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유 무형세계에서의 인간의 존재
1) 인생 노정
① 인생 노정에 대한 기도문
사랑하는 아버님, 하늘이 수욕을 당하는 부끄러움이 있을까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싸워 나온 소자를 지켜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 그 무엇이 좋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운행하시는 본연의 심정에 연결된 것 이상 귀한 기준이 없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자리를 무한히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그 사랑에 접하는 사람은 세상만사를 다 잊더라도 미련이 없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는 이상세계, 본향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제3의 생의 자유권한을 가질 수 있는 해방아로 출생할 그날을 오늘 이 지상세계에서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 건전해야만 지상에 태어난 그의 일생이 건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생활이 건전해야만 하늘나라의 생활이 건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과 땅이 협조하고, 만우주의 동적인 운세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자리에 서려면, 오늘의 세상이 상충적이요 악이 주관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는 알아야 겠습니다. 저희 후손들은 저희들과 같은 자리에 세워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49-308)
사랑하는 아버지, 지금까지 봄의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고하신 아버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아버님께 무한히 고마워하고 무한히 반가워하면서 저희 생명과 사랑 전체를 몽땅 옮겨 드릴 수 있는 자신이 못 된 것을 탄식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내 생명이 동화될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 거기에 완전히 흡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래야 비로소 봄을 맞이하여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일생에서 어느 한때에 봄을 맞이한 적이 있었느냐고 물을 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간 불쌍한 영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의 꽃이 피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여름과 가을을 거쳐야 하듯이, 저희도 하나의 열매로 맺어지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겠사옵니다.
하나의 생명이 투입되어 열매가 맺히기까지는, 여름절기를 거치고 그 뿌리와 줄기와 가지 전체에서 생명요소를 흡수해야만, 완전한 생명력을 지니고 제2의 생을 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몸은 죽더라도 그 마음 가운데 새로운 세계에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생명의 기운이 부풀어 오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스스로 살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가고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더라도, 내적인 생명력은 그 환경의 침범을 받지 않고 꾸준히 발전의 노정을 가야만, 봄을 맞이하여 다시 뿌려질 수 있는, 제2의 생명의 모체인 씨가 되는 것임을 아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가 외적으로 모습은 처량하지만 무한한 생명력을 집약할 수 있는 모체요, 결실체로서 다시 무한한 세계에 심어질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비참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그 외적인 모습이 비참해지면 비참해질수록 내적인 가치는 더욱 더 충실해지는 것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2-37)
아버님, 아버지를 모시고 겸손히 경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영원한 저나라에서 아버지와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제 저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아버지의 심정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오늘 저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당신의 음성을 들어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몸을 찾을 수 있고, 아버지께서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내 배후에서 환난과 수고의 역사 과정을 거쳐온 것을 느껴 스스로 머리 숙일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4-280)
하나님은 체(體)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체로, 아담을 하나님의 얼굴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이상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영적인 초점이고, 아담은 본래 육적인 초점입니다. 그 두 초점이 90각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요, 사람이 원하는 목적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저나라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로 영원히 나타날 것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자기 부모를 하나님같이 모시면, 누구나 다 천국 가게 되는 것입니다. (119- 109)
오늘날 이 세계는 둥글게 되어 있습니다. 태양도 둥글고, 땅도 둥글고, 별도 둥글고, 입도 둥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라도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둥글둥글 돌면서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둥글게 있더라도 개별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연관성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왜 태어났느냐? 이 대우주와 박자를 맞추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바다의 물결이 출렁거리면 내 마음도 출렁거리고, 바람이 기분 좋게 불면 내 마음도 기분 좋고, 꽃이 피어서 향기를 풍기면 내 마음도 향기를 풍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4- 122)
사랑에서 태어나고, 사랑에서 자라 가지고, 사랑에서 살다가, 사랑에서 죽게 될 때는 낳는 것도 감사한 것이요, 사는 것도 감사한 것이요, 죽는 것도 감사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리에 동참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동참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이 꽂아 놓은 깃발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깃발이 움직이는 것은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사랑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서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고, 아버지를 봐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고, 형제들을 위해서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103- 258)
여러분의 생활 전체가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고는 생명체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자연현상 세계에서 벌어집니다. 생명의 분기점은 긴 기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순간에 있습니다.
순간을 무시하는 사람은 귀한 것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위대한 사람도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왕좌와 왕관을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을 빛내기 위해서 여러분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주의해야 하고, 생각하는 것도 주의해야 됩니다. 자기의 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내용이 세계와 관계되는 현상으로 남는다는 신념으로 해결짓는 데에서만이 승리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승리권이 결정되는 것은 순간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승리권, 천주적인 승리권도 순간에 결정됩니다. 순간을 빛낼 수 있는 무한한 가치를 느끼며 생활하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도 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딸도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생사의 분기점은 순간에 달렸습니다. (31-218)
오늘 우리들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먼저 뜻의 나라가 오기를 바라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자체가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일치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하나되게 하느냐 하는 것이, 뜻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뜻을 계승할 수 있는 개인적인 환경, 가정적인 환경, 종족적인 환경, 민족적인 환경을 이루어야 뜻의 나라와 관계맺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루의 생활권 내에서,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을 어떻게 뜻과 더불어 관계맺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복귀섭리역사를 보면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과 예수님 가정까지 4천 년의 역사가 내려오고 있지만, 그들이 실수하게 된 동기는 어느 한 해를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것도 1년이나 10년 혹은 몇십 년을 계획하여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실수는 한 순간에 초래되었으며, 한 순간의 실수가 억천만세 이어져 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한 순간의 실수로 역사시대에 도의 길을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보응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뜻을 따라가지 않은 수많은 민족이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탕감 제물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한 시간 똑딱 하는 순간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도 한 순간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죽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뜻을 알고 난 순간부터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순간이라도 시간 관계를 두고 비약이 있든가 구렁텅이가 생겨나면 영원은 중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애노정을 중심삼고 신앙길을 가는데 금년에 못 가면 명년에 가고, 명년에 못 가면 내명년에 가고, 10대에 못 가면 20대에 가고, 20대에 못 가면 30대에 가고, 30대에 못 가면 40대에 가고, 40대에 못 가면 50대에 가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일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일생 동안 뜻과 더불어 하나 될 수 있는, 하루의 생활도 가져 보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살았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나라가 좋다 하더라도, 하루의 승리기준을 갖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으며, 일년의 승리기준을 갖지 못하면 영원한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영원을 꿈꾸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어떻게 악을 청산하고 선의 기수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담의 순간적인 실수가 억천만세 한을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 아벨이 부모의 한을 풀고 형제의 담벽을 무너뜨려 하나의 가정 기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복귀섭리의 대표로 세워졌던 아벨이 죽었던 것도 순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20년 걸려 방주를 짓던 노아의 수고노정에서도 하나님께서 '소원을 성취할 날이 왔으니 배에 오르라!'고 하신 명령도 한 순간에 내려졌습니다. 이 명령에 동조한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심판권 내에 매장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창성(昌盛)하여 만국을 덮고도 남으리라'고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의 명령도 똑딱 하는 한 순간에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지낸 시간도 몇십 년 동안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라 단 하루라는 시간권이었습니다. 제물을 쪼개어 제사 드리는 시간은 한 시간 미만이었지만 여기서 역사적인 모든 생사화복의 기원이 짜여져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끝날에 찾아오는 심판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생활권 내에서 찾아오는 시간을 어떻게 뜻과 일치시키느냐, 어떻게 뜻과 더불어 교차로를 형성하고 나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37-219)
아담과 해와를 하나님이 지었다면 어떻게 지었을까? 흙으로 빚어서 지었다면 어떤 흙으로 지었을까? 어디서 출발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장성한 사람으로 지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기로부터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아기를 밴 어머니가 품어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 지었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고는, 이 모든 3단계의 질서를 통한 존재 형성이라는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해와에게도 유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장성기가 있었습니다. 이건 천리입니다. 그 다음에 완성기가 있었습니다.
