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할 때 서로 먼저라고 할 수 있는데, 과연 어느 것이 먼저이겠습니까? 사랑이 먼저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존재 기원에 앞서서 사랑의 유통이 없어서는 존재가치가 나올 수 없습니다. (성약Ⅰ-1062)
우리의 생명의 기원이 어디서부턴가를 보게 되면,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가 문제입니다. 이제까지 이것을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생명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이 먼저입니다. 먼저 된 것 앞에 다음 되는 것은 순응해야 되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는 생명을 바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것은 수습해 놔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참되게 살 길이 어디냐가 나옵니다. 인생이 사랑에서 태어났으니 사랑의 길을 가야하고, 사랑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소우주가 아니라 대우주가 환영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서 하나님이 공인하고, 천사세계가 공인하고, 만물이, 더 나아가 우리 부모가 공인할 수 있는 대우주의 가운데로 나고, 그 가운데서 사랑하고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 태어난 목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자기가 희망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어머니의 희망에 의해서 태어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희망에 의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인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인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 것이 '나'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전체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의 사랑 모두를 받아 전우주의 중심적인 존재로 태어난 것이 바로 '나'입니다.
사랑에 의해서 태어나고, 사랑에 의해서 키워지고, 사랑에 의해서 살고, 또 사랑을 남기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목적입니다.
자기의 가정에서 우주의 중심인 사랑의 명을 다하는 것만이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지식이나 권력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 때문에 태어났고, 또 사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위대한 것이냐? 그것은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부모의 사랑 가운데서 난 것입니다. 돈을 세거나 지식을 추구하는 데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사랑 가운데 태어났으니 사랑으로써 결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되어 아들딸이라는 상대가 있을 때 완전한 것입니다. 인간 자신도 사랑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존재는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간다고 하겠습니다. 모든 만물도 그 존재의 시작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존재가 사랑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할진대, 피조세계의 중심존재인 인간은 더더욱 사랑으로 출발한 존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에서 출발하고 사랑에 의하여 완숙되어 지기 때문에 사랑의 기준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성약Ⅰ-1062)
인간 존재의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 존재의 원인은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존재의 목적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 존재의 목적은 사랑의 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랑을 원인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니, 사랑의 기대를 이루어서 확장시키고 연결하여 완성시키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즉 출발이 사랑이니 목적도 사랑으로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적 관계에 있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중심하고 하나되어 전후 좌우 상하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절대적인 존재를 확정하고, 아무리 절대적인 목적을 확립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기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살고 생활하는 것이 기뻐야 합니다.
생활하는 것은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성취했다 할 때 거기에는 존재 그 자체 이상의 새로운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를 중심삼고 볼 때에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이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행복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목적을 아무리 잘 세웠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주관할 주체적인 사랑의 권위를 세우지 못하게 될 때에는 또다시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야 합니다. 목적의 한계점이 사랑보다 위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먹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일하기 위해서, 또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한다면 얼마나 멋있는 대답이겠느냐 말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열매로 태어나고, 사랑하면서 살다가 영원한 사랑인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창조 본연의 삶인 것입니다. (성약Ⅰ-1064)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 가운데서 자라다가 그 다음에 다시 다른 차원의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떠나 상대의 사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소생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고, 부부의 사랑을 장성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끼리 아무리 사랑을 하더라도 자녀가 없으면 사랑의 완성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성적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거치는 과정이 인생살이의 근본이요,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 이상의 근본 길입니다. (선집 48-12)
