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창조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참사랑
1) 참사랑은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중심
하나님은 진리의 대왕, 선의 대왕, 참의 대왕, 사랑의 대왕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본래부터 있었겠어요, 생겨났겠어요? 하나님도 커 나왔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나님의 본성을 닮은 모든 것이 작은 세포에서 자라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커 나왔느냐? 사랑 때문에 커 나왔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커 나왔습니다.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이고, 인간은 그 사랑의 대상입니다. (243-278 : 1993.01.28)
하나님은 참사랑 때문에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은 사람을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창조한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 혼자 못 가집니다. 혼자 사랑을 못 느낍니다. 물론 자체 내에 사랑이 있지만 원만히 화합하는 기쁨이 충만한 사랑을 못 느낍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 피었더라도 향기가 나야 하고, 아무리 향기를 가졌더라도 바람이 불어야 향기가 날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람과 같이 상대적 자극의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210-223 : 1990.12.23)
참사랑은 하나님이 창조할 때의 근원적 힘입니다. 원동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좋아하는 것은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같이 밥도 잡수시고, 눈도 있고, 코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런 분인데, 그 분이 좋아하는 것이 뭐냐 하면, 우리 인간들이 좋아하는 황금덩이가 아닙니다. 그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지식의 대왕이요, 능력의 대왕입니다. (212-295 : 1991.01.08)
참사랑의 깊이는 하나님이 태어날 적부터의 그 밑창까지 포괄한다는 얘기입니다.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기 시작한 근원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깊은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살고도 다 거기까지 못 가니, 저 세계에 가서도 영원히 그것을 향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끼리 싸우고 서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자체도 자라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깊이까지, 출발과 더불어 근원을 같이했다는 것입니다. 근원은 하나님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왜 이성성상이에요? 사랑 때문에 이성성상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246-286 : 1993.04.20)
참사랑은 하나님도 마음대로 행차할 수 있는 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지백체가 사랑을 중심삼고 언제나 표면에서 하나돼도 오케이고, 내면에서 하나돼도 오케이입니다. 북에서나 남에서나 동에서나 서에서나, 하늘나라에서나 지상세계에서나 아무데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화합할 수 있고, 사랑을 중심삼고 자율적으로 화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만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체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적으로 당을 하나님 대신 세우고 완전히 하나되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겠다는 것입니다. (139-P.200 : 1986.01.31)
하나님도 참사랑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복종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는 하나님도 생명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남자나 여자도 참사랑이 있으면 왜 목숨을 바치려고 해요? 사랑이 생명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존재하기 시작했느냐? 사랑 때문에 존재하기 시작했고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었더라면 하나님도 생겨날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모든 것은 쌍쌍제도입니다. 광물세계도 쌍쌍제도이고, 급은 낮지만 양이온과 음이온도 사랑을 표시하면서 엉클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레버런 문이 이 세상에 나와 가지고 역사 이래로 처음 발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참사랑을 절대시하고 그것에 절대 복종하면서 살겠다 하신다는 그 기원을 발표한 것은 레버런 문이 역사상에 처음입니다. 그것은 관념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참사랑을 찾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참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개재시키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개재되지 않고는 참이라는 말, 참이라는 남자, 참이라는 여자, 참이라는 가정, 참이라는 진리, 참이라는 사랑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개재해야만 그것들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대왕이요, 선의 대왕입니다. 참의 대왕입니다. 사랑의 대왕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개재시키지 않은 데는 선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빼 버리고 하는 것은 사기판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개재시킴으로 말미암아 참의 기준, 영원한 기준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301-P.038 : 1999.04.16)
그렇다면 참된 사랑과 거짓 사랑을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느냐? 자기 중심삼고 위하려고 하는 사랑은 악마와 통하는 사랑이요, 상대를 중심삼고 위하려고 하는 사랑은 천지이치와 하나님과 통하는 사랑입니다. 여기에 경계선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주고 주고 또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 90세 된 할머니가 70세가 넘은 아들에게 '얘, 아무개야, 오늘 어디 나가면 차조심 해라!' 하며 여전히 옛날 어릴 때의 아들과 같이 대해 줍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 얘기를 90세가 넘어서 하더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천만 년이 가더라도 지치지 않는 그런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142-P.333 : 1986.03.14)
