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참사랑이란
1) 사랑은 평화와 행복의 원천
사랑은 가지면 가질수록 기쁘고 한 번 가지면 좋아서 놓고 싶지 않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생명의 근원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내 생명의 동기나 과정, 생명의 종말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사랑에서 태어났으니 사랑의 길을 가다가 죽을 때도 사랑을 위해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빛깔은 어떤 색일까요? 밤에는 까맣고, 낮에는 하얗고, 저녁 때쯤이면 노랗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의 빛깔이 어떨 것 같아요? 사랑의 중심 빛깔에는 평화와 통일, 인류의 평등사상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가다가는 불에 타서 죽고 맙니다. (통일세계 1984. 2-19)
사랑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얼굴에 꽃이 핍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느냐? 사랑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총이 아닙니다. 위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우주의 주인되는 사랑, 우주의 중심되는 사랑, 우주의 원천되는 참사랑입니다.
사랑은 공익성을 띤 무형의 질서요, 평화요, 행복의 요체입니다. 세계 인류를 위한 공동의 재산이요, 하나님의 의지와 힘의 상징입니다.
사랑은 최고의 가치입니다. 참사랑만 끌고 가면 하나님도 따라오고, 세계도 따라오고, 다 따라옵니다. 사랑의 자리에 서면 모든 것이 다 따라옵니다. (219-22)
참사랑이란 영원히 같이 있더라도 좋기만 한 사랑입니다. 영원히 같이 있더라도 같이 살더라도, 같이 보더라도, 같이 말하더라도, 같이 느끼더라도, 같이 듣더라도 좋기만 한 사랑입니다. (통일세계 1980. 2-10)
사랑은 만민이 좋아하는 사랑이요, 만민이 환영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 가운데서 태어나고싶고 살고싶고 죽고싶어 합니다.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193-138)
사랑은 작다면 지극히 작은 것이요, 크다면 지극히 큰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눈만 한 번 깜박여도, 그것이 천지가 뒤집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 방긋 한 번 웃는 표정만 지어도 천지가 들락날락하는 것을 느낍니다. 예민하다면 그렇게 예민하고, 작다면 그렇게 작고, 크다면 그렇게 크고, 보인다면 보이고, 안 보인다면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 경계선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에 점령되어 있음으로 말 한 마디 하더라도 사랑을 중심삼고 하려 합니다. (51-163)
사랑의 힘은 원자탄의 위력보다 크고 위대합니다. 사랑은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새 생명으로 부활시키는 힘을 부여하지만, 원자탄은 인간에게 오직 죽음만을 안겨 줄 뿐입니다. 원자탄은 창조가 아니라 심판이며, 파멸입니다. 세계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것은 무력을 수반한 힘이 아니라 참사랑인 것입니다. (175-197)
나라마다 국경이 있고 문화배경이 있고 풍습이 있지만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205-250)
인류 역사에 있어서 참사랑을 완성하면 정치?경제?문화 문제는 물론이고 모든 분쟁과 갈등 문제도 깨끗이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난문제들은 참사랑의 완성으로만이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한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9-16)
참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참사랑은 어디 가야 만날 수가 있느냐? 참사랑은 밤낮없이 불변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참사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참사랑이 나 개인의 소유일 수만은 없습니다. 참사랑은 만인의 것이며, 우주 공유의 것입니다. 참사랑은 가정?사회, 국가, 세계?우주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6)
참사랑이 완성됐다면 감응의 하나님께서는 그 참사랑에 홀딱 빠져도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참사랑 가운데서라면 어떤 일이 생겨나도 마냥 좋아하실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참사랑의 세계에서 인류가 산다고 한다면 일생동안 후회없는 행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또한 세상에 전쟁의 역사도 없을 것이며, 불만이나 불행이 없는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5)
일생 동안 사랑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는 만물도 축복을 보낼 것입니다. 꽃도 그 집 뜨락에서 피기 원할 것이며, 한 마리 새도 그 집 정원수에 집을 짓고 노래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것은 만물의 가치를 알고 만물을 진정으로 사랑해 주기 때문입니다. (통일세계 1982. 8-16)
하나님도 사랑을 소망하고 사랑이 크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됩니다. 그래야 이론에 맞는 겁니다. 하나님도 소망으로 바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보다 큰 것입니다. 모든 생명력의 중심인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상적인 요건의 중심 위치를 차지하고, 하나님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남아 있습니다. 사랑 가운데는 돈도 있고, 지식도 있고, 권력도 있습니다. 사랑의 권력이 만년 권력입니다. 진짜 사랑을 아는 사람은 천상세계에 가서 배울 것이 없습니다. (202-85)
참사랑이 뭐냐? 참사랑은 종횡을 통해 90도 각도를 가지고 어디든지 각도가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동양 집에도 맞고, 서양 집에도 맞고, 오색인종, 문화 배경, 모든 종교 배경이 전부 다 다르다 하더라도 같이 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참사랑입니다. (180-86)
우주는 축소되었다가 확장되는 작용을 합니다. 숨을 쉬는 겁니다. 축소시키고 확장시키는 그런 작용을 무엇이 조정하느냐. 정치 권력이 아닙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사랑이 하는 것입니다. (121-104)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날아가는 새를 보고도 '아 저 새는 왜 지지배배 하지? 아,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는구나' 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시가 읊어지고 문학작품이 나옵니다. 우리들 인생살이의 역사도 자연속에 어울려 사랑의 교향곡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입김도, 사랑의 손길도, 사랑의 노랫소리도, 사랑의 말소리도 모두 좋은 것입니다. (112-258)
참사랑 앞에는 어떠한 악한 힘도 녹아납니다. 그것은 보기만 해도 좋고 스치기만 해도 좋습니다.
