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Box: TP portrait 14 참효의 생활

4 하나님에 대한 충효

 1)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도 되는 분이요, 하나님은 인류의 중의 왕도 되는 분이요. 모든 것의 중심도 되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일대일의 입장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효자인데 효자는 세계적인 효자가 되어야 것입니다.

그러면 중에도 최고의 효요, 중에도 최고의 충이요. 중에도 최고의 성을 대표할 있는 그런 자리를 차지한 자만이 하나님을 모실 있다면, 그것을 따로따로 가지고는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셋을 한꺼번에 이룬 사람입니다. 효자도 되고, 충신도 되고, 성인 중의 성인도 있는 그런 사람을 원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 하나님은 그런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우리는 자녀의 명분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으뜸될 있는 효자의 길을 찾고 지키겠다고 노력하는 무리가 되자 하는 패들이, 혹은 종파가, 혹은 민족이 있다면, 그들의 길은 편안한 길일 없습니다. 편안한 길을 찾아 나서는 데에는 그런 효자가 나올 없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못할 것입니다. 전부가 바라보면 전부가 틀렸다고 것입니다. 남들은 동으로 가려고 하는데, 사람은 서뿐만이 아니라 남으로도 갔다가 동으로도 갔다가 서로도 갔다가. 누가 따라오려고 해도 따라오지 못할 놀음을 시킬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하는 종교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판단하더라도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062:033-1972. 09. 10)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군왕을 위한 충신 효자 열녀는 많았는데 비해 하나님의 뜻을 위한 충신 효자 열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다릅니다. 그들은 모두 땅의 기준에 입각한 자유해방을 위해 바쳐온 것입니다. 역시 그들은 하나님 앞에 근심의 대상은 되었을지라도 위안이나 기쁨의 대상은 되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충신 효자 열녀라고 하나님이 자랑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신 효자 열녀가 되는 것이 인간의 정도이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군왕과 부모에게는 그랬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충신 효자 열녀들을 바라보시면서 그들이 하나님을 위한 충신 효자 열녀가 되기를 얼마나 그리워했겠어요? (011:077-1961. 01. 29)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효자 효녀 충신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중에서도 최상의 기준에 있는 사람을 원하고 계십니다. 충효하는 길밖에 없다는 사람을 하나님은 바라고 계시는 겁니다.

부모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고 가정에 평화와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는 자는 효자가 없습니다. 부모의 재산이 무너질 때는 자기의 모든 것을 던질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파탄되었으니 생명, 재산, 평화, 이상을 유린하는 자리에서는 충신 효자가 없습니다. 내가 언제 하나님을 위해 일같이 안타까워했으며, 내가 언제 아버지의 생명에 대해 위업을 느꼈으며, 내가 언제 아버지 가정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몸부림치며 싸워 보았느냐? 하느라고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충효가 되지 못하고 불충불효가 되었던 것입니다. (018:341-1967. 10. 01)

 

하나님은 충신 효자를 세워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한을 사탄에게 넘겨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을 무조건 넘겨 수는 없었기 때문에 충신 효자를 세워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고통의 길을 걷게 함으로써 한을 사탄에게 넘겨주려는 것입니다. (013:128-1963. 12. 20)

 

하나님도 해방하고 사랑 자체도 해방하는 그런 효자가 있을 있겠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리에 들어와서 '나도 효자가 한번 봤으면 좋겠다.' 하고, 참부모도 '효자가 한번 봤으면 좋겠다.' 해서 하나님과 참부모가 하나 돼서 사랑 앞에 효자 있는 그런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진정 사랑을 완성한 자리에 아버지로서 서고, 아들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과 우주의 근본적 사랑을 중심삼고 효자의 도리를 가지고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돼서 사랑 앞에 보다 차원 높을 있는 효자의 길을 어떻게 심을 있겠느냐? 심을 있었다면 타락도 영원히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해방의 해방권입니다. 그건 원리권을 능가한 것입니다. 근본 세계입니다. 이런 생각할 , 앞으로 여러분이 가정이상 지상천국이 이루어지고 천상천국이 이루어지면 끝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거기에는 아직까지 해결해야 , 내적 뿌리에 아직까지 사탄의 혈통으로 더럽혀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수천만 년의 역사를 거쳐 왔는데 , , 이상의 소모를 거치더라도 타락됐던 세계의 과거지사를 잊을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걸 잊어버리고 너와 내가 합해서, 아들딸이 합해서 사랑 자체의 수고로우심을 위로할 있는 효자가 됐으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소원일 것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헤아려야 합니다. (300:033-1999. 02. 21)

