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유 무형세계에서의 인간의 존재
第一章 有形、無形世界での人間の存在
1) 인생 노정
第一節 人生路程
① 인생 노정에 대한 기도문
一 人生路程に対する祈祷文
사랑하는 아버님, 하늘이 수욕을 당하는 부끄러움이 있을까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싸워 나온 소자를 지켜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 그 무엇이 좋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운행하시는 본연의 심정에 연결된 것 이상 귀한 기준이 없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자리를 무한히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그 사랑에 접하는 사람은 세상만사를 다 잊더라도 미련이 없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는 이상세계, 본향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제3의 생의 자유권한을 가질 수 있는 해방아로 출생할 그날을 오늘 이 지상세계에서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 건전해야만 지상에 태어난 그의 일생이 건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생활이 건전해야만 하늘나라의 생활이 건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과 땅이 협조하고, 만우주의 동적인 운세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자리에 서려면, 오늘의 세상이 상충적이요 악이 주관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는 알아야 겠습니다. 저희 후손들은 저희들과 같은 자리에 세워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49-308)
愛するお父様7 天が屈辱を受けるその恥ずかしさを恐れながら、幼い時から今まで戦ってきた小さな者を守ってくださったお父様の恩賜に感謝申し上げます。
この地に何が良いといっても、お父様が運行される本然の心情につながったもの以上に貴い基準がないことを思うとき、その立場を無限に恋しが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お父様のその愛に接する人は、世の中の万事をみな放棄しても未練の残らない立場にあるということを、私たちは知るべきです。
今私たちは、お父様の愛で暮らす理想世界、本然を訪ね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第三の生の自由権限をもち得る解放児として出生するその日を、今日この地上世界で準備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赤ん坊が胎中にいるとき健全であってこそ、地上に生まれてからのその一生が健全であり得るのと同様に、地上生活が健全であってこそ、天国の生活が健全であり得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天と地が協助し、万宇宙の動的な運勢に拍子を合わせることができる立場に立つためには、今日の世の中とは相いれず、悪が主管する世の中であるために、死を覚悟し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う事実を、私たちは知るべきです。私たちの後孫たちは私たちと同じ立場に立てられては絶対いけない、ということを悟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四九―三〇八)
사랑하는 아버지, 지금까지 봄의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고하신 아버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아버님께 무한히 고마워하고 무한히 반가워하면서 저희 생명과 사랑 전체를 몽땅 옮겨 드릴 수 있는 자신이 못 된 것을 탄식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내 생명이 동화될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 거기에 완전히 흡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래야 비로소 봄을 맞이하여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일생에서 어느 한때에 봄을 맞이한 적이 있었느냐고 물을 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간 불쌍한 영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의 꽃이 피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여름과 가을을 거쳐야 하듯이, 저희도 하나의 열매로 맺어지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겠사옵니다.
하나의 생명이 투입되어 열매가 맺히기까지는, 여름절기를 거치고 그 뿌리와 줄기와 가지 전체에서 생명요소를 흡수해야만, 완전한 생명력을 지니고 제2의 생을 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몸은 죽더라도 그 마음 가운데 새로운 세계에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생명의 기운이 부풀어 오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스스로 살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가고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더라도, 내적인 생명력은 그 환경의 침범을 받지 않고 꾸준히 발전의 노정을 가야만, 봄을 맞이하여 다시 뿌려질 수 있는, 제2의 생명의 모체인 씨가 되는 것임을 아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가 외적으로 모습은 처량하지만 무한한 생명력을 집약할 수 있는 모체요, 결실체로서 다시 무한한 세계에 심어질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비참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그 외적인 모습이 비참해지면 비참해질수록 내적인 가치는 더욱 더 충실해지는 것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2-37)
愛するお父様、今まで春の環境を開拓するために、絶えず苦労されたお父様がいらっしゃるという事実を思うとき、私たちはお父様に無限に感謝し、無限に歓迎しながら、自分の生命と愛全体を、そっくり移してさしあげられる自らになれなかったことを嘆息し得る息子、娘になるべきです。私たちが新しい春を迎えるためには、私の生命が同化することができる因縁をもって、そこに完全に吸収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知るべきでございます。
そうしてこそ、初めて春を迎えて花を咲かせ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事実を知るべきでございます。「一生で、どのひと時に春を迎えたことがあるのか」と聞かれるとき、いつだと答えられない、春を迎えられずに逝ったかわいそうな霊になってはいけません。一つの花が咲いて実を結ぶためには、夏と秋を経なければならないように、私たちも一つの実を結ぶためには、そのような過程を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ございます。
一つの生命が投入され、実が結ばれるまでには、夏の季節を過ごし、その根と幹と枝の全体から生命の要素を吸収してこそ、完全な生命力をもって第二の生を出発できるという事実を思うものでございます。同様に、この体は死んだとしても、その心の中に、新しい世界に再び生まれ得る生命の気運が膨れ上がり得るかという問題を、自ら推し量ることのできる息子、娘になるべきです。