생명은 사랑에서부터 태어납니다. 사랑에서부터 태어나 가지고 부모에게 사랑을 받다가 사랑으로 성장해 가지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서 또 사랑하고 그 사랑 속에 죽어가니,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픔과 고통이 있을 수 없는 것이 본래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본래의 우주의 근본 자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종합적으로, 종횡으로 동시에 결합할 수 있는 기준이 됨으로써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결합할 수 있는 근본자리가 됩니다. 그 자리는 온 우주가 집중하는 자리가 되며, 온 우주 세포의 방향이 집중하는 자리가 됩니다. 영계의 모든 신(神)들이 전부 여기에 집중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자리를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보호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가 파괴당하면 큰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온전히 보호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가 필요한 것인데, 그 형태가 통일교회의 용어로서 사위기대(四位基臺)라는 것입니다. (성약Ⅰ-1066)
인간은 태아로 있을 때는 어머니로부터 공급되는 영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랑을 공급받았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듯이 지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도 우주(자연)로부터 물질적인 영양을 공급받을 뿐 아니라 생명의 본질적 요소인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식물이 태양빛을 생명의 요소로 흡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는 사랑이 생명의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히 사랑과 더불어 흠모하면서 살 수 있는 지상천국이나 천상천국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사랑으로 태어났으며, 태어나서는 사랑을 받으면서 어린 시절에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쯤 성장하게 되면 부모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게 되며, 형제간의 사랑과 종족의 사랑을 중심하고 횡적인 사랑을 넓혀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천지간의 모든 사랑을 받으면서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특히 사춘기 때에 접어들면 이성간의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데, 이성간의 사랑을 함으로써 종합적인 사랑권에 진입하게 되어 비로소 사랑의 센터를 찾아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가 가는 길은 사랑 때문에 있으며, 사랑을 위해서 있습니다. 나의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의 환경권을 이루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여자가 화장을 하거나 맛사지를 하는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모두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고귀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 고난을 이겨내고 가는 것입니다. (성약Ⅰ-1066)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며, 부모가 생존해 있는 한 소년시대?청년시대?장년시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 성장(成長)하게 되면 횡적인 부부(夫婦)의 사랑이 각자에게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결혼이 뭐겠습니까? 남자는 여자에 대해 몰랐던 것을 배우기 위한 것이요, 여자는 남자에 대해 몰랐던 것을 배우기 위한 학교에 입학하는 것입니다. 모든 학점이 A플러스가 되어야 남편도 좋아하고 아내도 좋아할 것입니다. 아들딸을 낳는 것은 세계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아들딸이 없으면 미래와 연결되지 않습니다. 미래의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교육의 재료로 아들딸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조상들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 효도하는 것은 영계로부터의 교육을 받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이 모든 것이 연결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남편과 아내, 아들딸이 한 사랑을 중심으로 전부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인체의 혈관같이 영계의 천만 대 조상까지도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 있고, 먼 후손까지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영계의 조직이요, 우주의 조직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여기에 정복당하고 맙니다. 사랑의 종이 되고 사랑의 노예가 되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약Ⅰ-1066)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한 번 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치 따스한 봄날에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있고, 땅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벌레가 나돌고, 개미들도 세상 구경하겠다고 발랑발랑 기어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에는 버들강아지가 움트고, 개구리가 봄날의 새노래를 부르고, 떼를 지어 날아드는 벌나비를 반기는 그런 환경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환경에 취해서 잠이 드는 것 같은데 잠은 들지 않고 기분 좋아서 영원히 좋다 할 수 있는 그런 맛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상상대(理想相對)를 중심삼고 느끼는 기분은 나비가 날고 벌이 날아드는 꽃동산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이 둔한 남자들은 그것을 모를 겁니다. 기분 좋다는 것입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손을 꽉 쥐고 악수를 합니다. 