 1억 광년. 출발해 가지고 1억 년, 아직 가고 있는데 사람이 백 살 산다면 백만 사람이 죽어갑니다. 1억 년에 말입니다. 1억 광년이니까 백 사람이 나서 계속해서 백 년을 살다 죽어가기를 백만 사람이 죽을 그때에 가 가지고도 또 가는 것입니다.
그럼 210억 광년 하면 얼마입니까? 그 사람들이 살고 죽고 또 살고, 백 살까지 살고, 백 살까지 살고 이렇게 2억 백만 명이 살아서 그만큼 가는데 또 계속 간다는 것입니다. 그 먼 거리가 직선으로 가지 않습니다. 이게 둥글둥글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라는 것입니다. (181-195)
㉯ 만물세계는 인간을 위한 사랑의 교재
참사랑의 기준을 놓고 보면, 아담 해와는 쌍쌍제도로 만들어 놓은 사랑의 자연동산을 보면서 배우고 성장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자라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은 만물을 지어 놓은 것을 보면 다 알게 되어 있었습니다. 만물이 바로 하나님의 박물관입니다. 아담 해와를 교육하는 사랑의 박물관입니다. 새도 수놈과 암놈, 나비도 수놈과 암놈, 전부가 쌍쌍으로 태어나 좋아하면서 새끼를 치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숙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한 플러스적 왕자가 남자요, 마이너스를 대표한 사랑의 왕녀가 여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있었습니다. 여자는 생각하기를 '저 남자가 바로 나에게 필요한 남자구나!' 하고 믿게 되고, 남자 역시 여자를 대해서 '정말 나에게 필요한 여자구나!' 하는 것입니다. (201-161)
참사랑의 기준을 놓고 보면 아담 해와는 쌍쌍제도로 만들어 놓은 사랑의 자연동산을 보면서 배우고 성장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새도 수놈과 암놈, 나비도 수놈과 암놈, 전부가 쌍쌍으로 되어 좋아하면서 새끼를 치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인간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201-356)
소년시대에서 자라서 청소년시대로 가는 것입니다. 사춘기가 돼 가지고 여기서부터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애기 때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엄마, 이게 뭐예요?' '아빠, 이게 뭐예요?' 이렇게 해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남자는 남자에 대해서 전부 알고 보니까, 세상만사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야 동물세계도 쌍쌍이 있고, 곤충세계도 쌍쌍이 있고, 아이구 전부가 그렇구만! 꽃세계도 그렇고, 광물세계도 그렇고.' 그거 전부 다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 주체와 대상이 되고,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는구나! 알고 보니 내가 가야 할 길은 이렇게 이렇게 찾아 가야 되는구나! 아이고, 이것이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219-31)
아담 해와는 자라나면서 세상을 배워 나갑니다. 두 아들딸이 크면서 가만 보니까 세상은 쌍쌍제도로 만들어 놓은 박물관입니다. 사랑의 박물관. 이걸 보면서 배우는 겁니다. '야! 저들이 저렇게 좋아하네. 파리도 수놈 암놈, 나비도 수놈 암놈, 전부 다 쌍쌍이 놀아나네. 그러고는, 좋아하고는 새끼를 치네!' 그거 배웠겠어요, 안 배웠겠어요? (200-246)
천지를 쌍쌍제도로 만든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이 사랑의 박물관입니다. 그 이상으로, 너는 새보다도 더 행복하게, 곤충보다도 더 행복하게, 너는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더 행복하게 살아라 이겁니다. (200-57)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쌍쌍제도로 되어 있고,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 이 환경은 인간을 위한 이상적 사랑의 박물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물세계가 작용을 하는 것도 쌍을 찾아 하는 것입니다. 또 초목도 쌍을 찾아 운동하고 번식합니다. 새도 그렇고, 곤충 가운데 베짱이도 그렇습니다. 베짱이도 노래하지요? (199-309)
하나님이 만물세계를 쌍쌍제도로 지었기 때문에 남성 여성을 중심삼고 거기에 모든 요소를 전부 품고 있습니다. 자연은 뭐냐?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수 있게끔 사랑을 교시하기 위해 지은 박물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노래할 때 무슨 노래를 한다 하더라도 죄가 아닙니다. 타락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문제로 인해서 가정이 파탄되고 천리원칙이 전부 깨져 나가니 죄지, 천리원칙 기반 위에서 서로 사랑하고 '내가 당신을 진정 사랑한다. 영원히 사랑한다. 당신은 나의 영원한 단짝이다.'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이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199-280)
쌍쌍제도로 만들어진 이 우주는 사랑의 하나님이 창조한 박물관입니다. 살아 있는 박물관입니다. 국립박물관에 있는 골동품같이 죽어 있는, 주인 없는 기념물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기념물입니다. (195-136)
참된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분을 통해서 지은 모든 물건은 다 이상적 사랑의 조건을 갖출 수 있게끔 전부 주체와 대상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은 페어 시스템,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광석도 부처끼리 돼 있습니다.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이 서로 당기잖아요? 그런 말 처음 듣지요? 실험실 선생이 아주 폭군이 되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원소를 암만 갖다 들이대더라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하라' 해도 안 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맞으면 '붙지 말고 하나되지 말라!'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부가 쌍쌍제도로 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77-271)
미물인 곤충도 사랑을 중심삼고 페어 시스템(쌍쌍제도)으로 돼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광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랑 때문에. 급이 낮으면 낮은 급 나름대로 사랑을 중심삼고 번식해 가지고 이 인간과 이 우주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이상을 완성할 수 있게끔 모든 체제에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293-308)
에덴동산에 전개되어 있는 모든 전부가 쌍쌍제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담도 자연히 그걸 보고 '야! 나도 수놈 같은 남자인데, 나도 수놈같이 생겼는데 암놈 같은 것이 어디 있나?' 하고 찾아보니 '해와다!' 이래 가지고 둘이 결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수놈과 암놈이 저렇게 하면 새끼를 낳누만!' 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시집가기는 싫지만 아기는 좋아하는 여자가 많습니다. (288-304)
에덴동산의 모든 것이 쌍쌍제도로 됐기 때문에 동물들이 새끼를 치고 '암컷과 수컷이 즐거운 환경을 만들고 있구나!' 이래 가지고 사랑이라는 것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담과 해와도 '둘이 만나야겠구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옛날 아담과 해와가 자랄 때 얼마나 복잡합니까? 남자는 와일드해서 산에 올라가고 뛰어다니는데, 여자는 매일 앉아서 구경하고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고 그랬습니다. 이렇게 성격이 다르지만 이런 환경에서 배워 가지고 자연적으로 상대를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278-280)
알고 보니 세상이 쌍쌍제도인데, 아담 해와도 혼자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동물세계의 사슴도 소도 전부 수놈과 암놈이 있어서 서로 좋아하고 새끼 치는 것을 다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아담과 해와도 동물세계의 곤충으로부터 새와 벌과 꽃까지도 그 놀음을 하고 있으니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안다는 것입니다. (246-58)
여러분 부부는 쌍태로 태어난 오누이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서는 동생 하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친구도 없고 외동딸입니다. 에덴동산에 여자 하나밖에 없고, 남자 하나밖에 없으니까, 틀림없이 아담이 해와와 친구해 줘야 됩니다. 오빠와 누이동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 가지고 만물의 모든 쌍쌍제도가 어떻게 번식하고 자란다는 것을 알고, 세상만사를 다 알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역사의 전통을 남기기 위해서 이렇게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해 가지고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 때문에, 인류 때문에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243-177)
아담 해와가 태어났을 때는 상대로, 자식으로 되어 있었지만 형제지연인 가운데는 상대가 없었습니다. 상대가 없지요? 여자는 여자 혼자 교육받고 남자 완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교육받을 재료는 천지간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쌍쌍제도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남자는 그걸 보고 '저렇게 커야 되는 구나!' 하는 것을 알고, 여자도 그걸 보고 '저렇게 커야 되는 구나!' 하고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교재를 박물관같이 모든 자연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은 모두 쌍쌍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28-268)
