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Box: TP portrait3권 참사랑

 

2 장 사랑의 실제

 1) 하나님의 사랑

  ①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누가 끊을 것이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의 원천이요, 행복의 원천이요, 평화의 원천입니다. 영적 체험을 해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99-193)

 

하나님의 사랑은 태양보다 강합니다. 아침에 햇빛이 나면 모든 식물의 순은 태양을 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의 기원이요, 우리 본심의 기원이요, 이상적 요소의 주체적 기원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99-193)

 

하나님은 사랑의 실체, 사랑의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알파와 오메가가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시작과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심정의 세계에서 한 시간 사는 것은 천년사에 자랑할 수 있고, 하루 사는 것은 만년 역사에 자랑할 수 있게끔 고귀한 것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데 그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사랑은 세포가 팽창하는 기운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세계가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마치 화창한 봄날에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황홀한 세계요, 모든 세포가 춤추는 듯한 기분이 나는 세계입니다. (99-193)

 

하나님의 사랑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치 따스한 봄날에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있고, 땅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벌레가 나돌고, 개미들도 세상 구경하겠다고 발랑발랑 기어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에는 버들강아지가 움트고, 개구리가 봄날의 새노래를 부르고, 떼를 지어 날아드는 벌나비를 반기는 그런 환경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환경에 취해서 잠이 드는것 같은데 잠은 들지 않고 기분 좋아서 영원히 좋다 할 수 있는 그런 맛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상상대를 중심삼고 느끼는 기분은 나비가 날고 벌이 날아드는 꽃동산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이 둔한 남자들은 그것을 잘 모를 겁니다. (37-29)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사랑이 충만합니다. 주면 줄수록 더 주고 싶고, 받으면 받을수록 거기에 천만 배 더하여 주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이 천국이예요, 지옥이예요? 거기에서는 더 주고 더 받을 수 있으니 폭발적인 자극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 세포가 터져 나가는 듯한 자극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것입니다. (39-335)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지극히 선한 분이요, 모든 만물의 근본이 되는 분이요, 사랑의 주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한 후 우주의 귀한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참으로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제일 귀한 것을 고스란히 넘겨주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은 무슨 맛을 제일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냄새를 맡는다면 무슨 냄새를 제일 좋아하겠습니까? 듣는다면 뭘 듣기를 좋아하고, 느낀다면 뭘 느끼기를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오관을 집중시킬 수 있고 기쁨을 충만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밖에 달리 없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의 파트너를 구한다고 하면 누구를 갖다가 세울 것이냐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이다 하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唯人最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218-211)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대표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형제의 사랑도 들어가고, 이것을 확대하면 국가나 세계의 사랑도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이요, 부부의 사랑이요, 자녀의 사랑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것이 최고 멋진 말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일까요? 절대적 사랑을 원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적 사랑, 유일한 사랑, 불변의 사랑, 영원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절대?유일?불변?영원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창조했습니다. 사랑 때문에 창조했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존재세계 앞에 나타날 때 사랑의 본질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에게 사랑을 주었다고 해서 '나는 완전히 다 주었는데 너희는 왜 안 주느냐 이럴 수 있느냐?' 절대적인 사랑을 가진 하나님은 아직까지도 주고 싶은 사랑을 다 못 주어 안타까워합니다. 자아를 주장할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주고자 했던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완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으니 인간세계에 대해 사랑을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이기에 생각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나는 다 줬으니 이제는 너희가 가져와라'하는 하나님이라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게 될 때, 얼마만큼 주고 싶어 하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이만큼이면 됐다 하는 한계를 두고 주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무한정으로 주고자 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몽땅 주고도 '너로 말미암아 네 안에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게 하는 본질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 들어가서는 종살이를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밥상 위에 올라와 똥을 싸도 그것을 바라보고 기쁨을 느낍니다. 사랑은 법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으로서 아까울 것이 없고, 갖추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만 그 전부의 가치보다도 귀하게 내세우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께서는 단지 사랑 외에는 필요치 않다 이겁니다. 사랑 이외에는 필요 없다 이겁니다. (108-223)

 

하나님이 '나는 사랑이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밤에도 좋아하고, 낮에도 좋아하고, 일하면서도 좋아하고, 쉬면서도 좋아하고, 춤추면서도 좋아하고, 울면서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는 사랑이 있다. 몽땅 있다'고 한 것입니다. '몽땅'이라는 말은 그 속에 전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그런 사랑을 몽땅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기에 그 사랑을 맛보면 죽더라도 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요, 선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 같은 말입니다. 진리가 성립되려면 사랑과 생명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핵심인 생명의 본체, 사랑의 본체, 진리의 본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인간의 아버지인 동시에 어머니입니다. 핵심은 부모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간단한 분이 되십니다. (21-178)

 

자녀로 지음받은 인간이 형제를 이루고, 부부가 되고, 그리고 부모의 자리에 나아가는 인간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그 모든 단계의 사랑의 주인으로서 자리잡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랑의 주인되게 한 인간이야말로 하나님보다 귀한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보다 몇 천만 배 더 가치 있고 귀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뼈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은 '뼈사랑'이고, 인간의 사랑은 '살사랑'입니다. 알겠어요? 뼈와 살이 하나돼 가지고 형태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가 돼 있습니다. (181-206)

 

사랑이란 뭐냐? 돌아갈 수 있는 윤활작용과 궤도작용을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윤활작용이 안 됩니다. 자동차도 움직이게 하려면 기름을 쳐야 합니다. 운동하는 데 윤활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운동하려면 윤활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기쁨의 윤활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뿌리가 영원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작용하면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곳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불변이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나타난다면 변하지 않는 마음의 터전 위에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동안 먹는 것도 그 사랑을 위해서 먹고, 자는 것도 그 사랑을 위해서 자고, 활동하는 것도 그 사랑을 위해서 활동해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변하지 않는 완전한 기준을 갖고 있는 한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우주의 공약 전부가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자식이 침해를 받을까봐 걱정하고, 자식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까봐 보호해 주고, 또 어떤 반대의 요건이 나타날까봐 방어해 주는 부모입니다. 그런 부모의 본질을 찾아 나아가는 길이 선의 길, 사랑의 길입니다. 인간은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39-149)

하나님은 지금까지 당신과 가까운 편에 있는 사람들과 종족, 나라에까지 사랑을 주었습니다. 작다고 받지 않을까봐 보태고 또 보태어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까지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고 나서도 또다시 사랑을 보태어 주려고 하십니다. 때문에 그 사랑이 돌아오는 날에는 천지가 몽땅 이상적인 천국으로 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면 더 많이 갚아 주는 것이 사랑의 원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백의 사랑을 드린다면 하나님은 천의 사랑, 만의 사랑으로 돌려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가지게 되면 하나님의 가슴 속에 들어가 있어도 되고, 하나님의 코를 잡아도 되고, 세계 어디를 가든지 경계선이 없습니다. 어디든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입맞춤을 받았다면 내부가 폭발할 것 같은 희열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램은 여기에 있는 것이지, 다이아몬드나 보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기쁘다고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어디서 연결되느냐? 생명이 교류하는 곳, 사랑이 교류하는 곳, 이상이 교류하는 곳입니다. 그 점이 어떤 점이냐? 부자지관계의 자리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이상의 주체이므로 자녀에 대해서는 위신과 체면을 초월합니다.

아무리 죄인 된 못난 자식이라도 하나님을 붙들게 되면 하나님이 '야 이놈아, 안 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안고 비벼 주고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체험한다면 뼈살이 녹아날 것입니다. (118-285)

 

하나님은 천년만년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끊임없이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지. 주고 나서 ', 요거 몇 냥 몇 전이다' 하는 장사꾼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접하면 어떻게 되느냐? 머리카락도 춤추고 세포도 춤춘다는 것입니다. 백 퍼센트 그 사랑에 취하면 나가자빠지는 것이 아니라 천년만년 살고지고가 됩니다. 누가 깨우려고 하면 깨우지 말라고 합니다. 요지경 판이 벌어집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듯, 그만큼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고차적인 사랑에 취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사랑이 충만합니다. 주면 줄수록 더 주고 싶고, 받으면 받을수록 거기에 천만 배 더하여 주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이 천국이에요, 지옥이에요? 거기서는 더 주고 더 받을 수 있으니 폭발적인 자극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 세포가 터져 나가는 듯한 자극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것입니다.

사랑으로는 어디든지 채울 수 있고, 사랑으로는 어디든지 미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껴안으면 어떻습니까, 손을 잡고 ', 사랑한다' 이럽니까? 아마 눈알이 다 튀어 나오고 콧물, 입물이 나오도록 껴안아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렇게 껴안고는 가만히 서있지 않고 빙빙빙 돕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우주가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의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골수 중의 골수를 몽땅 투입하여 창조한 인간이기에 인간이 하나님을 끌면 끌려오지 않을 수 없고, 또 하나님이 인간을 끌면 끌려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왜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따라가느냐? 하나님은 천년만년 모든 것을 주고 또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며 '지금은 이것밖에 안 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라, 몇백 배, 몇천 배 더 좋은 것을 줄 터이니' 하면서, 오늘 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미래에 더 좋은 것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는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36-273)

 

인간은 왜 영생하느냐? 왜 누구나 영생을 찾느냐는 것입니다. 절대적 주체자이신 하나님 앞에 사랑의 대상권의 가치를 지닐 수 있고, 사랑의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영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영원한 사랑의 대상권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위에나 아래나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자 내가 됩니다. 사랑으로 일체만 되면, 하나님을 내 포켓 안에 넣으면 들어가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태양보다 강합니다. 아침에 햇빛이 나면 모든 식물의 순은 태양을 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생명의 기원이요, 우리 본심의 기원이요, 이상적 요소의 주체적 기원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권을 통하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드느냐, 봄날 향기나는 동산에서 아름다운 꽃들을 바라보며 향기란 향기를 다 맡아 취한 기분과 같습니다. 그럴 때에는 우리의 모든 세포가 춤을 춥니다. (99-193)

 

하나님의 사랑이 종적인 사랑이라면 남녀간의 사랑은 횡적인 사랑입니다. 남자 여자가 만나려면 횡적인 사랑을 종적인 사랑 위에 접붙여야 됩니다. 90각도로 맞춰야 됩니다. 이걸 맞추지 않는 사랑, 종적인 기준과 연결되지 않은 사랑은 떠돌이 사랑으로 파괴되고 맙니다. 때문에 종횡이 일치된 사랑권 내에 들어가 지면 사랑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우주와 관계를 맺게 되면, 지식도 권력도 돈도 생명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생명도 그 안에서는 영생하는 것입니다. (188-219)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사랑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바라는 종착점은 무엇이냐. 아들딸을 만나 사랑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바라는 종착점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아들딸로서 사랑받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아담은 자기 중의 자기요, 미래의 이상적인 사랑 중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의 몸입니다. 또한 해와는 하나님의 부인이요, 몸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몸에 상대되는 영적 상대요, 해와는 육적 상대입니다. 그러니 아담과 해와가 부부가 되어 사랑하는 것은 누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냐, 하나님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지극히 신성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지식이 필요없습니다. 지식을 창조한 분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권력이 필요없습니다. 전지 전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돈이 필요없습니다. 다이아몬드나 황금도 마음대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필요한 것이 단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하나님 혼자서 사랑을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천만에요! 하나님에게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은 참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149-151)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게 될 때 무한정으로 주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몽땅 주고도 '너로 말미암아 네 안에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는 본질은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 들어가서는 종살이를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법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맛이냐. 모든 것을 종합한 최고의 맛입니다. 좋아서 쥐면 끝없이 쥘 수 있고, 펴면 끝없이 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랑으로는 얼마든지 채울 수 있고, 어디든지 미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모체입니다. 여기에서 부모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부부의 사랑이 우러 나왔고, 자녀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형제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친척의 사랑, 민족의 사랑이 우러나왔습니다.

사랑 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사랑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보인다면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최고로 높을 수 있으며, 최고로 넓을 수 있으며, 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로키산맥과 같다, 사랑은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다'는 말이 맞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 이처럼 귀하듯 보이지 않는 곳에 계시는 하나님도 귀하신 분입니다. 그 귀하신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는 무아의 경지에, 즉 내가 없는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깊은, 보이지 않는 조용한 세계에 계십니다.

남녀지간에 사랑하게 되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알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 맛보면, 하나님의 그 사랑은 세상에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맛본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고난도 그를 점령하지 못하고, 어떠한 슬픔도 그를 점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해방권이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찾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을 다른 데 모실 데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같이 가고 싶어하고, 같이 있고 싶어하고, 같이 살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같이 살고 싶어하느냐? 하나님을 파고 들어가서 하나되어 같이 살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마음이 좁아요, 넓어요? 마음의 생김새를 여러분 자신은 잘 모르지만 마음은 무한히 큰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얼마나 좋으냐? 세계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몇백억 원씩 주고도 또 주고싶은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이렇게 멋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무한한 사랑, 무한한 희망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무한히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얼마나 크냐? 이건 측정할 수 없으리만큼 크다는 겁니다. 또 작다면 그거 형편없이 작습니다. 바늘 끝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작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겁니다. 마음은 크게 넓히면 무한히 넓힐 수 있고, 좁히면 무한히 좁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본질을,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왜 마음이 그렇게 되었느냐? 그게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집으로 돼 있다는 겁니다.

사랑은 제일 가까운 거리를 통합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귀한 말입니다. 왜 수직이 돼야 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왜 수평이 되고 평형이 되어야 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수직이 되려면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 찾아갈 때 이웃동네 찾아가듯이 슬슬 가나요, 쏜살같이 직행하나요? 밤이든 낮이든 할 것 없이, 춘하추동, 아무리 역사가 길다 해도 사랑은 제일 직단거리를 통하려고 합니다. (188-219)

 

사랑만은 만유에 있어서 직단거리를 통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있는 물건이 아래로 내려오게 될 때 직단거리로 내려오는데 그 자리가 수직입니다. (188-219)

 

  ② 사랑의 목적은 신인애(神人愛)일체 이상

 

천지의 중심과 우주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해 보니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 즉 부자의 관계라고 하셨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육친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과의 관계인 줄 알겠지만, 하나님과의 근본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19-160)

 

아버지와 아들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어디냐? 사랑이 교차되는 중심, 생명이 교차되는 중심, 이상이 교차되는 그 중심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랑과 생명과 이상이 한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면 하나님도 사랑이요 나도 사랑이요, 하나님도 생명이요 나도 생명이요, 하나님도 이상이요 나도 이상이 된다 이겁니다.