유아기는 어떤 유아기였겠느냐? 무형의 하나님이 무형의 세계에서부터 유형의 과정을 거쳐올 수 있는 아기의 존재를 품고 키웠다는 논리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225- 198)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국가, 세계는 내 뜻에 부합되는 환경이 돼 있지 못하기에 온갖 고충이 벌어지고 있고, 선악의 분기점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백이면 백 사람이 각기 자기 나름대로 하루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환경과 투쟁하고 있고, 환경을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침에 계획한 하루의 일을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잘 느끼게 됩니다. 더우기 그 환경의 범위가 크면 클수록 자신의 하루 생활을 승리로 결과짓기 위해서는 그것에 비례해서 결의와 추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날이 승리의 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더해져서 한 달이 되는 것이요, 한 달 한 달이 더해져서 일년이 됩니다.
그 한 달도 우리가 계획한 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달의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 한 달의 환경에 갖추어진 복잡한 모든 사연들, 모든 여건들을 타파할 수 있는 추진력과 결의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없어서는 한 달의 계획을 승리로 끝맺을 수 없습니다.
일년을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삼백예순 날을 극복할 수 있는 투지력 혹은 추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1년을 승리로 장식할 수 없습니다. 이런 1년에 10년이 가해지고, 20년 혹은 30년이 가해진 날들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31-30)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시간성을 못 벗어납니다. 인류 역사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그와 같은 시간권 내에서 움직여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중심삼고 10년, 20년, 30년, 70년, 일생 동안 가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크면 클수록 내적으로 더욱 강하게 다짐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그 목적을 능가할 수 있는 내적인 결의를 계속하지 않는 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1- 149)
여러분은 영계(靈界)의 사실을 모를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하나님의 특별한 혜택을 입어 미지의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세계의 근본을 헤쳐 보니 원칙은 간단했습니다. 그 세계는 하나님의 천지원칙인 위하여 산 사람만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한 내용으로 형성된 세계가 이상천국입니다.
그곳이 우리 인간이 찾아가야 할 본향(本鄕)입니다. 오늘 우리는 타락한 인생으로서 본향에서 추방당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본향 땅을 향하여 돌아가야 할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인간 자체로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역사과정에 설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민족의 문화 배경, 풍습 혹은 전통에 따라서 수많은 종교를 세워 수습해 나왔습니다. 그렇게 수습하기 위한 훈련장으로 세운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니 종교는 본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격자를 연마시키는 훈련장소입니다. 동서 사방의 문화 배경에 따라 높은 데로 전진할 수 있는 하나의 통일된 종교세계로 이끌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본향의 곳으로 지도하여야 할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위하여 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위하여 살아야 된다는 원칙을 강조해야 되겠기에 온유겸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뭇사람을 높이고 그들을 위하는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희생봉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나라의 법도에 맞는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78- 117)
인생의 갈 길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이 인생의 갈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이 인생이 가야 할 최고의 종착점입니다. 이 길은 남자도 여자도 다 가야 됩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갈 길은 무한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죽을 고비를 거쳐서라도, 죽어서라도 끊임없이 찾아가야 할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것이 인생의 최고 갈 길입니다.
욕망의 끝이 어디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다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 더 귀한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해야 됩니다. 사랑만 점령하면 하나님은 안 계셔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그의 것이 될 때, 비로소 안팎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상하의 등급이 없는 이상의 본국(本國)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눕게 되면, 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자신을 위해서 있지 않은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이 갈 천상세계 즉 천국은 사랑으로 충만된 곳입니다. (39-210)
´u 잘못된 출생의 기준
오늘날 세상 사람은 자기 자신이 고귀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박사라고 하더라도 자기 출생이 틀렸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사랑과 생명과 핏줄을 타고났다는 걸 모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사탄의 사랑에 의해 태어난 것입니다. 사탄의 사랑이 그 부모에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어머니의 생명, 아버지의 생명에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 피가 오늘 나에게 이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 종류의 결실체가 바로 나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사탄혈통에 속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의 혈관을 타고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사탄은 자기의 이상적인 결실을 맺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남녀를 본연의 순수한 완성 인간으로 구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탄 사랑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탄 혈통을 타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발이 잘못됐습니다. 출발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긴 돌아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원점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거짓부모로 시작했으니 돌아가서 참부모로 다시 시작해야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심각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핏줄을 다시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축복받을 때 혈통전환식을 합니다. 그걸 내 생명보다 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하나의 예식이라고 해서 그저 일반 종교의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은 입장에서 회생(回生)하는 주사약과 마찬가지입니다. 해독주사입니다.
우리 조상이 잘못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했습니다. 이것을 아는 우리는 다시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절대 못 가는 것입니다. 타락 천지에 불륜한 사랑을 남김으로써 역사를 통해 얻은 그 대가가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개인, 가정?사회, 국가, 세계에 미친 영향이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216-109)
여기서 생애는 영원한 생애를 말합니다. 영계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영원한 삶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받았습니다. 절대적이고 주체적인 하나님의 대상이 바로 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가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참사랑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영원하신 생명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상은 더 영원한 것인데, 그 이상의 중심이 바로 참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상대가 나입니다.
사랑의 속성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를 하나로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나 동참할 수 있고, 어디를 가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전재산을 다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까지도 다 상속받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비참한 과정을 거쳐서 이것을 발견함으로써, 그 기반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숭엄하고 고귀합니다. 놀라운 은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영원한 참사랑의 자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저세계는 제한된 지구성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한된 곳에서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지만, 저세계는 차원이 높은 세계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무엇이든 바라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다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영생체로 지음받았습니다. 참사랑을 중심한 대상체인 나는 영원한 생명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계에 가면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생애 기준으로 첫째가 선악의 기준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악의 기준이 첫째이고, 둘째가 본연의 출발점이고, 세 번째는 영생입니다. (216-107)
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
하나님께서 인간을 왜 만들었을까? 첫째는 하나님 자신이 부모의 입장에 서기 위함입니다. 부모는 영계에서도 무형입니다. 모형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양을 가진 인간의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모양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심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수직선은 한 점에 머무릅니다. 면적이 없습니다. 즉 영계에서는 번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직 차원에서 그것을 횡적으로 전개하여 360도 구체(球體)가 되어야 많은 공간이 생기게 됩니다.