いくら歳月が過ぎていき、暴風雨が激しく吹き荒れても、内的な生命力は、その環境の侵犯を受けずに絶えず発展の路程を行ってこそ、春を迎えて再び蒔かれ得る、第二の生命の母体である種になれることを知るのでございます。
同様に、私たちの外的な姿はみすぼらしいものですが、無限の生命力を集約できる母体、あるいは結実体として再び無限の世界に植えられ得る価値ある人がいるならば、いくら外的に悲惨であっても、悲惨な人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思うのでございます。その外的な姿が悲惨になれば悲惨になるほど、内的な価値はより充実するということが保障されるという事実を、私たちが知るようにお許しくださることを切にお願い申し上げます。(三二―三七)
아버님, 아버지를 모시고 겸손히 경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영원한 저나라에서 아버지와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제 저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아버지의 심정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오늘 저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당신의 음성을 들어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몸을 찾을 수 있고, 아버지께서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내 배후에서 환난과 수고의 역사 과정을 거쳐온 것을 느껴 스스로 머리 숙일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4-280)
お父様7 お父様に侍り、謙遜に敬礼を捧げたい心のない人は、永遠のあの世でお父様と因縁を結ぶ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知るべきなのでございます。
今、私たちが、心の門を開いてお父様の心情を感じさせてくださいまして、今日我々の心から聞こえてくるあなたの音声を聞き、失った自分の体を探すことができ、お父様が私一人を探すために、私の背後において艱難と苦労の歴史過程を経てきたことを感じて、自ら頭を下げることのできる私たちになるようにお許しください。(四―二八〇)
二 人が願う目的
하나님은 체(體)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체로, 아담을 하나님의 얼굴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이상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영적인 초점이고, 아담은 본래 육적인 초점입니다. 그 두 초점이 90각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요, 사람이 원하는 목적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저나라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로 영원히 나타날 것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자기 부모를 하나님같이 모시면, 누구나 다 천국 가게 되는 것입니다. (119- 109)
神様には体がありません。それで、すべての万物を神様の体として、アダムを神様の顔で表したのです。それが創造理想です。
神様は、本来の霊的な焦点であり、アダムは本来の肉的な焦点です。その二つの焦点が九〇度をつくるのです。それが神様の創造目的であり、人が願う目的です。
アダム・エバが堕落しなかったなら、あの世に行ってお父さん、お母さんとして永遠に現れることができるのに、堕落したためにそうできないのです。堕落しなかったなら、自分の父母に神様のように侍れば、誰でもみな天国に行くようになるのです。(一一九―一〇九)
三 生まれた理由
오늘날 이 세계는 둥글게 되어 있습니다. 태양도 둥글고, 땅도 둥글고, 별도 둥글고, 입도 둥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라도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둥글둥글 돌면서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둥글게 있더라도 개별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연관성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왜 태어났느냐? 이 대우주와 박자를 맞추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바다의 물결이 출렁거리면 내 마음도 출렁거리고, 바람이 기분 좋게 불면 내 마음도 기분 좋고, 꽃이 피어서 향기를 풍기면 내 마음도 향기를 풍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4- 122)
今日、この世界は丸くなっています。太陽も丸く、地球も丸く、星も丸く、口も丸くなっています。どんなものでも、みなそのようになっています。それゆえ、宇宙は丸く丸く回りながら関係を結ぶのです。そして、丸くなっていても個別的に存在するのではなく、全体に連関性を結んでいます。
では、なぜ自分が生まれたのでしょうか。この大宇宙と拍子を合わせるために生まれました。大宇宙と拍子を合わせるために生まれた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で海の波がざぶんざぶんと音を立てれば、自分の心もざぶんざぶんと音を立て、風が気分良く吹けば、自分の心も気分が良く、花が咲いて香りを放てば、自分の心も香りを放てるというのです。(一〇四―一二二)
사랑에서 태어나고, 사랑에서 자라 가지고, 사랑에서 살다가, 사랑에서 죽게 될 때는 낳는 것도 감사한 것이요, 사는 것도 감사한 것이요, 죽는 것도 감사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리에 동참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동참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이 꽂아 놓은 깃발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깃발이 움직이는 것은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사랑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서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고, 아버지를 봐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고, 형제들을 위해서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103- 258)
愛から生まれ、愛から育って、愛から生きて、愛から死ぬようになるときは、生むのも有り難いことであり、生きるのも有り難いことであり、死ぬのも有り難いことです。
皆さんは、母、父がこの上なく愛する場に同参して生まれたというのです。同参者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皆さんは、父母の愛から生まれたために、父母様の愛が差してある旗だと思いなさい。それゆえ、旗が動くのは愛を表示するためなのです。一生の間、愛のために生きるのです。それで、母のためにも愛の旗を振ってあげ、父を見ても愛の旗を振ってあげ、兄弟たちのためにも愛の旗を振ってあげるのです。(一〇三―二五八)
四 瞬間(一日)と一生の関係
여러분의 생활 전체가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고는 생명체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자연현상 세계에서 벌어집니다. 생명의 분기점은 긴 기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순간에 있습니다.