자기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또 투입하겠다는 자리, 주고 또 주고도 잊어버릴 수 있는 자리에서만 참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천지를 꿰뚫는 것입니다. 죽음의 세계도 뚫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도, 강한 마음이라도 어디든지 뚫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사랑은 비밀의 방도 통합니다. (256-179 : 1994.03.13)
제일 빠른 속도를 가진 것이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일치된 힘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땅 끝에서 하나님도 '오소' 하면 온다는 것입니다. 못 생긴 손녀라도 손가락만 까딱하면 할아버지가 그를 따라갑니다. 사랑이 그렇게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사랑입니다. (301-125 : 1999.04.25)
사랑이란 것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영광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영광을 누린다 할 때는 자기 혼자 있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백만장자가 되어 금밭에 앉아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인연을 완전히 갖추어 가지고 변함없이 행복한 자리에 있는 것을 영광을 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고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완수한 후에, 완성 단계의 기준을 거친 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면 영광은 자동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158-296 : 1968.02.04)
참사랑은 하나님보다도 높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이라도 사랑의 상대는 몇 천만 배 더 훌륭하기를 바란다 그 말입니다. 그 말은 거꾸로 하면, 참사랑의 대상은 하나님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상대가 여러분보다 더 높기를 바라는 것이 사랑입니다. (274-022 : 1995.10.25)
참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영계에 가면 참사랑의 빛깔과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세계가 영계입니다. 그 참사랑에 화하면 안 통하고 안 들리는 데가 없이 다 통합니다.
참사랑의 주인인 하나님의 솜털이 있다면 그 솜털도 참사랑에 속해 있기 때문에 까딱하기만 해도 천하가 금방 다 압니다. 예민하다는 겁니다. 감정이 우주적 감정까지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304-015 : 1999.09.05)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들이 하나님, 창조주 이상의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한 그 길을 밟아 갈 수 있는, 따라갈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어서 하나님주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주의는 참사랑주의인데, 참사랑주의는 타락한 생명을 희생시키고 투입할 수 있는 길을 찾지 않는 한 그 길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하는 역설적인 논리를 가르쳐 줬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268-162 : 1995.03.31)
사랑의 길을 찾는 사람은 어떤 것을 마련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과 부모 그리고 내가 합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머물 수 있는 중심입니다. 내가 그 뜻과 하나될 수 있는 중심입니다. (103-132 : 1979.02.18)
2) 하나님과 참부모와 일체를 이루기 위한 참사랑
본래 마음과 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였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요, 인간의 몸은 그 마음을 담는 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이 인간의 몸을 악마에게 내어 준 것입니다. 그로부터 인간의 몸은 악마의 종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마음입니다. 양심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아니합니다. 하늘의 의를 위해 존재합니다. 양심은 항상 선을 향해 달리려 합니다. 여기에 몸은 반항합니다. 몸은 자기만 편하려 하고, 이기적이며, 본능적 요구에 따라 육욕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양심은 이 몸을 질책하여 마음에 순응케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항상 피나는 갈등과 투쟁이 한몸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을 내 안에 모셔들이지 않고서는 내 몸을 정복할 자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참사랑과 진리의 힘을 중심삼고 주체되는 마음은 대상되는 몸을 거느리고 하나님과 일체이상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가 말하는 완성한 인간입니다. (219-118 : 1991.08.28)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아버지요 우리 인류의 조상은 아들딸이었습니다. 그 참된 사랑이 나오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돼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나되기 위한 원칙이 뭐냐 하면, 순종하는 것밖에 없다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하나되는 날에는 하나님 것이 내 것이요, 하나님이자 나요, 나자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은 참사랑뿐입니다. (091-220 : 1977.02.20)
참사랑에 화하게 될 때 그는 하나님의 몸이 되고 세포가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지체(肢體)가 돼 가지고 한몸과 같은 영원히 사랑을 호흡하고 사랑을 먹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천국이라 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것을 성경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거기에는 사랑이 빠졌습니다. (177-149 : 1988.05.17)
참사람은 참사랑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참사랑은 주는 사랑이며 영원히 센터를 위하겠다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핵심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면 나는 참사랑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123-328 : 1983.01.09)