세 번째는 사랑의 상대권의 영원성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상대되는 것은 아담과 해와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상대의 위치에 섬과 동시에 그 자녀들도 상대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상대위치를 영속적으로 보존시키기 위해 인간을 창조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그 자녀들은 하나님을 삼촌이라고 부를까요, 할아버지라고 부를까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상대란 평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횡적으로 번식하여 그 사랑의 가치를 완성해야 합니다. 완성된 사랑의 가치는 하나입니다.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모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형태가 필요합니다. 부모로서의 모양이 필요합니다. 아담의 아버지와 같은 얼굴로 영적으로 그 형태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천국 국민의 생산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부부는 생산공장입니다. 생산공장이라면 대량생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소량생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대량생산하는 것이 좋습니다. 생산공장이 자동화되어 명확하게 대량생산하게 되면, 천국은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많은 아기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222-338)
본래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만물을 짓고 인간을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을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이 평형적인 입장에서 통일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있고, 이 피조세계가 있고 그 가운데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중간적 입장에 선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영계와 육계를 접촉시킬 수 있는 매개체인 것입니다. (67-143)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피조세계는 축이 있습니다. 그 축(軸)도 두 축이 있습니다. 보이는 축과 보이지 않는 축,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주체를 중심삼고 돌아가는데 그 주체 자신도 돌아갑니다. 몸과 마음이 주고받으면 돌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존재물은 이와 같은 원칙에 의하여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타락한 인간세계에서 복귀의 길도 축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축을 고쳐야 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몸의 중심이 무엇이냐? 마음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몸은 마음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 마음의 명령에 몸이 움직입니다. 마음이'동으로 가라!' 하면 동으로 가야 되고, '서로 가라!' 하면 서로 가야 됩니다. 몸을 제멋대로 할 수 없습니다. (136-14)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고, 마음 위에 영이 있으며, 영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야만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비록 작은 하나의 개체지만 전체의 역사를 대신한 존재요, 미래의 모든 인연을 대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천주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애의 인연을 찾아가는데 있어서 자기의 마음을 앞에 모시고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천륜입니다. 마음의 명령에 복종치 않는 자는 하늘이 때립니다. 지금까지 하늘은 역사노정에서 인간에게 양심대로 살되 물질적인 악의 조건에 걸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양심은 천륜을 100퍼센트 닮았느냐?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수많은 장벽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천국 관문 앞에 곡절의 문이 가로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심판의 관문입니다. 오늘날의 사조(思潮)는 공포와 불안과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중심을 잡으려야 잡을 수 없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몸과 영인체로 지었는데, 영(靈)이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4-268)
공명(共鳴)이란 진동할 때 주파수가 같음을 말합니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는 우리의 내적 사람과 지상천국에 살 수 있는 외적 사람이 사랑을 중심삼고 공명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명할 때는 음파가 같아야 엮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돕니다. 도는 데는 그냥 도는 것이 아니라 핵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영인체와 육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어울리게 될 때는 영적 세포, 육적 세포가 완전히 작동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완전작동할 때는 천상천하, 지상천하가 다 보이는 것입니다. 완전 작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도 그렇잖습니까? 성능이 좋으면 100퍼센트 울려 퍼집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힘으로 육신과 영인체가 일치되어 폭발할 수 있는 경지가 되면 천상세계, 지상세계, 하나님 할 것 없이 다 공명하게 되는 겁니다. (171-103)
인간을 보게 되면 마음과 몸,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마음사람과 몸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를 합하면 네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라놓으면 네 사람인데, 이게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나님은 왜 이렇게 네 사람으로 만들었느냐?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는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으로 완전히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영적 사람,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영인체가 있고 육신이 있습니다. 영인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인체하고 육신이 언제 하나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이것은 음차(音叉)와 마찬가지입니다. 음차의 하나를 울리면 다른 쪽도 진동수가 같게 공명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하나님 사랑의 작용이 우리의 마음에 오면 자동적으로 몸에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100퍼센트 공명시키게 할 수 있는 권내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도 아니요, 능력도 아니요, 힘도 아니요, 오직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눈이나 코 같은 육적 오관이 영적인 오관과 바라는 하나의 초점, 이상적 표준점이 뭐냐? 하나님의 힘도 아니고 지혜도 아닙니다. 사랑이 모든 것의 초점, 표준점입니다. (138-254)
① 영적인 것이 인간의 본질
어떤 하나의 핵심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으로 도는 상대적인 존재가 반드시 있습니다. 양자(陽子)를 중심하고 전자(電子)가 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전자와 같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양자와 같은 하나님 마음의 핵심과 관계를 맺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여 복귀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찾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이 약동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이 화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의 길을 거쳐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찾아나가는 것이 가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내가 된 것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진리는 영원불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선악을 분별하면서 진리를 찾아가야 될 것인가? 자신을 중심한 마음을 버리고 항상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성서에서도 높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낮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나라에 가면 그러한 인간의 본질이 남을 위하도록 되어 있는 것임을 더욱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찌하여 자기만을 위하려는 마음으로 만사에 임하고 있는가? 이것은 모든 인간이 천륜을 배반한 천사, 다시 말하면 사탄과 혈통적인 인연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137)
이제 우리는 영적인 밥을 먹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육적인 밥과 영적인 밥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맛있어야 되느냐? 내가 살아남고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서는 영적인 밥맛이 육적인 밥맛보다도 더 좋아야 합니다. 영적인 힘을 중심삼고 사는 생활의 맛이 육적인 힘을 갖고 사는 생활의 맛보다도 더 맛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31-211)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만물의 영장이 누구냐?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만물의 근본된 영장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영(靈)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인간에겐 영이 있습니다. 인간은 그 영(靈) 중의 장(長)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직결시켜서 영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만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인간도 피조물인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란 상대적 결과체입니다. 피조물만 되어 가지고는 원인을 통할 수 없고, 원인을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원인에게 점령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결과적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영장하게 되면, 장(長)은 영(靈) 가운데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본래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된 관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장은 하나님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서 모두가 영장이 아닙니다. 영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 영장이 될 수 있는 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자는 적어도 개인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체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중심삼고 소원을 이루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의 천국이 되느냐? 하나님의 천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32-136)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생해야 됩니다. 악한 세상에서 80년 정도 사는데, 개가 죽는 것이나 사람이 죽는 것이 다를 게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다릅니다.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다릅니다.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에? 늙지 않는 마음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물은 다 변할 수 있습니다. 순금도 변합니다. 풍화작용에 의해서 감소합니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데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159-278)