종적인 기준에는 상대성이 옮겨져 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종적인 기준에는 상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딸이 커야 됩니다. 성숙해야 됩니다. 만물세계를 보면 전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세계도 마찬가지요, 식물세계도 마찬가지요, 동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세계도 남녀가 전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자연세계라는 것은 사랑의 박물관, 급은 낮지만 쌍쌍제도로 된 사랑의 박물관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박물관을 왜 만들었습니까? 누구 때문에 만들었느냐 이겁니다. 사람들 때문에 만들고, 하나님 때문에 만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만물의 모든 사랑의 느낌, 광물세계나 식물세계나 동물세계의 사랑의 느낌이란 것을 다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238-29)
남자와 여자가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이때까지는 상대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로서 여자를 얻어야 됩니다. 전부 쌍쌍제도로 새끼치고 사는 것을 보는 겁니다. 봄이면 소도 그러고, 돼지도 그러고, 개도 그러고, 고양이도 그러고, 쥐도 그러고, 메뚜기도 그러는 것을 다 보는 것입니다. '아 그렇게 되는 거구나! 혼자는 안 되는구나!' 이렇게 눈이 뜨이는 것을 눈이 밝아진다고 합니다. 그 방향이 지금까지 이렇게 45도 해서 '아이구, 내가 필요한 건 아담이구나!' 하고 '내가 필요한 건 해와구나!' 하는 것입니다. (229-321)
환경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이 우주는 사랑을 핵으로 한 박물관입니다. 쌍쌍 박물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가 둘이 서로 좋아하면서 열심히 집을 짓고, 새끼를 낳고, 먹이는 것을 보면서 배워야 됩니다. '내 새끼를 위해서 그 이상 몇백 배 해야지.' 이래야 합니다. 벌레들도 암수 두 마리가 전부 사랑하고 새끼 치는 것입니다. 그들도 자기 생명을 걸고 새끼들을 기르려고 합니다. 그것이 교육입니다. (229-287)
아담과 해와가 성숙함에 따라 여기서 횡적으로 돌아서 아담이 자기 상대인 줄 알고, 해와가 자기 상대인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외향적으로 나가 돌아다니려고 합니다. 사냥도 하고, 어디 가든지 잡아 쥐어야 합니다. 해와는 어떻습니까? 해와는 근본 성격이 다릅니다. 이러면서 커 가지고 여자로서 알 것, 남자로서 알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만사 전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광물세계나 식물세계나 동물세계나 다 쌍쌍제도로 되어 있지요? 그걸 배우는 것입니다. 커 나오면서 가만히 보니까, 무엇을 보나 전부 다 상대적입니다. 그러니 자기도 모르게 배우는 것입니다. (225-201)
사랑을 누가 가르쳐 주느냐? 자연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동산에 뛰는 동물을 보니 수놈과 암놈, 나비를 봐도 수놈과 암놈, 전부 쌍쌍제도로 돼 있다는 것입니다. 꽃이 피면 아름다운 동산에는 새가 지지배배 지저귀고 말입니다. 새가 왜 지저귀는 거예요? 수놈새 암놈새가 지저귀는 것은 무엇 때문이에요? 무엇을 부르기 위한 거예요? 새가 지저귀는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배고파서 부르는 것이고, 하나는 사랑 때문에 부르는 것이고, 하나는 새끼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 이유입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208-251)
표준적인 아담과 해와의 상대권에 서기 위해서 자기들도 그 형태로 준비되어야 하니까, 이 우주 창조물은 페어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쌍쌍제도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큰 플러스이고, 만물은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작은 플러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상대적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인간과 만물이 같습니다. 인간과 만물이 공통된 절대적 주체권을 중심삼은 기준에서 평면을 잡으면 하나님이 수직으로 임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230-252)
참새가 짹짹거리며 깨워 주는 것이 자기가 깨는 것보다 얼마나 멋져요? 얼마나 시적입니까? 여러분은 자기가 노래하는 것이 좋아요, 노래 듣는 것이 좋아요? 그건 또 얼마나 시적입니까? 자기가 짹짹 짹짹 하는 것보다도 제 삼자가 짹짹짹, 자기가 깨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깨워 주고 말입니다. 그렇게 조화의 음률에 따라 소리를 달리하면서 깨워 줄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새도 내 친구입니다. 무엇이 친구되게 합니까? 쌍쌍제도를 두고 볼 때 그게 내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도 쌍쌍입니다. 친구라고 생각할 때 그 얼마나 시적입니까? (177-271)
세상이 다 쌍쌍제도로써 모든 것이 번식하게 돼 있는 것을 볼 때, 아담과 해와도 성숙되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성숙되기 전에는 아담과 해와는 그걸 몰랐습니다. 아담과 해와 둘이 사는데, 이 둘의 성격을 보면 아담은 남성적이고 외향적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뛰쳐나가서 산에 가서 토끼를 잡고 싶고, 꿩을 잡고 싶고, 노루를 잡고 싶고, 뱀을 잡아서 배를 가르고 싶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주인이 되어 관리하려면, 전부 관리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산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고, 동물은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고, 물에는 무슨 물고기가 있는지 다 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자니까 주인이 되려면 무엇이든 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262-74)
하나님이 재미를 느끼면서 창조했습니다. 그거 얼마나 재미있었겠어요? 쌍쌍제도를 만들어 놓으니까 세포까지도 짝짝이 되어 좋아하고 이러는 걸 볼 때 얼마나 재미있었겠어요? 사진 찍은 것만 해도 잘 나오면 붙들고 좋다고 하는데, 실물이 말하고 춤추고 하는데 얼마나 좋겠나 말입니다. (283-102)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이 지어 놓고 품어 길러 가는 데 있어서 종인 천사장을 지어서 그들을 보호하고 기르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이 결혼시켜 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성숙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갈라져 태어나서 남자는 남자로서 자라고 여자는 여자로서 커 가는 것입니다. 커서 성숙한 남자와 여자가 되어 세상을 가만히 보니 광물세계나 동물세계나 식물세계나 다 상대이상, 쌍쌍제도로 돼 있다는 것입니다. '아! 동물들도 둘이 하나되어서 저렇게 새끼치고 행복하게 사는구만. 야, 에미는 새끼들을 기르기 위해 자기 생명을 바쳐서라도 보호하는구만. 우리도 저렇게 해야 하는구만!' 이렇게 다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아담 해와의 이상적 발달을 위한 전시적 박물관이라는 것입니다. (262-74)
참사랑권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면 만물과 통합니다. 바위도 통하고 만물과도 통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세계는 통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 쌍쌍제도로 된 것은 하나님에게 속할 수 있는 사랑과 인연되어 하나되기 위한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은 공명(共鳴)하게 마련입니다. 그런 참사랑권 내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내적인 세계와 외적인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영계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이 땅에서 부모를 어떻게 모셔야 되고, 또 나라를 어떻게 섬겨야 된다는 것 등의 모든 것을 자연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는 길은 함부로 가게 안 되어 있습니다. 공식이 있습니다. 사랑이 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이 가는 길은 두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가는 참사랑의 길이나 하늘세계, 하나님으로서 찾아오는 참사랑의 길은 언제나 한 길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올 때는 인간은 올라가고 이렇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디에서 만나야 되느냐? 여기에서밖에 만날 수 없습니다. 최고로 장성한 자리가 이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같은 자리입니다. 이 둘이 합하려면 어디에서 만나야 되느냐? 이 자리에서 만나야 됩니다. 이 자리밖에 없습니다. 이 점에서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238-31)
사랑이론을 말하다 보니 그것이 풀리지 않는 이론이 없습니다. 지식 중의 왕지식입니다. 사랑을 찾아보니 이 모든 피조세계가 쌍쌍제도로 된 것을 알았습니다. 광물세계도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으로 돼 있지요? 쌍쌍입니다. 그거 뭣 때문에 쌍쌍입니까? 그 급에 해당하는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 때문에 그렇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번식이 벌어집니다.