참사랑은 하나님하고만 관계 맺은 사랑입니다. 자기라든가 대한민국이라든가, 또 세상의 습관성, 풍습, 국민의 전통성, 이런 것이 다 있지만 그와 같은 관계를 맺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하고만 관계를 맺은 사랑입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하고만 관계 맺은 사랑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탄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뿐만이 아니고 가정을 넘어서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지상세계 천상세계까지 그것이 확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타락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환경에 젖은 모든 습관이나 전통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하고,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274-195 : 1995.11.03)
참사랑은 하나님까지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소유권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상대의 것은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파트너는 언제 어디에서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의 주인입니다. (281-192 : 1997.02.13)
참사랑에는 하나님의 몸 마음을 절대적으로 통일시키는,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람과 닮았으면 몸 마음이 있을 것 아니에요? 몸 마음이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있느냐? 지식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돈도 아닙니다. 오직 참사랑, 참사랑만이 하나님의 몸 마음을 완전히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210-132 : 1990.12.17)
우리 인간은 욕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사랑권에 들어가면 욕심이 다 없어집니다. 참사랑권 내에는 상속권이 있어서 사랑의 주체되는 하나님까지도 내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것은 제쳐놓고 하나님의 몸 마음도 내 것이 됩니다. 일체가 됩니다. 하나님과 내가 일체라는 것입니다. (213-076 : 1991.01.14)
참사랑은 하나님의 일체권에 속하는 것, 하나님에게 지배받는 것이지 사탄에게 지배받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타락권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수직인 하나님 심정권의 원형은 남아 있지만, 혈통을 잘못 계승했기 때문에 횡적 원형이 90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75도, 또는 15도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차이에 의해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고민의 쓰라림을 피할 수 없는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183-042 : 1988.10.29)
참사랑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중합니다. 그 안테나에서 강한 전파가 송출되어서 자기 방향을 따라서 만나고, 만지고, 키스하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부모의 안테나입니다. 결코 변하지 않고, 끝내 소멸되지 않는 귀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영계의 선한 영들이 다 참부모를 통해 새로운 자기의 밝은 길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217-264 : 1991.06.02)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것은 참부모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참부모를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일일이 지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은 참부모를 통해서 나오기 때문에 참부모 앞에는 천사세계도 지배받게 되어 있고, 모든 만물세계도 지배받게 돼 있습니다. 세계가 그 사랑권 안에 있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합니다.
참부모는 세계 사람이 천대하는 자리에서 생겨나야 하고, 세계가 반대하는 어려운 자리에서 생겨나야 되고, 만물세계의 어떠한 무엇보다도 귀한 자리에서 생겨나야 됩니다. 천사세계의 천사가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나와야 되고, 하나님이 반대하더라도 극복하고 나와야 그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이상적인 것이 나오게 됩니다. (107-092 : 1980.04.06)
참사랑은 여자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남자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앞에 생명의 씨를 심으려고 남자들이 여자들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여자는 그릇입니다. 완전히 빈 그릇입니다. 빈 그릇이라는 것은 그 그릇에 들어가는 물건과 대등한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259-244 : 1994.04.10)
인간에게 참사랑과 거짓 사랑이라는 것이 생겼는데, 거짓 사랑이 뭐고 참사랑이 뭐냐? 거짓 사랑은 사탄과 관계맺은 것이고, 참사랑은 하나님과 관계맺은 것입니다. 그래, 남자도 여자도 참사랑 원해요? 본래는 참사랑을 원하는 게 인간이 아닙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참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189-075 : 1989.03.19)
여자가 여왕이 되고 남자가 왕이 되는 데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되게 되어 있습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여왕 또는 남자 왕이 생겨나게 되어 있지, 참사랑이 없으면 생겨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참사랑은 최고의 자리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둘이 딱 하나되는 여기에 하나님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결혼은 최고의 남성세계 여성세계를 이루어 하나님을 점령하기 위한 것입니다. 두 세계를 점령하기 위한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는 절반밖에 안 되니 완성을 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260-154 : 1994.05.02)
하나님과 사람이 어디서 하나되는 것이냐? 결혼식 때 하나 되는 것입니다. 본연의 참사랑의 중심인 하나님을 중심하고 딱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아담 마음에 들어가고 해와 마음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결혼식은 하나님 몸의 결혼식입니다. 하나님의 결혼식입니다.