 

하나님이 손을 들어 아담과 해와를 축복하실 때에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로서 마음으로 무엇을 소망하셨을 것인가? '! 너희는 내가 지은 대천주를 품고 나를 왕으로 모시고 충신이 되어 달라'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는 천지간에 충신의 지조를 세우고, 그것을 억천만 전통으로 남겨야 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참아버지로 모신 참다운 효자효녀가 되었던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세운 충효지절은 전통이 되었을 것이고, 땅의 역사는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의 연결된 심정을 중심삼고 이어져 내려왔을 것입니다. 그러면 악이 주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의 세계를 악이 주관할 있다면 복귀역사, 구원역사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009:105-1960. 04. 24)

하나님께서 아들딸인 아담과 해와에게 바라신 것은 그들이 자라서 효자-충신-성인-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과 같이 가정에서 효자가 되겠다는 생각, 나라에서 충신 되겠다는 생각, 세계에서 성인이 되겠다는 생각, 그리고 하늘땅 앞에 성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까?

역사적으로 , 모든 성인들은 효자가 되고, 충신, 성인, 그리고 성자가 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걸 가르치지 못하는 종교는 종교로써 천년만년의 역사를 넘깁니다. 어차피 가야할 우리 인간의 숙명적인 노정입니다. 숙명은 부자지 관계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숙명은 가를 없습니다. 운명은 대치할 있는 물건이 있지만 숙명은 그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모르고서는 가정에서 참된 부모 노릇을 합니다. 참된 부모라면 효자-충신-성인-성자와 같은 전진적인 것을 가르쳐 줘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들로 하여금 효자-충신-성인-성자의 도리를 다하게 하고 위에 하나님까지 가야 되는 것을 가르쳐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287:023-1997. 08. 10)

 

하나님이 이상하신 쌍의 부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하는데 타락으로 인해 영광대신 슬픔을 돌려 드렸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담과 해와의 책임뿐만 아니라 천사장의 불충도 있는 것입니다. 천사가 먼저 하나님께 충효의 도리를 세워야 했는데 도리를 못하고 타락한 것입니다. 따라서 복귀섭리는 충효열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충효열의 심적 중심을 세워오셨기 때문에 모든 종교와 () 이것을 세워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모든 도인들은 이것을 찾아 세우기 위해 나온 것이며 예수도 충효열을 세우기 위하여 가정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신 것은 이러한 가정을 찾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가 먼저 충효열의 도를 세웠어야 했고, 충효열을 세우기 위한 제사장이 되었어야 사탄을 굴복시킬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축복가정은 충효열을 세우는데 있어서 누구에게도 져서는 됩니다. 충도 효도 열도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축복은 아버지의 소망을 상속받는 겁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한 충효는 있었으나 () 가정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오기 전에는 열을 세울 없고 사탄의 참소가 남아 있는 열은 세워지지 않습니다. (014:209-1964. 11. 04)

 

그렇기 때문에 본래는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완전히 서기 위해서는 한국이면 한국 나라에 충성해 가지고는 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하늘 앞에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양반은 그런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민족은 누구든지 사랑할 있습니다. 자기 민족은 누구나 사랑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방의 사람들까지도 사랑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나라 사람들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기 위해서는 역경에 부딪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하나의 나라를 찾아가 가지고 우리가 인연을 맺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때도 3개국을 거칠 있는 충성의 도리를 세우지 않으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한국에서 아버님을 모시고 하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생각하게 , 거기에서 충성하는 충성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라고 하면 됩니다. '먼저 민족을 위하고, 먼저 세계를 위하고, 먼저 하늘땅을 위해서 이것을 드리고 이것을 남기오니 하늘 것으로서 받아 주시옵소서. 하늘 것으로서, 것으로서 남겨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내가 죽더라도 기필코 하늘 것으로 남을 것이요, 땅의 것으로서 인류가 남기게 것입니다. 그렇다는 겁니다. (155:235-1965. 10. 31)