동물세계도 다 수놈과 암놈, 사람도 여자와 남자입니다. 그거 왜 생겨났어요? 여자 때문에 사랑이 생겨난 것도 아니요, 남자 때문에 생겨난 것도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 때문에 생겨났다!' 이렇게 돼야 됩니다. 그 명제를 부정하는 요사스러운 것들은 지옥의 족속들이요, 파괴의 족속들입니다. (221-257)
4)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
① 진화론의 근본적인 오류
㉮ 종의 구분은 엄격, 절대 제3자 개입 배척
역사가 언제부터예요? 진화를 시작하고부터예요, 그 전부터예요? 진화가 뭐예요? 참새와 멧새는 사촌입니다. 똑같습니다. 뼈다귀며 요것 조것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색깔이 조금 다를 뿐이지 생식기랑 눈도 똑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참새와 멧새에게 암놈과 수놈을 엇바꿔 가지고 사랑해서 새끼 낳으라면 새끼 낳을 수 있습니까? 천년만년 한다면 새끼 낳겠나, 안 낳겠나? 원숭이와 침팬치가 천년만년 해 보라는 것입니다. 새끼 낳을 수 있는지. (232-126)
참새와 멧새는 형제입니다. 어때요? 원숭이와 인간에 비하면 백 퍼센트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 참새와 멧새의 쌍을 붙이면 새로운 것이 태어나요? 세상에 학자라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수놈 암놈이 사랑해서 새끼를 낳아 발전했다는 논리를 부정하고 외적 형태의 구성이 같다고 해서 진화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생식기관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물고기들은 암놈과 수놈이 붙지 않습니다. 육지에 나와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199-307)
이 태양계의 지구가 몇억 년 되었습니까? 몇억 년을 돌고 있는데 푼촌이 틀립니다. 매일 그렇게 딱딱 들어맞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또, 미국 참새와 한국 참새가 둥지트는 것이 같아요, 달라요? 대답해 보십시오. 같아요, 달라요? 같습니다. 이거 진화론적으로 보면 참새가 둥지 트는 것도 발전해야 될 텐데? 배우지 않고 어떻게 몇천 년 몇만 년 그렇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거 어떻게 알아요? 제비는 제비대로 틀리고 참새는 참새대로, 꾀꼬리는 둥지를 가지에 매답니다. (179-246)
왕 성성이 남자와 못난 여자를 잡아다 결혼시켜 만년 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인다고 해서 사람 새끼가 나오나요? 아기가 번식될 것 같아요? 답변해 보십시오. 원숭이 후손, 공산당 패들! 성성이를 인간 여자와 결혼시켰다고 공산당 세계가 기도하고 별의별 힘을 가입시켰다고 해서 새끼가 생겨날 것 같아요, 안 생겨날 것 같아요? 모르겠으면 공산주의 주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화론을 주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똑똑하게 살아야 된다 이겁니다. (262-80)
아메바에서부터 원숭이까지 가려면 수천 종의 사랑의 문을 통해 가지고 올라가야 됩니다. 진화론은 수많은 종의 사랑의 문을 통과해서 올라가야 된다는 것을 빼놓았습니다. 그렇게 갈 수 있습니까? 종을 통하지 않고도 마음대로 올라갈 수 있습니까? 새가 곤충과 통할 수 있습니까? 새가 동물세계를 통하지 않고 올라갈 수 있습니까? 사랑의 문,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커야 된다는 사실은 다 빼 버리고 뼈다귀가 같다고 그런 소리를 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낳을수록 더 좋은 것이 나올 수 있습니까? 더 나쁜 것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뭐냐 하면, 그들이 사랑관계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254-264)
종의 구분이 엄격하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은 아메바에서 원숭이까지 수천 종이 있습니다. 수천 종의 단계를 전부 무시하고 그냥 그대로 이걸 통하려면, 전부 그 종의 암컷과 수컷의 문을 통해 새끼가 나오는데, 몇천 번 낳아 가지고 나올 건데, 한꺼번에 쑥 나왔다 생각하니 이게 틀렸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문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을 부정했다는 것입니다. 수천 종의 사랑의 문을 아메바가 어떻게 다 통과해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이겁니다. 뼈다귀가 같다고 같아요? 같은 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미친 소리 그만 하라는 것입니다. (266-39)
오늘날 이 진화론을 생각해 종의 기원을 말하게 될 때, 하나의 종이 생겨나는 데는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수놈과 암놈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광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이 합해 가지고 하나의 물질을 조성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음양으로 돼 있는 것입니다, 수놈과 암놈으로. (213-63)
재창조는 환경 창조, 주체와 대상 창조, 그 다음에는 대응적인 발전,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진화론도 이렇게 발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발전하는 게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어 가지고 더 큰 것에 흡수되어서 반드시 사랑의 문을 통해야 된다 이겁니다. 이런 원칙에 의하면, 사랑 없는 아메바에서 이 인간세계까지 수천 단계를 거쳐 나가야 할 텐데, 그런 사랑의 문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230-68)
오늘날 진화론에서 말하기를, 아메바가 발전하고 진화해서 사람이 됐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생각해야 될 것이 뭐냐? 수컷과 암컷이 인간에게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천 단계의 사랑의 길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종별의 한계는 엄격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냥 그대로 달려가 가지고 진화가 됩니까? (209-29)
여러분 가운데 사랑하는 여편네 앞에 다른 남자가 와서 개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동물도 그렇고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없다고 하는 그것이 보통이에요, 절대적이에요? 절대적이라고 하는 거기에는 다른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종에 있어서는 그 레벨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메바는 암놈과 수놈의 사랑의 문을 통해 가지고 나왔는데, 어떻게 다른 종류를 연결시켜서 나올 수 있었어요? 그냥 그대로 올라갔어요? 반드시 사랑의 문을 통해야 됩니다. 그걸 무시하고 진화예요? 서양놈들이 원숭이같이 생겼기 때문에 진화론을 얘기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머리의 색깔도 그렇고, 털도 다 원숭이같이 갈색이지 않습니까? (216-247)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단둘입니다. 제3자의 개입을 원치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아메바에서 사람까지 몇 천 단계의 사랑의 과정을 통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존속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다 깨지지요? 일년밖에 못 삽니다. 그럴 것인데 사랑이라는 그 부분을 통해서 이것이 연속적인 계열적 존재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문을 제3자가 개입해 가지고 얼룩덜룩한 아메바를 원합니까? 원숭이와 사람이 결혼식해서 한 천 년쯤 살면 새끼가 나오겠나? 안 나오겠나? 천년 아니라 만년 가도 안됩니다. 말도 안되는 수작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222-185)
곤충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것이 원칙이라고 하면, 진화론은 성립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상대권, 대상의 노정을 통한 아메바로부터 원숭이까지 몇천, 몇만 번의 사랑의 문을 통한 수컷 암컷의 관계를 무시하게 되면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새도 그렇습니다. 겨울 같은 때는 상대 같은 거 모르니까 장난을 하고 제각기 다른 플러스가 되어 있지만, 봄이 되어 집을 만들고 상대권을 만들었을 때에는 절대적입니다. 제3자 되는 참새에 대해서는 수컷과 암컷이 함께 절대적으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암컷이 오면 수컷이 배척하고, 수컷이 오면 암컷이 배척합니다. 왜냐? 자기 상대권을 깨기 때문에, 우주 법권의 침략자가 되기 때문에 그걸 배척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18-338)
식물의 꽃을 보면 자기 종이 있는데 다른 것을 중심삼고 다른 종자로 변하지 않습니다.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종의 구별이 엄격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메바에서 원숭이로 진화되었다고 하는 진화론의 논리는 형성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이 구별이 엄격한데, 어떻게 수천 가지의 종의 협조를 받는 체제에서 연결시키고 발전했겠느냐 이겁니다. 진화론에서는 사랑의 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의 힘을 통해서 번식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의 힘이 없으면 어떤 것도 번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메바에서 원숭이까지 사랑의 힘이 정상적으로 통할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은 그 어떤 경우라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278-100)
아메바에서 원숭이까지 진화했다면, 그냥 그대로 아메바에서 원숭이까지 갈 수 있습니까? 수많은 종이 다른 것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사랑의 고개를 통하지 않으면 넘어갈 길이 없습니다. 새로운 큰 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수천 수만의 수놈과 암놈의 사랑의 과정을 통해야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종의 세계에서 원칙적인 플러스 마이너스 개념이 사랑을 중심삼고 제3자의 침범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아메바의 세계에서 더 높은 한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237-135)
진화는 별종이 나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랑의 관계를 중심삼지 않고는 다른 것이 나올 도리가 없습니다. 종의 구별이 엄격한 것입니다. (302-181)
진화론은 한꺼번에 깨 버려야 됩니다. 자기 멋대로 이론을 갖다 붙여 진화론을 논의한 것입니다. 사람이 원숭이 새끼라니? 이놈의 자식들! 천년만년 인간은 타고 넘어가서 하나님을 모시게 되어 있습니다. 원숭이가 무슨 원숭이에요? 원숭이하고 사람은 47가지가 다릅니다. 질적 변화가 될 수 없습니다. 종의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도 원숭이와 사람이 살아 가지고 사람이 나와요? 원숭이가 나와요? 안 나옵니다. 종의 기원이라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299-20)