사람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내용이 되는 요소는 생명보다 앞서 작동하고 근원이 되어야 할 사랑임에 틀림없습니다. (통일세계 1980. 2-10)
사랑을 위해 사는 일생은 생산적인 결실의 삶이요, 사랑을 모르고 사는 일생은 소모적인 멸망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간도 우주도 사랑을 위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이 본연의 삶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 7-18)
참된 사랑은 절대적이요, 불변이요,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사랑에는 발전도 없고 그 어떤 혁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원형 그대로가 완전한 것이고 불변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고 절대적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18)
사랑은 자연스러운 가운데, 최고의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131-302)
인간이 사랑의 눈을 뜨게 되면 자신의 몸과 마음은 우주 속에서 입체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미소를 짓게 되며, 봄동산에 피어나는 꽃 속에 아름다움을 가누어 보고 싶어 한송이 꽃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28)
세상에서 제일 빠른 작용은 사랑의 작용입니다. 이 땅 끝과 저 땅 끝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 땅 끝을 넘어서서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러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112-204)
은혜받은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통할 수 있고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근원적인 사랑의 감정을 중심으로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인체에 있는 여러 기관들도 사랑이란 한 목적을 중심으로 생겨났습니다. 눈은 사랑을 찾기 위해서, 코는 사랑의 냄새를 맡기 위해서, 귀는 사랑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듣는 소리 중에서 들어도 들어도 싫지 않고 좋은 소리는 사랑한다는 소리입니다. 모든 존재가 다 좋아할 수 있는 주제는 사랑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 사랑이란 대우주가 환영할 수 있는 참사랑입니다. (108-46)
사랑의 속성은 좋은 것만 사랑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낮은 것도 높은 것 이상으로 사랑할 줄 아는 것이 참사랑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타당한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도 꼼짝 못하게 하는 권위를 가졌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에는 약하시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인간의 사랑냄새를 맡는다면 얼굴 가득히 웃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143-85)
하나님도 사랑을 소망하고 사랑이 크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이론에 맞는 겁니다. 하나님도 소망으로 바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보다 큰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 무엇이냐?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참사랑의 길이며, 참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 보고 듣고 먹고 만져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114-12)
사랑을 통해 살게 될 때 인간세계는 행복이 시작됩니다. 인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완성이라든가 이상 실현은 사랑의 기준을 떠나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만물은 사랑을 바탕으로 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조된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근원되는 사랑을 중심삼고 시작되었습니다. (162-51)
세상의 모든 것은 한 번 주면 없어지지만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 많이 돌아옵니다. 그래서 사랑을 좋아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줄 수 있고 채울 수 있어서 언제나 기쁘고 즐거울 수 있지만, 돈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주고나면 없어지고, 권력이 아무리 좋아도 쓰면 닳아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주면 줄수록 무한정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129-265)
참사랑이 뭐냐? 할머니 할아버지라도 영원히 죽어도 놓고 못사는 것입니다. 그걸 잡기만 하면 영원히 좋아서 놓고 못사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늙은이는 물론이고 남자 여자도, 물론이고 청소년도 물론입니다. (148-317)
할아버지들이 사랑의 맛을 보고는 '아이구, 옛날에 먹던 것 싫어! 오늘날 문명의 향취와는 달라! 싫어! 사랑 냄새 집어치우고 다른 냄새면 좋겠다!' 이러겠습니까? 모든 세포가 '하, 맛있다!' 할 수 있는 맛은 빵도 아니고 밥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것의 핵을, 초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수(精髓)와 같은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한 사랑으로 상대하면 어디든 무사통과입니다. (148-318)
참사랑이란 영원히 계속되는 사랑입니다. 봄에도 그 사랑, 여름에도 그 사랑, 가을에도 그 사랑, 겨울에도 그 사랑, 소년시대에도 그 사랑, 장년시대에도 그 사랑, 노년시대에도 그 사랑, 영원한 세계인 영계에 가서도 그 사랑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194-303)
사랑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을 통해서만이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나 인간에게나 사랑은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조화를 이루면 원형운동을 이루게 됩니다. 사랑으로 일체가 되고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면, 하나님은 내려오고 인간은 올라가게 되어 중간에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원형의 구심점이 되어 구형운동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구심점은 사랑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생명이 태동하는 자리이며, 평등주의와 공동주의의 시발점인 것입니다. 그곳에는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모든 작용과 포용하는 힘은 사랑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 7-26)
사랑은 혼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라는 것도 한 나라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국가와의 사이에서 성립되는 상대적 관계를 말합니다. 상대방과 동등한 상대적 관계를 맺으면서 사랑할 수 있어야 참된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자유도 그렇습니다. 혼자서는 진정한 자유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사랑 속에서 사랑과 더불어 얻어지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입니다. 참된 사랑 속에서는 설사 채찍을 가지고 독재를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구속이 아니고 더 진한 기쁨과 희열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주는 것이고 자기가 희생해서 남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일세계 1986. 6-29, 미래의 주인공-198)
사랑이란 내 몸 마음이 자동적으로 하나되는 그 중심 자리의 기둥입니다. 개인, 가정, 종족이 같은 점, 국가, 세계, 천주?하나님이 같은 중심, 한 기둥에 자리합니다. 그 중심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사랑의 자리는 영원한 정착점입니다. (230-13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갈 수 없다'고 한 예수님 말씀 가운데 하나가 빠졌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랑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사랑이니…'해야 되는데 사랑이 빠졌습니다. 이것을 성경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기독교인들은 '오, 불경스러운지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물어 보면 '그렇고 말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을 좋아합니다. 사랑 중에서도 참사랑을 좋아합니다. (172-326)
사랑은 자기를 백퍼센트 투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사랑 때문에 모두 백퍼센트 투입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은 위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189-223)
하나님은 독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위해 투입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앞에 있는 것은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만년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위하는 천리의 존재세계 앞에 자기 스스로 존재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위하는 데서만 동서양을 통할 수 있고 고금을 통할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해 주고 또 주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시에 자체를 소모시키던 입장과 일치됩니다. 나를 투입한다는 것은 제2의 나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이 창조할 때 자신을 투입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재창조역사는 탕감복귀노정이고, 탕감은 재창조역사를 통해 하기 때문에, 자신을 투입하는 데서만이 재창조가 벌어집니다. 투입하고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 참사랑 논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위하는 데는 망하지 않습니다. 작은 데서 큰 것으로 해 가지고 큰 것이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느냐 하면 안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225-15)