외적인 자리가 몸이요, 내적인 자리가 마음입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사랑이고, 하나님의 생명이 내 생명이고. 하나님의 핏줄이 내 핏줄입니다. (217-196 : 1991.05.27)
부부는 다 다른 데서 와서 맺어지지요? 그렇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모가 되어서 나를 낳아 부자의 인연을 남기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횡적인 요소 중에서 하나는 딴 데서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는 갈라져도, 부자의 관계는 못 갈라집니다. 종적인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천지간에 본연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인류역사를 이어줄 수 있는 혈통적 전수의 길은 수직의 자리 하나밖에 없습니다. 수직의 자리가 왜 필요해요? 수직에 들어가면 그림자가 없어집니다. 오정(午正)이 되면 그림자가 없어지지요? 하나님과 인간이 이상적인 사랑의 이상을 중심삼은 수직관계가 안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 안에서 인간과 하나님이 참사랑을 중심삼고 수직적인 직단거리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이 뭐냐? 이렇게 연결될 수 있는 관계가 부자의 관계입니다. 직단거리가 수직 외에는 없습니다. 조금만 틀려도 수직이 아닙니다. 직단거리니까 수직입니다. 그 수직을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는 동서로 직단거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형제도 전후로 직단거리입니다. 이것이 90각도입니다.
이것이 면으로 보면 24면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런 이상적 구상력을 가지셨기 때문에 수직과 수평이 90각도를 이룬, 전후 좌우간 모두 90각도를 이룬 구형의 중앙 복판에, 우주 복판에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 중심삼고 계시냐? 참사랑을 중심삼고 계십니다. 하나님에게 물어 보면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98-298 : 1990.02.05)
참사랑은 통하면 절대적이 될 수 있고, 유일적이 될 수 있고, 영원불변이 될 수 있습니다. 참사랑에 일치된 사람은 하나님과 상대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유일적인 하나님, 절대적인 하나님, 불변적인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을 언제나 상대할 수 있는 환경권 내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304-286 : 1999.11.09)
우리 통일교인끼리는 자기 형제보다 더 가깝습니다. 이처럼 앞으로 세계는 전후의 세계가 하나되고, 그 다음엔 부부가 하나되고, 좌우의 세계가 하나돼야 합니다. 상하?전후?좌우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상하?전후?좌우, 이게 뭐냐? 상하는 자식 된 도리, 전후는 형제 된 도리, 그 다음에 좌우는 부부의 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완성하게 되면 영계의 하나님 자리로 올라가 하나님으로 돌아가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그 놀음은 참사랑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참가정은 이와 같은 공식적 기준에 훈련된 완성한 아담 가정을 확대시켜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 세계를 확대시키게 되면 동서가 하나되고, 남자 여자가 하나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남자 중심삼고, 주체 중심삼고 상대가 하나되어야 하고, 전후, 상하가 하나돼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세계가 틀림없이 원리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참사랑으로 말미암아 완결을 보는 것입니다. (223-321 : 1991.11.06)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사랑의 길이 천국 가는 길입니다. 거짓 사랑의 종착지가 소위 지옥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종교는 그것을 확실하게 몰랐습니다. 지옥과 천국의 바운더리를 몰랐던 것입니다.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타락한 사랑을 복귀해서 재출발하는 것이 천국의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278-030 : 1996.04.28)
3) 하나님 사랑의 절대대상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해와
새로운 만물을 지어놓은 그 에덴, 새로운 만물과 더불어 영원복락을 향유해야 할 주인공 아담과 해와, 그 아담과 해와를 세워놓고 새로운 심정적인 이념을 품고 바라보시던 하나님, 그 하나님에게는 어느 한 순간 귀하지 않은 때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거동하는 그 한 순간 순간은 말할 수 없이 심각한 순간이요, 말할 수 없이 귀한 인연의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자라나고 있는 아담과 해와는 날이 감에 따라 이지와 지능이 밝아져 하나님의 본성을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는 새로운 세계를 대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서 볼 수 있으며, 들을 수 있으며, 만질 수 있는 자격자임에 틀림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바라보시면서 그들의 움직임이 하나님 자신의 움직임이고,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님 자신의 말이 되고, 또한 그들이 듣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이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한 관계와 인연권내에 있는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이 심중으로 그리던, 하나님의 전체를 대신한 존재였음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위하여 지으신 만물을 품고 계시는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세워 놓고 어떠한 한날을 고대하고 그리워하셨던가? 여섯째날까지 만물 지으시기를 다 마치셨으나 아담과 해와를 완성된 모습으로 창조하지 않으신 데에는 필시 아담과 해와와 하나님 사이에는 무엇이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지어 놓은 상태의 아담과 해와도 아니요,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 기간도 아니요, 아담과 해와를 통하여 찾아 이루고자 하시는 한날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한날을 맞이하는 그 순간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며, 아담과 해와도 기뻐할 것이며, 만물도 기뻐할 것이기에 만물도 그날을 고대하고 인간도 그날을 고대하고 하나님도 그날을 고대했음에 틀림없습니다. (008-267 : 1960.02.07)