순간을 무시하는 사람은 귀한 것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위대한 사람도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왕좌와 왕관을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을 빛내기 위해서 여러분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주의해야 하고, 생각하는 것도 주의해야 됩니다. 자기의 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내용이 세계와 관계되는 현상으로 남는다는 신념으로 해결짓는 데에서만이 승리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승리권이 결정되는 것은 순간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승리권, 천주적인 승리권도 순간에 결정됩니다. 순간을 빛낼 수 있는 무한한 가치를 느끼며 생활하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도 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딸도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생사의 분기점은 순간에 달렸습니다. (31-218)
皆さんの生活全体が栄養素を吸収し得る基盤にならなくては、生命体を完成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これが、自然の現象世界で繰り広げられるのです。生命の分岐点は、長い期間にあるのではなく、一瞬間にあるのです。
瞬間を無視する人は、貴いものをもつことができません。偉大な人にもなれず、神様の王座と王冠を受け継ぐこともできません。それゆえ、瞬間を輝かせるために、皆さんは言葉一言、行動一つにも注意すべきであり、考えることも注意すべきです。自分の生活で繰り広げられるすべての内容が、世界と関係する現象として残るという信念で解決できる所でのみ、勝利圏が決定されるのです。
このように、勝利圏が決定されるのは瞬間です。したがって、歴史的な勝利圏、天宙的な勝利圏も瞬間に決定されます。瞬間を輝かせることのできる無限の価値を感じて生活する人は、偉大な人にな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聖人にもなることができ、神様の息子、娘にもな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このように、生死の分岐点は瞬間にかかっています。(三一―二一八)
오늘 우리들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먼저 뜻의 나라가 오기를 바라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자체가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일치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하나되게 하느냐 하는 것이, 뜻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뜻을 계승할 수 있는 개인적인 환경, 가정적인 환경, 종족적인 환경, 민족적인 환경을 이루어야 뜻의 나라와 관계맺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루의 생활권 내에서,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을 어떻게 뜻과 더불어 관계맺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복귀섭리역사를 보면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과 예수님 가정까지 4천 년의 역사가 내려오고 있지만, 그들이 실수하게 된 동기는 어느 한 해를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것도 1년이나 10년 혹은 몇십 년을 계획하여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실수는 한 순간에 초래되었으며, 한 순간의 실수가 억천만세 이어져 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한 순간의 실수로 역사시대에 도의 길을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보응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뜻을 따라가지 않은 수많은 민족이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탕감 제물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한 시간 똑딱 하는 순간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도 한 순간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죽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뜻을 알고 난 순간부터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순간이라도 시간 관계를 두고 비약이 있든가 구렁텅이가 생겨나면 영원은 중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애노정을 중심삼고 신앙길을 가는데 금년에 못 가면 명년에 가고, 명년에 못 가면 내명년에 가고, 10대에 못 가면 20대에 가고, 20대에 못 가면 30대에 가고, 30대에 못 가면 40대에 가고, 40대에 못 가면 50대에 가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일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일생 동안 뜻과 더불어 하나 될 수 있는, 하루의 생활도 가져 보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살았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나라가 좋다 하더라도, 하루의 승리기준을 갖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으며, 일년의 승리기준을 갖지 못하면 영원한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영원을 꿈꾸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어떻게 악을 청산하고 선의 기수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담의 순간적인 실수가 억천만세 한을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 아벨이 부모의 한을 풀고 형제의 담벽을 무너뜨려 하나의 가정 기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복귀섭리의 대표로 세워졌던 아벨이 죽었던 것도 순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20년 걸려 방주를 짓던 노아의 수고노정에서도 하나님께서 '소원을 성취할 날이 왔으니 배에 오르라!'고 하신 명령도 한 순간에 내려졌습니다. 이 명령에 동조한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심판권 내에 매장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창성(昌盛)하여 만국을 덮고도 남으리라'고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의 명령도 똑딱 하는 한 순간에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지낸 시간도 몇십 년 동안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라 단 하루라는 시간권이었습니다. 제물을 쪼개어 제사 드리는 시간은 한 시간 미만이었지만 여기서 역사적인 모든 생사화복의 기원이 짜여져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끝날에 찾아오는 심판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생활권 내에서 찾아오는 시간을 어떻게 뜻과 일치시키느냐, 어떻게 뜻과 더불어 교차로를 형성하고 나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37-219)