사랑은 주고 나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도 더 주고 싶은데 못 주어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런 사랑입니다. 주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진정한 사랑의 주인입니다.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 큰 것으로 보태집니다. 또한 작용하면 할수록 들어가는 힘보다 나오는 힘이 더 큽니다.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 흥하는 법은 없습니다. (164-322)
사랑에는 소모가 없습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집니다. 역학의 원칙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소모되는 것이지만, 참사랑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소모가 안 되고 커갑니다. (114-67)
사랑의 본질은 위하려고 할 때는 커지지만 자기를 위하라고 할 때는 점점점 더 작아집니다. (164-321)
참된 사랑은 무엇이냐?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주고 또 주고, 또 주는 것입니다. (240-300)
사랑의 세계는 주고 주고 주더라도 무한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121-173)
사랑이란 말은 참 위대합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탕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억만금의 빚이 있다고 해도 사랑의 말 한마디면 탕감하고도 남습니다. (227-254)
무한대의 이 우주를 중심삼고 주름잡고 살 수 있는 권한은 참사랑의 집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위하는 데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대주재자이시고 위대하지만 사랑앞에는 머리를 숙이는 겁니다. (48-149)
사랑은 하나님도 홀로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기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자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자라 올라가는 것입니다. (57-120)
참사랑이란 뿌리를 어디에 두고 하는 말이냐?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한 분이라도 그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고 있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참사랑의 주인공인데도 그 사랑의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뿌리를 심겠다고 하십니다. (177-269)
사랑은 주면 줄수록 생기는 것이요 끝이 안 나는 것입니다. 더 가중적으로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모두 끝이 납니다. 돈도 끝이 나는 것이요, 지식도 끝이 나는 것이요, 권력도 끝이 나는 것입니다.
세상 만사의 모든 인간 사정, 인정을 통한 것은 다 끝이 나지만, 영원한 참사랑은 아무리 주더라도 끝이 나지 않습니다. 더 무한에 가까울 수 있는 내용이 영속적으로 계속되는 놀라운 것입니다. (121-242)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를 중심으로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에게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 없이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145-215)
사랑은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났더라도 혼자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주체가 있으면 대상과의 관계에서 설정되기 때문에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자기 중심으로 사랑을 이룬다면 자극과 충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여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219-15)
우주의 근본은 인간이고, 인간의 근본은 생명입니다. 생명의 근본은 사랑이고, 사랑의 근본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혼자 있어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지라면 그 사랑에 상대되는 자격을 갖고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통일세계 1970. 10-14)
사랑이란 말은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희망이란 말도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생명도 혼자 독단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입장에서 나옵니다. (69-61)
자, 하나 물어 봅시다.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히 남겨야 할 것이 있다면 생명과 사랑을 남겨야 됩니다. 그러면 생명이 먼저예요, 사랑이 먼저예요? 어떤 거예요? 하나님에게는 존재하기 전부터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해 가지고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생명이 먼저이고 사랑이 두 번째이고, 인간에게는 사랑이 첫 번째이고 생명이 두 번째입니다. (165-75)
하나님이 사람을 어떤 존재로 지었느냐, 하나님의 절대 유일의 가치가 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자로 지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 사랑의 상대권을 갖추어 남자를 지었고 여자를 지었습니다. 사람은 사랑에서 나서 사랑에서 커서, 사랑에서 살다가 사랑에서 죽습니다. 그런데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되시는 하나님이 영원, 불변, 유일하니까 그 앞에 대상적 사랑의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영생하는 겁니다. (89-68)
아담과 해와를 지은 목적은 기쁘기 위해서입니다. 보고서 기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말하고서 기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만져보고서 기쁘기 위한 것이 아닌 사랑을 중심으로 기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기쁨을 성사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한 것입니다. (114-12)
하나님은 절대적 존재이시지만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상대자는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자로서 인간이 완성된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 하나님은 행복한 하나님, 기쁨의 이상을 찾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137-85)
하나님의 꿈은 단 한가지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 이상의 실현은 하나님 혼자서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이나 행복, 기쁨 등은 한 개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권이 없이는 절대로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161-136)
사랑은 어디서부터 나오느냐, 상대로부터 나타납니다. 상대가 못생기고 미우면 사랑도 후퇴하려 하고, 상대가 곱고 좋으면 사랑의 작용도 그만큼 빨라집니다. 상대의 말?아름다움?냄새?맛 등 상대의 요소에 따라 사랑의 작용이 결정되게 됩니다. (1982. 10. 29)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가? 나에게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상대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내가 머리를 숙이고 상대를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하여 살라' 고 하는 천리가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극히 고귀한 것이 나에게로 찾아오는데, 그것을 받으려면 높이고 위해야 한다는 '위하는 철학'을 이루어야 합니다. (1986. 3. 14)
내가 살아 움직이는 것, 내가 활동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냐? 사랑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구현 때문에, 사랑을 이루어야 한다는 목적에 의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이 참사랑의 구현에 있으니 인간의 존재가치도 이 참사랑에 의해 결정되어지게 됩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사람은 자기의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보다 몇천 배 아니 무한대의 가치적인 존재로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당신이 사랑하는 상대인 인간이 무한한 가치적 존재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완성하면 신성(神性)을 이루고 하늘아버지의 온전함같이 온전하여 하나님적 가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223-128)
참사랑이란 무엇인가? 상대를 만나서 백년 천년 같이 있고 싶고, 영원히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랑입니다. 그곳에는 지옥이 있을 수 없고, 사탄이 넘볼 수도 없습니다. (사보 42-8)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의 파트너를 구한다고 하면 누구를 갖다 세울 것이냐? 바로 인간입니다. 따라서 창조주의 영원한 사랑과 하나된 사랑의 파트너는 영생한다는 논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중심삼고 영생논리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종교에서 지극히 귀중한 얘기입니다.