그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최초의 인연과 최초의 통일의 장소가 부자관계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아니면 그런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69-78)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분이시라면 그 절대적인 분이 왜 인간을 지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지식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권력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 때문에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인간은 아들딸이라는 것이 하나의 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축이 만일 연결됐더라면, 인간과 하나님이 사랑으로 일체된 관계를 무엇이 작용해도 절대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아담과 해와가 서로 최고로 기쁜 가운데서, 최고의 생명력이 발휘되고, 최고의 힘이 합하고, 전체의 이상력까지 합한 가운데서 사랑의 꽃이 피어야 됩니다. 그래서 꽃과 같이 피어 가지고 그 향기가 온 천하를 덮고도 남을 수 있고, 하나님이 그 꽃을 바라보고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스스로 거기에 취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나님은 꿈꿨던 것입니다. (104-45)

 

하나님이 창조 당시 이상으로 바랐던 참된 사랑, 위대한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과의 사랑관계를 맺어 하나 될 수 있는 신인애일체(神人愛一體)의 가정을 이루었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천국이니 지옥이니 염려할 것 없이 그냥 그대로 천국으로 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좋아하는데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참사랑은 사랑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얘기하느냐? 그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거 이상한 말이지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참사랑의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의 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대상될 수 있는 사람에게 뿌리를 심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177-232)

 

그래 동맥이 위대하냐, 정맥이 위대하냐? 어떤 게 위대해요?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위대하냐? 사람이 위대하냐? 같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동맥적이라면 우리 인간은 정맥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대등할 수 있는 그런 특권을 지닌 인간의 가치가 있는 겁니다.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나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게 무엇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게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109-118)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입니다. 우주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왔다고 생명이 제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생명에서부터 했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의 발원지, 동기는 사랑입니다. 생명이 생겨난 것은 사랑때문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을 대신한 자리에 서게 되면 우주의 모든 것에 연결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위대한 이유는 참사랑으로 내자신이 하나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하나님도 내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내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 안에, 손자가 할아버지 안에, 할아버지가 손자 안에 있다는 말이 여기서 생긴 말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를 중심삼고 정을 맺어야 됩니다. 이렇게 되어야 사랑의 수직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 손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같이 모셔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의 축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세운 다음에 횡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인간 완성은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시면 그 분이 왜 인간을 지었느냐? 돈 때문에, 지식 때문에, 권력 때문에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 때문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인간은 아들딸이라는 것이 하나의 축을 이루는 것입니다. 만일 이 축이 연결됐더라면, 인간과 하나님이 사랑으로 일체된 관계를 무엇이 작용해도 절대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에다가 줄을 매고 그 사랑의 맛을 본 사람이 갈라질 것 같습니까? 벌은 봄에 꿀맛을 보게 됩니다. 꿀을 빨고 있는 벌의 꽁무니를 잡아당기면 꽁무니가 빠지더라도 꿀에서 입을 떼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그 최고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바로 아들의 자리요, 딸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천정(天情)이 있고, 우리 인간에게는 인정(人情)이 있습니다. 이 인정과 천정이 서로 합할 수 있는 귀결점은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절대자인 하나님도 원하고 인간도 원하는 단 하나의 자리, 즉 한 부모를 중심으로 한 아들딸의 입장에서 서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사랑의 둥지 가운데 품겨 사랑의 둥지 가운데서 태어나는 아들딸이 얼마나 가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매일같이 찾아와서 구경하고 싶고, 만져주고 싶고, 속삭이고 싶은 우주의 주인공이 있다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하겠습니까? 그러한 우주의 주인공으로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사랑입니다.

아담과 하나님이 하나되어, 서로 사랑이 넘치게 될 때 아담은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담이 사랑으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될 때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거()합니다. 성경에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적인 걸작품으로서 하나님을 닮아서 났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우리도 영원한 성품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람은 영생해야 되고, 영생해야 그 걸작품의 존재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반드시 인간에 의해 횡적으로 뻗어나갑니다. 전기의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주고받으면 반응하는 극이 생깁니다. 그런 것이 다른 데에서 또 벌어집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횡적으로 뻗어나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은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그 외의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참사랑의 길이며, 참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 보고 듣고 먹고 만져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입맞춤을 받았다면 내부가 폭발할 것 같은 희열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램은 여기에 있는 것이지, 다이아몬드나 보석을 소유하고 기쁘다고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9-21)

 

인류는 세계 무대에서 제일이 되는 것을 바라기 이전에, 본연적인 아담과 해와의 가정에서 제일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 앞에 직계 왕자와 왕녀의 자리를 갖추게 되면, 그들은 남자로서 최고요, 여자로서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차지해야 할 장자권 왕자, 장자권 왕녀의 자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에 한으로 남아졌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다시 찾고자 첫째 아들과 첫째 딸의 자리를 찾아나오는 인생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의 몸은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집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으로 삼고 참사랑으로 영원히 통일된 사랑의 체(), 생명의 체, 혈통의 체가 되었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마음과 몸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타락이란 악마의 사랑을 중심삼고 악마의 생명체와 핏줄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때문에 이 핏줄을 개조해야 됩니다.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로 개조해야만 구원섭리의 완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226-48)

 2) 참부모의 사랑

 

  ① 원죄 없는 참조상, 인류의 구세주

 

참부모가 뭐냐?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은 종적인 사랑이 되고,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몸과 같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뼈와 같고, 아담과 해와는 몸과 같은거다 이겁니다. 하나님도 마음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자리에서 내적인 부모가 되고 아담과 해와는 외적인 자리에서 외적인 부모가 되는 겁니다. 내적 외적 부모가 하나된 그 자리에서 사랑으로 엮어져 내적 부모를 모시게 되고 외적 부모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의 결탁에 의해 참부모, , 완성한 인간이 성사될 것이었다 이겁니다. 사랑과 결탁 안 되게 되면 완성인간이 없다는 겁니다.

오늘날 역사는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시대는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미래는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참부모입니다.

그러므로 전체가 여기에 귀결되지 않고는 행복의 기준은 역사과정이나 우주 가운데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26-199)

 

참부모란 어떠한 존재냐? 참부모는 전체의 소망의 상징입니다. 타락한 인류 앞에 절대적인 소망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결실체요, 시대적인 중심이요, 인류가 살고 있는 오늘날 이 세계로 연결될 수 있는 미래선상에 있어서의 출발점입니다. (144-132)

 

참부모라는 그 이름 세 자()를 생각할 때, 참부모로 말미암아 역사가 치리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기원이 생겨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이 결정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외적인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사탄을 정복하여 비로소 하나님을 해원성사해 드릴 수 있는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와 더불어 살고, 참부모의 명령을 받들어 행동할 수 있는 이 놀라운 은사에 여러분이 먼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43-144)

 

인간의 소원은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죽음길을 가더라도 만나야 할 사람이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다 잃어버리고, 시대를 다 잃어버리고, 자기의 후손을 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참부모를 만난다면 역사를 찾는 것이요, 시대를 찾는 것이요, 미래를 찾는 것입니다. 이런 분이 바로 참부모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3-143)

여러분은 하나님과 참부모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누구도 복귀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눈물의 길을 걸어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163)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 땅 위에 참부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온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라는 말, 세상의 말 중에 제일 복된 말이 무엇일 것이냐?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 나라를 잃었다가 찾는 것보다도, 세계를 잃었다가 찾는 것보다도 참부모라는 말이 제일 복된 말입니다. 그것은 천지의 그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27-221)

 

참부모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역사가 좌우됩니다. 이 말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선열들이 희생의 길을 갔습니다. 연속적인 피의 투쟁을 거치고 몸부림치며 절규하면서 소망을 품고 찾아 세운 이름이 참부모라는 거룩한 이름입니다. 참부모 앞에는 참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 여러분들이 참자녀가 되었습니까? 참이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33-109)

 

하나님의 복귀역사는 참부모를 세우기 위한 역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 아벨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늘은 내적으로 참부모를 복귀하기 위해서 섭리해 나왔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근본섭리에 대적(對敵)하거나 훼방하면, 그는 천도(天道)앞에 버림받게 되고 결국 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9-10)

 

메시아는 참부모입니다. 우리들은 참자녀입니다. 같은 운명권에 서서 거기에 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55-99)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오실 때 그분은 개인으로 오시되 개인이 아닙니다. 그분의 가치는 온 세계 인류가 믿고 있는 신앙의 결실체요, 온 세계 인류가 바라고 있는 소망의 결실체요, 온 세계가 바라고 있는 사랑의 결실체입니다. 그 결실체에는 모든 역사노정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과거-현재-미래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전부 연결되어 있고 하늘과 땅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13-143)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대행해야 할 자리가 참부모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는 뭐냐? 종적인 참아버지 대신으로 횡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횡적인 부모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메시아가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메시아라고 하는데, 그건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참아버지입니다. 이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딴 길로 못 갑니다. 메시아는 횡적인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13-141)

 

참부모가 이 땅에 출현하기까지에는 그 배후에 여러분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눈물겨운 사정이 많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210-364)

 

우리가 알고 있는 참부모는 뭐냐? 인간 조상입니다, 인간 조상. 그러니 참부모를 자기 부모와 같이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118-147)

참부모가 이 땅 위의 인간들 앞에 뭘 하려고 찾아오는 거예요?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여러분들을 참부모, 작은 참부모로 만드는 놀음입니다. (125-117)

 

어디서부터 참사랑이 출발하느냐? 참부모에서부터. 이건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세상에 무슨 좋은 말이 있다 해도, 남편이라는 말이 좋은 말이고, 아내라는 말이 좋은 말이라 해도, 타락한 세계는 참부모가 나타나지 않고는 참된 남편과 아내가 안 나타나기 때문에 참부모 이상 좋은 복음이 없다 이겁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137-187)

 

인류는 참부모가 필요한 겁니다. 왜 그러냐? 사랑의 축에 연결될 수 있는 원칙적인 일이 역사 이래 처음 벌어진 겁니다. 역사 이래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습니다.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축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그 축이 무엇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137-128)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이 뭐냐 하면, 하나의 초점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이 실현되는 자리도 바로 그 자리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부모, 잃었던 참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곳도 바로 그 곳입니다. 그래서 그 기대(基臺)가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그 자리, 그것이 '참부모'라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상 많은 자리가 있었지만, 이 자리가 가장 가치 있는 자리입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모든 성인들도 이 기대, 이 문제를 위해 싸웠습니다. (52-95)

 

인류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이냐? 참부모를 모시는 것입니다. 6천 년 전에 아담과 해와가 성혼해서 온 인류가 하나님의 후손이 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사탄의 후손이 되어 버렸사랑?악한 생명?악한 혈통은 다 부정하지만, 아벨을 죽인 가인은 제거해 버리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축복해 줍니다. 바다의 조수 물을 볼 때 나가는 물과 들어오는 물이 만나 수평을 이룬 때와 같이, 구원섭리(탕감복귀)가 종결되는 선악의 전환기에서 선인과 악인을 함께 다 축복해 줌으로써 사탄을 완전히 추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결혼을 잘못한 것이 타락이니, 이제 참부모가 바르게 결혼시켜 줌으로써 다시 뒤집어놓은 것입니다. 거짓 부모가 저질러 놓은 일을 참부모가 청산함으로 지옥을 철폐하고 수백, 수천억의 영계의 조상들마저 축복 결혼시켜 주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한 지상의 후손들의 가정기반을 통해 영계의 조상과 지상의 후손이 종적으로 하나로 합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가정기반을 기점으로 동양과 서양이 서로 연결됩니다. (22-239)

양자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참된 아들에게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 순을 접붙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들이 참감람나무가 되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하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가 바라는 것은 참부모이고, 예수와 성신이 바라는 것은 어린양 잔치입니다. (142-226)

 

먼저는 부모를 진심으로 그리워해야 됩니다. 내 생명의 동기도 부모요, 내 소망의 일체도 부모요, 내 모든 이상과 행복의 근원도 부모라고 하는 기준을 중심삼고 부모를 모시지 않고는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모셔 보았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참부모와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아들딸이다'라는 신념을 자신의 존재의식을 초월할 수 있을 정도로 굳게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38-75)

 

육적인 부모만 있으면 될 텐데 영적인 부모가 왜 필요하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부모가 무엇을 가르쳐 주었느냐? 절반 이상 더 큰 것을 다 따버리고 자기를 중심삼고 자꾸 내려가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세계에 영원히 있게 하기 위한 하나의 결정적인 금이 그어졌습니다. 이것을 끊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참부모는 뭐냐? 그런 기반에서 점점 더 큰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 영원한 나라에 맞게끔 가르치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 가서 박자가 맞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호흡에 지장이 없게끔 가르치는 것입니다. (129-99)

 

 3) 부모의 사랑

 

  ① 부모의 사랑은 본질의 사랑이다.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실현체요 투입체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의 연장체입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의 이상의 구현체입니다. 자식을 낳아서 사랑해 본 사람들은 알겁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에 대해 '이는 내 사랑의 실체요, 생명의 연장체요, 이상의 구현체다. 2의 나다'라고 하는 겁니다. (54-81)

 

자식은 사랑과 생명과 이상적 기반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는 그 자식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보면 볼수록 생명이 약동하고, 보면 볼수록 이상적인 상대로 등장되는 것입니다. (54-81)

 