악수할 때 반갑다고 '아하, 이거 오래간만이군' 하면서 손을 꽉 잡으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기분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에라, 이자식아'하면서 발로 차버리라는 것입니다. 반가우면 손을 꽉 쥐어요, 안 쥐어요? 여러분은 그렇게 하면 좋아합니까? "좋아합니다." 좋아하고 싶은 것이지 좋아하기는 뭘 좋아해요? 알아야 좋아하는 것이지 모르면서 어떻게 좋아합니까? 그렇게 좋아하며 잡으면 손을 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아가씨들, 시집가서 남편이 자기를 사랑해 주면 기분이 어떨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사람은 솔직해야 합니다. 사랑해 준다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예 남편 옆에 딱 붙어 가지고 사는 겁니다. 남자가 소 앞발 같은 손으로 여자 손을 꽉 잡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를 보아도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아이구, 당신 손은 참으로 곱소' 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커플(Couple;한쌍)을 이루어 사랑을 하면 딱 맞붙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는 안 되겠지만 이 이상의 심정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가지고 산다면 하나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전부 다 하나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남녀지간에 사랑하게 되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알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 맛보면…. 그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에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맛본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고난도 그를 점령하지 못하고, 어떠한 슬픔도 그를 점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해방의 권이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찾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약Ⅰ-1068)
하나님의 사랑은 크게 3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입니다. 이 3대 사랑이 하나로 일치되는 중심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73-278)
하나님에게 있어서 제일 영광의 새아침은 육(體)을 쓸 수 있는 때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부부)을 갖는 때이고, 그 다음에는 손자를 사랑할 수 있는 때입니다. 아들딸보다 손자를 사랑할 수 있는 때가 더 영광의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담을 지어 놓고 얼마나 좋았더냐 하는 것을 어떻게 가르쳐 주었을까요? '야! 내가 이렇게 좋았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아들딸을 낳음으로 말미암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사람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지만, 나중에 가정을 이루어서 아기가 생기게 되면 부모의 사랑이 어떻다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가 나를 키울 때 사랑했구나 하고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가 배우자를 얻는 날이 영광의 날이고, 그 다음엔 그 아들이 자녀를 보는 날이 영광의 날입니다. (성약Ⅰ-936)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알고 부모를 모실 줄 알아야 하며 남편의 사랑을 알고 남편을 모실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식의 사랑을 알고 자식을 모실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식에게 명령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셔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해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식이 없어 가지고는 미완성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또 남편이 못 되어 보고서는 아내를 알 수 없고, 아내가 못 되어 보고는 남편을 알 수 없습니다. 자식도 부모가 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이 어떤 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들딸 없으면 참된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성약Ⅰ-937)
부모가 자식의 결혼을 원하는 것은, 자식들에게 부모의 사랑을 모두 상속해 주고 싶고 전수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버이는 죽어 가면서 후손에게 그 실체를 남겨 놓습니다. 그러므로 후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최고 원망(願望)이므로 만민이 쌍수를 들고 상속하고자 합니다. 그 사랑을 남겨 놓음으로써 영계에서도 당당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완수할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을 통해 천국으로 간다는 것은, 곧 사랑의 일체권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원리 원칙을 따라 나가야 합니다.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 되면 무성해지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고, 겨울이 되면 모든 것을 정리하여 새로운 생명의 근원을 자기 내심에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재봉춘하게 되면 또다시 이것이 심어질 수 있는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부모가 되어 여러분과 같은 아들딸을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을 여러분과 같이 키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들딸이 없으면 왜 섭섭합니까. 그것은 서클라인(circleline)을 형성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새들이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보면, 어미의 지극한 사랑을 알게 됩니다. 서양인들은 모르겠지만 동양에서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어른들을 향해서는 깍듯이 공경하지만 아들딸들에게는 지극한 사랑을 아끼지 않습니다. 아들딸을 낳고 길러 봄으로써 부모가 자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인간들은 누구나 결혼을 한 후에 자녀들을 낳고 길러봐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 사랑과 부모의 사랑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들딸을 낳고 기르기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아들딸이 자신들이 결혼하고 이혼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자기 자식 갖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태어나서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심정을 알지 못하므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약 Ⅰ-937)