남자에게 영생이 있고 여자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영생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211-272)
사랑의 주체가 없으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체가 있으면 모든 것이 찹니다. 사랑이 꽉 차야 모든 것이 차기 때문에 무한히 줄 수 있고 참되게 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주고받는 것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요, 그 이상을 번식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거리를 초월합니다. 사랑이 얼마나 빠르냐하면 빛도 못 따라갑니다. 제일 빠른 것이 사랑입니다. 제일 밝은 것도 사랑입니다. 제일 완전한 것도 사랑입니다. 제일 완전히 차는 것도 사랑입니다. (187-51)
생명을 찾아 사랑을 희생시키겠다는 사람과, 사랑을 찾아 생명을 희생시키겠다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보다 중심이냐? 어떤 것이 보다 참에 가까우냐? 사랑을 찾아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 보다 중심이요 참에 가깝습니다. 생명을 찾아 사랑을 희생시키는 것은 자기 중심이지만, 사랑을 찾아 생명을 바치는 것은 자기 중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32-153)
내가 오대양 육대주를 헤매면서 절절히 외쳐댄 것은 바로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막과 같은 인류 앞에 사랑의 빛을 비추어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 사랑의 피안이라고 한다면, 인류 앞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등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사랑의 등대만이 인간을 본향 땅에 인도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1982. 10. 29)
하나님과 하나될 때는 천태만상으로 돌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에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본받아서 형은 동생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일원화된 가정은 가정애가 꽃핍니다. 이것이 또 사회애가 되고, 더 나아가 민족애가 됩니다. 이와 같이 나아가면 세계애가 됩니다. (34-215)
하나님은 사랑에 취해서 억천만세를 살 수 있도록 인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늙는 게 원수가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에서 시작해서 사랑을 갖고 생활하다가 사랑의 열매로 거두어집니다. 죽는 것이 사랑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의 사랑을 받았고, 자녀의 사랑을 받았고, 부부의 사랑을 가지고 부모로서 자녀를 사랑하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내적인 사랑의 세계에 뿌린 모든 것을 일생을 거쳐 열매를 맺어서 이것을 거두어 가지고 저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81-9)
하나님은 참사랑의 바탕 위에서 생명을 지니고 있고, 참사랑의 바탕 위에서 전지전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 있어서 역사를 초월한 입장에 선 이상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생명의 힘만 가지고 주체적 입장에 선다면 모든 만물이 하나 안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미물인 동물 새끼도, 식물들도 전부 다 사랑의 주인이 자기를 가꿔 주길 바라고 사랑의 손길이 오는 걸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내가 강해, 너는 내 맘대로 해야 돼, 이 자식아!"이러면 안 됩니다. 사랑이 내포된 거기에 생명이 움직이는 겁니다. 생명의 근원은 사랑에서부터입니다. 하나님이 존속하기 시작한 기원이 생명이 아니고 사랑입니다. (173-86)
사랑은 생각으로도 좋고, 모양으로도 좋고, 맛으로도 좋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통일세계 1980. 2-10)
사랑이란 동서가 합하는 것이요, 남북이 합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천지가 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구형을 이루게 됩니다. (225-45)
참사랑이란 수직과 수평이 연결된 중심 사랑이다. (195-244)
입이 참사랑에 빠져 있다면 미소짓는 그 입술이 얼마나 황홀하겠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의 오감이 참사랑에 취해 움직이는 모습, 하나님을 향해 움직이는 오감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답겠는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아름다움을 통한 기쁨은 하나님 혼자서는 체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상대가 있어야 체험하게 되는 것으로,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내용을 소유한 인간의 심정세계를 여행하시고 싶은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6)
하나님도 숨을 쉽니다. 참사랑의 호흡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주의 박자를 맞추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삼고 우주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가야 하나님의 호흡권내에 들어가서 영생하는 것입니다. (201-191)
우주는 둥급니다. 태양도 둥급니다. 모든 둥근 것은 무엇을 중심삼는가. 자기 혼자서는 둥글어질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어야 둥글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적 권을 집약시킬 하나의 물체, 하나의 존재물로 등장하는 세계는 원형권을 기반으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원형을 만들 수 있는 모체가 뭐냐. 조화의 모체는 사랑의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164-78)
사랑은 신경과 같습니다. 우리가 머리카락 하나를 당기면 몸 전체가 끌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만 당기면 우주가 끌려오고, 사랑만 움직이면 우주가 다 화해 돌아가게 됩니다. (115-237)
사람은 취해 살아야 합니다. 취해서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술가들은 예술에 취해 삽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구상하는 책을 쓴다든가, 어떤 명작에 취해 삽니다.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지백체는 입체적인 하나님의 이상적인 사랑에 취해 살아야 하고 그분만 따라 다녀야 합니다. (59-292)
남자가 찾고 여자가 찾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람도 영원히 좋아하고 하나님도 영원히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온 우주가 영원히 제일 좋아하는 것입니다. (142-109)
사랑이란 보이지는 않으나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그것은 불변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황금은 불변의 빛깔, 다이아몬드는 불변의 굳기, 진주는 불변의 조화의 빛깔이 있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보물은 생명이 없지만 참사랑은 생명이 있는 보물이기 때문에 더욱 귀한 것입니다. (201-143)
사랑이란 다 좋은 것입니다. 사랑이란 결국 좋아지는 것입니다. (206-205, 60-81)
사랑은 개인의 마음에도 통하고, 가정의 복판도 통하고, 그 민족 복판으로도 흘러가고, 어디나 주류로 가는 것입니다. 흘러가더라도 전부가 환영하는 겁니다. 그걸 막을 길이 없다는 겁니다. 전부 다 더 높이, 더 높은 것을 바라지요. 사랑의 힘을 따라서 인연되어 질 수 있게끔 지었습니다. 그러니 사랑의 줄을 따라서 우주와 호흡하고 살던 사람은 하나님의 궁전에 가서도 인사는 무슨 인사, 마음대로 문을 열고, 하나님을 모시는 지성소에 가서 '하나님'하면, 하나님이 '오냐, 너 왔구나'하는 것입니다. (164-47)