부모가 변할 수 있어요? 부모의 사랑을 혁명하는 것은 역사시대에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혁명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혁명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히 존속해야 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 그러한 사랑의 주체 되는 부모가 나를 절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유일적으로 필요로 하고, 불변적으로 필요로 하고, 영원히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18-12)

 

자식은 왜 부모를 그리워 해요? 거기에 나의 사랑의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137-141)

 

부모의 사랑을 왜 존중시하느냐? 보답을 바라지 않고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결과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으로 다 행복하다는 겁니다. 주는 것으로써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받는 것으로써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습니다. 왜 복이 있느냐? 하나님편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6-36)

 

부모가 자식에 대해 하는 사랑은 그냥 그대로 생활적인 인연만을 통해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인 것입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끊을래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부모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식과 생명의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부모에게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32-15)

 

참사랑은 무엇이냐? 위하는 사랑인데 주고는 그냥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준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무리 부어 주어도 지치질 않습니다. 70이 된 아들보고 '얘야! 차 조심 해라'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고, 몇십 년 동안 그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하더라도 싫증나거나 지치는 법이 없습니다. 타락한 세상의 부모가 이렇거늘 하물며 본질세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 받을 때 지칠 리가 있겠습니까? (139-103)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데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권한을 가지고 언제나 당당한 자리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자식이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부모는 변하지 않는 사랑의 주인입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이 천태만태로 변해 별의별 짓을 다 해도 자식을 위하는 마음만은 변함 없습니다. 때문에 변하지 않는 부모의 사랑이 귀한 것입니다. (59-293)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뼛골이 녹아나도록 고생을 하지만 힘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피살을 깎아주고 그 값어치가 얼마인지 장부에 치부해 둡니까? 안 합니다. 오히려 몽땅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39-335)

 

부자관계는 어떤 것이냐? 사랑을 중심삼고 무슨 관계겠느냐? 부자관계는 부모의 사랑이 원인이면 그 자식은 사랑의 열매요 결실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결실과 원인이 동떨어진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한 자리에서 출발을 본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원인인데 그 사랑 가운데 내가 결실로 나타났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부모님이 현재 사랑하는 자리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 ''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더불어 일체화한 원인과 결과의 자리를 대등하게 갖고 태어난 것이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144-233)

 

부자관계는 종적인 면을 대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관계의 사랑은 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 역사상에도 그렇잖아요? 부부의 사랑은 횡적인 면의 인연이기 때문에 사방성을 갖춘 겁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없고 자식이 부모를 버릴 수 없다는 겁니다. (145-275)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를 대하는 기쁨은 그야말로 세계를 대표한 기쁨이 되어야 되고,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을 대하는 기쁨은 세계를 대표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부자의 관계는 그야말로 우주의 근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기쁨의 근본이 거기에서부터 싹틀 것이고, 슬픔이 시작된다면 그 이상의 슬픈 자리가 없다는 것을 결론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62-18)

 

부자의 관계는 뭘 두고 말하는 거예요? 이것은 핏줄이 연결된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말 가운데는 사랑이 개재돼 있고 핏줄이 개재돼 있다는 것입니다. 직계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한몸이 돼야 됩니다. 핏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피는 생명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전통을 이어받은 생명을 지니는 겁니다. 무엇에 의해서? 사랑에 의해서. (142-287)

 

내가 어디서부터 태어났느냐, 나는 부모의 사랑이 지극히 꽃피는 자리에서 태어났다는 겁니다. 꽃이 피는 데는 아름답게 피고, 아름답게 필 뿐만이 아니라 향기가 풍기고, 그 향기는 어머니 아버지도 좋아하고 하나님도 좋아하고 만우주도 좋아하는, 이상적인 꽃으로 필 수 있는 그런 가운데에서 내가 태어났다 이겁니다. (83-162)

 

우주를 종합한 남자요, 여자로 태어난 그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의 꽃을 피우는 그 자리에, 기쁨의 자리에서 하나의 씨로 심어진 것이 자녀인 것입니다. (83-162)

 

나는 누구냐? 부모의 사랑의 출발 근원에 동참한 자인 것입니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가 한 곳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뗄래야 뗄 수 없습니다. 원인적인 부모의 사랑과 결과적인 내 생명의 사랑의 근원은 하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랑을 중심삼고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는 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90-118)

 

사랑을 빼놓고는 일신이나 일체라는 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복중에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습니다. 내가 사랑의 본질로 말미암아 복중에 잉태된 그 시간에서부터 부모의 사랑과 모든 관심이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러냐? 사랑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태어나, 사랑에서 생명의 인연을 이어받아 가지고, 사랑을 받으면서 커 가지고 상대를 맞을 수 있는 때가 되면 상대를 취하는 겁니다. (140-234)

 

부자의 관계는 어떤 무엇으로도 깰 수 없습니다. 원자탄으로도 깰 수 없습니다. 절대로 깰 수 없고, 헤어질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관계입니다. (21-69)

 

부모와 자녀의 인연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는 겁니다. 내 사랑과 내 생명의 주체성을 가진 것이 자녀이기 때문에, 이걸 끊으면 나를 부정하고 내 생명을 부정하는 자리에 서게 되므로, 사랑의 결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생명을 버릴 수 있다 하는 논리를 찾을 수 있는 겁니다. (83-162)

 

부처끼리 살면서 아무리 재미있게 사랑한다 해도 자식이 없는 부부가 행복한 부부예요, 자식이 있는 부부가 행복한 부부예요? 자식이 없는 것은 미완성품입니다. 미완성 부부라는 겁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92-219)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칠 법이 없습니다. 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주가 보호하게 돼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안고 좋아하는 그 자리는 이 우주의 법이 공격할 수 없고 보호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몰랐습니다. (130-152)

 

자식이 병자가 되어 있고 병신이 되어 있을 때에는 높고 깊은 부모의 심정은 그 병신 자식에게로 흐르는 게 원칙입니다. 그게 틀렸어요? 그런 불구자의 심정은 계곡과 같은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은 꼭대기의 큰 자리와 같습니다. 그러한 부모의 심정이 꼭대기로부터 그 깊은 골짜기로 흘러갑니다. (147-166)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품에는 나쁜 것이 없습니다. 옷이 누더기면 누더기일수록,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것이 눈물의 깊은 골짜기를 파내려가고 있다는 겁니다. (173-263)

 

여러분, 애기가 똥싸는 걸 부끄러워 한다면 어떻게 되겠나요? 똥을 싸놓고 오줌을 싸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머니가 똥 치우는 것 보고 벌쩍벌쩍 웃고 있습니다. 그거 얼마나 순진해요, 그것은 사랑에서만 가능합니다. 사랑에서는 추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175-113)

 

품 안에서 젖을 먹여 키우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 자식이 똥 싸고 오줌을 싸서 냄새가 나더라도 사랑으로 그 환경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타락한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랑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께서 본연의 심정을 통해 아담과 해와를 사랑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한 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175-113)

 

부모의 마음은 주고도 부족함을 느끼고, 사랑하고도 덜 사랑한 것이 있지 않겠나 하여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 주고 나서 섭섭하고 안된 마음, 이러한 것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과 통하는 본질에 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출발의 전통적 동기입니다. (60-82)

 

부모가 이혼하는 것은 칼로 자식을 절반으로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공법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를 거역하는 부모는 어디를 가든지 화를 받고 불행이 따르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배가 고파오면 어머니의 젖이 불어납니다. 젖이 불어 가지고 아파오면 안 조이는 데가 없습니다. 배고파하는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기분이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불었던 젖이 줄어들면 어머니는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건 어머니가 아니고는 모릅니다. 또 아기가 쪽쪽 빨아 먹으면서 젖을 만지는 걸 볼 때는 사랑이 듬뿍 우러나는 것입니다. (187-100)

 

자식을 가진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 중에 누구를 죽음의 자리에 내놓겠느냐고 묻게 되면, 그 어머니가 진짜 자식을 사랑한다면 남편을 죽음의 자리에 내놓으면 내놓았지 자식은 안 내놓겠다고 하는 겁니다. 남편들이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세상 같으면 '그거 뭐 자식이야 죽으면 또 낳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부가조건이고, 원칙을 따지고 들어가 순서가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부부라는 것은 횡적이요 맨 나중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랑의 역사가 그렇다구요, 사랑의 역사가. (48-214)

 

본연의 사랑이 도대체 뭐냐?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그게 사랑입니다. 자기 생명을 넘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본래 이 우주가 창조된 것은 생명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지어졌기 때문에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부합될 수 있는 생명이지, 생명에 사랑이 부합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생명을 희생해서 생명을 넘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늘의 사랑이요, 우주와 통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32-153)

 

연어의 일생을 보면, 연어는 알을 낳고는 죽습니다. 그런데도 알을 배기 위해서 수놈 암놈이 그저 하나되어…, 그거 보면 죽을 날을 정한 사형수의 입장에서 부부가 사랑하는 이상의 사랑을 하지 않느냐 이겁니다. 암놈이 알을 낳게 되면 수놈은 땅을 파서 보호해 줍니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한 쌍입니다. 그리고 알을 낳게 되면 죽는 겁니다. 죽어가는 암놈 수놈들의 여러 가지 모양을 볼 때 참으로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어미의 몸은 새끼들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128-269)

 

창조주가 있다면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걸 보면 새끼가 얼마나 중요한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최고의 것이요, 새끼가 최고의 것이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한 하나의 표본으로 연어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이론은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연어의 일생은 참 놀라운 인간의 교재입니다. (128-260)

 

  ② 나누고 또 나누어도 완전한 부모의 사랑

 

자녀는 왜 사랑하는가? 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을 우리가 횡적인 실체권에서 이어받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고 하나님이 기뻐하던 그 기쁨을 우리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고 하나님의 창조적 권한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128-260)

 

자식을 많이 키워 본 부모는 무엇인지 모르게 사랑의 심정이 넓고 크고 깊은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식을 많이 기른 사람은 악한 원수도 칠 수 없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무엇인지 모르게 넓은 터전에 서 있고 넓은 법도를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132-5)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사랑의 전파를 따라 자동적으로 젖꼭지를 찾아갑니다. 추녀이든 미녀이든 상관없이 어머니면 그만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조화무쌍하고 거룩한 모습인 것입니다. (93-146)

 

사람은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을 받으면서 큽니다. '' 라는 존재는 부모의 사랑의 열매인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실제 열매로 보여 준 것이 ''입니다. 부모님은 사랑의 열매인 ''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열매를 통해서 무한한 사랑이 다시 열매맺는 것입니다. 개인적 사랑, 가정적 사랑, 종족적 사랑, 세계적 사랑?우주적 사랑?그리고 본질적 하나님의 사랑까지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부모앞에 둘도 없는 사랑의 동참자요 동반자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와 대등할 수 있고 대등한 자리에 올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특권입니다. 부모는 참되게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상속하려고 합니다. 우주의 상속은 사랑의 전통상에서 동등한 사랑의 가치적 위치를 찾게 될 때, 모든 것을 마음놓고 백 퍼센트 상속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효자를 원하는 것입니다. 효자란 부모의 영원한 사랑의 동참자로 사랑의 상속을 이어 주는 것입니다. (190-118)

 

사랑으로 태어난 아기가 무슨 짓을 해도 밉지가 않고 마냥 좋은 것은 그 아기가 자기의 피와 살로, 그리고 사랑으로 만들어진 분신체이기 때문입니다. 오줌을 싸고, 똥을 누고, 코를 흘려도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것입니다. 그것들 속에는 사랑이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175-113)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은 부모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성장하여 횡적인 부부의 사랑을 하게 되고, 부부의 사랑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또 자녀를 낳아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있어야만 참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형제끼리의 사랑만으로는 부모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로 시작해서 한 바퀴 돌아 부모로 돌아가봐야 그 사랑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137-67)

 

나에게는 어머니, 부모의 사랑줄과 이상줄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 줄은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주의 모든 힘이 이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딜 가든지 부모는 따라오게 됩니다. 저 영계에서까지도 부모는 언제나 함께하려 합니다. 때문에 부모가 동행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모님을 자기 몸같이 생각하고 사랑하고 효도하는 것이 인간에게 최고로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게 된 것은 부모의 사랑에서입니다. 부모의 사랑에서 접붙여서 나온 겁니다. 생명의 연결을 말하기 전에, 핏줄을 말하기 전에, 사랑으로 말미암아 핏줄이 이어지고 생명이 이어진 것입니다. ''라는 것이 왜 귀하냐. 생명을 가졌기 때문에 귀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에 동참했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사랑은 부모가 했지만 사랑의 열매는 ''입니다. 시작과 결실을 지니고 태어난 것이 바로 ''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190-118)

 

참된 부모는 사랑의 전통을 계승시키기 위해서 애쓸 것입니다. 그것은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종족을 초월해서 모든 부모들이 세우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사랑의 전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정을 온전히 화목하게 결합하여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인생을 갈망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전통은 본질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통만이 미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세계 1978. 11-11)

 

부부간의 사랑과 부자지간의 사랑 중에 어느 것이 크냐? 서양 사람들은 부부간의 사랑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부부간의 사랑보다 자식을 위하는 사랑이 더 큽니다. 부부끼리의 사랑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싸움이 벌어지지만 부모와 자식간에는 사랑해야 한다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부자의 사랑이 중심이요 종적인 것으로 하늘의 법도에 가까운 길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하는 사랑이, 위해 주는 사랑이 보다 참된 사랑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남자도, 아무리 독한 여자도 그 사랑 앞에는 고개를 숙인다는 것입니다. (90-85)

 

부모가 귀한 것은 자식을 위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꿔치는 겁니다. 부모가 나이 많아지면 어린애가 되는 겁니다. 옛날에는 부모가 자식의 선생이 되었지만, 나이가 70,80이  되면 부모는 도리어 애기가 되는 겁니다. 그때는 자식이 아버지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가 자기를 키워 주었던 것처럼 그 부모를 사랑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천지의 이치입니다. (137-96)

 

 4) 부부의 사랑

 

  ① 부부사랑은 만우주의 꽃이다

 