인간은 사랑으로 낳고, 부모의 사랑 가운데 크다가 횡적으로 사랑을 넓혀가면서 성숙하게 됩니다. 횡적인 사랑은 이성의 상대를 만나 일 단계 완성하게 되는데, 천지의 사랑을 대표할 수 있는 기준에 들어가면, 그 열매로 자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핵심적 심정의 자리에서 생겨난 사랑의 결과로서 태어나게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심정적 사랑을 주고 받을 때 태어난 아들은 사랑의 핵심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 주는데, 그 센터로 통해서 가면 바로 하나님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열매로 자식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나아가 인간을 창조하셨던 사랑을 체휼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나 받았던 사랑을 자식을 사랑해 봄으로써 부모의 심정을 체휼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쏟아 나온 사랑은 물질적인 사랑이 아니라 본질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천지가 변하여도, 역사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인 것입니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여 오셨는가를 미루어 짐작하게 되고, 체험을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사랑함으로써 부모가 나를 어떻게 얼마만큼 사랑했는가를 느끼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늙은 부모에 대해 더욱 공경하고 사랑으로 효도의 도리를 다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부모의 자격도 없을 뿐 아니라 자식에 대한 사랑도 위선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부모가 되어 자식을 사랑해 봄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여 왔는가를 느끼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보다 진실로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늙은 부모를 더욱 사랑해야 하고, 늙은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하는 것이 사랑의 질서이고 법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사랑으로 태어났으며, 태어나서는 사랑을 받으면서 어린 시절을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쯤 성장하게 되면, 부모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게 되며, 형제간의 사랑과 종족의 사랑을 중심하고 횡적인 사랑을 넓혀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천주간의 모든 사랑을 받으면서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특히 사춘기 때에 접어들면 이성간의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데, 이성간의 사랑을 함으로써 종합적인 사랑권에 진입하게 되어 비로소 사랑의 센터를 찾아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는 구형세계이기에 횡적인 사랑을 주고 받아 돌면서 원형을 일차적으로 이루게 됩니다.
특히 이성을 상대자로 택해서 사랑을 주고 받을 때, 결실을 보게 되어 자식을 갖게 되고 부모가 되는데, 이때 서로가 상호간에 사랑을 주고 받아 돌게 되면, 횡적인 사랑에 이어 종적인 사랑도 이루게 되어, 구형세계를 이룸과 동시에 사랑의 센터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운동을 통해서 생겨난 사랑의 센터는 모든 피조세계의 존재의 핵이기도 합니다. 지구가 존재하는 것도 이 사랑의 센터를 중심하고 운동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센터는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이 모인 곳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구형을 통해서 생겨나는 센터는 그 자리에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창조되고 존재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센터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사랑의 용광로이신 것입니다. (선집126-243)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태어나, 일정기간을 땅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을 보냅니다. 뱃속에 있을 때 어린 태아의 자유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영양을 탯줄로 이어받고 자라면서 두 손가락을 폈다 움츠리거나 입을 벌렸다 오무렸다, 두 발로 버둥대는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태아는 어머니 뱃속이 자유천지이며 생의 전 영역일 것입니다. 그 태아가 10개월 만에 세상에 태어나 자라게 되는데, 그 이후의 세계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지상세계이며 인간 사회인 것입니다. (성약 Ⅰ-1071)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사랑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복중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보호와 사랑의 품인 복중에서 자라다가 20세까지 철모르고 부모로부터 진자리 마른자리 다 탓하지 않고 추한 것을 추한 것인 줄 모르고 다 기쁨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랑 가운데서 자라다가, 사랑의 상대자를 만나서 서로 위하는 천리의 사랑에 접붙여야 합니다. 그런 일생 과정을 가다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만큼이냐 하는 것을 체험해야 하나님의 대상 사랑의 실체권이 완성되기 때문에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선집 143-285)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우주를 태아적 어머니의 뱃속에 비유되는 삶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주 어머니 품속에서 인간 백 년의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태아가 어머니 뱃속 밖의 인간 세상을 몰랐듯이 오늘 지상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은 죽음 이후의 무형 실체 세계에 대한 실재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짐작하여 어머니 뱃속에서 인간 세계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실재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사후세계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심증을 가질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사후세계에 대한 심증적 존재 여부에 상관없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후세계는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오관 작용 밖에 있기에 종교를 통한 믿음으로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약Ⅰ-1071)