今日、我々の姿勢が問題です。まず、み旨にかなった国が来ることを願い、そのみ旨が成されることを願うのも必要でしょうが、それより、自体がどのようにすればみ旨と一致していくかということが重要です。
一時間なら一時間を、どのようにすればみ旨と一つになるかということが、み旨の国が成されるのを願うことより重要だということです。それゆえ、まずみ旨を継承し得る個人的な環境、家庭的な環境、氏族的な環境、民族的な環境を成してこそ、み旨の国と関係を結ぶことができるために、神様を中心として、一日の生活圏内で、一時間なら一時間をどのようにみ旨と関係を結ぶかということが、重要な問題であらざるを得ません。
復帰摂理歴史を見れば、アダム家庭からノア家庭、アブラハム家庭、モーセ家庭とイエス家庭まで、四千年の歴史が下ってきていますが、彼らが失敗するようになった動機は、ある一年を中心とし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
アダム家庭において、アダム・エバが堕落したのも、一年や十年、あるいは何十年を計画して失敗したのではありません。その失敗は、一瞬にもたらされ、一瞬の失敗が、億千万年続いてきたということを考えるときに、その瞬間がどれほど恐ろしく、どれほど怖いものであるか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
その一瞬の失敗で歴史時代に修行の道を行った数多くの人たちが、受難の応報を受けなければならず、そのみ旨についていかない数多くの民族が、滅亡のどん底に落ち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それが、とてつもない蕩減の祭物の起源になったというのです。このような事実を考えるとき、一時間、カチカチという瞬間が恐ろしいのです。それゆえ、永遠の天国も一瞬を離れてはあり得ないのです。
永遠の出発は、自分が死んで始まるのではありません。永遠の出発は、自分がみ旨を知った瞬間から続くのです。ここに一日のうちの瞬間でも、時間の関係において飛躍があったり、どん底が生じれば、永遠は中断されるのです。
それゆえ、我々が生涯の路程を中心として、信仰の道を行くのに、今年行けなければ来年に行き、来年に行けなければ再来年に行き、十代に行けなければ二十代に行き、二十代に行けなければ三十代に行き、三十代に行けなければ四十代に行き、四十代に行けなければ五十代に行きと、このようにしてはいけません。一生をこのように生きていくなら、彼は、一生をみ旨と一つになった一日の生活をもってみることができずに死ぬでしょう。もしそのように生きたなら、その人は天国に行けません。
いくら自分が暮らしているその国が良いといっても、一日の勝利基準をもてなければ天国に行くことができず、一年の勝利基準をもてなければ永遠の世界に入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それゆえ、信仰者は永遠を夢見ていくことも重要でしょうが、それより重要なことは、現実においてどのように悪を清算して善の旗手になるかということです。このような問題が何よりも重要です。
このような点から見るとき、アダムの瞬間的な失敗が億千万年の恨を残してきたのです。アダム家庭で、カイン・アベルが父母の恨を解いて、兄弟の壁を崩して、一つの家庭の起源をつく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このように、復帰摂理の代表として立てられたアベルが死んだのも、瞬間的な事件でした。
百二十年かかって箱舟を造ったノアの苦労の路程でも、神様が「願いを成就する日が来たので、船に乗れ」と言われた命令も、一瞬に下されました。この命令に同調した人は、永遠の神様の祝福を受けることができましたが、そうできなかった人は、永遠の審判圏内に埋葬されたというのです。
アブラハムも同様です。神様が「あなたの子孫をふやして、天の星のように、浜べの砂のする。……もろももの国民はあなたの子孫によって祝福を得るであろう」(創世記二二・一七、一八)と祝福されましたが、その祝福の命令もカチカチという一瞬に下されたというのです。アブラハムが供え物をした時間も、何十年間供え物をしたのではなく、たった一日でした。祭物を裂いて供え物をする時間は、一時間未満でしたが、ここで歴史的なすべての生死禍福の起源が組まれてくるのです。
今日、信仰者たちが恐れるべきことは、終わりの日に訪ねてくる審判ではなく、一日一日の生活圏内で訪ねてくる時間です。それを、どのようにみ旨と一致させるか、どのようにみ旨と交差路を形成していくかという問題です。(三七―二一九)
五 幼児期と三段階秩序
아담과 해와를 하나님이 지었다면 어떻게 지었을까? 흙으로 빚어서 지었다면 어떤 흙으로 지었을까? 어디서 출발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장성한 사람으로 지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기로부터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아기를 밴 어머니가 품어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 지었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고는, 이 모든 3단계의 질서를 통한 존재 형성이라는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해와에게도 유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장성기가 있었습니다. 이건 천리입니다. 그 다음에 완성기가 있었습니다.
유아기는 어떤 유아기였겠느냐? 무형의 하나님이 무형의 세계에서부터 유형의 과정을 거쳐올 수 있는 아기의 존재를 품고 키웠다는 논리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225- 198)
アダム・エバを神様が造ったのなら、それをどのように造ったのでしょうか。土でこねて造ったなら、どのような土で造ったのでしょうか。どこで出発したのでしょうか。どこから始まったのでしょうか。アダム・エバを、成人になった人として造ったとは考えられません。
赤ん坊から造りました。神様が、赤ん坊をはらんだ母が、抱いて育てるのと同様な、そのような過程を経て造ったという論理を立てなくては、このすべての三段階の秩序を通じた存在の形成というものは、説明する道理がありません。それで、アダム・エバに幼児期があったというのです。その次に、成人期がありました。これは天理です。その次に完成期がありました。
幼児期とは、どのよう期間だったのでしょうか。無形の神様が、無形の世界から有形の過程を経てくることができる、赤ん坊の存在を抱いて育てたという論理から始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二二五―一九八)
六 我々の人生の道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국가, 세계는 내 뜻에 부합되는 환경이 돼 있지 못하기에 온갖 고충이 벌어지고 있고, 선악의 분기점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백이면 백 사람이 각기 자기 나름대로 하루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환경과 투쟁하고 있고, 환경을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침에 계획한 하루의 일을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잘 느끼게 됩니다. 더우기 그 환경의 범위가 크면 클수록 자신의 하루 생활을 승리로 결과짓기 위해서는 그것에 비례해서 결의와 추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날이 승리의 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더해져서 한 달이 되는 것이요, 한 달 한 달이 더해져서 일년이 됩니다.