우주는 왜 쌍쌍제도로 되어 있느냐? 저절로 됐다는 진화론도 좋습니다. 진화론에 앞서 널려 있는 사실이 뭐냐?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 번식기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진화가 있나요? 진화가 있다면 남자와 여자의 사랑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됩니다. 옛날 사람보다 오늘날 사람의 그것이 발전돼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곤충세계에서도 벌레들이 사랑하는 그것이 옛날과 오늘날과 달라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새들도 전부 다 달라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기원이 되는 사랑의 기관을 중심삼고 그 본거지가 진화적 내용으로 발전하게 돼 있느냐? 미친 것들입니다. (191-53)
사랑세계의 종별 구분의 엄격함은 천주의 어떤 것도 범할 수 없습니다. 봄이 되어 참새 수놈과 암놈 한 쌍이 알을 낳으려고 집을 짓기 시작할 때는 제3자로 어떤 새 종류도, 어떤 짐승 종류도 절대로 개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결혼 첫날밤에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친구를 거기에 참석시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까? 진화론은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집을 가는 여자가 어머니 이상으로 이 세상에서 가까운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죽어도 엄마, 살아도 엄마!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라도 남편을 맞이하는 첫날밤에는 '엄마, 오늘밤에 제발 같이 있어 주세요.' 하지 않습니다. 그런 여자가 있습니까? 제3자의 개입은 절대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본래 인간이 맞이해야 할 사랑의 전통적이고 공식적인 기준이었던 것입니다. (228-154)
여러분! 생식기관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런 구조적 발달 형태를, 그거 말하자면 참새와 멧새와 할미새는 그 모양이 딱 같습니다. 그래, 참새와 할미새가 붙으면 뭐가 나와요? 그거 가능합니까? 이놈의 자식들, 전부 다 멋도 모르고 하는 소리지. 내가 따지면 전부 몇 마디 안 해도 대답도 못하고 낑낑거리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들! 암놈, 수놈! 아메바에서부터 이렇게 생겨나왔다고 본다면 어떻게 이렇게 암놈과 수놈, 볼록과 오목이 생겼어? 왜 그걸 통해 주고받아야만 새끼가 번식되게 되어 있어? 그거 누가 설정했어요? 진화론자들이 그런 것을 설정했어요? 내적인 힘, 생명의 기원이라는 것은 위대한, 우주관으로도 포괄할 수 없는 생명의 연합 기반을 통해서 생성이 벌어진다는 내용을 모르고 있습니다. 원숭이와 사람은 뭐 47가지가 틀리다나? 이거 둘이 결혼하면 새끼 낳겠어요, 못 낳겠어요? 옛날에 학생 때 공산당 패들에게 물어보면 전부 다 답을 못 하더구만! 이런 것은 뭐 오늘도 수백 가지를 애기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 엉터리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98-24)
진화가 구조적 형태의 동위성에 의해서 될 수 있느냐? 아닙니다. 왜? 아메바와 같은 경우에도 보다 높은 차원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수놈과 암놈의 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멧새와 참새가 모양은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진화할 수 있습니까? 발도 같고 주둥이도 같습니다. 모양이 같습니다. 봐도 구분 못 합니다. 그렇다고 멧새 암놈과 참새 수놈을 쌍붙이면 발전합니까? 백인 남자와 성성이 암놈을 결혼시키면 뭐가 나오겠어요? 새끼가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어요? 진화론자들, 답변하라구! 생식기를 통하지 않고는 발전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 저녁에 돌아가서 연구해 보십시오. 생식기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아요? 모든 구성에 필요한 신경요소가 전부 집중되어 있습니다. (199-253)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인간이 진화 발전되었다고 믿는데, 아메바에 대한 예만 들어도 그놈들도 수놈 하나만 가지고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고, 수놈과 암놈이 함께 작용해 가지고서야 더 발전된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진화론이 큰 문제입니다. 저급한 것에서부터 보다 높은 급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놈과 암놈의 사랑 과정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랑 과정을 통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참새와 멧새는 비슷합니다. 털색이 약간 다를 뿐이지 그들의 뼈를 갖다 놓고 보면 완전히 같습니다. 그렇다고 참새와 멧새의 쌍을 지어 놓으면 새끼가 나옵니까? 진화론자들 대답해 보십시오.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안 나옵니다. 또 서양 사람들 보면 비교적 털이 많이 나 있는데 그렇다고 고릴라 암놈과 서양 남자를 결혼시켜 놓으면 사람이 나오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201-146)
종의 구별은 엄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자들의 얘기처럼 원숭이는 인간 조상이 아닙니다. 아메바에서 사람까지 나오는 데는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수만 단계 사랑의 과정을 통해야 합니다. 사랑의 법도는 동물세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3자가 개입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단계적으로 진화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힘의 작용에 있어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작습니다. 작용하면 마이너스 되는데 어떻게 큰 게 나올 수 있습니까? 안 그래요? 그렇다고 클 수 있는 제3의 힘에 자기가 가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도 아닙니다. (212-308)
아메바 옆에 딴 녀석이 와서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겠나? 그렇기 때문에 연결성을 지을 수 없다는 논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진화라는 뜻을 말하기 전에 수놈과 암놈 생식기를 제거할 때 진화론은 근본적으로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진화되기 전에 수놈과 암놈이 있었기 때문에 진화할 수 있는 상대적 요인의 운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221-291)
수컷과 암컷의 사랑 기관이 진화가 되어서 그렇게 맞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까? 이 진화론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연결되어 아메바 쌍과 그 다음 중간 쌍이 접촉할 수 있는 길이 되어 있습니까? 횡적으로만이 아니라 오만 가지 전부 다 어디든지 접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웅세계는 벌써 사랑이라는 개념을 중심삼고 생겼기 때문에 진화와는 관계없는 차원입니다. (222-39)
사랑의 세계에는 자기 상대 외에는 제3 존재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참새도 벌레도 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진화론을 중심삼고 볼 때, 아메바에서부터 사람까지 가려면 그 사랑의 계열이 몇 천 단계예요? 곤충만 해도 수천 종이지요? 식물에서부터 동물까지 수천 종입니다.
그런데 그 수천 종이 아메바에서부터 그냥 '쑤욱'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천만에! 수천 단계를 거쳐야 됩니다. 종의 구별은 엄격합니다. 뭐, 아메바에서 진화해 가지고 사람이 돼? 엉터리 같은 녀석들! (227-296)
모든 존재물은 다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에게 '수놈이 왜 생겨났소?' 하고 묻게 되면, 뭐라고 그래요? '자연히 생겨났지.' 하는데, 그거 미친 자식들입니다. 자연히 생겨났어요? 모든 수놈과 암놈은 자기 계열을 존속시키기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다른 계열이 아닙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고, 뱀이 개구리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거 맞아요, 안 맞아요? 수놈과 암놈이 사랑의 문을 통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세상에 무지한 사람들이 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수놈과 암놈 알지요? 그게 그냥 생겨났어요? (209-193)
환경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는데 하나되어서 대응적인 주체와 대상 관계를 가져야 됩니다. 환경의 주체와 대상이 대응적인 주체 대상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서는 못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주체와 대상 관계라는 것입니다. 주체가 대상을 몰라보면 인연이 없습니다. 원소세계에서 이것이 상대적으로 안 맞으면 아무리 실험실에서 갖다 붙이려고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되면 재까닥 달라붙습니다. 놓기만 해도 달라붙습니다. (291-112)
종의 구별은 엄격합니다. 개구리 비슷한 새새끼가 개구리 세계에 가 '너 나하고 쌍엮자?' 할 때 '그러자!' 그래요? 도망가요, 싸워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진화론은 아메바에서 원숭이까지 갈 때 무엇을 부정했느냐 하면, 사랑의 문을 거치지 않고는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수천 대의 사랑의 문을 전부 아메바가 거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까? 정신이 나가도 유만부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총재 앞에 공산주의가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사유가 먼저냐, 존재가 먼저냐, 이런 문제도 궁금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정신이 먼저예요, 물질이 먼저예요? 여러분은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웠지요? 그것이 틀렸습니다. 진화론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혁명을 할 것입니다. (274-67)