남자는 하나님의 양성적 형상을 지닌 존재요, 여자는 하나님의 음성적 형상을 지닌 존재입니다. 부부는 천하를 한 보자기에 싼 것과 같습니다. 고로 부부는 하나님의 이상적인 사랑의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13-67)

 

하나님은 종적 이성성상을 가진 분이요, 인간은 횡적 이성성상을 가진 실체로서 둘이 합해서 완전한 둥그런 사과모양을 이루어 가지고 네 개의 성상형태를 가진 동서남북에 사랑이상을 끌어붙일 수 있는 모체를 삼자는 것이 부부의 이상입니다. (1982. 5. 5)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조화와 만상은 하나님께 향취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아름다운 향취 속에 살고 싶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올 수 있는 터전이 곧 부부의 사랑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모든 만물과 우주가 화동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216-20)

 

부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의 바탕 위에서 폭발될 듯이 서로 사랑한다면,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취하고 우주가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을 위한 사랑이요, 인류를 위한 사랑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뿌리는 어디에 있느냐?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이요, 인류의 사랑이 근원인 것입니다. (35-240)

 

이상적 부부란 어떠한 부부냐? 최고의 예술을 실체로 전개시킬 수 있는 부부, 최고의 문학을 전개시킬 수 있는 부부인 것입니다. 최고의 이상, 최고의 문화세계를 접하기 전에 최고의 사랑으로 부부가 주고 받는 달콤한 사랑이 세계 최고의 예술작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부생활 자체가 최고의 문학작품이요, 그 자체가 문학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2-270)

 

사람에게는 항상 자극이 필요합니다. 행복은 자극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극이 있어야 됩니다. 항상 먹는 밥도 먹을 때마다 배가 고파야 맛이 새로운 것처럼 부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항상 새로워야 됩니다. 부인과 남편이 서로 보면 볼수록 더욱 보고 싶고 온종일 함께 있고 싶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나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연구를 해야 됩니다. (23-57)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3대 사랑을 중심삼고 같이 꽃필 수 있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 세계의 소원이요, 인류의 소원이요, 미래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로소 천지의 법도 앞에 역사의 향기를 풍길 수 있고, 새로운 꽃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부부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35-240)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런 사랑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랑으로 맺어지면 지상에서 백년해로를 해야 하고, 죽어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몸은 둘이지만 하나되어 돌아감으로써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두 몸이 하나되면 하나님과 돌게 되어 사랑의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니 그것이 바로 이상세계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거짓 사랑이 침범할 수 없으며, 오직 참사랑만이 임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207-20)

 

심정적인 사랑에 의해 맺어진 부부는 그 애정이 생활권을 타고 넘고 생애를 타고 넘어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되었음에 틀림없다고 하는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35-180)

 

남자와 여자의 사랑 완성이 우주의 완성입니다. 이 사랑이 깨어지는 날에 우주의 질서가 파괴되고 종적인 세계가 다 결딴나게 됩니다.

(통일세계 1982. 7-21)

 

부부의 사랑을 통해 하나됨으로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창조능력을 이룬 것이 자녀입니다. (1973. 2. 3)

 

순수한 남성 여성으로서 붉은 사랑의 정열의 마음을 지니고 천지를 대표할 수 있는 남성 여성, 그렇게 묶어진 부부를 하늘은 찾고 있습니다. 그런 부부의 사랑을 가지고 그러한 사랑에서 아들딸을 키워야 되겠습니다. (회보 172-3)

 

남자 여자가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은 평면적 극에서 사랑을 찾아가기 위한 충돌의 빛이 나는 장면입니다. 거기에 흰 빛이 나면 색깔을 가해서 오색찬란한 빛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 빛이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섞어질 때 무지개 빛깔 같은 이상적인 찬란한 광명의 세계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34-142)

 

요즈음 인스턴트 식품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그것이 문제입니다. 향수탕에 들어가 목욕한다고 해서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골에 살면서 냉수에 몸을 담가 씻어내고 잠자리에 드는 부부의 사랑이 더욱 순수하고 오래 가며 깊어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통일세계 1986. 2-34)

 

신랑 신부는 돈이나 권력, 명예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가운데, 부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정을 꾸며 나가야 합니다. (1983. 5. 1)

 

남성은 참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성은 참어머니의 분신입니다.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무시하면 참어머니를 무시하는 것이요, 아내가 남편을 속이면 참아버지를 속이는 것이 됩니다. 남자가 여자를 주관하고 여자가 남자를 주관할 수 있는 힘은 사랑입니다. 사랑 외에 어떠한 힘도 남녀간에 상호 주관할 수 없으며, 오직 사랑만이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128-132)

 

여자와 남자를 힘으로 비교하면 상대도 안 되지만 사랑이 개재된다면, 아내와 남편이 서로 밀고 끌어 당기며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대상적인 사랑의 존재가 되었다면 하나님이 좋아하실까요?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4-22)

 

최고로 좋아하는 멜로디가 무엇이냐 하면, 남자 여자가 서로 좋아서 기뻐하는 부부의 웃음소리인 것입니다. 그런 부부가 세상을 품을 수 있고, 우주 전체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으로 삶을 영위할 때 그 웃음은 자연발생적이 됩니다. 그런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하나님 앞에 한 송이 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한 이상이나 추상이 아닙니다. 본래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216-20)

 

사랑하는 부부간의 대화는 세상의 어떤 시나 그림보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우리끼리, 우리 둘이서' 하는 말은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 말입니까? (통일세계 1986. 2-28)

 

남자와 여자가 축복을 받아서 완전한 사랑을 주고 받으며 기쁨을 누릴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지상에 핀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의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조화만상은 하나님에게는 향취와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향취 속에 하나님은 살고 싶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올 수 있는 터전이 곧 부부의 사랑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만물과 우주가 화동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216-20)

 

  ② 부부사랑은 나누어지면 불완전

 

인간은 본성적으로 상대의 자기에 대한 사랑이 나누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부부간의 횡적인 사랑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간의 종적인 사랑의 관계와 달리, 나누어지면 벌써 그 온전성이 파괴됩니다.

부부간에는 절대적인 사랑의 일체를 이루게 되어 있는 창조원리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상대를 절대로 위해야 할 사랑의 책임성이 있습니다. (성약말씀?구원섭리의 원리관)

 

사랑의 강력한 힘으로 맺어진 부부라면 상대가 무슨 짓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해도, 기쁘고 사랑스러워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싫다고 한다거나, 부인이 하는 몸짓이 싫다고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은, 둘 사이에 완전한 사랑이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부부는 목적을 위해 이해관계로 맺어졌기 때문입니다. (통일세계 1983. 3-22)

 

부부가 함께 사는데 있어서 일생 동안 편안히 사는 것보다 사랑을 중심삼고 곡절을 겪으면서 태풍도 불고, 폭풍우도 내리고, 벼락도 치는, 그러한 다양한 느낌을 느끼면서 이상의 사랑을 추구하는 게 더 행복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돈이나 지식이 아닌 사랑이 필요합니다. (167-213)

 

사람의 말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여자의 말소리가 남자의 말소리보다 높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높게 만들었느냐? 힘에 있어서는 남자보다 약하지만 정에 있어서는 여자가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는 어떤가. 남자는 넓은 사랑을 합니다. 자기 남편과 아들딸만을 생각하는 사랑에 있어서는 여자가 높지만 친척이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남자들이 더 깊습니다. 그래서 아들딸을 사랑하거나 가정을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에게 배우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에게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불안하지만 이것을 엮어 놓음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129-55)

 

맨 처음 한 3년 동안은 접붙이려면 안 맞습니다. 집안이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예절이 다른 남자와 여자가 맞을 것이 뭡니까? 하나될 때까지는 맞추어 나가는 노력을 해야 맞게 됩니다. (188-13)

 

사랑을 통해서만 더 큰 것이 나옵니다. 위하는 사랑에서만 수가 불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가 싸우는 사랑에서는 망국지종(亡國之種)이 태어납니다. 그렇지만 위하는 사랑에서는 천지의 모든 정수(精髓)를 뺀 하나님 같은 지혜의 왕자 왕녀가 태어납니다. (204-106)

 

부부가 왜 싸움을 하느냐? 서로가 사랑을 받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패들은 오래 못 갑니다. 서로가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가정은 깨집니다. 그러나 서로가 사랑하겠다고 하는 가정은 깨지라고 제사를 지내도 안 깨집니다. 서로가 위해주려고 하는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36-76)

 

사랑은 우둔하고 미욱한 것입니다. 어떤 상황도 개의치 않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옆에서 누가 보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누가 볼 것을 의식하는 사랑은 한계권 내의 사랑입니다. 누가 보든 의식하지 않는 그러한 경지의 사랑이니 얼마나 우직하고 미욱합니까? (33-113)

 

경제문제를 중심삼은 어려움이 부부의 인연에 금이 가게 할 수 없습니다. 유식과 무식이 부부의 사랑을 흐리게 만들 수 없습니다. 순수한 남성, 여성으로서 붉은 사랑과 정열의 마음을 지니고 천지를 대표할 수 있는 남성 여성, 그렇게 묶어진 부부를 하늘은 찾고 있습니다. (통일세계 1986. 2-28)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왜 이혼문제가 생겨나게 될까요? 이혼한 사람이나 이혼을 하겠다는 사람 모두가 처음에는 죽자살자 사랑하는 관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혼하게 된 사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결국 무엇인가 달라졌다는 것이고, 둘 사이가 변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사랑을 지키고 가꾸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랑 그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28)

 

세상의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남편이 돈을 벌어 올 때에 힘이 생겨납니다. 부인은 남편이 벌어온 돈을 보고 힘이 나고, 남편도 힘이 나는 부인을 보고 힘이 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벌지 못하면 불안하고 부부관계가 깨어지기도 합니다. 참된 부부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랑의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통일세계 1982. 7-26)

 

어떤 남자는 자기 아내가 있어도 예쁜 여자를 보면 자기 아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두 마음 가진 남자를 가리켜 도둑 심보를 가졌다고 합니다. 두 마음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사탄이니 두 마음 가진 남자를 가리켜 사탄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탄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38-281)

 

부부는 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얼굴이 제각기 다른 것처럼 사람의 운도 다릅니다. 일생의 운명이 다릅니다. 남편의 운명이 나쁘더라도 아내의 운명이 좋으면 그로 인해 남편의 운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내의 운명이 나쁘더라도 남편의 운이 좋으면 그도 역시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부부의 운명은 산과 골짜기를 허물어서 평지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평지를 만들어 거기에 부부의 이상을 가지고 나무를 심고 밭을 갈고 여러 가지 사랑의 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치를 생각해 볼 때, 상대를 외면적으로만 보고 결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 544)

 

남편을 만나면 좋을 줄 알았더니 나쁠 때도 있다는 겁니다. 좋은 것만 바라면 안됩니다. 24시간 계속 햇빛만 쬐면 되겠어요? 밤도 있어야지. 높으면 낮아지는 것이 원칙이 아니겠습니까? (30-143)

 

행복한 가정은 남편이 나갔다 들어오면 밖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아내와 더불어 상의하고 새롭게 개척할 수 있는 요인을 발견하는 가정입니다. 서로가 힘을 합해 연구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부모가 그렇게 하면 자식들도 거기에 힘을 보태어 우리도 이러한 가정을 만들자고 하며 동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28)

 

사랑하는 부부끼리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얼굴이 어떻다고 규정짓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상대의 얼굴이 한 모양으로만 느껴진다면 그것처럼 싫증나는 것은 없습니다. 상대방의 얼굴은 기쁜 마음으로 보게 되면 기쁜 상태로 나타나고, 사랑의 마음을 갖고 볼 때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물이 흐를 때 굽이치는 것과 같이 한 굽이 돌 때마다 새로운 모양이 나타나듯 늘 상대의 얼굴을 새롭게 느껴야 됩니다. (1976. 3. 3)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것은 얼굴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방 팔방에서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공과 같이 입체적인 것입니다. 위에서 보아도, 옆에서 보아도, 어떤 방향에서 보아도 자기 나름의 완성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내의 얼굴을 함부로 평해서는 안 됩니다. 미인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덕이나 복을 지니고 있는 여성은 다릅니다. 얼굴이 예쁜 미인도 아이를 두세 명만 낳으면 벌써 얼굴이 이상해지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므로 아이를 낳아도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7-13)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는 데도 하나님 대신자로서 남편이면 남편, 아내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자리에서 사랑하게 되면 서로 부족한 면이 나타나게 되어 결국에 가서는 이혼하는 사태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1983. 5. 1)

 

사랑은 서로 그리워할 때 가치가 있습니다. 입이 있으면 입을 벌리고, 눈이 있으면 눈을 벌리고, 사랑을 달라고 해야 사랑을 주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멍청하게 있으면 사랑이 오다가도 도망가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심각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나올 때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205-11)

 

부부가 키스를 하기 위해서 이를 닦는다고 하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사랑이 아니며, 치약 냄새 때문에 사람만이 갖는 고유한 체취를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를 닦고 키스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사랑의 맛을 보기 위한 것인지, 치약냄새를 맛보기 위한 것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요즈음 세태를 보면 인간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 혼동할 정도로 계산적이고 인위적이며 가식적인 사랑이 만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사랑이 멸망의 길로 이끌어 가고 있는 주범이라 하겠습니다. (통일세계 1986. 2-34)

 

된장국은 뚝배기에 담아야 제 맛을 냅니다. 텁텁하고 구수한 된장국 맛은 한 번 맛들이면 어디 가나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구수하면서 텁텁한 맛 같은 사랑에 한 번 맛들이면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달기만 한 인스턴트 식품은 금방 싫증을 느끼는 것처럼, 사랑도 인스턴트 식품처럼 아무 곳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사랑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34)

 

에덴동산에서 벌거벗고 춤추는 것을 누가 보았겠습니까?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그런 일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방에서 부부가 벌거벗고 춤춘다고 그것이 걱정할 일입니까? 부부끼리야 벌거벗고 춤 아니라 무슨 짓을 해도 누가 상관하겠습니까? 부부끼리 하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21-242)

 

비둘기도 서로들 '구구구'소리를 내면서 좋아하는데 부부끼리 만날 때, 진짜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는데, 만나는 소리가 있다면 어떤 소리일까요. 벼락치는 소리보다 크면 컸지 작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세계 1979. 6-15)

 

부부가 잠자리에 들어서 속삭이는 밀어는 세상의 모든 피로와 미움을 녹이는 청량제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속삭이는 말 가운데,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돼' 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자연스럽듯이 사랑의 밀어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합니다. (통일세계 1986. 2-26)

 

부부가 사랑을 하는데 시아버지가 옆에서 자건 시어머니가 옆에서 자건 클라이막스가 될 땐 솔직하게 소리질러도 괜찮다는 겁니다. '저 집은 얼마나 부부의 의가 좋은지 밤에 요지경 소리가 나면 동네 쥐들이 깜짝 놀라고 울던 닭들도 뚝 그치더라' 할 정도로 동네방네 사랑의 소문을 내야 합니다. '쥐들이 놀라고 닭들이 울다가 그치게끔 소리가 나는 변이 왜 일어나느냐'고 물으면 '왜 그러긴 왜 그래? 천지가 진동하는 사랑의 함성이 울려 나오니까 그렇지'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136-34)

 

부부 사랑의 자리는 만우주의 꽃입니다. 역사시대 종합실체로 나타난 신랑신부가 사랑으로 하나되는 신방자리에는 하나님이 오셔서 정주(定住)하십니다.