그 한 달도 우리가 계획한 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달의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 한 달의 환경에 갖추어진 복잡한 모든 사연들, 모든 여건들을 타파할 수 있는 추진력과 결의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없어서는 한 달의 계획을 승리로 끝맺을 수 없습니다.
일년을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삼백예순 날을 극복할 수 있는 투지력 혹은 추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1년을 승리로 장식할 수 없습니다. 이런 1년에 10년이 가해지고, 20년 혹은 30년이 가해진 날들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31-30)
我々が暮らしている社会、国家、世界は、自分の意志に符合する環境になっていないので、すべての苦衷が生じており、善悪の分岐点が重なり合っています。百人なら百人、各々自分なりの一日の生活を営むために環境と闘争しており、その環境を押して進んでいます。それゆえ、朝に計画した一日の仕事に対して誰も自信をもつ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我々は一日の生活の中でよく体験します。その上に、その環境の範囲が大きければ大きいほど、自身の一日の生活を勝利として結果づけるためには、それに比例した決意と推進力をも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うでなくては、その日が勝利の日になり得ないのです。そのような一日一日が加わってひと月になり、ひと月ひと月が加わって一年になります。
そのひと月も、我々が計画したとおりに暮らせる環境になっていません。我々がひと月の勝利をもたらすためには、そのひと月の環境に備わった複雑なすべての事情、すべての与件を打破することができる推進力と決意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がなくては、ひと月の計画を勝利したものとして終え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
一年を押し進めるためには、三百六十日を克服することができる闘志力、あるいは推進力を備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うでなくては、一年を勝利で飾ることはできません。このような一年に十年が加わって、二十年、あるいは三十年が加わった日々を過ごしているのが、我々の人生の道です。(三一―三〇)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시간성을 못 벗어납니다. 인류 역사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그와 같은 시간권 내에서 움직여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중심삼고 10년, 20년, 30년, 70년, 일생 동안 가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크면 클수록 내적으로 더욱 강하게 다짐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그 목적을 능가할 수 있는 내적인 결의를 계속하지 않는 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1- 149)
今日、この地に暮らしている人間たちは、時間性を外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人類歴史について見ても同様です。個人、家庭、氏族、民族、国家、世界もそのような時間圏内で動いていっています。
人が生きていく所には、必ず達成すべき目的があります。その目的を中心として、十年、二十年、三十年、七十年、一生の間行くべきなのです。目的が大きければ大きいほど、内的にもっと強く誓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うでなくては、その目的に到達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時間という過程を通じて、その目的を凌駕し得る内的な決意を続けない限り、その目的を達成す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三一―一四九)
七 我々が訪ねるべき本郷
여러분은 영계(靈界)의 사실을 모를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하나님의 특별한 혜택을 입어 미지의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세계의 근본을 헤쳐 보니 원칙은 간단했습니다. 그 세계는 하나님의 천지원칙인 위하여 산 사람만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한 내용으로 형성된 세계가 이상천국입니다.
그곳이 우리 인간이 찾아가야 할 본향(本鄕)입니다. 오늘 우리는 타락한 인생으로서 본향에서 추방당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본향 땅을 향하여 돌아가야 할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인간 자체로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역사과정에 설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민족의 문화 배경, 풍습 혹은 전통에 따라서 수많은 종교를 세워 수습해 나왔습니다. 그렇게 수습하기 위한 훈련장으로 세운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니 종교는 본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격자를 연마시키는 훈련장소입니다. 동서 사방의 문화 배경에 따라 높은 데로 전진할 수 있는 하나의 통일된 종교세계로 이끌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본향의 곳으로 지도하여야 할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위하여 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위하여 살아야 된다는 원칙을 강조해야 되겠기에 온유겸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뭇사람을 높이고 그들을 위하는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희생봉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나라의 법도에 맞는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78- 117)
皆さんは、霊界の事実を知ら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先生は神様の特別な恵沢を受けて、未知の世界についてよく知っています。
その世界の根本を掘り返してみると、原則は簡単でした。その世界は、神様の天地原則の世界であるために、生きた人だけが行く所です。そのような内容で形成された世界が、理想天国です。
そこが、我々人間が訪ねるべき本郷です。今日、我々は堕落した人生として、本郷から追放された人間になったために、本郷の地に向かって帰るべき運命にあるのです。しかしそこへは、その人間自体としては入ることができないために、神様は、人間が入ることができる道を歴史過程に設定せざるを得ません。
それで、その民族の文化背景、風習、あるいは伝統が異なることによって、数多くの宗教を立てて収拾していきました。そのように収拾するための訓練場として立てたのが宗教です。ですから宗教は、本郷の地に入ることができる資格者を錬磨させる訓練場です。東西四方の文化背景によって、高い所に前進することができる一つの統一された宗教世界を率いてきています。
そのような本郷の所へ導くべき宗教であるために、宗教は何を教えているのでしょうか。「ため」に生きなさいということを教えていると言わざるを得ません。そして、高次的な宗教であるほど、「ため」に生きるべきだという原則を強調しなければならず、「温柔謙遜」であれと言うのです。数多くの人を高め、彼らのためにする立場に立てというのです。「犠牲奉仕せよ」と教えるのです。なぜでしょうか。その国の法度に合う訓練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です。(七八―一一七)
八 人生最高の行くべき道
인생의 갈 길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이 인생의 갈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이 인생이 가야 할 최고의 종착점입니다. 이 길은 남자도 여자도 다 가야 됩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갈 길은 무한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죽을 고비를 거쳐서라도, 죽어서라도 끊임없이 찾아가야 할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것이 인생의 최고 갈 길입니다.