재창조의 환경에서는 플러스 마이너스 대응세계에서 발전하는 과정이 있고, 수놈과 암놈 개념이 진화론보다 먼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사랑의 종의 구별은 엄격해서 제3자가 개입할 수 없습니다. 진화론에 의하면, 아메바에서 원숭이까지 가려면 수천 단계를 한꺼번에 도약해야 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이 없습니다. 천만 가지 사랑의 문을 통과해야 발전적인 그 씨를 연결시킬 수 있는데, 한꺼번에 도약해서 원숭이가 나올 수 있다고?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245-62)
만약 진화론을 인정한다면, 아메바에서부터 사람까지 몇천 단계를 넘어가야 됩니다. 단계가 같다고 그냥 통과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몇천 가지의 사랑의 문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제3자의 침입을 허용하는 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시집간 첫날 저녁에 '어머니, 제발 여기서 같이 자요!' 하는 색시를 봤어요? 남편도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싫어!' 하던 남자라도 첫날 저녁에 '아버지, 여기서 같이 자요!' 하는 남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제3자의 개입을 원하지 않습니다. 동물계에서도 마찬가지고, 곤충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원숭이는 원숭이를 낳지 원숭이 같은 종류에서 사람 같은 것이 나올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239-231)
화학실험실에서 원소를 연구하는 교수가 '야! 이놈아, 이 원소하고 저 원소하고 합해라' 하고 암만 명령해도 안 됩니다. 자기 상대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절대 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작용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상대의 주체가 되어야 합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원칙인데, 무책임하게 진화론을 이 우주의 형성에 갖다 붙였는데, 그거 엉터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존재에 내적 작용의 힘을 일으킬 수 있는 본연의 우주력이 있다.' 하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된다 이겁니다. (117-74)
원숭이와 사람은 종자가 다릅니다. 원숭이가 문화적인 생활을 합니까? 사람은 생명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종교가 따라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원숭이가 문화를 가지고서 세계를 통일하자고 합니까? 다른 나라를 점령하여 자기 나라로 만들거나 국경선을 만들어서 네 나라 내 나라라고 합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람과는 종류가 다르다는 겁니다. 원숭이가 하나님을 찬송합니까? 원숭이는 그저 먹기를 좋아하고 먹고 나서 번식하면 그만입니다. 사람과 원숭이는 전혀 다릅니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학박사라는 사람들이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다고 억지를 부리고 사기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밝히고 바로잡아야 됩니다. (41-185)
㉯ 힘의 작용 법칙과 진화론의 허구
오늘날 진화론을 적용하는데, 아메바면 아메바가 번식해 나오는 데 있어서 아메바보다도 큰 게 생겨나기 위해서는, 현재의 것보다도 크게 되기 위해서는 다른 힘이 가해져야 됩니다. 힘이 플러스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메바 스스로가 혼자서 힘을 플러스시키면서 발전할 수 있습니까? 자체가 그런 힘을 가입시킬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런 능력이 있느냐 이겁니다. 조금 더 올라가서 더 큰 것이 될 수 있다면, 여기에 더 큰 힘을 플러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체가 힘을 창조하여 플러스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어디서 어떻게 오는 거예요? 그런 논리가 성립돼요? 미스터 김이라면 미스터 김, 미스터 박이라면 미스터 박이 있을 때 '내가 뭐 무하마드 알리 같은 것은 문제없이 잡아 치운다.'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러려면 여기에 더 큰 힘이 가해지든지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했더라도 한계선을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미스터 박이 '돌연변이에 의해 내 힘이 커지면 알리를 때려 눕힌다.' 해서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까? (89-73)
힘의 공식적인 원칙을 보면 말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이 같을 수 있습니까? 힘이 들어와서 이렇게 작용했는데, 작용하려고 들어오는 힘과 작용하고 난 후의 힘이 같을 수 있습니까? 여기에는 소모가 벌어집니다. 그렇지 않아요? 운동을 하면 소모가 벌어지지요? 그러니 들어오는 힘과 같을 수 없습니다. 작용하고 난 후에는 힘이 언제나 작게 마련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작용하고 나면 힘이 더 커진다고 합니다. 그런 공식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뒤집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의 힘이 필요합니다. (55-254)
진화론자들은 아메바가 점차 진화해 고등동물인 원숭이가 되고, 그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사람 이상의 힘을 발휘하려면, 그 힘을 어디에서든 보충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힘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힘은 작용을 하면 반드시 소모됩니다. 여기에 힘을 보충해 주어야 또 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8-155)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여 현재보다 못하게 되면 작용을 안 하는 것이요, 보다 나을 수 있는 서로의 목적을 발견하면 작용을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중심삼고 진화론을 보면, 진화하는 데도 보다 나을 수 있는 목적적인 그 무엇을 갖지 못할 때에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횡적으로 보다 강한 힘이 가중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 힘은 작용할 수 있는 목적과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54-11)
진화론의 모순이 무엇이냐? 아메바가 진화, 발전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점점점 커 나가기 위해서는 제3의 힘이 필요합니다. '내가 윗단계, 높은 단계의 물건으로 태어나겠다!' 하려면 거기에다 어떤 무엇인가를 플러스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힘이 가해지지 않고는 커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제3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메바가 더 커갈 수 있는 힘을 창조해 가면서 아메바가 자랄 수 있느냐, 살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265-58)
진화론에서는 발전이 어떻게 됩니까? 진화론은 입력과 출력의 법칙과 반대입니다. 세상에 이런 원칙이 어디 있습니까? 진화론은 절대 커지는 것이지요? 진화가 작아진다는 말이에요? 진화론에서는 아메바가 자연 발생해 가지고 점점 커 올라가서 원숭이로 진화, 발전하고 사람으로 진화, 발전했다고 합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그것이 커지는 거예요, 작아지는 거예요? 그러나 힘의 원칙에서는 입력과 출력이 같을 때 절대로 커질 수 없습니다. 작아지는 것입니다. 힘의 소모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37-16)
역학세계에서는 입력 출력권을 중심삼고 작동하면 반드시 로스(loss;손실)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내려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향진할 수 있는 논리가 어디서 나오느냐 이겁니다. '진화'라는 자체가, 나아가면서 화한다는 자체가 플러스 플러스한다는 말인데, 그것이 어디에서 플러스됐느냐 이겁니다. 투입한 입력보다도 출력이 커야 되는 논리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작용하면 로스가 생기기 때문에 입력은 출력보다 큰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진화라는 논리는 형성될 수 없습니다. 3점 가입을 그 자체가 투입할 수 없고, 그 다음에 운동하는 세계에는 입력보다도 큰 출력을 자체가 발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면 무한동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문제가 뭐냐? 오늘날 진화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성관계를, 플러스와 마이너스, 남과 여, 암술과 수술,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이 합해 운동을 통해서 나왔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메바에서 사람까지 오려면 몇천 단계의 사랑의 문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그냥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엉터리 같은 녀석들! 모든 종의 원칙이라는 것은 엄격한 것입니다. 제3자의 개입을 허용하는 존재가 없습니다. (214-193)
진화론을 주장하려면 진화될 수 있게 하는 힘을 어디서부터인가 보충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핵의 변혁 형태를 자기 자체에서 이뤄 연합시킬 수 있는 자제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117-72)
주체와 대상이 있으면 반드시 목적이 있어 가지고 방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화에 어떻게 방향성과 목적이 있을 수 있느냐 이겁니다. 진화론에서는 이런 이론을 적용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목적과 방향성으로 공산주의를 깨야 됩니다. 이 엉터리 이론을 가지고 세계를 유린해 버리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메바가 작용을 하면, 들어오는 힘보다 작용이 작을 텐데 어떻게 커지느냐 이겁니다. 어떻게 큰 게 나와요? 아메바에 있어서 입력보다 출력이 작기 때문에 큰 것이 나올 수 있기 위해서는 제3의 힘이 투입돼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진화론의 근거가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아메바 자신이 제3의 힘을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이 엉터리 같은 녀석들! (210-155)
진화론을 말할 때 진화되는 아메바 자체가 진화의 시작인 3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 작용하려면, 운동하려면 3점에서 돌아오면서, 회전할 수 있는 4점 기준을 거쳐야 됩니다. 3점에서부터 4점을 거쳐야 됩니다. 원형으로 주고받으며 운동하려면 3점에서 4점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메바 자체가 다시 자기 위치로 돌아올 수 있는 360도로 순환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느냐? 없습니다.