만물의 영장이라 함은 무엇을 중심삼고 영장이라고 하느냐? 돈을 중심삼고, 지식을 중심삼고, 권력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210-309)
인간 본연의 인연이 뭐냐?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권 내에서 서로 서로가 완성애로서 즐길 수 있고, 찬양과 존경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본연의 인연입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하늘의 인연과 땅의 인연이 몽땅 화합하여 하나로 조화되어 나타난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있고, 보이는 몸이 있는 것입니다. 본래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다면, 몸과 마음이 갈라져서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속사람과 겉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 것이냐, 한 십년쯤 지나면 끝날 것이냐, 죽어도 안 끝날 것이냐?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면 그 하나님은 하나의 목적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고 두 목적을 가진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혼돈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모든 법칙은 전후 좌우가 엇갈림이 없이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걸 볼 때, 사람은 본래 이렇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집어던지고 본연의 마음을 찾아야 됩니다. (44-194)
우리 인간의 육신과 영인체 중에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육이 아니라 영이라는 것입니다. 육은 70, 80년의 시간권, 한계권 내에서 살다가 사라지고 말지만 영은 시간권을 초월하고 공간권까지 초월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책임을 깨닫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본의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육신을 중심삼고 잘살더라도 결국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육신은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기준과 육적인 기준 중에 어느 것이 보다 중요한 것이냐? 우리가 육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육은 영을 위하여, 영은 육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같은 입장에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육을 구원했다는 입장에서 영육이 합한 실체를 갖추어 보다 보람있는 자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20-326)
뜻의 목적은 무엇이냐? 인간의 영육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과거는 영적이고 현재는 육적이라는 것입니다. 두 세계가 침범을 당했습니다. 현재의 입장이 사탄세계이니까 사탄세계를 이긴 육이 되어야 되고, 과거에 사탄세계를 이겼던 영적 기반을 닦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승리하면 영육을 가질 수 있는 기준이, 미래에 대한 축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73-96)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계가 주체가 아니고 육계가 주체라는 것입니다. 완성시키는 데는 영계가 주체가 아니고 육계가 주체입니다. 육계의 완성은 영계와 육계의 완성입니다. 그러니 육신 생활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91-178)
① 육신생활은 영계생활을 위한 준비
하나님께서 만물과 인간을 지으시고 선하라고 하신 것은 서로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을 쳐서 마음 앞에 굴복케 하는 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악에서 선으로 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내 몸이 완전히 승리했다는 것은 사탄까지도 완전히 뿌리뽑아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사탄을 정복해야만 갈 수 있습니다. 사탄을 이기는 것은 육신을 벗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이 땅에서 사고가 났으므로 고치는 것도 육신을 쓰고 땅에서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면 영원히 지옥에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서 승리하여 하늘 편의 선한 입장에 서게 되면 영원히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65-294)
이 육신세계는 짧은 기간입니다. 길지 않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잠 자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밥도 걸어가면서 먹고, 잠도 걸어가면서 자고, 노는 것도 걸어가면서 노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세계의 그 누구도 받지 못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80-226)
내가 비록 제한된 이 땅에서 80년 정도 있는다고 해도 우리의 무대는 세계의 제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만물은 세계의 만물이요, 내 몸은 세계 인류의 몸이요, 내 마음은 세계 인류의 마음입니다. 그런 심정은 하나님과 하나돼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 다 하나의 제단입니다. (75-166)
우연히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라는 것은 쉬운 준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두고 볼 때에, 소년시대는 청년시대를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장년시대는 노년시대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고, 노년시대는 영계에 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일생은 대우주의 인격을 갖추기 위해 하나의 훈련과정을 거치고 있는 수련기간입니다. 준비기간이라는 것입니다. (147-188)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가 있습니다. 세상과 영계는 두 세계가 아니고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곳,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곳이 어디냐? 물론 우리는 육신생활을 하면서 이 땅에 있지만 영원한 세계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 청춘시대를 지나고, 장년시대를 지나고, 노년시대를 거쳐 지는 해와 같이 일생을 끝마칩니다.
그러나 영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일생이라는 것이 잠깐이고 죽은 다음에 맞이해야 할 세계가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준비합니다. 때문에 일생은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학생을 예로 들어 말하면, 한 학년에 학점을 따야 할 학교에서 제정한 학점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 얼마만큼 도달하였느냐 하는 비준에 의해서 학교에서 인정받는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점에 미달하게 되면, 학교가 세운 가치기준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표준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측정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육신세계에서 사는 것은 마치 학교에서 정한 학점기준에 맞게 준비하는 기간과 같습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에 쌓아야 할 실적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책임을 추구하는 어떤 기준 앞에 얼마만큼 일치되느냐 하는 기준치를 중심삼고 생애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140-121)
여러분은 모든 것을 나를 위해 소화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소화하고, 내 나라와 내 종족과 내 가정과 내 상대를 위해서 소화한다, 하는 생각을 해야지, 나를 위해서 한다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일생을 자기 중심삼고 살면 전부가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위해서 살게 되면 모든 것이 내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꾸 위하다 보면, 나는 진공상태로 되기 때문에 참이 찾아들어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자랑이 뭐냐? 첫째가 참사랑이고 둘째가 참부모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에만 있는 말입니다. 사전에도 없습니다. 셋째가 참자녀이고, 넷째가 참종족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4대 목표입니다. (203-101)
내가 해방받으면 하나님이 해방받습니다. 가정이 해방받으면 하늘나라의 가정이 그렇고, 이 지상이 그러면 하늘나라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이중구조의 일체성으로 해명됩니다.
여러분은 육신을 쓴 이 기간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부활시킬 수 있고, 우주도 부활시킬 수 있고, 모든 천하를 통일시킬 수 있는 것은, 육신을 쓰고 있는 이 기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물을 합하더라도 이 육신세계와 바꿀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과 이 우주를 합하더라도 육신을 가진 인간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성경의 '우주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하는 말도 그래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91-191)
육신생활은 80년 정도밖에 안 됩니다. 80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생애노정에서 역사적으로 엉클어진 모든 선의 권을 수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짧은 육신생활에 인연맺어야 할 선한 권이 방대하다는 것을 아는 이 마음, 양심이 얼마나 재촉하겠습니까? 죽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본향 땅을 찾아야 하고, 조국 광복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늘 주권자를 모시고 그 나라에서 살다가야만 천상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155-27)
영계, 무한한 세계는 영원한 곳입니다. 그런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체를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육신생활을 하는 동안에 수습해야 합니다.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이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바로잡는 것은 절대 나를 위해서 바로잡는 법이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 바로잡는 법이 있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절대 고생 안 했습니다. (59-50)
통일교회가 제시한 원리의 길은 천년만년 지나도 가야 합니다. 살아생전에 못가게 되면, 영원한 영계에 가서도 가야 합니다. (135-297)
오늘 우리는 사탄세계의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자 하는 것입니다. (213-19)
습관성을 타파한다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여러분이 사탄세계에서 자기 중심삼은 습관성을 지니고 살았는데, 그 습관성이 고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착되어 버린 그 습관성은 한국 사람들이 김치?된장?고추장을 먹는 습관성보다도 더 고질적입니다.