우리의 선조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자라났고, 하나님의 지성지대(至聖至大)하신 사랑의 심정 밑에서 키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라는 모습이 귀엽고 사는 환경이 자유스러웠다 할지라도 그들이 지니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허락하여 주신 만물이 없었던 것도 아니요, 심부름꾼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맺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한입니다.
하나님이 무한한 창조의 이념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소망의 세계를 세우시고, 아담과 해와로 말미암아 천하만상이 자유자재로 주관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고자 했던 것은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외적인 어떠한 조건이 귀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심혈이 그들에게 침투되어 있고, 당신의 뼈살이 잠재해 있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심정의 흐름이 아담과 해와를 향하고 있었던 연고로, 아담과 해와에게 온 천지만물을 허락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만물을 저버린 것도 아니요, 내려주신 축복을 저버린 것도 아니요, 저버려서는 안 될 하나의 원칙을 저버렸으니 그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반입니다. 심정의 기반을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바라볼 적마다 소망의 심정이 불타올랐고, 그들을 볼 적마다 그들이 자아완성하여 행복한 생활을 할 것을 생각하시며 행복의 감정이 불타올랐고,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만물을 그들 자신이 지은 것처럼 주관하고, 즐거워하며 쓰다듬어 줄 것을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의 심정은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다 끊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선조가 저끄러 놓은 죄상 중에서도 용납 받지 못할 크나큰 죄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왜? 본래 인간을 영원의 기준인 원리적인 법도에 의하여 지으신 연고로 그 기준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저버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였으나, 그들을 저버리면 6일 간 지으신 전피조세계의 원칙을 저버리는 동시에 영원의 기준까지 저버리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 되고, 영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실존까지 침해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이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해와를 다시 한번 구원하는 섭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009-049 : 1960.04.10)
사탄은 해와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나아가서는 아담까지 타락시켰습니다. 즉 해와가 아담을 주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것을 탕감시키기 위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유린당해 왔던 것입니다. 여자들이 섭섭하겠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아담과 해와를 만들었느냐? 성경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3:1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몸뚱이가 타락해서 구원역사를 거쳐야 할 사람들도 몸뚱이를 뭐라고 해요? 하나님의 성전이라 합니다. 성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타락하여 구원역사를 거쳐야 할 사람이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이 된다 하더라도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과 비교하면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가 계시겠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들어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은 대관절 무엇이냐? 아담과 해와가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라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을 주관할 수가 없습니다. 즉, 천지를 창조한 기술자와 같은 실력이 없어서는 주관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주관의 능력을 주실 것이냐?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이 아담의 몸과 마음에 들어가서 아담을 컨트롤해야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몸이 되도록 만든 아담이 인간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은 실체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의 세계를 주관하기 위해서는 실체, 즉 몸이 있어야만 보고 듣고 하겠기에 하나님의 실체가 되도록 창조한 존재가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누구냐?