그러니 사랑 가운데 이루어지는 신방자리가 얼마나 엄숙하고 무서운 자리입니까? 하나님과의 길을 이어 놓고 완전한 사랑의 마이너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여기서부터 천지 사랑의 태양이 뜨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생명의 보금자리, 이상의 보금자리로 화해 가지고 아내의 방을 찾아야 됩니다. (179-91)

 

요즘에는 버선을 안 신지만 옛날에 버선 신을 때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발가락이 나오도록 신었어요. 그러면 구린내가 나고, 시큼털털한 오만가지 냄새가 다 나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코에서는 '그 냄새가 향기보다도 더 좋다'는 겁니다. 구린내나는 발가락도 사랑할 때는 가서 핥는다는 겁니다. 가서 핥아도 맛이 알알하고, 달콤하고, 시큼하고, 얄궂다는 겁니다. 사랑의 안테나를 달고 측정하면 측정치가 싫다는 계수보다도 좋다는 계수가 쑥 올라간다는 겁니다. (148-319)

 

아들딸 재창조한다는 것이 쉬워요? 별짓 다해야 새로운 아들딸이 태어나지. 지독한 일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남편 침이 더러워요, 더럽지 않아요? 남편이 자기 손에다 침을 뱉아 놓았다고 할 때, 비단 치마 저고리를 입고 있어서 문지를 데가 없으면 그거 핥아서 먹고 싶어요, 안 먹고 싶어요? 솔직하게 얘기하라구요. '먹고 싶지요' 해야 참사랑입니다. 사랑에는 더러운 것이 없는 겁니다.

부부 사랑이 불붙으면 두 생명이 하나되고, 그 다음에 혈통이 합해 가지고 사랑으로 끓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내 생명이 주인으로 씨가 심어지는 겁니다. 남자 생명체, 여자 생명체가 이렇게 만나가지고 원심력 구심력이 합해져 사랑으로 운동하기 시작하면 전부 돌아갑니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올라가는 자리에 싹이 트면 아들이 되고, 내려가는 자리에 싹이 트면 딸이 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나 그런지 안 그런지 모르겠어. 이론적으로 맞으니 사실이 그런가 안 그런가 연구해서 맞추면 박사학위 노벨상 수상감이 될 겁니다. (162-48)

 아기를 낳는 자리는 하나님의 상현세계(上弦世界)를 점령하는 겁니다. 하나님 자리에 올라감으로 말미암아 자녀를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이 창조 이후에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내연(內緣)을 체휼시키는 놀음입니다. (224-7)

 

사랑을 중심삼은 생활에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됩니다. 욕심 많은 영감의 호랑이 같은 눈도 사랑을 하게 되면, 그림의 달님 같은 모습이 되고, 얼어붙었던 입도 히죽 벌어집니다. 얼었던 것이 완전히 녹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요, 녹았던 것이 얼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극과 극을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좋을 호()자를 가만히 보면 남자 여자 합해 놓고 '좋을 호()' 이렇게 썼습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이 있는데, 칼로 물을 베면 자국이 남느냐? 남지 않습니다. 한 번 싸우고도 이마를 맞대고 웃고 나면 다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부부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까지 연결하기 위해서입니다. (127-245)

 

진짜 사랑은 온 몸이 하나되고 심정과 핏줄이 전부 다 하나되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부부입니다. 부부 없는 세상이라면 사는 맛이 있어요? (26-151)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도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 ', 전기가 통한다'고 합니다. 그때 생기는 전기는 천사장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단세포적인 것입니다. 본연의 세계에서 생겨나는 사랑의 전기는 우주적인 사랑의 번개로 강도에 있어서 수천 배를 넘어설 뿐 아니라 인체의 각 기관 세포가 움직이는 소리도 천둥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본연의 세계에서 참사랑을 하는 남녀는 사랑의 번개가 만나는 접촉점을 향해 총력을 결집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 사랑의 원리관입니다. 그것이 창조목적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통일세계 1986.9-26)

 

여러분들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겠나, 안 보겠나? 천하 시공을 초월하는 하나님이 이 세계 50억 인류가 사랑하는 밤이 되면 눈을 감겠나, 어쩌겠나? 보고 있으면 기분이 어떻겠나? 좋은 아내, 좋은 남편이 얼마나 많아요? 생각해 보세요. 천만사가 다 벌어질 텐데 말입니다. 할 수 없이 여편네 놀음하고, 할 수 없이 끌려가고, 할 수 없이 비위 맞추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사랑이예요? 그게 인생살이예요? 세상이 전부 다 하나님이 바라던 창조이상대로 꽃향기가 풍기는 에덴동산같이 나비와 벌이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천지에 화동하면서 살 수 있는 환경이 돼 가지고 하나님이 거기에 취해 잠이 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거 생각해 봤어요? 한 번 그렇게 살아 봐야 합니다. (222-142)

 

여자는 왜 수염이 없느냐.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보시고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해와를 만드실 때는 수염이 없게 만드셨다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걸작품은 누구냐? 여자들입니다. 여자들이 걸작품인데 누구를 위한 걸작품이냐? 바로 남자를 위한 걸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 보세요. (38-181)

 

 

 5) 성애(性愛)

 

  ① ()은 사랑의 본궁, 하늘의 지성소

 

하나님의 지성소가 어디냐? 사랑이 깃드는 남녀의 성기관(性器關)입니다. 이곳이 하늘의 지성소입니다. (132-247)

 

남자 여자의 사랑의 상징이 무엇이냐? 사랑의 종착지점이 어디냐? 남녀를 한몸 이루게 하는 성기관(性器官)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합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1984. 5. 31)

 

남자와 여자는 무엇이 서로 다릅니까? 성기관(Sexual Organ)을 포함한 그 몸이 우선 다릅니다. 그러면 남자의 성기관은 누구에게 절대로 필요합니까? 남자의 성기관은 여자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기관이 하나는 오목하고 하나는 볼록인데, 왜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둘 다 뾰족하게 하든가, 둘 다 납작하게 할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다르게 생겼습니까? 모두 상대를 위해서입니다.

남자의 것은 여자가 절대 원하고, 여자의 것은 남자가 절대 원합니다. 절대로 여자 것이 남자 것이고, 남자 것이 여자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것을 점령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안다는 것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남자 여자들 생식기는 왕궁의 보고입니다. 하늘나라의 왕궁의 보고입니다. 하나님도 마음대로 못 합니다. 그 열쇠는 제사장만이 열 수 있습니다. 여자로 생겨나 가지고 옷을 두 번 벗으면 안됩니다. 주인 앞에서 옷 벗는 것은 허락되지만 딴 것은 악마입니다. 요즘 남자 녀석들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120-19)

 

생식기가 뭐냐면 사랑의 왕궁이요, 영생의 생명이 탄생하는 왕궁이요,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늘의 전통을 이어받을 혈족을, 혈통을 이어받는 왕궁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생명의 왕궁, 참된 사랑의 왕궁, 참된 혈통의 왕궁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곳입니다. 맘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인이 없게 되면 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주의 공인받은 자기 남편, 자기 아내 외에는 터치할 수 없는 것입니다. (128-329)

 

생식기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을 찾기 위해서 생겨났다는 말입니다. (132-112)

 

생식기라는 게 뭐예요? 그것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왕궁이요, 참생명을 중심삼은 왕궁이요, 참혈통을 중심삼은 왕궁입니다. 제일 귀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이상,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체의 완성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기원입니다. (194-9)

 

생식기를 절대적으로 귀하게 여기는 세계가 된다면 그 세계가 좋은 세계일까요, 나쁜 세계일까요? 흥하는 세계일까요, 망하는 세계일까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정성들여 만드신 곳이 어디겠어요? 눈이요? 코요? 심장이겠어요? 아니면 두뇌일까요? 이것들은 전부 죽어 없어집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생식기는 사랑의 왕궁입니다. 지금 그 사랑의 왕궁이 어떻게 되어 있어요? 사랑의 왕궁이요, 생명의 왕궁이요, 혈통의 왕궁인 것, 그렇게 귀한 것이 인간의 생식기입니다. 성스러운 것입니다. 그게 타락으로 말미암아 더러운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본연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입니다. 생명?사랑?혈통이 여기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스러운 것을 사탄이 더럽혔습니다. (193-130)

 

내 생식기는 사랑의 본궁입니다. 내 생식기는 생명의 본궁이다, 왕궁이다 이겁니다. 내 생식기는 혈통의 왕궁입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왕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니 본궁에 찾아가서 거하실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사랑의 본궁이 되어야 하고, 생명의 본궁이 되어야 하고, 혈통의 본궁이 되어야 되고, 양심의 본궁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말씀한 대로 되어지이다. 아멘. (194-72)

 

사랑이 중심이 되어, 둘이 생명의 합일체가 되어 합하는 자리, 남자의 피, 여자의 피가 한 도가니에서 하나되는 자리가 생식기입니다. 그 자리는 아들딸보다 귀하고, 남편보다 하나님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 하니까 이단자라 하겠지만…. 그 자리가 어떻다구요? 자식보다 귀하고, 남편보다 귀하고, 부모보다 귀한 자리야. 그것이 없으면 부모도 무가치한 것이고, 부부도 무가치한 것이고, 아들딸도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렇게 귀하기 때문에 보화 중의 보화로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일생 동안 자물쇠를 채워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쇠는 남자의 것은 여자가 갖고, 여자의 것은 남자가 지니고 있는데 각각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키만 가져야 합니다. 프리섹스처럼 열 개 스무 개 가지고 싶습니까? 문을 열어 주인이 없는 집처럼 지나가는 사람 모두 들락날락하는 폐허의 집과 같이 되고 싶습니까? (206-118)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본궁, 생식기가 뭐예요? 사랑의 왕궁이요, 생명의 왕궁이요, 혈통의 왕궁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것 붙들고 살고, 어머니 아버지도 그것 붙들고 살고, 자기 부부도 그것 붙들고 살고, 앞으로 태어날 아들딸도 전부 다 그것 붙들고 살지요? 그것 안 붙들고 사는 여자가 있고 남자가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왜 나쁜 것이 됐어요? 쌍소리라고 하지요? 왜 쌍소리예요? 거룩한 소리입니다. 거룩한 말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거기에서 영원한 사랑이 연결되어 영원한 생명, 영원한 혈통이 나옵니다. 가장 귀한 것입니다. (210-47)

 

여자 남자의 정조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것은 우주를 보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자 여자의 사랑의 질서가 우주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176-221)

 

왜 남자와 여자가 지구상에 태어났느냐?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대왕이시기 때문에 남녀의 사랑의 기관을 서로 바꿔 주었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것이라고 해서 그 주인이 남자가 아닙니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을 남겨 놓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 사람은 사랑을 위반한 것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법 중에서 가장 무서운 법의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면, 자기 아내를 두고 감히 딴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반대로 부인들은 남편을 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140-245)

 

하나님은 공평한 분입니다. 그래서 서로 네 것, 내 것하며 싸우면 안 되겠으니까 남자의 것은 여자에게 갖다 심어 놓고, 여자의 것은 남자에게 갖다 심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흉측한 것 같지만 참 기가 막힌 것입니다. (205-193)

 

사랑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더러운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식기를 보더라도 생식기는 가장 귀한 것인데 인체에 제일 더러운 데 가까이 있습니다. 왜 그래요. 화합하는 것이 천지의 조화 이치이기 때문에 가장 귀한 것을 그곳에 갖다 배치한 것이 남자 여자의 생식기입니다. 그래서 제일 좋지 않은 더러운 부분에 좋게 장치한 것입니다. (194-9)

 

남자 여자의 생식기가 어디에 있어요? 그곳은 제일 안전지역, 제일 안전지인 동시에 제일 더러운 곳입니다. 그거 보면 하나님이 참 지혜의 왕입니다. 인간 세상에 가르쳐 주기를 '사랑은 그러한 더러운 것도 지배하느니라'하는 걸 가르쳐 주는 겁니다. 항문 가까운 자리에 있거든. 소변 나오는 길하고 또 다른 길하고 똑 같습니다. (194-147)

 

여러분 손가락 하나 자를 거예요, 생식기 자를 거예요? 그거 웃을 게 아닙니다. 종적인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사지는 횡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딱 가운데에 종()이 달린 겁니다. 삼위기대 아니예요? 그게 하나님 대신입니다. 남자의 그것 중에서 둘은 아담과 해와 이성성상이고, 뻗친 하나는 하나님 대신입니다. (205-328)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말입니다. 하나님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203-197)