이것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악마가 출발한 그날부터 뿌리가 박힌 습관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빼 버리느냐? 구덩이를 파고 뿌리까지 묻으려 해도, 묻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듭니다.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습관성을 지녀야 됩니다. (213-20)
선생님의 생활은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생활입니다. 이 세계를 위해서 사는 생활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산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참부모, 인류를 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참부모와 인류를 묶기 위해서는, 자기를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참사랑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도 참사랑을 원하고, 참부모도 참사랑을 원하고, 인류도 참사랑을 원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참된 이 우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이걸 언제든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분이 얼마나 하늘이 바라는 생활과 일치되었느냐 하는 것을 비교해야 됩니다. 그리고 인류를 대표한 내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를 대표한 내가 되고, 하나님을 대표한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산 사람은 영계에 가나 세상 어디를 가나 경계선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천 명의 친구와 같이 먹고 싶을 경우 그러한 환경도 사랑을 통한 세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의 능력을 행사할 때 그 사랑을 중심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영적세계에서는 참사랑이 연결되면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이상향입니다. 참사랑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다 허사라는 것입니다. (147-115)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서 3분의 2 이상이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하면, 그 3분의 2의 생활을 모두 떼어 버릴 수 있느냐? 떼어 버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34-139)
탕감이 왜 필요하냐?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복귀란 재창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치 있는 생애를 남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고, 나이가 많아졌을 때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 가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늙으면 무엇이든지 바로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래서 스무 살에 들어오는 것보다 열다섯 살에 들어오는 것이 좋고, 열다섯 살 때보다도 아기 때부터 알고 컸다 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물이 꽉 차 있다면 맑은 물이겠습니까, 흙탕물이겠습니까? 거기에 모래알이 끼어 있고, 돌멩이가 끼어 있습니다. 큰 장마가 지나간 다음에 강이나 하천에 별의별 더러운 것들이 걸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 속에도 별의별 더러운 것들이 끼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휘저어 다 걸러내야 합니다. 여과장치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있으면 걸립니다. 물 자체에 모래알같이 더러운 건더기가 있으면 흘러 보지도 못하고 걸리게 돼 있습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그런 장치, 엑스레이 사진기 같은 것에 비칠 것이라고 생각 안해봤습니까? 하나님도 그러한 여과장치를 거친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97-60)
여러분은 영계에 가 가지고 보호관 생활을 해야 됩니다. 몇천 년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가정들의 수준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가는 데도 다 자기 급에 맞는 곳에 가서 오랫동안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조상들이, 아들딸들이 '왜 그랬어? 왜 그렇게 잘 하지 못했어? 그게 뭐야?'하면서 참소합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해당되는 만큼의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땅에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라는 것을 다 해야 됩니다.
볼트가 있으면 이것에 맞는 너트를 만들어서 채워야 합니다. 너트가 맞아야 채워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것이 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땅 위에서 하고 있는 생활이 얼마나 중요하냐? 한 번밖에 없습니다. 순간인데 한 번밖에 없습니다. 지상생활을 영생에 비유하면, 이것은 한 점에 불과합니다. 너무나 짧은 순간입니다.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육신생활을 넘어 영계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그런 주류사상을 가지고 센터에 서서 일체를 조절하고, 일체를 정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성완성을 이룰 수 없습니다. (207-99)
여러분이 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참부모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랑에 의해서 심신이 원만한, 안정된, 만족스러운 권내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한 사람은 영계에 가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지상에는 내면적으로 확대된 생활이 있는데, 내면적으로 확대된 그 기준은 영계에 가면 표면화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류가 한 몸의 세포와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 세포들 중 하나가 되는 세계가 영계입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틀림없이 자기 마음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고 부르면, 자기의 마음속에서 '어떤 녀석이 나를 불러? 왜?'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책임분담이 그만큼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책임분담이라는 원칙을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아침 거울을 볼 때, 남자로서 여자로서 책임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관이 책임분담을 완성한 사랑에 취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감각의 모든 것은 사랑의 실체권에 서기 위한 것입니다. (218-128)
책임분담을 수행하려면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책임분담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의 정, 사탄의 핏줄을 받아서 태어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139-256)
인간이 영계에 가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몸이 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과 고린도전서에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전 된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기록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 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어떻게 닮아지느냐? 책임분담 완성단계에 이르러 하나님이 임해 일체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30-22)
① 영생문제를 알아야 할 이유
왜 지금 세상 가정들이 깨져 나가고 있느냐? 또 어머니 아버지 자녀가 원수가 되느냐? 참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영생입니다. 그런데 영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영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이 죄를 지으라고 해도 안 짓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살라고 해도 안 삽니다. 이것을 모르면 기성교회를 믿든, 무슨 종교를 믿든 절대로 천국에 못 갑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에 못 가는 것입니다. 참사랑, 생명을 투입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205-261)
우리 교회가 원리로 무장해 놓으면 영생문제가 확실해집니다. 이 영생문제와 연결 안 되면 사회혁명도 불가능합니다. 현재 입장에서 살고 있는 것보다도 더 피폐(疲弊)하고 몰락된 환경으로 떨어진다면, 누구나 그 자리를 안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문제, 영원한 생명문제라고 하게 될 때는 환경적 여건을 모두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영생문제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영생의 개념만 딱 지어 놓으면 됩니다. 지금까지 종교가 습관성으로 엮어진 문화배경을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영생이라는 개념을 지어 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환경이 변하면 변할수록 왜 흔들리느냐? 영생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생문제에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환경을 넘어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다 거기에 소속되어 사방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생활로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영생개념을 안 집어 넣으면 중간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개념을 집어넣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이건 통일교회만이 완전히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신앙길은 육신생활의 준비가 아니고, 영원한 세계의 생활을 위한 준비입니다. 이런 신념만 가지게 되면, 그건 내버려두어도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40이 넘고 50이 넘어 죽을 날이 가까워 오면, 영생문제에 대해 심각해진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심각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희박해지지만, 영생개념을 집어넣으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점점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이념만이 앞으로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환경이 빈번히 변하며 희비극이 부딪쳐 오더라도, 영생개념만 철저하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영생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집어넣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습니다. 그건 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을 이루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만이 아니고 실감해야 됩니다. 또 체휼해야 됩니다.
참사랑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지 말라고 해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 개념만 집어넣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집어넣는데도 이론적으로 맞을 수 있는 때에는 마음에 꽝 울리고, 몸뚱이까지 제일 가까운 급으로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청소년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여섯 살 이전에는 타락 전의 본성 기준을 100퍼센트 활용할 수 있는 때입니다. 열여섯 살 이전에는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기 이전이니까, 본성기준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시기에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앎으로써 자기와 하나님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아는 것입니다. 그 관계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영생개념을 집어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집어넣게 되면 우리 통일교회 2세들에게 다른 길로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빨리 구해 모두 하늘나라에 데려가야 됩니다. 그것이 자기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져간 모든 것으로 저나라에서 등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는 지금 완전히 비어 있습니다. (1992. 4. 15.)