 

하나님 앞에 효자가 있는 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효도할 있는 때가 죽은 뒤에 영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을 중심삼고 지극히 짧은 기간, 똑딱하는 순간과 같은 일생 동안에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되고, 하나님 앞에 효도했다는 조건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생전에 하나님 앞에 절대 필요한 아들이라는 결정도 지어야 됩니다. 우리가 살아생전에 그런 것들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026:114-1969. 10. 19)

 

하나님이 한때에 6 년의 한의 인연을 풀기 위한 목적을 두고 지금까지 엮어 역사의 결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인연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성이 다를지라도 같은 핏줄을 가진 형제 이상의 정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부모 아닌 부모를 모시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기 혈육의 부모 이상으로 부모를 모시려고 하는 무리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갖고 있지만 나라 이상의 충효열을 가지고 하늘나라를 위해서 살려고 하는 무리입니다. (047:081-1971. 08. 19)

 

이제는 최후의 때가 왔다는 겁니다. 부모로부터 나라를 찾는 겁니다. 축복받은 가정이 전부 어머니 아버지 대신 횡적으로 둘러섰으니, 나라를 찾는데 충효의 도리를 다함으로 말미암아 효자 대신 충신, 충신 대신 성인, 성인 대신 성자의 팻말을 들고 하늘궁법을 지키고 하늘나라의 , 하늘나라의 법을 세워야 됩니다. 우리들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의 헌법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라를 말하는 겁니다. (197:087-1990. 01. 07)

 

하나님의 마음만 아는 날에는 민족은 하늘땅을 지배하게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수많은 자식이 있고, 수많은 백성이 있다 하더라도 최고의 효자?효녀?충신은 사람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부모도 같은 자식이라 하더라도 억울하게 맞고 있는 자식을 생각하는 것이 상정(常情)이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그러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떠한 백성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제일 사랑하는 효자 효녀를 찾으십니다. 효자 효녀를 찾아 세워 백성에게 자랑하고 싶어 하십니다.

세계를 수습하여 민족을 찾고, 이스라엘을 세워 여기서 하나의 혈족을 찾고, 하나의 혈족을 수습하여 하나의 가정을 찾고, 하나의 가정을 수습하여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사람을 찾는 것이 세계를 찾는 것이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적인 한을 풀어 드릴 있는 마음을 소유한 효자이어야 합니다. 그런 효자가 나와야만 그로 말미암아 악한 사람들이 속죄함을 받을 있는 것입니다. (010:239-1960. 10. 16)

 

끝날의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간에게는 ()?()?() 3요소가 있고, 지와 의를 발판으로 하여 정적(情的) 천정(天情) 이루어야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적인 흐름이 있고, 우리 한민족에 대해서 천적인 섭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 한민족은 어느 누구보다도 하늘에 대한 간절함과 충효의 마음이 강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004:250-1958. 06. 22)

 

하늘의 충신이 되려면 하늘의 원수를 갚아야 됩니다. 효자가 되려면 부모의 원수를 두고는 없으니 원수를 없애야 됩니다. 열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를 갚는 날까지 영원한 생명을 걸고 각오하고 나가지 않으면, 싸우지 않으면 여러분은 타락의 한스러운 고개를 넘을 없습니다. 고개를 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모든 슬픈 심정을 풀어 놓으시고 여러분에게 '6천년 동안 고대하던 충신아, 효자야, 열녀야!' 하시며 쌍수를 들어 축복해 주실 것이며, 삼위신은 안식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심정기준이 해결되기 전에는 안식을 없습니다. (009:122-1960. 04. 24)

 

하나님은 부모 중에 1 부모요, 중에 1 왕이요. 천지를 홀로 주관할 있는 분이요. 이상을 형성할 있는 1 조상인 분입니다. 그분을 중심삼고 효성을 하고, 그분을 중심삼고 충성을 하고, 그분을 중심삼고 성인의 목적을 달성할 있는 아들딸이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대기업(大基業) 상속받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리에 나가자 하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목적입니다. (088:205-1976. 02. 29)