인간 세계에서 단 하나의 문제는 뭐냐? 사랑의 빛이 밝아야 합니다. 사랑의 빛이 밝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타야 됩니다. 무엇에 타야 되느냐? 사랑하기 위한 발동력으로 타야 됩니다. 그런 것을 다 알고 볼 때 세상만사는 지나가는 하나의 여행집입니다. (194-56)
하나님은 어디 계시느냐? 무소부재라는 말은 하나님이 아무데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무소부재입니다. 나도 사랑을 중심삼고는 무소부재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소유하면 그런 특권이 있는 겁니다. (143-24)
평등이라는 말은 사랑을 빼놓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위해 줄 때 진정한 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지고는 남자와 여자가 대등할 수 있고, 사랑을 가지고는 아들이 대통령이라 해도 그 아들과 어머니는 대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진 모든 것은 평등해질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140-142)
만물의 중심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중심은 뭐냐? 참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수직선 한 선입니다. 천지의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 남자의 사랑선이요 여자의 사랑선인데, 여자는 남자에게로 가고 남자는 여자에게로 가서 그 선이 돌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참사랑을 갖고 나타나게 될 때에 완전한 마이너스 사랑입니다. 완전한 참된 마이너스 사랑이 생기게 될 때에는 종적인 하나님의 플러스 사랑은 자동으로 임하게 됩니다. 우주의 원칙이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40-128)
내가 우주와 주고 받는 관계에 놓이려면 사랑을 가져야만 가능합니다. 사랑이 아니고는 영원히 주고 받지 못합니다. 사랑이 온유하고 겸손한 것이라고 한 것도 저항 없이 그것을 더 많이, 완전히 운동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고 희생하면 어디든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든지 저항 없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희생이 아닙니다. 저항 없이 작용하기 위한 하나의 비법이 위해서 살고 희생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희생 봉사해야 되느냐. 제2의 생의 호흡기관을 완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번식하는 모든 존재는 반드시 쌍쌍이 연합해서 번식하는데 번식을 하는 데 있어서의 조화를 일으키는 그 내용이 사랑입니다. 자연계의 모든 존재물의 번식은 다 그렇습니다. 물도 보면 암물이 있고 숫물이 있는데, 암물하고 숫물이 섞어진 데에는 고기가 잘 삽니다. 한수(寒水)와 온수(溫水)가 화합하는 곳에는 고기가 많이 살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이상적입니다. 화합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177-274)
북쪽에 사는 새가 남쪽에 가서 새끼를 치고, 남쪽에 살던 새가 북쪽에 가서 새끼치면서 교류하는 것도 다 리듬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났으니 거기 가서 새끼를 치는 것입니다. 차가운 물의 물고기는 따뜻한 물에 가서 새끼를 치고, 따뜻한 물의 물고기는 차가운 물을 접해야 새끼를 치게 되어 있습니다. 음양 일치의 화합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동하는 것입니다. (132-74)
사랑은 상대적 관계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사랑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상대자를 세우지 않고는 만날 수 없기에 절대적 창조주 앞에 절대적 상대의 자격자를 갖추어 놓기 위한 것이 창조요, 창조의 걸작품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찾기 위해, 사랑이 필요해서입니다. (133-86)
하나님의 사랑에 취하게 되면 모래알 하나를 놓고 천년을 들여다봐도 싫증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사랑의 우주 가운데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무한히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81-9)
참사랑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기쁜 가운데서 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서로 주고 받는 작용이 되어야 이상적인 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랑이 누구든지 그릴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형태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게끔 돼 있다면 그런 사랑은 하루도 못 가서 싫증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고, 없는 것 같은데 있습니다. 나쁘다고 생각하면 좋고, 좋다고 생각하면 나쁜, 천태만상의 기괴한 신기루 같은 내용을 작동시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175-198)
우주 통일 이상을 완성시키는 내용이 참사랑입니다. 아무리 명작이라 하더라도 그 가운데 참사랑의 맛이 없게 되면 뱉어 버리게 됩니다. 부부간의 참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
(통일세계 1981. 5-26)
인간이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것도 사랑이 전체를 통일시켜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하면 할수록 기쁨이 불어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느 누구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멋진 사랑입니까? 꽃 속에 들어 있는 벌들은 꿀을 먹느라고 궁둥이를 위로 쳐들고 머리를 처박고 있습니다. 그걸 핀셋으로 잡아당겨서 빼도 안 나옵니다. 세게 잡아당겨서 꽁무니가 쑥 빠져도 안 나옵니다. 그 꿀맛이 얼마나 좋아 그러겠습니까? 꿀맛이 그렇다면 사랑의 맛은 어떻겠습니까? 사랑의 맛과 꿀맛 중에서 어떤 게 더 좋겠습니까? (1985. 12. 18)
사랑이 아니고서는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둘을 하나 만드는데는 말 가지고 안 됩니다. 둘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물질 가지고 하나되었다면 물질이 떠나면 도망가는 겁니다. 제삼자의 소개로 말미암아 무슨 사연을 통해서 하나됐다면 그 사람이 없어지면 떠나 버린다는 겁니다. 둘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영원히 하나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만이 모든 오색 가지의 자극을 통일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사람이 싫다 하는 영감님 냄새가 할머니의 코에는 구수하다는 겁니다. 할아버지의 얼굴과 손에 가죽만 남아도 할머니는 그 얼굴과 손이 좋다는 겁니다. 바로 사랑이 그렇게 만듭니다. 사랑의 바람이 불었을 때는 천하가 다 아름답게 보입니다. 사랑의 보따리를 집어 넣으면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고, 풍류객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145-319)
사랑의 맛이라는 것은 오미자 맛입니다. 오미자는 시고 또 시큼털털 껄렁껄렁합니다. 난 오미자가 뭔지 모르지만, 그런 맛이라, 다섯 가지 맛이 합쳤으니 그 뭐 시큼털털하고, 껄렁껄렁하고, 울툴불툴한 맛이지요. 그렇지만 한 번 넘겨 보면, 넘길 때는 기분 나쁘지만 넘기고 나서는 자꾸 넘기고 싶다는 겁니다. (173-89)
봄절기를 품고 남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넘쳐 흐르는 사랑, 차고 냉랭한 겨울절기에 있어서는 눈과 얼음을 녹일 수 있는 사랑, 높이로 보나 넓이로 보나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 그런 사랑이 나와 관계를 맺어 나에게서 영원히 떠나지 않고 안정된 중심의 자리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 사랑이 무한히 감촉되고 감각될 때 그 사랑이야말로 우주와 겨루고도 남음이 있다. 세상의 그 어떤 가치도 그 사랑을 떠나서는 찾을 수 없다. 시작과 끝이 동일한 절대적인 사랑을 내 심지의 복판에 정한 사람은 비록 개인이로되 우주와 겨룰 수 있다. (33-76)