㉮ 일생과 영생문제
여러분은 얼마나 살 것 같습니까? 전부 다 '70년, 80년은 살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전에는 죽는다고 생각 안 합니다. 여러분은 욕심쟁이입니다. 일생을 사는데 80살에 죽거나 100살에 죽을 거라고 믿는다 해도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에는 '아, 내가 젊었으니까 앞으로 적어도 40년, 50년은 산다' 그런 욕심을 다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 하나님한테 보증받았습니까? 여러분은 될 수 있는 대로 1년 이내에 죽을 것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짧은 기간에 다 준비해야 됩니다. 이런 관념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잡을수록 행복합니다. 짧게 잡을수록 손해를 안 본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에 참되게 준비하는 그 내용이 자기의 영원한 생명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짧은 기간에 하나님을 사랑해 봤느냐? 하나님과 하나돼 사랑을 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하길 '사랑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 죽으면 그것이 영원한 생명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2년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심각합니까? 공동묘지도, 장사(葬事)지내는 데도 가 보는 것입니다. 이건 신앙생활에 절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죽는 것이고,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는 것입니다. 원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 짧은 기간에 뜻을 위해 죽겠다고, 하늘을 위해 죽겠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총각 때 죽는다 생각하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맞이하게 되면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까? 결혼하지 못하고 죽은 남자가 부활해 결혼할 수 있는 날을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몇 살까지 살다 가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당장에 죽을 자리로 나간다면 어떡하겠습니까? 하늘이 나를 칭찬할 수 있는 무어가를 남겨야 됩니다. 그러면 자는 시간이 아깝고, 먹는 시간이 아깝게 생각됩니다. 걱정할래야 걱정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일생과 영원의 문제에서 일생을 짧게 잡을수록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씨족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 온 인류를 사랑하기 위한 교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저세계에 가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교재라는 것입니다. (102-122)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더불어 영원한 사랑과 일치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느낄 수 있는, 결착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개체가 얼마만큼 전진적 사랑과 생명력을 지니고 사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오관을 통하여 느끼는 감각 일체가 생명, 사랑과 어느 정도로 관계를 맺고 사느냐 하는 데에 따라, 인간으로서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명력과 가중된 사랑의 마음으로 사회 생활을 해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자리에 서 있지 못하다 할진대, 그것은 정지하거나 아니면 후퇴하는 것입니다. (32-19)
사람은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지금까지 지구성에서 없어지지 않고, 문화배경과 풍습이 다른 모든 환경을 거쳐오면서 세계적인 판도를 확대시켜 나왔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일생이 문제가 아니라 영생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는데는 우주와 더불어 생활해야 합니다. 일생이 100년 정도의 짧은 생애이지만 생애의 한계로써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한계선을 극복하면 한계로 삼던 지구촌을 넘어 초연한 자리에서 생존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연히 영생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고통 가운데에서 신음하며 사는 인류를 동정해 돕기 위해서는 가상적인 영생이라도 주장해야 하고, 가상적인 신을 중심삼은 이상국가 형태를 추리해 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도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영생문제와 더불어 하나님 문제까지 해결해야 됩니다. 이런 제반 문제가 연결돼 있습니다. (162-264)
하나님이 사람을 어떠한 존재로 지었느냐? 하나님의 절대 유일의 가치가 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자로 지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요즘 한 인간의 생명 가치가 얼마나 됩니까? 몇 푼 안 됩니다. 본래 그런 무가치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였습니다.
오늘날 모든 문학세계를 두고 보더라도 그 골자는 사랑입니다. 사람은 사랑에서 나서 사랑에서 살다가 죽습니다. 그런데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영원?불변?유일하니까 그 앞에 대상 사랑의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영생하는 겁니다. 영생이라는 이론이 여기에서 발발하는 것입니다. 생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142-143)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과 안팎으로 하나되어 자녀 입장에서 완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을 참다운 인생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최고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간이 최고의 자리에 가게 되면 하나님은 내 것입니다. 또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 자신도 되니, 우주도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하루 혹은 10년이나 100년쯤 같이 지낸 후에 집어던지게끔 지었겠어요, 영원히 같이 있게끔 지었겠어요? 영원히 같이 있게끔 지었습니다. 영원히 함께 있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영생해야 됩니다. 왜냐? 절대자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루나 이틀 혹은 10년, 100년 좋아하다 던져 버린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함께 있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는데, 아내의 손수건을 갖고 독신으로 살았던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인도의 네루 같은 분은 자기 아내가 젊어서 죽었는데, 그 아내가 장미를 좋아한다고 해서 일생 동안 장미꽃을 차고 다니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지극히 귀한 아들딸을 지을 때 100년 쯤 산 다음 망하게 지으셨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영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영생하려면 보다 강한 힘이 배출될 수 있는 작용의 기반 위에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힘은 시일이 가면 갈수록, 주고받으면 주고받을수록 소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지고 커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기뻤다면 기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쁨이 확장되어 무한한 기쁨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우리가 이상하는 나라요,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영생을 바랍니까, 바라지 않습니까? 막연하게나마 영생을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귀한 물건이 있으면 피난가게 될 때 그것을 가져갑니까, 안 가져갑니까? 가져갑니다.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합니까, 안 하고 싶어합니까?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하루이틀 자랑하다가 말아요?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가 죽게 되면, 그것을 자기 후대에 영원히 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영생하시는 절대자라면, 그분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도 영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고로 영생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인 하나님은 영생의 가치를 지닌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39-42)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걸작품으로서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우리도 영원한 성품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늙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영생해야 됩니다. 영생해야 그 걸작품의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靈長)입니다. 여기서 영(靈)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생해야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80년 정도 살다가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159-281)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기 나름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생활'이란 하루하루 사는 것을 말하고, '생애'는 일생의 삶, 일생을 두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영생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일생이 아니요, 영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생애노정을 영생에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걸 해야 하는 것이 생애의 책임입니다. 또 일생이라는 것은 하루하루의 생활을 연결시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생이라는 것은 나날들이 연결된 것입니다.