욕망의 끝이 어디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다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 더 귀한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해야 됩니다. 사랑만 점령하면 하나님은 안 계셔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그의 것이 될 때, 비로소 안팎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상하의 등급이 없는 이상의 본국(本國)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눕게 되면, 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자신을 위해서 있지 않은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이 갈 천상세계 즉 천국은 사랑으로 충만된 곳입니다. (39-210)
人生の行くべき道とはどのようなものでしょうか。神様の愛を占領することが、人生の行くべき道です。神様の愛を占領することが、人生の行くべき最高の終着点です。この道は、男も女もみな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すべての人が行くべきなのです。
人生の行くべき道は、無限であられる愛の神様を探すことです。十回でも百回でも、死の峠を経てでも、死んでも絶えず探していくべき、神様の愛を探すのが人生の最高の行くべき道です。
欲望の終わりとはどこでしょうか。神様の愛を占領する所です。神様を占領したといっても、その中にもっと貴い愛を占領できなければ、神様は自分の神様ではありません。それゆえ、神様の愛を占領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愛だけ占領すれば、神様はいらっしゃらなくても大丈夫なのです。彼のものが私のものであり、私のものが彼のものになるとき、初めて内外が一つになるのです。そのような国が、上下の等級のない理想の本国になるのです。
そのような場に横たわるようになれば、天下にある存在の中で、良く見えないものがなく、天下にいる存在の中で、自身のために存在しないものはないと感じるのです。そのようなものが神様の愛なので、今日人間が行くべき天上世界、すなわち天国は、愛で充満した所なのです。(三九―二一〇)
九 出生の基準と生涯の基準
1. 잘못된 출생의 기준
① 過った出生の基準
오늘날 세상 사람은 자기 자신이 고귀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박사라고 하더라도 자기 출생이 틀렸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사랑과 생명과 핏줄을 타고났다는 걸 모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사탄의 사랑에 의해 태어난 것입니다. 사탄의 사랑이 그 부모에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어머니의 생명, 아버지의 생명에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 피가 오늘 나에게 이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 종류의 결실체가 바로 나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사탄혈통에 속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의 혈관을 타고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사탄은 자기의 이상적인 결실을 맺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남녀를 본연의 순수한 완성 인간으로 구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탄 사랑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탄 혈통을 타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발이 잘못됐습니다. 출발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긴 돌아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원점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거짓부모로 시작했으니 돌아가서 참부모로 다시 시작해야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심각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핏줄을 다시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축복받을 때 혈통전환식을 합니다. 그걸 내 생명보다 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하나의 예식이라고 해서 그저 일반 종교의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은 입장에서 회생(回生)하는 주사약과 마찬가지입니다. 해독주사입니다.
우리 조상이 잘못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했습니다. 이것을 아는 우리는 다시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절대 못 가는 것입니다. 타락 천지에 불륜한 사랑을 남김으로써 역사를 통해 얻은 그 대가가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개인, 가정?사회, 국가, 세계에 미친 영향이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216-109)
今日、世の中の人は、自分自身は高貴な人だと言っている人でも、いくら博士だと言っている人でも、自分の出生が間違ったということを知りません。神様の怨讐であるサタンの愛と、生命と、血筋をもって生まれたということを知らないというのです。重要な問題です。
堕落によって人間は、サタンの愛により生まれたのです。サタンの愛がその父母にまでつながってきました。母の生命、父の生命にその血が流れていて、その血が今日、自分につながってきたというのです。そのような三種類の結実が、正に自分です。
ですから皆さんは、サタンに属したのです。いわば皆さんの血管に乗ってサタンの血が流れているのす。したがって、自動的にサタンは自分の理想的な結実を結んだのであり、神様は、そのような男女を本然の純粋な完成人間として救おうとされるのです。
皆さんは、サタンの愛から出発したのです。皆さんは、サタンの血統をもって生まれたのです。それゆえ、出発が過ってしまいました。
出発が過ったので、再び帰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帰るには帰るのですが、どこに帰るのでしょうか。原点に帰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偽りの父母として始まったので、帰って「真の父母」として再び始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すから、どれほど深刻ですか。自分が、神様の愛と、神様の生命と、神様の血筋を再び引き継が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れで、出発するとき、血統転換式をします。それを、自分の生命よりもっと信じ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統一教会の一つの礼式だといって、ただ一般の宗教儀式として考えてはいけないのです。これは、死んだ立場から回生させる注射の薬と同じです。解毒注射です。
我々の先祖が過ったのです。これのために、歴史を経ながら多くの人々が犠牲になりました。これを知る私たちは、再びその道を行くことはできません。絶対行けないのです。堕落天地に不倫の愛を残すことによって、歴史を通して受けたその代価が、とてつもなく大きかったのです。個人、家庭、社会、国家、世界に及ぼした影響が、とてつもなく大きかったというのです。(二一六―一〇九)
② 生涯の基準
여기서 생애는 영원한 생애를 말합니다. 영계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영원한 삶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받았습니다. 절대적이고 주체적인 하나님의 대상이 바로 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가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참사랑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영원하신 생명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상은 더 영원한 것인데, 그 이상의 중심이 바로 참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상대가 나입니다.