우리는 하나의 풀을 바라보더라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꽃을 바라보더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입장, 하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곤충이나 새, 혹은 어떤 동물을 바라보게 될 때에도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 맺어지는 그런 내적인 감정을 체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같이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하늘을 주관할 수 있고 땅을 주관할 수 있는 온 천주의 주인공입니다. 인간이 이런 입장에 놓일 수 있는 본질적인 내용은 사랑입니다.
심정으로 우리 마음은 무한히 클 수 있으나 지식으로는 무한히 클 수 없습니다. 사랑의 심정은 우주를 포괄하고도 남기 때문에, 이렇게 위대한 본연지를 개발하면 하나님도 그 속에 와서 낮잠자고 싶어합니다.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포괄할 수 없기 때문에 거기에서 사랑의 심정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59-44)
사랑은 국경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오색 인종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흑인종?백인종?황인종이라 하여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의 흐름에 있어서 환경을 개의치 않고 흘러가면 환경이 동화되고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상적인 내용을 갖춰야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사랑의 길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164-93)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떻게 상대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갈 수 있겠느냐? 노력으로 돼요? 힘을 써서 돼요? 무엇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인연을 맺고 나가면 대번에 동등한 자리에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핵을 장악하게 될 때는 하나님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남편의 아내가 비록 못났다 할지라도 그 아내가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틀게 되면 훌륭한 박사도 할 수 없이 걸려들어 컨트롤 당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입니다. (141-108)
하나님과 대등한 자리, 동위권의 자리에 서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해야 합니다. (141-108)
사랑에는 동참권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높으면 자식은 낮은 자리에 있더라도 즉각 아버지의 자리로 뛰어올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동참권이 사랑에 내재되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 때문에 내가 비록 떨어져 나와 있더라도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149-25)
참사랑을 체화(體化)한 사람은 하나님 본래의 이상적인 세계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가집니다. 그러한 자격은 지상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은 동포를 사랑한다든가, 세계 사람을 사랑한다든가, 만물을 사랑함으로써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141-108)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면 반드시 주관성과 독립권, 그 다음에는 상속권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146-106)
사랑권 내의 최대의 인격을 구성한 사람은, 그 세계에서는 하나님과 같은 능력 행사를 가능하게 한다는 겁니다. (142-278)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사랑은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남자는 여자, 여자는 남자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서로 좋아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 8-46)
생명과 사랑 중에 어느 것이 더 귀한 것인가?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지성소(至聖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남자의 생명이, 여자의 생명이 있더라도 그 생명에는 지성소가 연결 안 되어 있지만 사랑에는 지성소가 연결되기 때문에 사랑이 생명보다 귀한 것입니다. (132-112)
누가 주인이 되느냐? 보다 위하는 사람입니다. 보다 위하는 사람이 지배하고, 보다 위하는 사람이 주관하고, 보다 위하는 사람에게 상속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리입니다. 사랑에는 동참권이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디든지 동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 방에 허락받고 들어가요? 자기 안방에 허락받고 들어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의 작용을 가졌다면 하나님이 어디 가든지 내가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170-199)
참사랑과 권세는 무엇이 다른가. 참사랑은 사랑하고 잊어 버립니다. 기억하지 않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이냐. 악은 주고 이익을 전부 받으려 하는 것이고, 선은 자기 것을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집안에 있어서도 보다 위하는 사람이 선한 편입니다. 위하는 사람은 결국 그 집안의 주인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열 친구가 있다고 할 때 그 중 제일 좋은 친구는 누구냐? 열 친구를 위해 주는 친구입니다. 그러면 열 사람이 위하는 그 친구를 중앙에 갖다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는 이렇게 상속돼 나갑니다. (141-253)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히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이냐. 첫째가 사랑이고, 그 다음이 생명입니다. 사랑과 생명을 남겨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존재하기 전부터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해 가지고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생명이 먼저이고 사랑이 두 번째이나, 인간에게 있어서는 사랑이 첫 번째이고 생명이 두 번째입니다. (105-75)
모든 원소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이 우주 전체를 두고 "너는 어디의 무엇을 가진 사람의 소유가 되고 싶어"? 하고 물으면 한결같이 모두 다 사랑을 가진 사람의 소유가 되고 싶다고 답합니다. 모든 만물은 사랑의 주인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권세를 인간에게 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일체이상(一體理想)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일체이상이 창조이상입니다. (138-246)
인간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입니다. 하나님의 실체를 쓴 몸이기에 인간은 외적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특권을 인간에게 부여하려고 합니다. (1981. 5. 14)