 

 2)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절대 충효

 

노아 할아버지는 핍박이 심하고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에 환경을 이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 앞에 자식으로서 충효의 도리를 다할 뿐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환경의 비정함을 느끼고, 서러움을 당했으나 그런 때일수록 노아 할아버지는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갔기에 그가 가는 길을 막을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120 동안을 지내 노아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 사람을 놓고 사탄세계는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았고 반대할 있는 대로 반대했지만, 하나님이 중심으로 세운 기준에서 노아는 추호도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기준은 천주의 절대적인 중심으로 세운 것이요, 우주의 정의의 인간으로 세운 것이요, 참의 승리자로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준에 반대되는 모든 원수의 요소들을 청산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018:159-1966. 06. 04)

 

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일생 동안 충성의 도리에 변함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입장과 환경이 자기를 평하면 평한 것만큼 우리의 무대는 세계로 확대된다는 겁니다. 오늘날 국내 사정을 중심삼고 뒤넘이치지만 환경이 편하면 편할수록 세계를 중심삼고 뒤넘이쳐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위해 충성하는 하나님의 아들딸을 모셔 놓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고 하나님이 자랑할 있는 그날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한국에 안식이 벌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삼천만 민족이 세계를 위해서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세계 만민이 한국으로 말미암아 자기들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다고 충성할 있는 환경의 터전을 맞이하게 , 비로소 한국에는 안식의 터전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155:263-1965. 10. 31)

 

오늘날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고해서 역사적인 환경을 만들어 놓고, 혹은 시대적인 때를 우리에게 맞이하게 해줄 있는 때가 왔다면 여기에서 충성하는 소같은 사람들이 나와야 됩니다. 아브라함의 제단 가운데 3 제물이 있나니 하나는 비둘기요, 하나는 양이요, 하나는 소입니다. 지금 때는 상징적인 형으로 보게 되면 시대입니다.  소를 하나님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시대! 잡아먹기 위해서 좋아할까요? 소를 좋아하는 것은 고기 먹기 위해서 좋아하는 아닙니다. 농부가 소를 좋아하는 것도 미래에 잡아먹을 고깃덩이가 뭉쳐 있으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부려먹기 위해서입니다. 부려먹고 고기를 먹고, 먹고 먹고 먹는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뭣이 돼야 돼요? 돼지가 돼야지요? 아니요상징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그분이 대왕 소와 같은 이런 충성과 지성을 인간을 위해서 들여왔기 때문에, 자녀를 위해서 들여왔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들도 소와 같은 그런 앞에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새끼와 같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새끼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156:017-1965. 11. 02)

 

천지간에 나보다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거늘, 사람이 누구일 것이냐? 혹은 동쪽이냐, 흑은 서쪽이냐? 어느 곳에 있을 것이냐? 이것을 궁금해 해야 됩니다.

충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인가? 궁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충성하는 사람일 것이냐?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 것이냐? 그런 것이 궁금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155:248-1965. 10. 31)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는데 있어서는 일보도 양보할 없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어떠한 사람, 어떠한 충신, 누구보다도 내가 발짝이라도 , 요만큼이라도 앞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살다 영인들, 위에서 열심히 일하고 영인들 이상으로,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모든 공적인 일에 열심히 일한 이상으로 실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치라도 해야 됩니다. 철칙이 그렇습니다. (102:098-1978. 11. 26)

 

종의 시대에 있어서 절대적인 충성을 하고, 양자시대에 있어서 생활면에서 절대적인 충성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2대의 환경을 거치지 않고는 양자로서 하나님의 직계 자녀와 일체될 있는 기준을 결정할 없습니다. 하나 있는 기준을 결정할 없는 것입니다. 땅의 세계를 중심삼고 하늘 세계와의 관계를 맺는 일을 대표적으로 세계에서 처음 민족이 3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045:082-1971. 06. 03)

 