그러면 3점의 힘은 누가 가했느냐? 그것은 이론적으로 또다른 힘이 첨부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진화할 때 진화의 방향이 어떻게 되느냐? 그 방향성을 누가 결정하느냐 이겁니다. 진화되는 아메바 자체는 방향성을 갖출 수 없습니다. 그걸 볼 때 돌연변이라는 것은 미치광이 수작입니다. 그걸 누가 받아들여요? 요즘에 진화론이라는 것은 이미 쓰레기통에 들어가서 다 썩어 버린 말입니다. 뭐라고 할까, 거름더미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209-187)
오늘날에는 물리학이 발달해 모든 원자에도 의식이 있다고 하는 이원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논리는 통일교회의 이성성상 원리 말씀과 같습니다. 차원은 다르더라도 만물이 다 알아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래야 세균 같은 것도 살아먹는 겁니다. 안 그래요? 세균같이 보이지도 않는, 몇천만 분의 일밖에 안 되는 크기로 살고 있는 세균에게 귀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눈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코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입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거기에 생식기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다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209-187)
하나님도 이 세계를 창조할 때 3점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진화론이라는 것, 진화라는 말을 우리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아메바가 작용을 한다면, 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3점 기준을 자기 스스로 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3점 기준은 또 다른 하나의 힘에 의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운동하면 할수록 거기에는 반드시 원형을 거쳐서 운동한 그 점수를 가해 구형운동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212-277)
진화론 믿는 멸종분자들. 여기에 진화론 믿는 패들 있어? 교수란 짜박지들이 그런 걸 잘 믿지? 그게 왜 그러냐? 상대가 안되는 물건을 아무리 힘을 통해 가지고 해도, 하나님이라 해도 화합작용도 안 하거니와 하나도 안돼! 왜? 이게 우주의 법입니다! 왜? 사랑이상을 중심삼고 지었고, 상대성을 가려 줬기 때문에 우주는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아메바에서부터 사람이 돼요? 직선상에서는 조화가 없습니다. 이런 거 이론적으로 얘기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직선세계에서 어떻게 3점을 만들어내느냐? 3점, 4점, 4각형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 여기서부터 조화가 벌어집니다. 원형이 어디서 나오느냐? 직선에서는 안 나옵니다. 아메바가 3점 자체를 책정하고 그것을 형성할 수 있는 자체력이 있느냐? 없습니다. 운동하게 되면 직선으로 하는 것입니다. (211-254)
아메바를 중심삼고 수천 계단이 사랑의 법으로 다 쌓여 있는데 그게 어떻게 사랑의 문,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문을 다 넘어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진화론의 문제가 뭐냐 하면, 제3은 어디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고개를 넘어서야만 종의 번식이 가능한데, 그 문을 통해 갔느냐, 그냥 그래도 넘어가서 원숭이가 됐느냐 그겁니다. 그 다음에는 진화론이라는 것이 암놈과 수놈이, 이 모든 광물에 있어서 원소세계도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는데, 플러스와 마이너스라는 상대적 개념보다 먼저 있었느냐 할 때, 그건 나중에 있었다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의 주체와 대상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자기 정도 이상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263-273)
직선상에는 조화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직선은 뭐냐 하면 2점을 연결한 것입니다. 창조가 되기 위해서는 3점, 4점, 스페이스가 필요합니다. 이 3점을 누가 갖다 만들어 놨어요? 직선 자체가 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답변해 보십시오. 위 3점에 아래 3점을 누가 갖다 뒀느냐 이겁니다. 그러면서 우주의 모든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운동이라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또 그 다음에 하나는 뭐냐? 역학세계에서는 입력이 출력보다 큽니다. 그러면 아메바가 운동하는 데 있어서 출력이 크다는 논리가 어디 있습니까?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론은 다 정리해야 됩니다. (215-232)
직선상에는 조화가 없습니다. 3점에서부터 모든 구형세계의 조화 기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진화론에는 3점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를 무시할 수 없는 전통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직선상의 점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227-267)
우주의 창조를 두고 볼 때, 직선세계에서 어떻게 3점의 기준을 세우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면, 진화론의 관점에서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결론을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점을 중심삼고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세 점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상대를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을 연결시켜 주는 핵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27-30)
진화론은 이미 지나간 폐론입니다. 방향성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중심삼고 볼 때 방향성이 설정됐다는 것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둘에게, 상대권에 다 공동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길이 결정된 것입니다. 중도(中道)인 동시에 정도(正道)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둘 다 좋아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입력과 출력의 관계에 대한 논거에 해답을 못 했습니다. 그리고 또 방향성 제시를 못 했습니다. 제3의 힘을 가해서 더 큰 물건을 끌어들일 수 있는 내용적 힘을 아메바 자체가 개재시킬 수 있는 자주력을 가졌느냐 할 때, 없습니다. 말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 방향성은 사랑의 방향성입니다. (207-256)
진화론을 결론짓고 넘어가자면 진화될 수 있기 위해서는, 아메바가 클 수 있는 제3의 힘을 자기가 창조해요, 보급 받아요? 아메바가 진화되어 크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에서 크려면 제3의 힘이 가해야 할 텐데, 자기가 창조하면서 커요, 남의 힘을 받아서 커요? 창조 못 하면 힘을 받았다는 논리를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무턱대고 뼈다귀가 같다고 진화해? 그런 미친 녀석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신병자입니다. 아메바에서 원숭이까지 갈 때는 수천 종의 계급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종의 구별이 있다 그겁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모든 종들은 남과 여, 수놈과 암놈의 사랑의 문을 통해서만 나오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천 종 사랑의 문을 통과하는 걸 잊어버리고 뼈다귀가 같다고, 닮았다고 진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 수천 계급의 고개를 넘어가 가지고 발전했느냐 그 얘기입니다. (263-273)
태어날 때 눈을 감고 태어나요, 눈을 뜨고 태어나요? 그럼, 내가 언제 눈을 뜬다 하고 떴어요, 자연히 떴어요? 또, 엄마 젖을 먹는다는 교육을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어요?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지남석 줄이 있습니다. 작용하는 모든 것의 원칙적인 길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작용이라는 것은 우연히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우주가 발전했다, 자연발생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연발생하느냐 이겁니다. 어떻게 그냥 그대로 자연발생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원인도 없고, 동기도 없고, 과정도 없고, 결과도 없이 발생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동기가 제일 먼저고, 원인이 제일 먼저고, 그 다음이 방향입니다. 그러면 방향이 왜 나왔느냐 이겁니다. 존재 그 자체가 '나는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걸 의식하고 가요? 눈은 왜 떠지는 거예요? 눈을 뜨면 뜨자마자 안을 들여다봐요, 밖을 내다봐요? 왜 그렇게 봐야 되느냐 이겁니다. 그런 방향성이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되느냐 이겁니다. 존재하는 것은 방향을 따라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94-10)
우리는 눈 하나 놓고도 대답을 다 못합니다. 오늘날의 변증법이나 진화론을 가지고 이걸 이야기 못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공산주의자와 싸워야 됩니다. 이제 진화론과 변증법을 깨뜨려야 됩니다. 진화론만 깨뜨려 버리면 변증법은 깨진다 이겁니다. 지금 싸움은 뭐냐? 의식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 하는 문제입니다. 공산세계는 '물질이 제일이다, 물질이 처음이다.' 하고, 민주세계에서는 '의식이 먼저다.'라고 합니다. 눈이 어떻게 생겨났느냐 할 때 눈이 그냥 생겨나고 싶어서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입니다.
코는 가만히 있는데 눈은 왜 움직여요? '왜 눈이 움직여?' 할 때에 '움직이고 싶어서 움직이지.' 하는 것이 진화론식이고 변증법식입니다. 눈의 목적은 보는 것입니다. 보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코는 먼지가 붙어도 가만히 있는데 눈은 왜 이렇게 자꾸 깜박거리느냐 이겁니다. 왜 그래요? 왜 그러냐 하면 수분이 증발되어 마르니까 수증기를 뿌려 주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눈썹은 왜 났어요? 먼지를 막기 위해 났습니다. '왜 그렇게 돼 있느냐?' 할 때,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되었지 하는 게 진화론식이고 변증법식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냥 그렇게 됐다는 녀석이 있으면 '이 녀석아, 미친 녀석아! 수작 마라!' 이럴 것입니다. (93-176)
㉰ 사랑의 논리로 볼 때 진화론은 틀린 것
진화론을 해결해야 됩니다. 진화론이 문제입니다. 진화론의 컨셉과 실재는 공산주의가 문제로 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요? 양심이 보여요? 사랑이 보여요?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것은 이 세 가지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 가지 귀중한 것이 하나님, 양심, 사랑입니다. 양심이 있는 것은 다 알지요? 양심이 없다는 사람 있습니까? 사랑이 없다는 사람 있습니까? 그러나 눈에는 안 보입니다. 안 보이니까 어떻게 합니까? 어디나 들어갈 수 있고, 어디나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보이면 들어갈 수 있습니까? 보이지 않으니 세포 속에도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논리의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만은 그 누가 제지하지 못합니다. 참사랑은 우주가 제지할 수 없고 막을 수 없습니다. (239-68)
진화론이 먼저예요, 암수의 개념이 먼저예요? 어느 쪽이 먼저예요? 실재가 먼저예요, 사랑에 대한 컨셉이 먼저예요?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공산당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진화론을 극복할 수 있는 논리를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메바가 현상세계 이전에 있었겠어요, 그 이후에 있었겠어요? 아메바로부터 인간까지 발전의 연결체제를 이루는 데 있어서 어떻게 되어 있다구요? 사랑에 의해서 실체가 발전된다고 하는 개념은 무시하고, 그냥 진화에 의해서 아메바로부터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그런 바보 같은 논리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235-23)