왜 선한 일을 하라고 하느냐. 선한 일을 하려면 희생을 해야 되고, 희생은 자기를 투입하는 것입니다. 투입하면 왜 좋은가. 천운의 근본, 원인과 결과, 모든 힘의 주체, 주류에 접속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한한 힘을 보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무한한 힘을 보급받기 때문에 모든 일에 있어서 만사형통입니다. (164-323)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신인애일체(神人愛一體)의 사랑이상 세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 최선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런고로 인간은 창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실체를 입은 대상입니다. 인간은 무형의 하나님 앞에 보이는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완성하면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또 평안하게 언제나 들어와서 거하실 수 있는 유형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참사랑의 이상은 인간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종적 관계로 실현 완성됩니다. (143-93)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한다면 얼마나 멋있는 대답이겠느냐 말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열매로 태어나고, 사랑하면서 살다가 영원한 사랑인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창조본연의 삶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 7-19)
태어난 것은 사랑의 열매를 지상에서 맺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지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열매를 결실하는 것이 사람이 지상에 온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것입니다. 한 계절입니다. 짧다는 겁니다.인간은 사랑에서 출발하고 사랑에 의하여 완숙해지기 때문에 사랑의 기준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4)
인생이 사랑에서 태어났으니 사랑의 길을 가야 하고 사랑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소우주가 아니라 대우주가 환영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서 하나님이 공인하고 천사세계가 공인하고 만물이, 더 나아가 우리 부모가 공인할 수 있는 대우주애 가운데 나고, 그 가운데서 사랑하고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 태어난 목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185-7)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한다면 얼마나 멋있는 대답이겠느냐 말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열매로 태어나고, 사랑하면서 살다가 영원한 사랑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창조본연의 삶인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 9-19)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의 핵과 일치하는 자리에 섰을 때 몸과 마음이 일체를 이루게 되며,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몸과 마음을 일체화 시켜 들어가게 되면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타락하지 않는 본연의 인간으로서 개인 완성이 출발하게 됩니다. (통일세계 1986. 2-14)
하나님은 참사랑의 왕이시고 주인이십니다. 만일 참사랑의 왕이 되시며 신랑되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상대자되는 왕후가 필요하다는 말이 절대적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그분 앞에 참사랑의 상대될 수 있는 분이 누구겠느냐 하고 묻게 된다면, 그것은 참된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일체가 될 아담과 해와였다는 것입니다. (149-9)
남자나 여자가 가는 길은 사랑 때문에 있으며, 사랑을 위해서 있습니다. 나의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의 환경권을 이루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2. 8-16)
사람이 목적을 아무리 잘 세웠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주관할 주체적인 사랑의 권위를 세우지 못하게 될 때에는 또다시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야 됩니다. 한계점이 사랑보다 위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29-130)
아담은 하나님과 하나가 돼야 합니다. 이를 결부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존재세계의 평면적인 대표자는 인간이며, 입체적인 대표자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영원히 결부시키는 중심점이 바로 사랑이라는 끈입니다. (135-153)
가난한 촌부로서 시골에서 김을 매고 농사를 짓는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촌부에게 마음과 몸에 부풀어오르는 사랑의 정열이 타오르게 된다면, 마음의 오관(五官)과 육(肉)의 오관이 완전히 합해져서 더없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임할 수 있는 안착점을 여러분이 가지고 있다면, 시계추의 진동처럼 하나님의 가슴이 한 번 출렁 하면 여러분 가슴이 한 번 출렁, 그래서 여러분과 하나님이 함께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자꾸 돌아갑니다. 갈수록 가중된 힘은, 원심력이 작용해서 가정을 사랑해라, 사회를 사랑해라, 국가를 사랑해라, 세계를 사랑해라 하고 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982. 10. 29)
모든 것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사랑은 누구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십니까? 사랑은 인간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주체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으로부터 사랑을 맞이하기를 바라십니다. 그 사랑을 다시 인간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사랑을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6)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그 절대 사랑 앞에는 절대 지식, 절대 능력, 절대 권한을 가진 하나님도 절대 복종합니다. (123-136, 206-7)
참사랑이라는 것은 하나에서부터 시작해서 360도를 다 돌아서 딱 닿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사랑입니다. 닿기 전에는 참사랑이 못 됩니다. (178-309)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무리 소망을 이루었다 해도 그것은 이룬 게 아닙니다.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 행복은 영원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영생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영원히 잘 주고 잘 받을 수 있게 하는 동기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42-278)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은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그 외의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참사랑의 길이며, 참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 보고 듣고 먹고 만져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입맞춤을 받았다면 내부가 폭발할 것 같은 희열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램은 여기에 있는 것이지, 다이아몬드나 보석을 소유했다고 해서 기쁘다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통일세계 1986. 9-21)
내가 살아 움직이는 것, 즉 내가 활동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이 사랑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구현 때문에 사랑을 이루어야 한다는 목적에 의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이 참사랑의 구현에 있으니 인간의 존재가치도 이 참사랑에 의해 결정지어지게 됩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미래의 주인공 231)