여러분들이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참고, 환경에 있어서 모든 한적인 요건을 여러분의 일신으로써 이것을 탕감 해원하겠다고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쓰러지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쓰러졌다고 해서 이제는 주님 앞에 길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늘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지금까지 참으면서 나온 연고로, 살아서 그와 같은 입장에서 정성을 다하여 충성하다가 쓰러진 그런 무리는 또다시 일으켜 하늘 앞에 기도라도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요, 지금부터 살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요, 그들을 일으켜 협조할 있는 사람을 보내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153:255-1964. 01. 07)

 

하나님이 보실 때에 민족의 내적 심정을 울릴 있고, 천주의 내정을 관철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통할 있는 애정을 가진 효자 효녀는 깊은 비운이 감도는 자리에서도 비운의 주인공이 왕이면 , 부모면 부모의 마음을 풀어 드리고 배후의 전부를 혼자 막아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충효의 인연을 가진 사람이 천당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혼자 천당 가겠다는 사람은 천당은 커녕 지당도 갑니다. 이런 사람들한테 지금까지 욕먹고 핍박받아 것이 분하고 원통하지만 그렇다고 총칼을 가지고 복수해서는 됩니다. (018:300-1968. 03. 10)

 

여러분이 글씨를 때에 점을 하나 찍더라도 그때의 마음자세 여하에 따라 기쁠 있습니다. 점이 희망의 상징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아무리 작은 물건을 지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외로운 입장을 메우고 기쁨을 얻기 위한 대상이므로 물건은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최고의 기쁨의 대상이 되는 것이요, 충효의 요건이 되지 않을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물건을 지어 놓고 감상하면서 이것은 빼고 이것을 가하면 어떨까 하는 소망 가운데에 언제나 기쁜 마음을 가지고 지내신다는 사실을 있습니다. (039:226-1971. 01. 15)

 

하나님을 누가 해방시켜 주느냐? 충효의 도리를 다짐하고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효자가 나타나 가지고 그분의 모든 십자가의 한을 책임져야 됩니다. 그런 아들딸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해방되지 않는다는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101:255-1978. 11. 01)

 

용기를 내서 악한 세계를 무너뜨리겠다고 하면서 나설 있는 하나님이 된다고 하면 순간에는 하나님의 활동무대가 자기에 의해서 생기는 겁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어떠한 귀한 자리, 보좌, 영광의 자리에 있어서 일생이 아니라 평생을 걸쳐 이상의 것을 플러스하더라도 미치지 못할 기쁨의 하사품일 것입니다.

역사를 넘어서까지 박해를 대해 자기가 맞서겠다고 하는, 그것이 영원의 역사를 대표한 효자 효녀들이 가야 길이 아니겠느냐 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것이 영원한 나라를 대해서 충성의 길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255:121-1994. 03. 10)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절대 가정, 절대 충효를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절대적인 충효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절대 성자,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그러한 세계적인 기반이 없으면 하나님이 지상에 강림할 없습니다. 하나님 혼자로서는 지상에서 아무런 역사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슬픈 하나님, 불쌍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부터 레버런 문을 중심삼고 유럽 멤버들이 처음으로 그런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모두 충효를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세계에 대해서 하나님은 불쌍한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해방할 있을 것이냐? 그것은 어떻게 그러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건설하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297:202-1998. 11. 20)

 

 3) 예수의 충효

 

예수는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죄인들이 악을 대하여 충성하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의 아홉 가지 열매의 근본입니다. 사랑의 생활을 하게 되면 희락과 화평이 나오고, 인내를 통해서는 자비와 양선(良善) 나오며, 충성의 생활을 하면 온유와 겸손이 나옵니다.

예수는 타락권내에 있는 인간들의 모든 악의 요소를 제거시켜 주기 위해서 천적인 사랑과 천적인 인내, 천적인 충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것들이 천국의 이념을 달성시킬 있는 실천적인 이념인데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습니까?