사랑의 속성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를 하나로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나 동참할 수 있고, 어디를 가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전재산을 다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까지도 다 상속받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비참한 과정을 거쳐서 이것을 발견함으로써, 그 기반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숭엄하고 고귀합니다. 놀라운 은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영원한 참사랑의 자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저세계는 제한된 지구성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한된 곳에서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지만, 저세계는 차원이 높은 세계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무엇이든 바라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다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영생체로 지음받았습니다. 참사랑을 중심한 대상체인 나는 영원한 생명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계에 가면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생애 기준으로 첫째가 선악의 기준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악의 기준이 첫째이고, 둘째가 본연의 출발점이고, 세 번째는 영생입니다. (216-107)
ここで、生涯とは、永遠の生涯を言います。地上界だけを言うの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生きている永遠の暮らしです。
「私」という存在は、神様の愛の対象として造られました。絶対的であり、主体的な神様の対象が、正に自分です。神様の愛の相対が私というものです。神様が自分より、もっと貴く考えるものが、真の愛の概念です。神様は、絶対的であり、永遠であられる生命の中心です。そして神様の理想は、もっと永遠なものですが、その理想の中心が、正に真の愛です。その愛の相対が自分です。
愛の属性は、主体と対象が一つにすることです。それは、国家を一つにします。それゆえ、どんな場でも同参することができ、どこにでもついていくことができます。全財産を、みな相続することができます。神様の心情までも、みな相続するのです。先生が悲惨な過程を経てこれを発見することによって、その基盤の上に立つようになりました。これは何とも換えられないし、崇高で高貴なものなのです。驚くべき恩賜です。
それゆえ、神様と同じ立場に立つのです。永遠の真の愛の場に同参するのです。あの世界は、制限された地球星とは次元が違います。制限された所では自由に動くことができませんが、あの世界は次元が高い世界であるために、何でもできる所です。時間を飛び越えられるのです。愛を中心として何でも願いさえすば、いつでもどこでも、みな得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我々は元来、永生体として造られました。真の愛を中心とした対象体である自分は、永遠の生命体なのです。だから、霊界に行けば自由なのです。
それで、生涯の基準として、第一が善悪の基準です。皆さんは、それを知るべきです。善悪の基準が第一であり、第二が本然の出発点であり、三番目は永生です。(二一六―一一五)
第二節 人間の位格
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
一 神様が人間を創造した目的
하나님께서 인간을 왜 만들었을까? 첫째는 하나님 자신이 부모의 입장에 서기 위함입니다. 부모는 영계에서도 무형입니다. 모형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양을 가진 인간의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모양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심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수직선은 한 점에 머무릅니다. 면적이 없습니다. 즉 영계에서는 번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직 차원에서 그것을 횡적으로 전개하여 360도 구체(球體)가 되어야 많은 공간이 생기게 됩니다.
세 번째는 사랑의 상대권의 영원성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상대되는 것은 아담과 해와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상대의 위치에 섬과 동시에 그 자녀들도 상대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상대위치를 영속적으로 보존시키기 위해 인간을 창조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그 자녀들은 하나님을 삼촌이라고 부를까요, 할아버지라고 부를까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상대란 평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횡적으로 번식하여 그 사랑의 가치를 완성해야 합니다. 완성된 사랑의 가치는 하나입니다.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모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형태가 필요합니다. 부모로서의 모양이 필요합니다. 아담의 아버지와 같은 얼굴로 영적으로 그 형태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천국 국민의 생산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부부는 생산공장입니다. 생산공장이라면 대량생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소량생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대량생산하는 것이 좋습니다. 생산공장이 자동화되어 명확하게 대량생산하게 되면, 천국은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많은 아기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222-338)
神様は、人間をなぜ造ったのでしょうか。第一は、神様自身が父母の立場に立つためです。その父母は、霊界でも無形です。形がありません。それで、形をもった人間の父母になるためには、形をも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うでなければ、中心になり得ないのです。
二番目は何かというと、垂直線は一点にとどまります。面積がありません。すなわち、霊界では繁殖を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垂直の次元で、それを横的に展開して三六〇度の球体になってこそ、多くの空間が生じるようになります。