하나님 사랑의 본질과 화합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를 위주하고 나가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투입하고, 자기가 모든 정성을 투입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면서 주고자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존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위인도 그랬고 성인도 그랬습니다. (46-36)
하나님의 사랑은 위하는 사랑, 위하려고만 하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 참사랑이 있으면 돌게 마련입니다. 우주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도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돌게 되어 있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영원히 가느냐. 영원히 주겠다고 하는 것,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주려고 하는 사랑이 영원히 도는 것입니다. 주는 힘과 받는 힘이 하나되어 자꾸 주려고 하니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의 기원되신 하나님을 부모로 하여 인간은 아들딸의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한 사랑의 최고 주인입니다. 부자지관계(父子之關係)가 종적인 수직관계인데 비해 부부관계(夫婦關係)는 횡적인 수평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부자지관계와 부부관계가 서로 직각(90도)을 이루고, 여기에 전후관계인 형제관계가 합함으로써 사랑의 관계는 구형(球形)을 이룹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이루어진 모든 존재는 구형입니다. 우주 전체가 구형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34-215)
인류 역사에 있어서 참사랑을 완성하면 정치?경제?문화 문제는 물론이고 모든 분쟁과 갈등 문제도 깨끗이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난문제들은 참사랑의 완성으로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한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7)
인간이 하나님을 보기 원하듯이, 하나님도 참된 인간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인간 중에 남자나 여자 어느 편을 먼저 보고 싶다고 하면 서로가 불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만 내세우면 남자와 여자가 같이 볼 수 있고, 같이 만질 수 있고, 같이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귀한 것은 서로 다투면서 가지려 하겠지만, 사랑이란 둘이 서로 하나되어 위하며 가지려 하기 때문에 다툼이 없습니다.
사랑은 누구나 좋아할 뿐만 아니라, 사랑만이 욕망을 고르게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원칙을 놓고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도 가능한 것입니다. 참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참사랑은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느냐? 참사랑은 밤낮 없이 불변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참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참사랑이 나 개인의 소유일 수 만은 없습니다. 참사랑은 만인의 것이며, 우주 공유의 것입니다. 참사랑은 가정?사회, 국가, 세계?우주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9-17)
참사랑이란 뿌리를 어디에 두고 하는 말이냐?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한 분이라도 그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고 있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참사랑의 주인공인데도 사랑의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뿌리를 심겠다고 생각합니다. (177-269)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이상상대가 필요해서 이 세상을 지었기 때문에 천지 창조도 사랑에서 기원된 것입니다. (213-79)
마음의 힘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주고 받아서 생기는 폭발적인 힘을 하나님께 연결만 시키면 그것은 몇백 배, 몇천 배도 통일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 만민이 고대하던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요,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 동시에 천국도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비결이 바로 사랑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될 때, 그의 심정과 감정은 무한한 체휼경(體恤境)과 행복감에 취하게 됩니다. 결국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의해 인간과 세계가 하나되며, 하나님의 창조목적 이상세계의 실현도 여기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60)
인간이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면 조그만 모래알 하나에도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고, 하나의 원자에도 무궁무진한 우주의 조화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복합적인 힘을 통하여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분자를 지나 원자, 원자를 지나 소립자에 이르기까지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식과 목적을 갖고 존재합니다.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거쳐 나왔고, 반드시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하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기쁨은 어떤 목적을 이루었을 때 느낍니다. 지은 만물에 하나님의 목적의식이 내재되어 있기에 창조된 만물을 놓고 하나님은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강한 사랑이어야 하느냐. 오늘날 인간세계의 그릇된 사랑은 천사장급 이하의 사랑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사랑은 사탄이 침입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권에서 태어나 살면서 사랑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 야단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랑은 질서도 없고 방향도 없는 소용돌이입니다. 소용돌이에는 더러운 것만이 모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맺으면 그 사랑의 방향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히 따라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새 사랑, 즉 창조 법도에 의한 사랑이 결정된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이상이 출발합니다. (19-315)
사랑을 왜 좋아합니까?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완전히 하나로 얽어매는 그것은 사랑의 밧줄입니다. 쇠로 만든 줄은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어 끊어지지만 사랑의 밧줄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 자식 사이는 밥으로도 돈으로도 얽어맬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으로 얽어맬 수 있습니다. (18-329)
인간의 완성은 지식이나 권력, 혹은 돈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속화된 사랑이 아닌 본래의 사랑이며, 그 사랑에 의해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6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