 

머리보다도 그게 더 중요합니다. 머리에는 참사랑의 기원이 없습니다. 머리에 참생명의 기원이 없습니다. 머리에 참혈통의 기원이 없습니다. 그 기원이 어디에 있느냐? 생식기입니다. 그거 틀림없지요? 생식기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고, 혈통이 있습니다. 그곳이 사랑의 본궁인 것입니다. 생명의 뿌리도 거기에 있습니다. 혈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몸뚱이뿐만 아니라 인간세계와 인류 역사를 통해서 제일 귀한 데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인류의 번식이 불가능합니다. (203-88)

 

인간에게 사랑의 안테나는 생식기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볼록이고 여자는 오목입니다. 이 둘이 합하게 되면 둥그렇게 되면서 없어집니다. 그것은 음전기와 양전기가 합해서 벼락을 치고 나면 영()으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상태로 돌아갑니다. (187-54)

 

생식기를 만약에 남자가 남자의 것을 자기것으로 가졌다면 절대로 안 주려고 할 것이고, 여자도 여자의 것을 안 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는 그냥 그대로 맞서 가지고 천년이고 만년이고 버틸 수밖에 없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서로 엇바꿔졌기 때문에 서로가 필요해 주고 받아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작용을 반드시 엇바꿔 가지고야 가치가 나타나게 돼 있는 것입니다. (140-245)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사랑은 가장 위험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천하가 깨지고 뒤집어지는 것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사랑이 왜 거짓되고 추하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그 사랑을 지키고 보호하려 했던 것은 참사랑이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본능 때문이었습니다. (26-331)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남녀의 생식기가 이 요사스러운 사망의 물결, 사망의 법, 멸망의 지옥을 개문시킨 본궁이 되고, 천도를 파탄시킨 요물단지가 되었기 때문에 나쁜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역사에 숨겨진 비밀이었습니다. (197-120)

 

사랑의 왕궁이 어디예요? 이런 얘기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걸 바로 못 잡으면 세상이 다 틀어집니다. 아구가 안 맞으면 천하가 다 요사스러움이 벌어집니다. 문총재가 지금까지 고심해 가지고 인간의 근본문제, 우주의 근본을 파헤치다보니 딱 도착한 곳이 생식기였습니다. 생식기에 도착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천지의 조화가 여기에서 소용돌이치더라 이겁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197-9)

 

사랑할 때 왜 남자가 위로 올라가야 되느냐? 그래야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씨는 어디서 나오느냐? 하늘로부터 옵니다. 무엇을 통해서 오느냐? 사랑을 통해서 옵니다. 그 하나가 전부 증명합니다. 그리고 씨라는 것은 아버지에서, 종적인 사랑의 볼록을 통해서 옵니다. 볼록이 오목과 맞추게 되면 천지가 진동합니다. (187-52)

 

사랑을 하게 되면 행복해지고, 사랑에 취해서 느끼는 감정은 요지경이라고 해서 빨리 경험해 보겠다고 달려든다면 그것은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의 문은 때가 되어야 열리는 것이고, 문이 열리는 때를 기다려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이 사랑의 주인이 되었다고 했을 때 당당하게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6. 2-27)

 

남자 여자가 왜 사랑을 좋아하느냐? 인간의 몸뚱이는 대략 4백조 개나 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세포들이 언제 전체가 작동을 하느냐 하면 사랑할 때인 것입니다. 인체의 모든 세포를 움직일 수 있는 때가 바로 남녀가 사랑을 하는 때입니다. (통일세계 1982. 7-18)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 ', 전기가 통한다' 고 합니다. 그때 생기는 전기는 천사장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단세포적인 것입니다. 본연의 세계에서 생겨나는 사랑의 전기는 우주적인 사랑의 번개로 강도에 있어서 수천 배를 넘어설 뿐 아니라, 인체의 각 기관의 세포가 움직이는 소리도 천둥소리와 같습니다. 본연의 세계에서 참사랑을 하는 남녀는 사랑의 번개가 만나는 접촉점을 향해 총력을 결집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 사랑의 원리관입니다. (통일세계 1986. 9-26)

 

누가 하나님의 사랑의 파트너가 되겠어요? 남자 혼자서일까요? 여자 혼자서만 파트너가 될까요? 하나님은 무슨 파트너를 원하시겠습니까? 돈의 파트너입니까, 지식의 파트너입니까, 권력의 파트너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파트너를 원하시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가 성기관을 통해 하나되는 그 자리를 중심삼고 현현하시어 인간과 만나는 것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자기 몸뚱이를 전부 다 자기 것이라고 하지만 사랑만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전부 상대의 것입니다. 구약을 보게 되면, 성소니 지성소니 하는 말들이 나옵니다. 성소는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요, 지성소는 사랑의 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소를 갖고 있고 지성소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소는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집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만이 특권적 사랑의 주관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지성소를 지키는 제사장은 절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옛날 해와 앞에 그 지성소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이는 아담이었고, 아담의 지성소 열쇠를 갖는 이는 해와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남자 여자의 입은 성소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입은 소생이고, 여자에게는 젖이 장성이고, 그 다음에 음부가 완성입니다. 그것들이 우리 몸뚱이의 성소라는 겁니다. 그 성소를 열 수 있는 열쇠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라 천도에 의해 상속받지 않으면 열쇠를 가질 수 없게 돼 있습니다. (103-237)

 

종교는 수난길을 가야 됩니다. 몸뚱이와 싸워야 됩니다. 제일 원수가 뭐냐 하면, 악마의 피가 격동하는 색()입니다. 음란에서 해방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사랑에서 해방해야 됩니다. 사탄의 피로 엮어진 혈통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음란에서 해방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생명에 접붙이려면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이 시작됩니다. 사랑의 전통적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생명의 조상도 하나님입니다. 이 우주에 제일 무서운 것이 남녀문제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피가 끓지요? 후루루 떨리지요? 그거 왜 떨리는지 알아요? 섞어지라는 겁니다. 동서남북이 섞어지고 아래 위가 섞어져서 후루룩 하나되어 가지고 모든 초점이 사랑의 불꽃 튀는 방향에 행렬의 방향성을 갖추어 남자를 위해서 완전투입이요, 여자를 위해서 완전투입, 내 생명 재산을 다 잊어버리고 투입 또 투입하려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길이기 때문에, 그것이 영원히 그치지 않는 길이기 때문에 영원히 좋아하는 것입니다. (205-133)

 

하나님이 인간 앞에 선물 주는데 나쁜 선물 주었겠나요? 좋은 것 중에도 제일 좋은 선물을 주게 돼 있는 겁니다. 그거 어디에 있는 것, 깊은 곳에 있는 것. 자기 속속들이 깊은 곳에서 빼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206-118)

 

참된 자유는 책임성을 전제로 합니다. 만일 책임성이 없이 개개인의 사랑의 자유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과 파국이 오겠습니까? 지고한 사랑 이상을 이룰 인간의 완성은 사랑에 대한 책임성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208-73)

 

인간은 사랑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자기 수양, 자기 관장으로 자유의 주체가 되는 책임성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의 책임성은 법이나 이목 때문에 지켜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생명적, 종적 관계 속에서 자아 주관, 자기 결단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생식기를 눈먼 장님처럼 방향을 잃은 채 사용하게 되면 지옥행이요, 반대로 이것을 하나님의 절대사랑에 기준을 맞추어 쓰게 되면 천국 높은 곳에 가는 것입니다. 깨끗한 결론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청소년기에 그늘 아래서 음란으로 타락을 하여 프리섹스를 심었기 때문에, 추수기인 끝날에는 반드시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의 프리섹스 풍조가 만연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② 사랑법은 배워아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까. 어떤 아버지가 자녀에게 아버지한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까. 또 어머니도 자녀에게 어머니한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까. 또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법을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누구로부터 신랑 신부는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습니까. 배운 바가 없지만 잘 알고 있습니다.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23-20)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가지고 사랑합니까?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들, 아기를 낳아가지고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어디에 사랑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어요? 거기에 무슨 학박사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지만 누구나 그 기준은 만점입니다.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더욱 완전하다는 겁니다. 완전한 것은 손 댈 필요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가감이 필요하지 않을수록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것은 변치 않는 것이요, 변치 않는 것은 영원히 간다는 것입니다. (23-121)

사랑이라는 것은 말로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아무리 설명해도 부모가 없는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부부의 사랑을 아무리 설명해 보았자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자기가 느낄 수 있는 주체나 대상권에서 행동의 일치점을 갖출 수 있는 데서, 그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을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데서, 그의 일체가 내 일체로 연결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상대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바로 어머니의 젖을 찾는 것이나, 동물들이 태어나면서 어미의 젖을 찾는 것이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행위로 옮겨지는 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세계 1983. 9-19)

 

진실한 사랑은 천리 법도이기에 교육되기 이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태어난 자식의 얼굴이 밉고 예쁜 것에 따라 크고 작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고, 부모가 잘나고 못나고에 따라 부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달리하는 자식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얼굴이 밉게 생겼으니 나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하는 자식이 있습니까.

너는 내가 비록 낳았다고는 하지만 얼굴이 못생겼으니 나의 자식이 아니라고 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부모나 자식이 있다면 그들을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3. 9-19)

 

참사랑은 경험을 통해 얻고, 체휼을 통해 알게 되어 있습니다. 참사랑은 말이나 글, 혹은 일반 교육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을 통해서만 완전히 체득하는 것입니다. 아기로 지음받은 아담과 해와는 성장하면서 참된 자녀의 심정, 참된 형제의 심정, 참된 부부의 심정, 참된 부모의 심정을 단계적 생활을 통해 경험하고 체휼함으로써 완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전체적으로 체득할 때 비로소 창조 목적을 완성한 이상적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성약말씀?우주의 근본을 찾아서)

 

 

 6) 자녀의 사랑

 

  ① 자녀는 부모 사랑의 결집체

 

사랑하는 부모들 앞에 자식이라는 것은 지극히 세계적인 대표입니다. (143-17)

 

자식이 없으면 왜 고독한 사람이라고 할까요? 사랑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지으신 주체되신 하나님의 심정적 사연을 체휼하기 위한 것이 자식입니다. 자식은 나로 말미암아 내가 동기가 되어 태어났지만, 그 자식을 낳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 하나님이 인간을 이렇게 사랑했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136-202)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부모로서 자식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은 바램 때문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가운데 부모의 사랑을 체휼하게 되고,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연의 발로인 것입니다. 자식을 가져 보지 못한 사람은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까지 깨달을 수 없기에, 그가 가진 사랑은 항상 불완전한 것이 됩니다. (1984. 7. 10)

 

천국에 남아질 수 있는 자식은 어떠한 자식이냐? 부모의 사랑으로 진 빚을 자기 스스로 갚아야 합니다. 부모가 나이 들어 노망을 했을 때는 자기가 어린 시절에 똥싸고 오줌쌌던 것을 닦아 주던 그 부모의 마음으로 어려움을 참고 부모를 모셔야만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35-241)

 

사랑을 가진 부모에게 채찍을 맞거나 꾸중을 듣더라도 그 자식은 기쁜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1. 4-8)

 

부모가 자식을 위해 생명까지 주었습니다. 자식도 부모를 위해서 생명까지 바쳐야 합니다. 생명이 사랑에서 생겨났으니 본질적 사랑 앞에 생명을 희생하고 가는 것이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모순적인 이론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1985. 12. 18)

 

자식이 부모에게 빚 안 지겠다고 노력하게 될 때 부모도 보람을 느낍니다. (통일세계 1975. 10-12)

 

사랑을 중심삼고 채찍이 오가더라도, 때리고 나서 통곡하는 부모에 대해서 자식이 덤벼들고 욕할 수 있습니까? 참사랑은 조화의 양면적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통일세계 1981. 6-22)

 

훌륭한 어머니는 자식을 품에 안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선한 존재가 되기 위해 어떤 어려운 입장에서도 참을 수 있어야 한다고 자식에게 가르칩니다. 어머니는 선은 망하지 않는다는 천리를 통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식을 낳아서 젖을 먹이며 귀엽다고 하지만, 누구 때문에 귀여워합니까? 그것은 하늘 땅을 대신하여 귀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세계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귀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따른 천륜의 운세는 세계를 넘어 천지를 포용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식을 품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는, 하늘땅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을 품는다는 사무친 심정으로 아들딸을 품어야 됩니다. (8-105)

 

자녀들의 사랑과 행복의 기지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자녀들은 참사랑으로 화합 일체된 부모를 통해 생명이 태어나고, 그러한 사랑 속에서 양육되기를 바랍니다. 자녀에 대한 가장 귀한 책임은 외적인 양육만이 아니라 그들의 영성(靈性)을 온전하게 해줄 참사랑의 생명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의 사랑에는 못 당합니다. 어머니가 정성을 들였다면 누구보다도 정성을 들였고, 고생을 했다면 누구보다도 고생했으니, 사랑한다면 누구보다 더 사랑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여자들이 정서적인 분야에 있어서 높고 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아기를 사랑한다 해도 애기에 대한 사랑을 어머니만큼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간다면 여자들이 심정의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은 공평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85-166)

 

  ② 참된 자녀의 도리는 ''

 

부모를 알았으면 부모 앞에 뭘해야 됩니까? 효도를 해야 됩니다. 효자가 되어야 해요. 또 부모를 중심삼고 그 나라의 충신이 되어야 됩니다. 부모가 나라를 거느리고 세계를 거느려 왔기 때문입니다.