생애의 가치적인 내용이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생애를 다 살고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삶의 날들이 결정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잘 사는 것이 무엇이냐? 잘 사는 것은 생애의 모든 노정을 대표할 수 있는 나날들을 뜻 있게 보내는 생활입니다. 오늘 잘 살았다고 하는 것은, 자기 일생에서 자랑스러울 수 있는 기억의 날입니다. '잘 산다' 하게 되면 생애노정에 있어서 반드시 제일 가치 있게 사는 날일 것입니다. 가치 있게 산 날이 있다면, 생애에서 그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입니다. (197-186)
하나님은 지혜로운 분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랑 이념을 안 세웠으면, 하나님은 고독 단신이 됩니다. 희로애락을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이 사랑을 잃어버리신 하나님은 역사 이래 그 누구도 체험할 수 없는 심각하고도 기막힌 자리에, 절대적으로 비참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누가 영원히 위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연의 바라던 아들딸을 희생시켜 당신이 꿈꾸던 소원의 이상형태를 재현시킨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품고 천리만리 이동하면서 더 빛나게 단장하고 아름답게 표시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우주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204-101)
대기가 100퍼센트 절대 저기압권이 되면, 고기압권이 자동적으로 생겨 순환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왕입니다. 그런 자동적 순환원리를 통해서 영원 회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영생논리가 논리적으로 설정된다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 영생의 논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위하는 데는 망하지 않습니다. (204-107)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의 파트너를 구한다고 하면, 그 대상은 틀림없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지중에 유인최귀(萬物之衆 惟人最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주의 영원한 사랑과 하나된 사랑의 파트너도 영생한다는 논리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자동적인 산물입니다. 영생은 여기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중심삼고 영생 논리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종교에서 지극히 귀중한 얘기입니다. 남자에게 영생이 있고 여자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218-211)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기를 '예수 믿으면 영생한다'고 합니다. 영생하려면 계속적인 작용을 이어나가야 됩니다. 인생길을 영원히 가려면 심장의 동맥과 정맥 같은 순환기관이 정상적으로 움직여야 되고, 신경계가 정상적으로 움직여야 되고, 대뇌와 소뇌의 모든 작용이 정상적으로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막대한 소모가 벌어집니다. (121-172)
잠자리에 들 때 벗어 놓은 신발을 다음날 아침에 다시 신을 자신이 있는가? 아무리 바쁘다고 하여도 영생 문제 이상 중요한 것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영생 문제를 결정짓는 것 이상 심각한 게 없습니다. (10-249)
새로운 조수 물결인 참부모의 사랑의 도리를 심어 타락의 한을 해소하고, 하나님이 군림할 수 있는 참사랑의 가정을 이루어야 천국에 직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레일이 같아야 합니다. 레일이 같아야 기차가 달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과 천상세계의 레일이 맞아야 합니다. 지상천국에서 천상천국을 연결시키기 위한 길이 참사랑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가는 길, 가정이 가는 길이 전부 연결되어야 합니다. 방향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동안 자기가 하는 모든 일들은 전부 참사랑을 위한 실적으로서, 자기 뒤꽁무니에 영원히 고착되기 때문에, 저나라에 가게 되면, 일생 동안 남겨진 공적에 맞는, 그 급에 자연히 머무는 것입니다. (211-288)
어떻게 영생하느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한다,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칙으로 볼 때에 참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의 동반자이기 때문에, 참사랑을 가지면 영원히 살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 사랑권 내에 들어가 있으면 영계나 지상에 살게 될 때에 자기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대양을 다니는 큰 배가 파손될 위험이 생기게 되면, 그 배 안에 살던 쥐들은 전부 육지로 도망갑니다. 미물에 지나지 않는 동물도 자기 생사권을 가려갈 줄 아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어떻습니까? 왜 그렇게 되었느냐? 타락 때문입니다. 이 타락의 탈을, 악마의 사랑과 악마의 생명과 악마의 핏줄을 어떻게 해탈하느냐? 해탈이란 말은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벗어나 관계없는 자리에, 자주적인 입장에 선다는 말입니다. (215-53)
90살이 넘은 어머니는 70살이 넘은 아들이 어디 나가게 되면 '차조심 해라. 잘 갔다 와라.' 합니다. 70살 난 아드님이 있는데 아들보고 어디 나갈 적에 '얘, 오늘 차 주의 해라.' 그런 말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90살의 노년이 되도록 그렇게 매일같이 되풀이 합니다. 그것은 영원히 계속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부모 사랑도 그런데 본연의 세계인 하나님 사랑에 속해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참된 하나님의 대상권을 확정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불변한 것을 알게 될 때, 우리 인간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생의 논리를 타당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영생하는 것입니다. (143-230)
선생님이 통일교회 교인들을 고생 많이 시키려고 합니다. 고생시켜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왜 도망 안 가느냐? 영생이 있기 때문에 도망을 안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것은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204-82)
사람들에게는 다 욕망이 있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고 합니다. 손자도 싫고, 하나님 사위도 싫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욕망을 성취하는 곳은 가정입니다. (221-25)
여러분은 '나는 영생하는 사람이다. 참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라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영생을 위한 것이다, 영생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영생과 참사랑이라는 관념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영원히 필요한 것입니다. (216-127)
㉮ 사랑과 직결된 영생
우리는 영생을 바라고 있습니다. 영생을 바라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다른 것은 다 변합니다. 환경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왜 변하지 않느냐? 사랑은 모든 생명력의 중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상적인 요건의 중심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중심은 그 주위가 전부 다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주의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과 하나되면 하나님이 남아 있는 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157-267)
참사랑이 무엇이냐? 결혼할 때 결혼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랍니다.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거 누구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우리 인류의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는 절대적으로 행치 않고, 그 아들딸에게만 절대적으로 행하라고 명령할 수 있느냐?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시는 원칙으로 볼 때에 인간의 가치가 최대의 가치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보다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은 최고의 것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만민 평등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가능한 것입니다.
높고 귀한 자리에서 이 우주를 바라보고 관리하고 주도하게 돼 있지, 끌려다니고 복종하고 그렇게 돼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그렇습니다. 해방된 마음입니다. 어느 누구의 지배를 받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만민 평등입니다. 참사랑의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의 자리, 하늘나라의 보좌에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인간을 지었다 할 때는 하나님이 영원하고 절대적이므로 인간 자체도 영생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논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은 영원합니다. 영생하려면 그 참사랑권 내에서 살아야 합니다. (211-272)
참사랑에 의해서 영생이 가능합니다. 왜냐? 창조의 출발 동기?과정?목적 등 모든 것이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과정을 통해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몸 마음의 완성은 참사랑에 의해 근본적으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상의 결실을 맺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에 의해서 하나님도 영존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사랑에 의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의 환경을 이루는 데는 사랑의 환경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의 실체권을 갖는 데는 사랑을 중심삼고 실체적인 체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218-134)
하나님은 영계 어디에 계시느냐? 절대적인 센터, 사랑의 센터에 계십니다. 그 사랑은 참사랑이고,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여러분은 첫째 하나님을 알아야 되고, 둘째 영생을 알아야 되고, 셋째 참사랑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투입입니다. 100퍼센트 이상 투입입니다. 100퍼센트 이상 투입하는 데에 영생이 있습니다. 참사랑을 가지지 않고는 영생이 없습니다. 영생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205-129)
앞으로 세계를 어떻게 수습하느냐? 첫째는 이타주의(利他主義), 둘째는 참사랑, 셋째는 영생으로 세계가 수습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뭐냐? 자기의 생명 이상 투입해야 됩니다. 생명 이상 투입하지 않는 곳에는 참사랑이 없습니다. 생명 이상을 투입하는 데서부터 참사랑이 성립됩니다. 참사랑이 성립 안 되면 영생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여러분이 사탄의 피를,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 했습니다. 이 말은 뭐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고 한 것은 생명까지 다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1계명입니다.
제2계명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게 뭐냐? 생명을 걸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 생명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느냐? 첫째는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고, 둘째는 사탄의 환경을 벗어날 수 없고, 셋째는 사탄의 혈통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환경은 벗어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탄의 혈통은 어쩔 수 없습니다. 참사랑은 생명을 초월합니다.