해와는 아담의 아내입니다. 실체의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실체를 쓴 하나님이라면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아내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아내를 얻는다니 기가 막힌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담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이요,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아내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담과 해와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내재적인 성품을 그대로 닮아서 한몸을 이루어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딸이 아담과 해와의 아들딸이자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통해서 아담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궤도에서 사랑의 인연을 세우지 못한 것이 억천만대의 한의 역사요, 오늘날 이 비참한 타락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022-279 : 1969.05.04)
하나님이 왕이라면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제1대 왕자 왕녀입니다. 하나님의 상대로서, 천주의 모든 것을 상속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제1왕자와 제1왕녀가 우리의 첫조상인 아담과 해와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왕족심정권(王族心情圈)에 일치하는 생애를 마치고 들어가는 데가 천국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역사 이래 어떤 종교가도, 어떤 사람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기성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믿으면 금방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그런 바보 같은 말은 없습니다. 심정권, 장자권에 있어서 아담과 해와는 제1대의 장자와 장녀였습니다. 제1대의 참부모요, 지상왕국의 제1대의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그 왕을 중심삼은 왕족이 지상에 남아 있다면, 지금 이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나님의 이상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텐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권을 중심삼고 수백, 수천의 민족들이 분열되고, 싸움의 와중에서 왕족권을 제압해 온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의 결론입니다. (228-169 : 1992.03.27)
무형의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남성격 성품을 실체로 전개해 놓은 것이, 하나님의 내적 성품을 보이게 실체로 전개해 상대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담이고, 여성격 성품을, 하나님의 내적인 성품을 실체로 전개해 놓은 것이 해와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내성적인 모든 것을 투입하여 실체화시킨 것이 인간의 몸입니다. (143-080 : 1986.03.16)
해와 때문에 본래 이상적인 아담과 해와 둘 다 깨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 후아담으로 온 예수 앞에 타락한 해와, 즉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가 될 해와를 복귀시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하는 데는 마리아 혼자 해서는 안 됩니다. 창조주께서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를 지을 때도 천사장이 협조했기 때문에, 복귀역사 완성을 위해서 후아담을 본따 해와를 지을 때도 천사장이 협조를 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해와가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와 복귀된 해와가 하나되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천사와 천사장의 입장인 종들이 아담의 입장인 예수를 중심삼고 해와의 입장인 딸을 창조했다면 그 딸은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딸이 아니겠어요? 마리아와 요셉이 그 하나님의 딸과 예수를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딸과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주관성 전도 문제는 해와가 저질러 놓은 일이기 때문에 여자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가 천사장도 복귀해 줘야 하고, 아담도 복귀해 줘야 하고, 해와도 타락 전의 해와로 복귀해야 합니다. 마리아가 이 전부를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들은 주관성을 전도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천사장과 아담과 해와 이 셋을 복귀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까지 전부 찾아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과 인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소원해 나오신 뜻과 인류가 앞으로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기원이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인류의 목적점이 되어 왔고 하나님의 목적점이 되어 왔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사랑을 맺고 사랑을 완성하게 되면, 거기에서 완전한 것으로의 출발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관성 전도를 반드시 해야 됩니다. (038-070 : 1971.01.01)
만약에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아담과 해와가 이룬 가정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가정임과 동시에 인류시조에게 있어서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터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통이라든가 낙망이라든가 혹은 탄식하는 것들을 보고 느끼지 아니하고, 기쁨과 행복만을 느끼며 영원을 소망삼고 하나님의 직접주관권내에서 하나님의 주관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런 것 전체가 저끄러졌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시 복귀해야 하는데 그것을 결코 그냥 그대로 복귀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창조원칙에 따라서 복귀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를 보면 재창조역사를 통해서 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천사장이 있고, 해와가 있고, 아담이 있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四位)의 형태를 갖춘 자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타락을 했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재창조원칙을 통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복귀역사는 남자가 담당해 나왔던 것입니다. (046-196 : 1971.08.15)
유대 민족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홀로 국가와 세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수는 가족을 떠나야 했고, 외롭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타락한 아담과 해와의 구원을 위해 타락하지 않은 형제가 희생해야 했듯이,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타락한 아담과 해와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제물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그들을 축복해 주시도록 청을 드리고 빌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과 타락한 아담과 해와 사이에 중보자로 섰던 것입니다. 예수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전세계 인류의 구원을 위한 공식적인 길을 갔습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아담이 되었던 것입니다. (052-066 : 1971.12.22)
만일 아담과 해와가 성숙하여 완성하였더라면 그들은 부부의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담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종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고, 해와는 아버지와 딸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아담과 해와가 소망했던 자리는 하나되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해와도 하나가 되어 아담을 소망하였을 것입니다.