인내와 충성심이 있습니까? 예수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현현하신 사랑의 화신체였으며, 서러운 골고다의 길에서도 만민의 고통을 염려하신 인내의 주인공이었으며, 역사상의 어느 누구보다 하늘에 대해 충성했던 충성의 대표자였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예수의 사랑, 인내심, 충성심은 어디로부터 기원한 것인가? 이것들은 예수 자신에서 기원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연결시키는 중보의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무지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요, 하나님적인 가치의 실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참뜻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과 같은 사람,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인간이 하나님 대해 충성하기 전에 하나님이 인간 대하여 먼저 충성하셨으며, 무한히 인내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륜을 중심삼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과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무한히 인간 대하여 충성했던 사정을 체휼해야 하겠고, 뜻을 세우기 위해 무한히 희생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 미래의 이념을 세우기 위해 무한히 당신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심정, 무한히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002:344-1957. 08. 04)

 

예수는 인류의 아버지로 왔고 성신은 인류의 어머니로 땅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영육을 중심삼은 부모가 되지 못하고 영적인 부모로만 역사해 왔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영육을 합한 자리에서 사탄에게 승리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탄에게 몰려 죽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는 사탄에게 내주고 영만이 부활했던 것입니다. 40 후에 부활하여 제자들을 모아 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2이스라엘을 출발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2천년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1이스라엘은 어디에 있느냐? 1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1이스라엘인 유대 나라는 예수를 죽인 죄로 망하고 2이스라엘이 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4천년 동안 메시아를 고대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보호하고 육성하여, 4천년간 수고한 공적의 기반 위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민족은 메시아를 받들지 못하고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몰았습니다. 그래서 민족은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때부터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다시 때까지는 독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인 죄를 탕감하기 위하여 2천년 동안 지지리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만인류를 위해, 만민의 조상으로 오신 예수를 형장에 세우고 피를 흘리게 하였기에 나라 없는 백성으로 그렇게 고생을 것입니다.

그때의 이스라엘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어디에 내놔도 당당한 권위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예수는 이런 국가권 위에 오셔서 국가를 수습하고 세계를 복귀하여야 책임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받들지 아니하고 죽음의 자리로 몰아내어 예수는 어쩔 없이 영계에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세울 있는 충효의 도리를 했습니다. 죽음길을 가면서도 만민을 대신하여 천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고, '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26:39)"라고 하면서 충효의 도리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죽었다 할지라도 정성의 기준은 사탄이 점령할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영적으로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이스라엘의 기준을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019:207-1968. 01. 07)

 

예수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자리에 나아가 자기의 몸이 찢기고, 자기의 혼이 갈래갈래 찢기는 희생의 , 사망의 고개를 넘어서면서도 아버지를 붙들고 최후까지 충효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를 다짐하는 데에 있어서, 사탄세계의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자리에서 고이 죽음길을 맞아 갔던 것입니다. 예수가 자리에서 사탄세계에서 죽어간 어떤 사람보다도 위에 있었던 조건이 무엇이냐? 원수를 대해서 복을 빌었다는 사실, 조건을 중심삼고 사탄이 이상은 침범할 없는 방패막이로서 결정을 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는 하늘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 삼아 가지고 부활의 권한을 일으켜 부활하게 것입니다. (050:201-1971. 11. 07)

 

예수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이 기뻐할 있는 자리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모심을 받아야 했고, 하나님 앞에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사명을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복중교를 중심삼고 이스라엘의 승리적 입장을 재생하여 일을 다시 추진시켰던 것입니다. (024:191-1969. 08. 10)

 

본래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참다운 아들이요, 하나님의 왕자요, 또한 만민의 메시아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가 태어난 그날부터 하나님의 왕자로 모셨어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예수께 경배해야 됩니다. 만왕의 왕이요, 길이길이 천주를 지배할 있는 하늘의 주권자로 오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가 태어난 그날부터 요셉과 마리아는 그에게 정성을 다하고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 모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자기 아들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천법으로는 그래야만 되는 겁니다. (016:027-1965. 12. 26)

 

예수는 어찌하여 부모, 하나님을 모실 있는 하늘의 법도를 친히 가르쳐 주지 못했을까요?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부모가 되었을 텐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자의 인연이 끊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의 인연으로서 충효의 도리를 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충의 도리와 효의 도리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하나님이 부모의 자리에서 가르쳐 없다는 것입니다. (015:219-1965.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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