인간에게는 3시대가 있습니다. 동물계에도 수중시대가 있고, 육지시대가 있고, 공중시대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 3시대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요, 모든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려면 사람도 수중시대가 있어서 어떤 존재보다도 완전한 생활체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육지시대가 있어서 어떤 동물보다도 최고의 자격을 가진 존재여야 합니다. 그 다음엔 공중시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날개가 없습니다. 날개가 없는데 어떻게 날 수 있느냐? 그 날아 다니는 어떠한 새보다도, 어떠한 곤충보다도 높이 날 수 있고 멀리도 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돼야 하느냐? 그것은 실체인 육신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암만 뛰어봐야 얼마 못 갑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고 하나님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주관권이라든가 상대적 자리에 서려면 그 활동무대가 하나님과 같아야 합니다. 오늘날 전기나 빛으로 말하자면, 빛의 속도는 1초 동안에 30만 킬로미터를 갑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빠른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인체입니다. (선집 112-202)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곳,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곳이 어디냐? 영계입니다. 영계란 사랑의 공기가 충만한 영원한 세계입니다. 때문에 일생은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선집 140-121)
본인은 영계의 체험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인데, 영계는 사랑의 성분으로 뒤덮여 있는 곳입니다. 지구는 공기로 뒤덮여 있지만 영계는 사랑으로 쌓여 있는 곳입니다. 인간은 땅에서 공기를 마시고 가스를 뿜어내지만 영계는 사랑을 마시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영계는 오늘날 인간의 속된 사랑을 중심삼고 주고 받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계에서 주고받는 사랑은 참된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보면 그 세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부모?형제 자매?부부?자녀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가진 자, 즉 가정생활에서 깊은 사랑의 경험을 한 사람은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디든지 아무 제한없이 어느 방향으로라도 갈 수 있습니다. 그 반대로 사랑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속이 좁고, 영계에서도 자기 혼자 고립되어 있고,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부자간의 사랑은 종적인 관계이고, 부부간의 사랑은 횡적인 관계이고, 형제 자매간의 사랑은 선회하며 에워싸는 관계인 것입니다. 이 세 관계는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이 세 가지의 서로 다른 방법으로 깊은 사랑의 경험을 가져야만 제한없이 종적, 횡적, 원으로 선회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일찍 돌아감으로 인해 부모의 사랑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매우 중요한 사랑의 경험을 못 했기 때문에 다소 비극적인 사람이며, 같은 식으로 가정생활, 즉 부부관계를 경험 못 한 자는 생의 중요한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계에서는 매우 초라한 사람이 됩니다.
또한 형제 자매가 없는 사람은 모든 분야의 결핍으로 완전한 생을 살 수 없으므로 영계에서 초라한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왜 결혼해야 되느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체험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왜 필요하냐? 그러한 사랑의 공기가 충만한 곳이 영계입니다. 영계의 박자를 맞추기 위한 훈련을 하기 위해서 가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못 느끼고 가는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 박자를 맞출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랑의 공기를 맡을 수 있는 코가 없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약Ⅰ-1067)
여러분은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 다음에 더욱 근본적인 것은 아버지 어머니 뱃속을 빌어서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우주의 부모를 통하고 육신의 부모를 통해서 참부모를 찾아가게 됩니다. 육신의 부모는 통과의 부모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은 참된 부모를 만나러 가는 환희의 시간입니다.
거기에는 참된 부모의 참된 사랑이 있습니다. 그곳을 천상천국이라고 합니다. 그곳의 구성요소는 사랑이며, 그곳은 부모의 사랑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와 희생의 원칙 아래 일방적인 법도를 통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거기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우주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해야 합니다. 지상생활은 그러한 사랑을 위한 훈련 장소입니다. (성약Ⅰ-1072)
이 땅 위에 있는 생활이 얼마나 중요하냐? 한 번밖에 없습니다. 순간인데 한 번밖에 없습니다. 지상생활을 영생에 비유하면 이것은 한 점에 불과합니다. 너무나 짧은 순간입니다. 이 순간의 때에 육신생활을 넘어 영계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집 20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