중세시대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거쳐온 기독교 문화권이 제일 혼란당한 것이 뭐냐 하면, 인본주의 사상입니다. 인본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나온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기독교를 망치는 데, 모가지를 매서 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환경권 내에서 주체와 대상이 되는 것이 수놈과 암놈의 쌍쌍 개념입니다. 수놈과 암놈, 사람으로 말하면 남자 여자 컨셉인데, 이 컨셉이 먼저겠어요, 진화론이 먼저겠어요? 환경에는 주체와 대상이 있는데, 거기에는 진화가 없습니다. 환경 가운데는 반드시 주체 대상이 있습니다. 광물세계에도 전자가 양자를 중심삼고 돕니다. 분자면,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이 합해 운동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진화론보다도 먼저 있었겠느냐, 나중에 있었겠느냐? 먼저입니다.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245-49)
진화론이 먼저예요, 우주의 암놈과 수놈 개념이 먼저예요? 주체와 대상이 먼저예요? 광물세계에도 플러스이온이 있고 마이너스이온이 있어서 주체와 대상으로 전부 쌍쌍제도로 되어 있지요? 식물세계도 그렇지요? 암술과 수술 있어 가지고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입니다. 동물세계는? 수놈과 암놈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주의 천리입니다. 불변의 천리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힘, 어떠한 자의적인 힘을 가지고 종별에 대한 수놈과 암놈을 변경시킬 수 있는 것은 누구든 이 땅 위에 영원히 없습니다. 있으면 큰일납니다. 진화론을 집어치워라 이겁니다. 진화론 있기 전에 그런 수놈과 암놈의 사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주의 신비스러운 비밀 중에 감추어진 비밀, 그런 비밀인데 지금까지 인간이 모르고 있는 것이 수놈과 암놈, 이 개념이 우주를 형성했다는, 주체와 대상 관계로 우주를 형성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진화론이 앞서겠어요, 수놈과 암놈 개념이 앞서겠어요? 수놈과 암놈 개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도 수놈과 암놈의 개념을 혁명하자고 했어요, 안 했어요? (272-255)
진화론을 중심삼고 볼 때 어떻게 진화했느냐? 나만 있어 가지고, 아메바만 있어 가지고 진화했다는 것은 엉터리입니다. 나만 있으면 발전하느냐? 너와 나의 좋을 수 있는 그 내용을 중심삼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너와 나 사이의 상관관계에서 이상적 주고받음에 의해 보다 차원높은 발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86-114)
진화론에서는 아메바에서 사람까지 발전했다고 봅니다. 발전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한 단계 더 높은 생물이 그냥 그대로 환경에 적응해서 발전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한 단계 높은 존재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놈과 암놈,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사랑 과정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에서는 이런 문제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수놈에서 수놈으로 갔다가 다시 암놈으로 가고 또 암놈으로 가고, 이렇게 살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 방향성을 보면 반드시 사랑의 문을 통해서 차원 높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화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문을 통과해야 되는 것입니다. (208-235)
진화해서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는 말이 문제입니다. 사랑이라는 관념이 진화하기 전에 있었는가, 진화한 후에 생겼는가? 어때요? 전이에요, 후예요? 전입니다. 지금은 세균까지도 부부가 있다고 하지요? 아메바가 아니라, 세균입니다. 몇 십만 배, 몇 백만 배로 확대해서 볼 수 있는 세균의 세계에도 부부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세균이 아메바가 있기 전에 있었을까? 어때요? 재미있지요? 만물이 쌍쌍제도, 짝이 되어 있다는 것 자체는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면, 사랑의 감성이라는 것은 진화하기 전부터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아메바로부터 인간까지 진화하는데 수컷과 암컷이 교류하는 몇 억 단계의 등급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이건 벌써 이론에 안 맞는 것입니다. 그런 이론은 이제 낡았습니다. 진화론은 큰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역사상 '하나님은 없다!' 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가 발전하게 된 기대(基臺)가 된 것입니다. (223-355)
우주는 어디로 방향이 잡혀 있느냐? 그 방향성을 잡지 못하면 목적관이 나오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진화론을 말하기 때문에 목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물은 벌써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으면 반드시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작용합니다. 그러니 그것을 연결시켜 가는 길이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260-12)
오늘날 진화론도 이와 같은 원칙에서 발전하는 것으로 설명해야 됩니다. 둘의 마음이 맞아 서로 더 큰 목적으로 자극을 받아야 됩니다. 자극을 일으켜 가지고 그 목적을 중심삼고 둘이 추구해야만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 둘 사이에 일어나는 자극이 뭐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265-190)
진화론에 사랑 논리가 있습니까? 오목 볼록이 왜 생겨났느냐 하는 이론적인 근거를 말하고 있느냐 이겁니다. 그러면 진화론이 먼저냐, 수놈과 암놈의 개념이 먼저냐? 어떤 거예요? 수놈과 암놈이 먼저입니다. 수놈과 암놈이 먼저냐? 사랑 개념이 먼저냐? 어떤 거예요? 사랑 때문에 수놈과 암놈이 생겨난 겁니다. (274-93)
우주의 근본이 어디에서 시작했느냐? 진화론이 아닙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진화보다도 먼저, 창조의 개념이 있기 전에 수놈과 암놈이 있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수놈과 암놈은 왜 생겼어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이것이 공식입니다. (280-60)
모든 존재물은 전부 다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에게 '수놈이 왜 생겨났소?' 하고 물으면 뭐라고 그래요? '자연히 생겨났지.' 하고, 또 '암놈이 왜 생겨났소?' 하면 '자연히 생겨났지.' 하는데, 그거 미친 자식들입니다. 자연히 생겨났어요? 모든 수놈과 암놈은 자기 계열을 존속시키기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다른 계열이 아닙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고, 뱀이 개구리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거 맞아요, 안 맞아요? 수놈과 암놈이 사랑의 문을 통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세상에 무지한 사람들이 그 사람들입니다. (209-193)
주체와 대상 상대권은 우주가 보호합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진화론을 보면 어떻게 되느냐? 아메바에서 그냥 그대로 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돼야 합니다. 이 하나된 것은 또 하나의 큰 플러스가 되든가 마이너스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 가지고 어떤 존재는 위로 올라가고, 어떤 존재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 전체적인 하나의 주체적 성격의 기준 앞에 자기가 맞는 상대적 주체성에 해당하는 플러스의 대상적 존재라면 플러스에 가서 붙고, 그 큰 주체에 대해 마이너스의 대상적 존재라면 마이너스에 가서 붙어, 또 다른 커다란 플러스가 되든가 마이너스가 되든가 해서, 더 큰 세계를 향해서 발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218-266)
진화론을 어떻게 격파하느냐? 학자들을 중심삼고 그 진화론이 문제입니다. 진화하기 전 원숭이의 암놈과 수놈도 진화해서 됐어요? 어때? 암놈과 수놈이 진화해 가지고 됐습니까? 모든 것이, 광물세계는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이고, 식물세계는 수술과 암술이고, 저 곤충세계의 작은 벌레도 전부 다 암놈과 수놈인데, 이 암놈과 수놈이 진화해서 생겨났습니까? 진화론자에게 암놈과 수놈이 생겨난 기원이 뭐냐고 물어 보십시오.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번식하기 위해서고,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221-145)
진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오늘날 젊은 지성인들이 이 문제에 걸려 이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전부 지옥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진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하면, 아메바에서 시작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진화냐, 하나님이 창조한 조화냐? 양대 논리가 문총재로 말미암아 깨끗이 정리됩니다. 진화론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당의 무신론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진화론은 과학세계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괴물입니다. 그거 처단해야 됩니다. 진화가 아메바에서 시작했다면, 그보다 몇 십만 배, 몇 백만 배 작은 그런 세계를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데, 균이 있다면 거기에 암놈과 수놈이 아메바가 있기 전에 있었을까요, 후에 있었을까요? (222-78)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진화론보다도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수놈과 암놈이 먼저 있었지요? 이 진화론이 문제입니다. 진화해 가지고 수놈과 암놈이 생겼어요, 진화되기 전에 수놈과 암놈이 생겼어요? 사랑이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실체가 생겨난 겁니다.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남자와 여자, 수놈과 암놈이 하나되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진화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화되기 전에 사랑의 컨셉이 있어 가지고 실체가 태어났기 때문에 진화라는 말은 남자와 여자, 수놈과 암놈에 가당치 않다 이겁니다.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223-246)
진화론을 주장하기 전에 수놈과 암놈, 사랑의 개념이 최초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진화론 이전에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위해 결혼하고, 결혼해서는 하나가되어야 합니다. 하나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사랑의 목적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는 진화론의 내용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창조의 공식적인 일치관을 인정하는 일은 할 수 있지만 진화하여 수놈 자신이 어떻게 해서 암놈이 될까 하는 관념, 또 암놈 자체가, 여자인 내가 남자가 된다 하는 관념을 어떻게 가질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체는 안 되지만 그렇게 된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 동기는 사랑이라는 관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수놈과 암놈을 생각할 때, 진화론은 절대 성립되지 않습니다. 결국 수놈과 암놈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224-126)
우주에는 진화라는 관념이 없었습니다. 증가한다는 관념은 원래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의 관념으로부터 진전의 편성을 전개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입니다. 진화론에 앞장서는 사랑의 관념을 생각해 보더라도 거기에 연결되는 수놈과 암놈의 내용을 어떻게 진화론으로 이해시킬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감정은 진화하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와 관계 없는 것입니다.