남자 여자가 태어난 것도 이타주의입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영원한 진리입니다. 왜 그렇게 생겨났느냐? 참사랑 때문입니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둘이서 영원히 하나되고 싶다.'고 하는데 둘이 하나되어서 뭘 할 것이냐? 하나님을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아니면 하나님을 점령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집안에 주인이 누가 되느냐? 그 집안 전체를 위해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부모 대신 중심자가 됩니다. 100명의 친구가 있다 할 때, 그 100명을 위해서 일생 동안 살면, 친구 100명의 추앙을 받는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히 위하는 주인이 있으면 영원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에 모든 우주가 '나'와 더불어 있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영생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데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죽음을 넘어서야지 넘어서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205-258)
우리는 결국 어디로 가느냐? 영계입니다. 사후의 세계라고 말하지만 사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왜 사후의 세계가 될 수 없느냐? 사랑과 관계돼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관계돼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참된 사랑의 자리에 서 있게 될 때는, 지금 여기가 영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구형운동을 해야만 상하?전후?좌우가 화합할 수 있습니다. 종은 종이고, 횡은 횡이 되어 화합이 안 되면 상하?전후?좌우 전체가 화합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사랑만이 통일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참사랑을 중심삼은 통일이상세계를 논하는 것도 원리관에 있어서 일치된 결론입니다. (144-199)
하나님이 인간을 끌어 주시려고 합니다. 하나님도 숨을 쉽니다. 사랑의 호흡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우주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영생이 있습니다. 사랑도 숨을 쉽니다. 우주의 맥박이 이렇게 되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가 '아! 나, 싫어!' 할 수 없습니다. 박자가 어울리려면 서로가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 방향입니다.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한 한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201-191)
할아버지 할머니도, 천년만년 후대의 후손도,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도 영생할 수 있는 그 공식적 노정은 같습니다. 영생은 위해서 살던 사람들만이 패스할 수 있습니다. (203-193)
㉮ 사랑의 위력
영계도 육계도 사랑을 따라 움직입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환경적 여건은 박자를 자동적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l85-20)
과거 사람도, 현재 사람도 영원할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이냐? 우리 인간 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그 모든 욕구의 요인이 뭐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데데한 사랑이 아니라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종횡을 통해 어디든지 90도가 맞는 것입니다. 동양 집에도 맞고, 서양 집에도 맞고, 남쪽 형 집에도 맞고, 북쪽 형 집에도 맞고, 오색 인종?문화 배경?모든 종교 배경이 전부 다 다르더라도 맞아야 됩니다. 그런 것이 참사랑입니다. (180-86)
오늘날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축복이라는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 축복이라는 말은 통일교회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말이고, 그 말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축복행사를 해 나왔습니다. 앞으로 모든 인류는 축복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기성교회를 믿지만, 그 기성교회 자체도 축복이라는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로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기성교회에서는 통일교회 레버런 문은 독선적인 말을 많이 한다고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축복은 타락한 인류가 필시 가야 할 길입니다.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영계와 육계를 연결해 들어가야 할 중차대한 문제가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오늘날 일반 종교를 믿는 사람은 '구원' 하게 되면 개인구원만을 생각합니다. 자기가 잘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의 하나님의 이상을 두고 볼 때, 천국은 혼자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부부,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143-235)
우리는 사랑이상을 찾아가는 무리들입니다. 그러니까 영계의 대변자로 서기 위해서 사랑이상을 횡적인 세계에 부식시켜야 합니다. 씨로서 뿌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자라는 것입니다. 크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사랑의 열매를 맺어 그 부부가 영계에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권 내에 품겨 하나님과 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144-224)
여러분은 참사랑의 논리를 많이 배워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영신(靈神)들은 50살이 됐는데도 얼굴을 보면 40대 같습니다. 50살이 넘었는데 사람들로 치면 한 3O대밖에 안 되어 보입니다. 그러니 사랑할수록 젊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땅 위에서 껍데기가 늙어가지만 부부생활을 하고, 사랑하면 할수록 영인체는 젊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이 사랑으로 오래 살면 살수록 내적 인간인 영인체는 최고의 원숙한 미남 미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껍데기는 옷과 같이 벗어 버려야 하는데, 젊어서 달라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늙으면 외적인 껍데기는 전부 다 망쳐지지만, 내적인 알맹이는 단단해져 미래의 상속자가 되고, 미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을의 밤송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어 단단하던 밤송이가 익으면, 껍질은 물렁물렁해지고 갈라져서 밤알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164-102)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은 둘째 되는 계명이다.'고 했습니다. 그거면 다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여러분이 먹는 음식을 사랑해야 합니다. 만물을 사랑하고, 몸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제1의 부모는 여러분을 낳아 준 부모지만, 제2의 부모는 지구입니다. 이 땅입니다. 여러분은 땅으로부터 여러분의 몸이 클 수 있게끔 요소를 공급받습니다. 땅이 몸의 제2의 부모입니다. 제2부모를 거쳐서 제3부모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죽는 것입니다. 제3부모에게로 가는 데는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3부모에게 돌아가려면 본래의 부모였던 하나님의 모양을 닮아야 됩니다.
따라서 결혼은 왜 하느냐? 하나님의 모양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이 합체화(合體化)한 일률적인 존재이고, 그 하나님의 분성적(分性的) 자체들이 남녀이기 때문에 그들도 합성일체화하여, 씨와 같이 되어, 하나님의 본성의 자리에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씨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나면서도 사랑받고, 자라면서도 사랑을 목표로 해서 자라고, 살면서도 사랑을 중심삼고 살며, 가면서도 사랑에 돌아가기 위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위하는 목표를 중심삼고 찾아가지 않으면 방향이 틀려집니다. (138-98)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영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많은 체험을 통해서 부정하려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기반을 형성할 때까지 많은 영적 체험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통일교회 교인들입니다.
영계는 절대적 신을 중심삼고 구성된 세계입니다. 그 절대적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우주의 기원이 되는 분입니다. 그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에 속한 전체는 그와 더불어 느끼고, 그와 더불어 인연을 갖고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권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사탄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는 자기 중심삼고 사랑하는 겁니다. 하늘이 제일이 아니라 자기가 제일입니다. 하늘을 부정하고 땅을 부정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하늘을 인정하고, 땅을 인정하고, 부모의 평균적 사랑 밑에서 하나되면, 사탄이 주관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연의 아담의 자리입니다. 그 기준을 회복해야 됩니다.
한 동네에 축복가정 부처가 살게 되면 그 동네에서 화제가 되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어디 가든지 화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 부부는 이 동네에 참 잘 왔다. 저 색시는 이 동네의 모든 남자들이 좋아하고 아줌마들이 다 좋아해. 아이들까지 좋아해!' 그래야 됩니다.
그것이 안 되면 영계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됩니다. 돌아오는 데는 선생님이 사인을 안 해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이 땅에 마음대로 올 수 있습니까? 선생님이 기도를 해줘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간 사람들이 다 매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축복가정들 다 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이 문제입니다. (140-123)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은 축복받을 때 영원한 가정으로 살겠다고 선생님하고 약속했습니다. 선생님은 영원한 가정을 치리하는 사람이요, 영원한 나라를 치리하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나라의 가정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가정은 물론이고, 영원한 나라를 인계받는 것입니다. (205-359)
참된 여자는 어떠해야 하느냐? 참된 남자를 중심삼고 남자가 하자는 대로 해주어야 합니다. 가정을 위해 봉사하고, 종족을 위해 봉사하게 되면 그 주위가 전부 박수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느냐? 고생하면서도 여러분을 살려 주고 인류를 해방시켜 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고생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영계에 가서 억만 년을 기다려도 축복을 못 받습니다. 불가능한 것인데, 선생님이 고생해서 가치 있는 축복의 판도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계와 이 지상세계에 영광스러운 것이고 영화로운 것입니다. (16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