횡적으로는 하나님과 아담, 그리고 하나님과 해와 셋이 있습니다. 이 셋은 완전히 하나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그들이 만나겠습니까? 저 위에서, 아니면 이 아래에서? 아닙니다. 그들은 횡적으로 함께 만나서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아담과 해와가 횡적으로 하나가 되었더라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완전히 일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그들을 떼어놓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를 얻은 후에야 비로소 사랑의 자리에 대한 욕망이 생겨납니다. 남자와 여자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목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아담 그리고 하나님과 해와가 같이 있고 싶어하는 유일한 자리이기 때문에 최고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아담, 그리고 하나님과 해와가 하나가 될 수 없다면, 그들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담과 해와 사이의 수수관계가 소원(疎遠)해집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종적으로뿐만 아니라 횡적으로도 창조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담과 해와를 중심한 창조이상,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고 해와가 하나님과 일체가 되면, 그들 사이에서는 아무도 내가 너보다 높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높고 낮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완전한 하나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과 해와의 사이 그리고 하나님과 아담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052-261 : 1971.01.02)
아담과 해와가 성숙해 가지고 성혼식을 했으면 그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직접적인 사랑권내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심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 인간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담과 해와가 하나됐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몸이자, 인류의 부모이자, 하나님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상대가 없이 기뻐한다면 미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은 상대적 존재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한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가 한몸이 되어 있으면, 그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태어난 아들딸은 아담과 해와의 아들딸이자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나님의 혈족으로서 이 땅 위에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고, 세계를 이루었을 것이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진 그 인연은 끊을 자가 없기 때문에, 그 나라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기반으로 한 지상천국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054-064 : 1972.03.11)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담이 해와를 사랑하되 하나님 대신 사랑하는 것이요, 해와도 아담을 사랑하되 하나님 대신 사랑한다는 관념이 여기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생활은 하나님의 생활을 표시하는 것이 됩니다. 아담과 해와가 좋아하면 하나님도 내적으로 좋아하고, 아담과 해와가 슬퍼하면 하나님도 내적으로 슬픔을 같이 느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것이요, 아담의 것이요, 해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095-248 : 1977.12.04)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좌익 우익이 없습니다. 통일입니다. 두익사상(頭翼思想)과 하나님주의가 필요 없이 그냥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필요 없습니다. 아담과 해와에서부터 두익사상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지, 다시 돌아갈 무엇이 없습니다. 모두 천국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늘나라의 왕자 왕녀로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왕손이었지만,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몸입니다. 해와는 하나님의 실체 부인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종적인 아버지가 됩니다. 수직적인 아버지, 종적인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그 두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본연적 기준이 있기 때문에, 타락했을망정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창조주는 종적인 부모로서 횡적인 부모를 종적인 사랑의 상대로 지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파트너입니다. 하나님의 상대입니다. 알파와 오메가라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시작했으니 돌아가면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27-274 : 1992.02.14)
아담과 해와가 누구를 중심삼고 결혼생활을 했겠어요? 하나님이 그것을 간섭했겠어요? 아담과 해와가 아들딸을 낳았어요, 안 낳았어요? 낳았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가인 아벨을 낳았는데 하나님이 '얘, 아담과 해와야! 너희들, 같이 살아서 아들딸을 낳아라!' 해서 낳은 것이 가인 아벨이에요, 자기 멋대로 살면서 낳은 것이 가인 아벨이에요? 자기들 멋대로 해서 낳은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인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사탄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사탄을 중심삼고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234-299 : 1992.08.27)