충신이 되기 전에 효자가 되어야 하고, 효자가 되기 전에 참된 형제를 놓고 사랑할 수 있는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식구는 형제지간에 찬양할 수 있는 권을 내세운 이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35-220)

 

효자가 귀한 것은 변함 없는 사랑으로, 어릴 때나 장성할 때나 노년시대나 부모를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을 효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효자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언제나 부모의 마음 방향과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효자의 길을 가는 사람은 부모와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가 동으로 가면 동으로 가야 되는 것이고, 부모가 서로 가면 서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의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열 번 갔다가 열 번 돌아서라 하더라도 또 돌아서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효도해라' 하는데 이것은 부모를 중심삼고 부모가 가야 할 사랑의 길에 동참자가 되라는 겁니다. 부모의 참된 사랑의 길에는 천륜이 따라갑니다. 부모만 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종적인 천륜이 여기에 인연되어 함께 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부모와 하나되라는 것은, 종적인 역사와 횡적인 역사의 심정권을 이어서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 앞에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 앞에 효도하는 것이 아들딸로서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왜 효도해야 되느냐? 효도하는 길은 나라에 대한 충신의 길과 연결된다는 겁니다. 대나무와 같이 연결된다는 겁니다. 충신, 나라에 충성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세계에 대해 성인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한 직선이 되어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효도는 못하더라도 나라에 충신이 된다면 그 부모가 ', , 나한테 효도를 안 했다'고 못하는 겁니다. ', 참 잘했다' 하는 겁니다. 부모를 버리고 집을 떠나서 불효를 했더라도 나라의 충신이 될 때는 어머니 아버지가 죽어서 영계에 갔더라도 ', 너 참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효자가 뭐냐? 효자는 부모의 슬픔을 대신 책임지기 위해 어려운 자리를 찾아가서 책임을 다함으로써 부모에게 기쁨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열만큼 일을 하는데 자식은 열 다섯만큼 노력하였다면 부모는 다섯에 해당하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분야를 어떻게 보충하여 부모를 위해 드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효자인 것입니다.

참된 부모는 어떤 부모냐? 자식을 영원무궁토록 사랑하기에 끝이 없는 부모입니다. 그러면 참된 자녀는 어떤 자녀냐? 참된 자녀는 참된 부모의 사랑 앞에 영원무궁토록 부모를 사랑하고 또 사랑이 넘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녀다. 그런 자리가 참된 효자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돈 많이 번 백만장자가 되는 것입니까? 나라의 최고 권력을 손에 쥔 대통령이 되는 겁니까? 하나님이 아들딸인 아담과 해와에게 바라신 것은 그들이 자라서 효자-충신-성인-성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과 같이 가정에서 효자가 되겠다는 생각, 나라에서 충신이 되겠다는 생각, 세계에서 성인이 되겠다는 생각, 그리고 하늘 땅 앞에 성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성인들은 효자가 되고 충신-성인-성자가 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사랑의 전통 속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만일 부모가 이혼을 원한다면 무관심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나는 부모님들의 자녀입니다. 나는 부모님의 결합체입니다. 나를 위해 부모님은 어떠한 타협이라도 해야 하며, 나에게 훌륭하신 부모님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나는 부모님이 필요해요' 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부모란 그들의 자녀들 때문에 이혼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부모들에게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미래의 주인공)

 

 

 7) 형제의 사랑

 

  ① 형제사랑은 만민동포애의 모형

 

형제를 왜 주었느냐? 형제가 왜 필요하냐 하면, 남자는 여동생이나 누나를 보면서 '우리 엄마가 그렇게 자랐구나!' 하는 걸 알게 됩니다. 엄마 자라는 걸 보는 겁니다.

또 여자는 오빠나 남동생의 자라는 것을 가만 보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자라고 산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게 형제애라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라 가지고 하나되는 겁니다. 그러니 형제를 사랑해야 되겠나요, 안 해야 되겠나요? (184-60)

 

부모한테 아들딸 둘밖에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들을 두고 볼 때 그에게는 누나가 필요하고 또 형이 필요하지요? 또 딸에게는 오빠가 필요하고 언니가 필요합니다. 또 그들에게는 남동생과 누이동생이 필요합니다. 형님이 있어야 되고, 누나가 있어야 되고, 남동생 누이동생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다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여동생, 남동생, 누나, 오빠 다 갖추어져 완전히 하나되는 가정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씨족과 민족과 국가의 기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형과 누나는 동서를 말하고 남동생과 여동생은 남북을 말하는 것이니, 그것이 완성되면 입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도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법도가 자리를 잡게 될 때 평화의 기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0-40)

 

오빠의 자리에서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의 자리에서 오빠를 사랑하는데, 그냥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부모를 개재시켜 가지고 어렸을 때 부모의 품에서 자라던 것을 중요시하면서 사랑해야 됩니다. 부모와 자녀가 하나된 기반에서 연결된 형제라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커 가면서 같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국민학교, 중학교를 쭉 그렇게 올라가는 겁니다.

세상을 암만 돌아다녀 봐도 가정에 있는 형제의 사랑, 피를 나누어 갖고 태어난 형제애 같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사회에 나가 가지고 자기 형제 이상 가까운 사람이 있어요? 가까워졌다가도 갈라집니다.

왜 형제가 필요하냐? 종횡을 중심삼고 연결되는 것이 형제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횡적이라고 하게 되면,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는 종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평면밖에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횡적인 기준이 필요하고 전후가 필요합니다. 가정애(家庭愛)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형제애밖에 없습니다. 만민동포애란 말과 같습니다. 그것이 있어야 구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28-170)

 

동포애, 형제애를 가지고 세계를 품어야 모든 것이 이상적인 구형이 되는데 부딪치더라도 충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이 생각하던 모든 실체가 여기에 와 가지고 결실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상이 여기에 와 가지고 결실되어서 합함으로 자녀의 사랑 결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형제의 사랑 결실체, 부부의 사랑 결실체, 부모의 사랑 결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구상했던 모든 실체를 다 이루면, 하나님과 상하 전후 좌우가 일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형제를 통해서 국민이 형성되고 인류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형제는 전후를 표시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살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납작하게 있다가 살이 붙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원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형을 만드는 것이 형제요 국민인 것입니다. 형제가 확장되어서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형제애라는 것은 세계애와 통하는 것입니다. 많은 형제들이 자라는 가정은 세계의 인류를 품고 이상적인 천국,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만드는 모델과 같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는 여기에서 확장되는 것입니다. 형제가 많으면 밥을 먹어도 한 그릇 가지고 둘이 나눠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밥 한 그릇밖에 없다고 싸움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가 많아 어렵게 살더라도 '내가 밥을 굶더라도 누나 줘야겠다, 동생 줘야 되겠다' 이런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얼마든지 좋다는 겁니다. (112-195)

 

 8) 애국, 애세(愛世), 인류애

 

  ① 효자-충신, 성인-성자의 길로

 

하나님과 하나될 때는 천태만상으로 돌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에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본받아서 형은 동생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일원화된 가정은 가정애가 꽃핍니다. 이것이 또 사회애가 되고, 더 나아가 민족애가 됩니다. 이와 같이 나아가면 세계애(世界愛)가 됩니다. (43-342)

 

인류의 공동적인 목적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인류애를 중심삼고 하나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국민이 조국애를 갖고 있다면 애국사상을 중심삼고 하나될 것입니다. 애국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국가를 이루기 위해 애국사상을 중심삼고 하나될 것입니다. 애국운동을 혼자서 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면 횡적인 인연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동지 규합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이 정착할 수 있는 기지는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가정은 우주애를 장악하고 우주의 보호 양상을 체득하면서, 우주애권(宇宙愛圈)을 확대시켜 가정을 넘어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의 길을 가야 하고, 나아가서 민족과 국가를 넘어 세계를 사랑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을 효자 또는 열녀라고 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을 애국자라 한다면,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그 사람을 바로 성인(聖人)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982. 10. 29)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륜도덕만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람만을 중심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만 중심삼고는 나라를 넘지 못합니다. 나라를 넘을 수 있는 그러한 내용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천주사상을 갖지 않고는 나라를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이 무엇을 소개했느냐 하면 인간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신을 소개했습니다. 성인의 반열에 동참한 사람들을 보면 신을 숭상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신을 빼놓고 성인이 된 사람 있어요? , 성인들은 인륜의 도리만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천륜의 도리를 겸하여 가르쳐 준 것입니다. (33-291, 39-316)

 

가정에서 부모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효자요, 나라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애국자요,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성인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이 뭐예요? 하나님과 세계와 우주를 사랑하는 성자가 되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될 거예요? 성자가 될 거예요, 효자 효녀가 될 거예요? 그러려면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마음에 가져야 됩니다. (129-99)

 

사랑은 생활과 역사에서 뺄 수 없는, 실재 내용을 움직이고 있는 실체입니다. 그리고 사회제도라든가 모든 것을 움직이는 내적 힘의 모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할 때도 국가애를 가르칩니다. 형제애?부모애?부부애, 세계적인 박애, 전부 사랑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인류의 생활권이라든가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사랑을 더듬지 않고는 역사를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돼야 하느냐? 충신이 돼야 됩니다. 충신이라는 것이 뭐냐? 나랏님에 대해서 정성들이는 것이 충신이냐? 아닙니다. 백성을 나랏님같이 위할 줄 아는 사람이 충신인 걸 알아야 됩니다. 효자가 뭐냐? 부모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를 위하듯이 형제를 위해 정성들이는 사람이 효자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133-242)

 

그 다음에 성인은 뭐냐? 성인은 세계 인류를 위해서 지금까지 희생하고 간 사람입니다. 성자는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로 가자, 세계 사람을 하나님같이 위해 가는 사람이 성자라는 겁니다. 역사적인 성인은 지금까지 세계 사람을 위해서 죽어 간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 성자는 뭐냐? 하나님에게도 충성을 하지만 하나님같이 만민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133-242)

 

그렇기 때문에 효자-충신-성인. 성인 다음에는 뭐예요? 성인이라고 해서 성자가 못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아들이 못되는 겁니다. 성자가 돼야 됩니다, 아무리 나랏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했더라도 성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늘나라의 왕궁법을 알아야 됩니다. 왕궁법의 치리를 받아 거기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다른 하나의 법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133-242)

 

본래 효자는 마음이 변하지 않고 부모에게 똑바로 가는 사람이요, 충신은 마음이 군왕에게 똑바로 가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인은 마음이 변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똑바로 가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는 자리에 나가더라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똑바로 가야 효자요, 충신이요,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133-242)

 

가정에서 부모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효자요, 나라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애국자요, 세계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성인입니다. 여러분은 세계와 우주를 사랑하는 성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효자는 집안이 망하더라도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효자비가 있고, 충신의 비가 있고, 성인의 비가 있는 것입니다. 성자는 성인과 다릅니다. 성자는 인간세계의 나라법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왕궁법까지 지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효자의 길, 충신의 길, 성인의 길과 직통할 수 있는 것이 성자의 길입니다. 그것은 굵고 둘레가 크지만 그 핵의 흐름은 수직입니다. (162-306)

 

인간이 어떻게 사느냐, 우리 인생 항로의 그 골자를 추린다면 효자가 가는 길, 충신이 가는 길, 성인이 가는 길, 성자가 가는 길의 근본이 있을 것입니다.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살고 싶어하는 마음, 위 아래를 막론하고 같이 있고 싶어하고, 전후좌우 주야를 초월하고 생애를 넘어서 같이 살고 싶은 마음에 사무친 삶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을 때는 쓸모가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것 또한 무엇을 중심삼고 연결되느냐, 사랑입니다. 형제지간, 친구지간, 동포지간, 인류지간, 천지지간 등 이 모든 것의 사이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누룩과 같은 것입니다.

우주를 만든 하나님은, 우주의 법도를 세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온 우주를 통해서 누구보다도 위해 사는 대표적인 자리에 선 분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만나려면 위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지식의 대왕이지만 지식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능력의 대왕이지만 능력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권력에 대한, 돈에 대한, 물질에 대한 주인이요 대왕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해서 오면 전부가 올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133-16)

 

하나님이 인간 앞에 있는 것은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만년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위하는 천리의 우주의 존재세계 앞에 자기 스스로의 존재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위하는 데 있어서 동서양을 통할 수 있고 고금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 같은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양 서양을 극복할 수 있고 과거-현재-미래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극복할 수 있으니 언제나 발전할 수 있다, 동서양을 극복하니 동서양을 통일할 수 있다 이겁니다. 이건 사랑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187-89)

 

 

 9) 자연사랑 (自然愛)

 

  ① 하나님이 만물세계를 지으신 뜻

 

하나님이 왜 만물을 지었느냐? 자기가 사랑할 대상을, 대상자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먹고 살다가 자기의 본연의 세계로 돌아와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본국에 들어와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142-76)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생각하기를 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뭐 말 한마디로 '이러한 천지가 되라.'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안 된 겁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투입했다는 겁니다. 있는 정력을 다 투입했다는 겁니다. 있는 사랑의 힘을 다 투입해 가지고 미래에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 자기의 사랑하는 가정을 위한 예물로, 선물로 지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관념을 가지고서 우리가 만물을 바라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112-289)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지으실 때 거기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어 놓고는 보기에 선한지라 하셨습니다.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무엇입니까? 어떤 목적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것입니다. 지으신 만물에 하나님의 목적의식이 내재되어 있기에 창조된 만물을 놓고 하나님은 기쁨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이뇨? 한마디로 말한다면 삼라만상의 개체 개체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입체적으로 갖춘 사람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하늘이 보시는 인격의 가치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성 프란체스코 같은 양반이 동물을 보고, 혹은 새를 보고 설교했다는 말도 거짓말이 아닙니다.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다만 꿈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9-168)

 

피조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의 이상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 구조입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하고 원자도 양자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을 하는 거라구요. 작용하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 존속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인간을 중심삼고 그 중심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창조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137-59)

 

우주는 신비로운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장난거리나 놀음거리로 지은 것이 아니라 정성들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면 과연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겠느냐? 그러니 우리는 이 우주를 바라볼 때,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지었다는 지극히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동산을 거닐고, 초목과 꽃을 바라보고, 새를 바라보고,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부는 이런 모든 것을 보면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28-123)

 