여자와 남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 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념이 먼저다 이겁니다. 사랑의 본궁은 무엇이냐? 본궁이 뭔지 알겠어요? (224-143)
진화론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하고 넘어갑시다. 광물세계에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개념이 있습니다. 동물세계에도 수놈과 암놈이 있으며, 식물세계는 수술과 암술이 있습니다. 전부 자웅관계입니다. 그 다음에 인간세계는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괜히 생겨났어요? 그것이 무엇 때문에 생겨났겠어요? 이게 전부 주체와 대상관계입니다. 주고받기 위해서, 운동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나름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렇게 된 것입니다. (240-290)
진화론이 기독교를 파괴시키는데 얼마나 공헌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진화론을 내 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을 믿겠소, 안 믿겠소? 문총재의 말을 믿겠소, 진화론을 믿겠소? 이제 정리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이거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사랑의 힘이 몇 천만 대를 거치는데 아메바가 그냥 그대로 몇 천 단계의 사랑의 문을 통해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아메바 자체가 그런 능력, 비상천(飛上天) 할 수 있는 그런 자질을 가질 수 있습니까? (240-297)
② 진화론은 이미 시대에 뒤진 사상
지금 세계의 주류사상으로 볼 때는 개념과 실재가 철학세계의 2대 주류가 되어서 유신론과 유물론, 좌익과 우익의 투쟁으로 세계에 미친 그 피해는 막대한 것입니다. 좌익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진화론에 의해서 세계적으로 패권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개념이 먼저예요, 사랑이 먼저예요? 남자와 여자가 있기 전에 사랑이라는 개념이 먼저 있었습니다. 사랑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도 거기에 대비해서 그 사랑의 개념에 일치하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념과 실재는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개념과 실재가 사랑에 의해서 하나될 수 있다는 것을 공산주의는 몰랐습니다. (228-162)
지금까지 세상 학자들에게 있어서 진화론이 먼저냐, 하나님의 창조가 먼저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랑 개념이 있기 전에 먼저 진화 개념이 있었어요? 어느 게 먼저예요? 진화론이 먼저가 아니라, 그것은 이 사랑의 개념이 먼저 있고 난 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쌍방제도의 우주가 먼저 생기고, 그 가운데 형체적인 구조가 맞는 것이 진화론 형태로 맞을 뿐이지, 근본이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모든 새 종류는 형태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종의 구별이라는 것은 다릅니다. 참새와 멧새가 부부가 되어 새끼를 낳을 수 있습니까? 그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메바에서부터 사람까지는 몇 천 단계의 종의 구별이 있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한꺼번에 '쑤욱!'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까? 천만부당입니다. 종의 구분은 절대적입니다. (228-61)
공산주의도 신이 있다고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사상적 개념을 어디서 찾느냐 이겁니다. 절대적으로 유물론을, 절대적으로 진화론을 부정할 수 있는 확정을 지어야 되고, 몸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확정을 지어야 되고, 이상적 출발을 나에게서 시작해야 된다는 이런 기준을 어떻게 만드느냐, 통일하느냐 하는 문제가 세계사적 문제입니다.
공산 블록이 진화론을 주장했고, 창조론은 종교권이 주장해 가지고 이 둘이 싸웠습니다. 그래서 세계적 블록이 주장하던 것이 다 실패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이걸 출발해야 되느냐 하면, 세계적 기준이 아닙니다. 개인에 들어가야 됩니다. 개인에서부터 잘못되어 이런 결과가 됐으니 개인에서부터 유심 유물을 중심삼고 판정을 해야 됩니다.
진화론을 걷어치워 버리고, 절대적 하나님을 중심삼은 창조론을 중심삼고, 절대적 하나님을 중심삼은 절대 가치의 핵을 세우지 않고는 세상이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270-96)
오늘날 진화론이라든가, 유물변증법?인식론?유심론?유물론 등으로 인하여 세계의 사상계는 모순과 혼란에 빠지고 말았으니 절대진리를 수립해야만 절대적 가치세계의 형성이 가능한 것입니다. 절대가치적 존재는 영원?불변?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러면 우주 가운데서 영원, 불변, 절대의 원리가 무엇이냐 하면, 원인과 결과, 주체와 대상의 관계라는 결론이 됩니다. (89-226)
오늘날 진화론이 사실이냐, 조화의 창조가 사실이냐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돼 있습니다. 그 진화론의 방향성은 누가 결정하느냐? 자기가 결정하나요? 발전하는 그 물질이 결정할 수 있습니까? 또 문제는 그 자체가 이상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힘을 어떻게 길러낼 수 있느냐, 더 품어낼 수 있느냐, 플러스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문제는 과학도 해명 못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에도 역시 사람의 욕망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욕망적 방향은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있서 우주의 모든 원소들의 종합적 대표, 이 물질세계의 대표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111-127)
생각의 근거지가 어디냐? 어떤 사람은 머리에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가슴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가슴에 있는 거예요, 머리에 있는 거예요? 그것만도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내가 존재하는 것보다도 생겨나기를 존재하는 것은 결과적인 것이니, 어떻게 해서 생겨났느냐? 즉 기원이 어떻게 되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내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간이 동물계로부터 진화됐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할 수 없이 만든 방편적인 이론입니다. 논리적인 연결을 짓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방편적으로 갖다 붙인 말이지, 진짜 진화했느냐 하는 것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적 밑바탕이 아메바에서부터 시작했느냐? 정신적 조상이 아메바냐 이겁니다. 진화론에서는 아메바에서부터 출발해 가지고 전부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117-68)
오늘날의 철학사상, 그 철학사상이 뭐냐 이겁니다. 이것은 전부 맨 밑에서부터 탐구해 들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돼 있을까?' 하고 이론적인 추구를 해왔지만 '인간이 무엇이냐? 참된 인간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하여 아직까지 결론이 안 났습니다. 모든 학자들, 모든 유명한 철학자들이 인간문제를 중심삼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이냐? 인간의 기원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해 진화론이나 창조설에 의한 여러 가지 학설을 통해서도 아직까지 해결이 안 났습니다. 이렇다 할 수 있는 결정이 안 났다는 것입니다. (170-144)
모든 경서를 보면 공자도 애매합니다. 인격적 신을 몰랐습니다. 아버지를 몰랐습니다. 태어난 우리 인간의 근본인 아버지가 있을 텐데 아버지를 몰랐습니다. 또 불교도 만상귀일의 법을 논하지만 인격적 신을 모릅니다. 까딱 잘못하면 유물론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진화론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진화론적 견지의 발전적 신앙기준에 서기 때문에, 이것은 유물론에 접근하기 쉬운 것입니다. (198-257)
불란서혁명 이후 인본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계몽사상을 거쳐 지금의 공산주의로까지 나오는 그 과정에서, 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중심삼고, 공산주의가 하나로 엮어져 지금까지 기독교를 완전히 파괴의 구덩이로 몰아 넣은 것입니다. (213-65)
오늘날 과학자들은 말하기를 이 우주는 힘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먼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작용이 있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개념에 의해 사물을 판단할 때, 진화론은 근본적으로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131-212)
요즘 진화론 같은 것은 미국의 큰 대학에서는 강의하지 않는 데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자연히 됐다!'고 하는데 여러분이 자연히 되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허망하겠소! '자연히 돼? 자연도 주체적인 자연이 있느냐?' 하면 '그건 난 모르지' 합니다.
이따위 소리가 어디 있습니까? 어떻게 돼서 주체적인 자연이 있느냐? '그거 그렇게 되어 있지. 생리작용이 그렇게, 발전 현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왜 그렇게 되느냐?' 하면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건 그렇게 되었으니까 그렇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논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인과법칙을 부정하는 과학 논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159-267)
이제 진화론은 흘러간 하나의 역사적 유물이 됐지만, 진화되어 발전한다고 하지요? 진화하면 거꾸로는 왜 안 됐어요? 거꾸로 될 수도 있지 않나 말입니다. 동으로도 갈 수 있고, 서로도 갈 수 있고. 진화할 수 있는 방향을 누가 잡아줬어요? 자기가 자라면서 방향을 잡나요? 아메바에서부터 이것이 발전해 가지고 사람이 될 때까지 수많은 고차원 단계를 거쳐가는데 그 방향을, 고차원을 향해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누가 잡아 주었느냐는 겁니다. 왜 그렇게 고차원을 향하느냐 이겁니다. (166-212)
각 종교 경전의 결점이 뭐냐 하면 창조설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별의별 논리를 중심삼고 논고를 쓰는 것입니다. 창조설이 없으니까 창조 방향과 창조 목적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세상이 제멋대로고, 뭐 진화론이니 무슨 논이니를 들고 나와 자기 뜻대로 해먹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조설이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방향성과 목적성이 있어 가지고, 이것이 이런데 왜 이런 악한 세계가 되었느냐 하는 그 이유를 규명해야 됩니다. 그 원인을 규명해 가지고 성서라든가 역사적인 과정에, 인류역사 가운데 망한 나라들이 왜 망했느냐 하는 그 모든 기원을 풀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일반 상식적인 입장에서 누구든지 타당성 있게 공인할 수 있는 논리적 체제를 갖춘 역사관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12-323)
절대적인 사랑 앞에는 제3의 상대자를 절대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런 논리가 진짜라면 진화론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메바도 혼자 발전할 수 없습니다. 양성과 음성의 내용을 통해서, 사랑의 문을 통해서 새로운 차원을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교리는 사랑의 문을 통한다는 논리, 또한 여기에는 제3자의 개입이 불가능하다는 천리를 생각할 때 진화론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203-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