한반도가 아담 국가라면 일본은 해와 국가입니다. 한국이 왜 아담 국가냐? 지리적으로 볼 때, 한반도는 남자의 생식기와 똑같습니다. 로마가 딱 그렇습니다. 지중해는 여자의 음부와 마찬가지이고 이태리는 남자의 생식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둘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역은 언제나 문화가 떠나지 못합니다. 하나의 문화가 귀착해 가지고는 떠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기반 위에 선 것과 같은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지정학적인 모든 것을 보더라도 로마와 지중해는 남녀가 합한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해서 종합적인 문화시대가 찾아옵니다. 이것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할 때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자리이니 만큼, 그 주변 나라는 같이 타락한 세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아담과 해와, 세 천사장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을 중심삼고 세 천사장은 중국과 소련과 미국입니다. 미국은 하늘편적인 천사장이고, 사탄편적인 천사장이 중국과 소련입니다. 대만과 인도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딱 그와 같은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가정을 잃어버린 그때에 아담과 해와 자신을 잃어버리고 세 천사장이 모두 타락했습니다. 그것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로마 교황청이 하지 못한 것을 수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이 오시는 주님을 준비하기 위한 뜻을 가졌지만 실패했습니다. (235-080 : 1992.08.29)
일본은 사탄편 나라입니다. 아마데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일본에서 섬기는 여성신)의 나라를 하늘나라의 해와로 몽땅 돌려야 됩니다. 차자권을 일본사람 외에 제2세들 앞에 빼앗아 돌려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아담과 해와 국가니 만큼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이 한일 합병할 때는 총칼을 가지고 하나 만들려고 했지만 문총재는 자유스런 환경에서 사랑으로 하나 만든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여자는 하나고 남자는 다섯인데, 아담이 눈이 멍청해 가지고 여자를 빼앗길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아들딸을 전부 다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가져야 해와를 찾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몽땅 결혼시켰기 때문에 해와는 갈 데가 없습니다. 일본 자체가 국가적으로 이런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대표한 해와 국가가 출생해서 아담 국가와 하나되는 날에는 천사장 국가인 미국까지 가담해 세 나라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265-178 : 1994.11.20)
성약시대(成約時代)라 할 때 성약이라는 것은 아담과 해와를 창조해서 아담과 해와의 가정을 완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약속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해와의 본연적인 기준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타락의 혈족,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50억 인류와 역사시대에 영계에 간 수많은 선조들까지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역사시대에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들이고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 지나가 버리고, 뜻을 이룰 수 있는 성약시대에 미치지 못하는 충성이요 정성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짓고 아담을 따서 해와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져야 할 것은 아담을 다시 만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들어야 하고, 땅은 해와를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와를 중심삼고 가인 아벨 두 아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찾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씨를 뿌렸기 때문에 그것을 거두어야 합니다. 어머니를 중심삼고 아벨은 오른편이요, 가인은 왼편입니다. 삼각형의 선과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땅에서 그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해방할 수 있느냐? 개인적으로 가인 아벨을 뿌렸으니,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어머니와 아들딸이 심었으니 이것을 세계적으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44-233 : 1993.02.14)
참사랑의 초석을 누가 놓았느냐? 인간이 놓았느냐, 하나님이 놓았느냐 하는 문제의 답은 하나님입니다. 인간이 나기 전에 광물을 짓고 식물을 짓고 곤충을 짓고 전부 다 지어 놓은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맨 나중에 인간을 지었고, 맨 나중에 지은 것이 해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은 누구와 연결되느냐? 여자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초석을 놓은 목적은 땅 위에서 아담과 해와가 하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해와는 횡적인 면에서 플러스, 마이너스를 중심삼고 어디에 가 합하느냐? 남자, 여자가 합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오목, 볼록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적 존재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담의 마음에 성상이 들어가고, 해와의 마음에 형상이 들어가 그들이 결혼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 몸 마음이 하나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이 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