우주의 완성은 외적인 세계도 좋지만 내적인 내 자신, 나도 좋아야 합니다. 좋은데는 마음도 좋고 몸도 좋아야 됩니다. 내 세포로 보면 세포가 전부 다 좋아야 됩니다. 눈의 세포하고 발바닥에 있는 세포하고는 다르지요? 다르다구요. 다르지만 그 세포들이 다 좋아하고 손의 세포도 좋아하고 모든 세포들이 좋아하고, 몸과 마음 어디 하나 남기지 않고,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그것이 그냥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돼 가지고 연체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공명적인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세계라야 우주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166-210)

 

인연이란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맺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체도 4백조 개나 되는 세포로 인연되어 있는 생명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창조이념세계, 즉 대우주의 모든 존재물은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 심정 밖에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느끼는 시인은 위대한 시인일 것입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천주적인 심정을 느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우주적인 시인일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우리도 모르게 벌어져 있는 천하만상이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들이란 사실을 몰랐습니다.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 보면 조그만 모래 한 알에도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고, 하나의 원자에도 무궁무진한 우주의 조화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복합적인 힘을 통해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분자를 지나 원자, 원자를 지나 소립자…. 이런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식과 목적을 갖추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거쳐 나온 것이요, 반드시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를 맺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되겠습니다. (9-168)

 

도인은 어떤 사람이뇨? 풀 한 포기를 붙들고도 '하나님!' 할 수 있는 심정으로 자기의 가치와 동등하게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도인일 것입니다. 그렇게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예술가일 것입니다.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만상을 보고 하나님의 각양각색의 사랑과 심정의 묘미를 발견하고, 그것들과 친구가 되어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런 감정으로 세포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만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겠습니까? (9-168)

 

하나님은 우주를, 피조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이상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전부 다 상대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작용합니다. 물질의 구성단위인 원자도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작용합니다. 작용하지 않고서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작용을 해야 합니다. (137-59)

 

  ② 자연은 사랑이상을 가르쳐 주는 교재

 

인간은 커가면서 자연을 보고 습득합니다. '곤충세계가 이렇구나!'하고 배웁니다. 달이 비치고 별이 빛나는 가을 밤에 가만히 들어 보면,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하나의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립니다. 무엇 때문에 곤충들이 그렇게 우느냐? 그것은 상대를 찾아 이상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것입니다. 새나 다른 모든 동물들도 슬픈 소리, 기쁜 소리를 무엇으로 표시하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따라서 소리를 냅니다. 급은 낮지만, 축에서 먼 거리에 있지만 그 축을 중심으로 평형선을 취하며 돌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새들의 노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배가 고플 때 신호하는 노래하고, 다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 하는 노래하고, 그 다음에는 위험할 때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게 다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는 뭐, 보통사람들은 모르지만 자기들 세계에서는 다 안다는 겁니다. 배가 고파서 울면 벌써 안다는 것입니다. 매일의 생활이 무엇을 중심삼고 돼 있느냐? 배고픈 거야 한 번 먹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뭐 위험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노래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하면, 상대와 주고받는 관계에서 노래가 오고 간다는 겁니다. (137-211)

 

인간은 주체와 대상, 즉 상대적인 쌍으로 지은 바 되었고, 또 인간을 위하여 있는 온 만물세계도 사랑의 원리 아래 조화를 이루고 또 인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이상을 실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세계는 인간에게 있어서, 특히 자라나는 아담과 해와에게 있어서는 사랑의 교과서요, 사랑의 진수가 무진장으로 진열된 박물관이라는 것입니다. (135-12)

 

모든 새나 동물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사랑을 중심으로 화동합니다. 꽃과 나비는 극과 극이지만 서로 화합합니다. 이것은 천지 조화입니다. 우주의 극과 극이 사랑을 중심으로 화동이 벌어집니다. 철새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쪽에 있던 새가 북쪽으로 날아가고, 북쪽에 있던 새가 남쪽으로 날아가서, 지역을 넘나들면서 사랑을 이룹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영원히 돕니다. 인간은 이와 같은 사랑을 하나님이 지은 박물관의 교재를 통해서 배웁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좋아 사랑하면 천하의 모든 만물들은 거기에 박자를 맞춰 화동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좋아하면 천사세계도 좋아하고, 이 모든 피조세계가 좋아 박수를 보내고 찬양을 보냅니다. 노래할 줄 아는 새는 노래를 부르며 찬양하고, 아름다운 꽃은 향기를 풍기며 찬양합니다. 최고 사랑의 주인공들이 즐거워 할 수 있는 향취의 분위기를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 이 피조세계입니다. 보기에 흉측스러운 두꺼비도 사랑을 할 때는 '욱욱욱' 합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다리를 척척 치고 뒷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사랑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근사합니까? 그것은 최고의 예술입니다.

봄이 되어 새가 노래를 하면, 그 새의 노래를 듣자마자 자기 아내를 생각하고 자기 자식을 생각하고 자기 나라를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하고 하나님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 됩니다. 새는 새들끼리만 생각하지만 인간은 관계성을 갖습니다. 동물세계?식물세계?천상세계의 중간 매개체로서의 관계성을 가진 것이 인간만의 특권입니다. 전부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만의 특권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성숙해감에 따라서 ', 저렇게 사랑하는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세계를 인간 사랑이상을 성숙시킬 수 있는 교재로 펼쳐 놓았습니다. 그걸 배워 가는 것입니다. 점점점 커감에 따라 '아하, 옛날에는 동생과 같이, 오빠와 같이 지냈는데 가만 보니까….' 이렇게 감정이 달라집니다. ', 이렇구나!'하며 배워 갑니다. 그래서 '너와 나는 죽더라도 안 만나면 안 되겠다. 딴 데 못 간다.'하고 평형선으로 직행하면서 부딪치게 됩니다.

사랑은 신경과 같습니다. 우리가 머리카락 하나를 당기면 몸 전체가 끌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만 당기면 우주가 끌려오고, 사랑만 움직이면 우주가 다 화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있으면 춤도 추게 됩니다. 춤은 왜 생겨났느냐?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또 노래도 사랑 때문에 생겨났고, 웃음도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사랑을 빼게 되면 전부 다 굳어집니다. (115-237)

 

사람은 벌보다는 나비를 좋아합니다. 나비가 춤을 추며 날기 때문입니다. 모든 나는 것은 박자에, 가락에 맞추어서 납니다. 빨리 나는 놈도 박자에 맞추어서 날고, 느리게 나는 놈도 박자에 맞추어서 납니다. 나는 형은 여러 가지지만 어쨌든 전부 박자에 맞춰서 납니다. 또 산에서 사슴이 뛰어다니고 토끼가 노는 것도 음악적입니다.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것이 하나의 리듬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는 것도 음악적입니다. 사람도 무엇을 먹을 때 아주 음악적입니다. 그게 다 음악의 상징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런 이 우주를 영원히 나를 위해서 만들고, 나를 위해서 장치했다면 그분에 대해서 우리는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구경꾼처럼, 이웃 동네 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산도 높은 산이 있고 낮은 산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산이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한 것이 좋으냐, 밋밋하고 평평한 것이 좋으냐?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한 것이 좋습니다. 그거 왜 그러느냐? 그 모양이 춤추려고 하는 어떤 형을 갖기 때문입니다. 별의별 모양의 곡선을 그리면서,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면서 가지각색의 형태를 나타내면서 형성되어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바로 춤입니다. 자연 가운데는 멋진 춤이 있고, 멋진 음악이 있습니다. 멋진 예술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자연 가운데는 참 많습니다.

맨 처음 하나님의 자녀로서 태어남을 입은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의 보호권내에서 어렸을 적부터 자라 올라감에 따라서 점점 커가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지능이 발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왜 피조세계를 지었는지를 알게 되고, 그 피조세계를 통해 교육해 나오는 겁니다. 피조세계가 움직이는 모든 것은 우리 인간시조, 본래의 조상이 되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생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교재였습니다. 완성된 아담과 해와가 아니기 때문에 이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 표본이요, 하나의 박물관이었다 하는 사실을 알아야만 됩니다. (137-128)

 

아침에 눈을 뜨고 자연을 바라보면, 그 자연이 은은하게 내 본성과 인연되어 새로운 이상의 감정을 싹트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바라보면 볼수록 절망과 슬픔의 감정을 돋구어 준다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라 하면, 인간의 가치는 그렇게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슬픔을 느끼게 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풀 한 포기나 꽃 한송이, 나무 한 그루와 같은 정도의 가치로 지어진 인간이 아닌 것입니다. 피조만물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간이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의 모습으로 천상을 대신하여 나서야 할 인간이었습니다. (9-97)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자연을 바라보고 '세상의 왕, 혹은 어떤 유명한 사람이 갖고 있는 훌륭하다는 물건에 비할소냐. 골동품에 비할소냐. 어떤 유명한 부인이 입고 있는 호화로운 옷에 비할소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자연세계 앞에 자신도 모르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체를 볼 때, '인간이 만든 어떤 물건에 비할소냐.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훌륭하겠는가.'하며, 하나님이 심정을 기울여 지으신 만물을 붙들고 무엇보다도 귀하게 느끼는 자가 있다 할진대, 이는 틀림없이 하늘의 아들딸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사람입니다. 하늘은 인간을 그러한 자리까지 내모는 것입니다. (9-175)

 

자연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길가에 값없이 서 있는 나무 하나도 유명한 화가가 그린 어떤 그림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화가가 최고의 걸작품으로 꽃을 그렸다 하더라도 그린 그 화폭에서는 아무리 쳐다보아도 꽃이 피지 않습니다. 향기도 나지 않습니다. 또 씨도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값없이 길가에 서 있는 나무에서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씨를 남깁니다. 그리고 그 씨를 심으면 그 나무보다도 더 좋은 나무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어떤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하고 귀여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제일 사랑해야 할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은 귀여워할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돼요? 탄식하는 만물의 한을 해원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진 여러분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6천년 전 그것들을 지으실 때의 하나님의 심정과 창조의 손길을 체휼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 풀 한 포기를 보고도 눈물지을 수 있어야 됩니다. 나무 한 그루를 붙들고도 울 수 있어야 됩니다. '주인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외로웠느냐?'하면서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은 많이 울어 보았습니다. 바위를 붙들고도 울어 보고,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도 울어 보았습니다. 왜 그래야 되는지 이제 말씀을 들었으니 이해할 것입니다. (9-175)

 

'하나님이 지으신 가치있는 만물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인연을 맺은 귀한 만물이, 오늘날 어떠한 왕궁에서 뭐 국보니 보물이니 하며 귀하게 여기는 물건만큼의 취급도 받지 못하는 서글픔을 나는 알아줘야지, 나만은 알아주어야지.' 하면서 나왔습니다. '이 땅에 사는 세계 인류가 전부 몰라주어도 나는 알아줘야지.' 하는 마음을 여러분들이 가진다면, 이 민족은 앞으로 세계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관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어느 누가 만물을 놓고, 대대로 내려오는 자기 가문의 보물보다도,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석이라 하는 다이아몬드보다 귀하게 여겨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합니까?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은 당신께서 지으신 것을 심정적으로 알아주고 그것을 붙들고 눈물짓는 사람을 보고 '오냐.' 하십니다. (9-175)

 

자연은 뭐냐? 하나님이 나를 위해, 위하는 사랑을 가진 아들딸이 태어날 때 위할 수 있는 만물로, 선물로 준 전시품입니다. 새 소리 하나, 자라고 있는 풀 한 포기라도 사랑의 아들딸들의 생활의 미화를 위해 만들어진 장식품이라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굴러가는 바위도 아들딸이 나라를 다스리는 주인이 될 것을 알고 그 나라의 장식품으로 지었다는 겁니다. 흐르는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우면 안 되겠으니 조화무쌍한 화합의 동산, 사랑을 위하는 그러한 세계를 보고 그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꿈의 왕자, 희망의 왕자를 만들기 위해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통해서 배우는 겁니다. 수놈 암놈이 '짹짹'할 때는, 이것을 주인되는 아주머니도 배우라는 겁니다. 서로 위하는 세계를 향해 자기 일생을, 생명을 걸고 사는 본연의 피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집 울타리에 새 새끼도 와서 살려고 한다는 겁니다. 새끼를 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175-187)

 

박물관에 있는 무슨 작품이 아무리 귀중하다고 해도 살아 있는 작품에 당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작품인 이 지구성 만물 박물관을 누가 하나님 이상 사랑했느냐 이겁니다. 자기 나라의 박물관 이상 사랑했느냐 이겁니다. 길가에서 밟히는 민들레 짜박지 한 포기도 박물관에 있는 신라시대의 금관에 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건데?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너를 본연의 하나님이 위할 수 있는 왕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던 그 자리에서 사랑을 못 하는 내 자신이 미안하다. 부끄럽다.'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위하는 그런 왕이 있다고 할 때는 풀포기도 그 왕을 따라가서 영원불변 같이 있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할 인간인 것입니다. (175-187)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연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상징적 존재요, 인간은 실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물과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연을 사랑해야 됩니다. 자연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 인간을 사랑해야 됩니다. 인간 가운데서도 오색인종을 다 사랑해야 합니다. ', 나는 백인들만 좋아.' 하나님이 그럴까요? 그러면 전부 흰옷만 입어야 됩니다. 백인들은 전부 다 흰옷만 입어야 됩니다. 색깔있는 옷은 전부 다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검정옷은 왜 입어요? 색깔이 있는 옷은 왜 입어요?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133-30)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존재를 사랑의 대상으로 느껴야 됩니다. 모든 미물까지 사랑하고, 사람은 물론이요, 모든 하늘에 있는 것까지 무형의 것, 유형의 것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아침에 새가 짹짹짹짹 할 때는 ', 요놈의 참새야, 내가 늦잠 자려는데 왜 짹짹짹 해?'하지 말고, '아이고, 너 고맙구나. 아이고, 나를 깨워 주러 왔지 하하, 귀한 손님이 나를 맞으러 오는 걸 네가 알려 주는구나.'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상이 다릅니다. 이게 바로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11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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