三番目は、愛の相対圏の永遠性を維持するためです。神様の相対になるのは、アダムとエバだけ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アダム・エバが相対の位置に立つのと同時に、その子女たちも相対の位置に立つようになるのです。ですから、神様の相対の位置を永続的に保存するため、人間を創造したのです。
アダムもエバも神様をお父さんと呼びます。では、その子女たちは神様を、おじさんと呼びますか、おじいさんと呼びますか。お父さんと呼びます。
相対というのは、平等なものです。神様の愛を横的に繁殖し、その愛の価値を完成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完成した愛の価値は、一つです。平等なのです。
そこには、三つの理由があります。一番目は、形が必要なのです。形態が必要です。父母としての形が必要です。アダムの父のような顔で、霊的にその形態を得るということです。
二番目は、天国の国民の生産地が必要です。ですから、夫婦は生産工場です。生産工場なら、大量生産するのがいいでしょうか、少量生産するのがいいでしょうか。大量生産するのがいいのです。
生産工場が自動化され明確に大量生産するようになれば、天国はいっぱいになるのです。ですから、女性は多くの赤ん坊を産むようになっています。(二二二―三三八)
二 人間は、霊界と肉界の媒介体
본래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만물을 짓고 인간을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을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이 평형적인 입장에서 통일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있고, 이 피조세계가 있고 그 가운데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중간적 입장에 선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영계와 육계를 접촉시킬 수 있는 매개체인 것입니다. (67-143)
本来、神様の創造過程を考えてみれば、神様は万物を造って、人間を造ったのです。神様を中心としてすべてが始まりました。人を造ったことによって、神様と人間と万物が平行的な立場で統一を見るのを願われました。これが神様の創造のみ旨です。神様がいて、この被造世界があり、その中に人がいます。このような中間的立場に立ったのが人間であるために、人間は霊界と肉界を接触させることができる媒介体であるです。(六七―一四三)
三 体と心、そして霊人体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피조세계는 축이 있습니다. 그 축(軸)도 두 축이 있습니다. 보이는 축과 보이지 않는 축,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주체를 중심삼고 돌아가는데 그 주체 자신도 돌아갑니다. 몸과 마음이 주고받으면 돌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존재물은 이와 같은 원칙에 의하여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타락한 인간세계에서 복귀의 길도 축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축을 고쳐야 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몸의 중심이 무엇이냐? 마음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몸은 마음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 마음의 명령에 몸이 움직입니다. 마음이'동으로 가라!' 하면 동으로 가야 되고, '서로 가라!' 하면 서로 가야 됩니다. 몸을 제멋대로 할 수 없습니다. (136-14)
今日、我々が暮らしているこの被造世界には軸があります。その軸にも、二つのものがあります。見える軸と見えない軸、二重構造になっています。
一つの主体を中心として回るのに、その主体自身も回ります。体と心が授け受ければ、回るようになるのと同じことです。
すべての存在物は、このような原則によって存在します。同様に、今日堕落した人間世界からの復帰の道も、軸を直さなければいけません。
人間において、体の中心とは何でしょうか? 心です。心を中心として、体がつながっているために、体は霊を中心として回るのです。心の命令に体が動きます。心が「東に行け」と言えば、東に行かなければならず、「西に行け」と言えば、西に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体は勝手にできません。(一三六―一四)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고, 마음 위에 영이 있으며, 영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야만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비록 작은 하나의 개체지만 전체의 역사를 대신한 존재요, 미래의 모든 인연을 대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천주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애의 인연을 찾아가는데 있어서 자기의 마음을 앞에 모시고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천륜입니다. 마음의 명령에 복종치 않는 자는 하늘이 때립니다. 지금까지 하늘은 역사노정에서 인간에게 양심대로 살되 물질적인 악의 조건에 걸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양심은 천륜을 100퍼센트 닮았느냐?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수많은 장벽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천국 관문 앞에 곡절의 문이 가로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심판의 관문입니다. 오늘날의 사조(思潮)는 공포와 불안과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중심을 잡으려야 잡을 수 없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몸과 영인체로 지었는데, 영(靈)이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4-268)
人間には、体と心があり、心の上に霊があり、霊の上に神様がいらっしゃいます。それゆえ人間は、神様と完全に一つになってこそ、完全な人になるのです。人は、たとえ小さな一つの個体であっても、全体の歴史に代わった存在であり、未来のすべての因縁に代わる存在であるために、天宙的な価値をもっています。
人は、自分の生涯の因縁を訪ねていくのにおいて、自分の心を前に侍っ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れが天倫です。心の命令に服従しない者は、天がたたきます。今まで天は、歴史路程で人間に良心のとおりに生き、物質的な悪の条件に引っ掛かるなと言いました。
では、人間の良心は、天倫に一〇〇パーセント似たのでしょうか。そのようになっておらず、数多くの障壁で遮られているのです。天国の関門の前に、曲折の門が横たわるようになるというのです。これがキリスト教で言われる審判の関門です。今日の思潮は、恐怖と不安と混乱の時期を迎えています。中心をつかもうとしてもつかむことのできない時代ということです。
今日、我々は、物質を多くもっていてもいけません。なぜなら、神様が人を造るとき、体と霊人体を造りましたが、霊が中心であるからです。(四―二六八)
四 完全作動と共鳴
공명(共鳴)이란 진동할 때 주파수가 같음을 말합니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는 우리의 내적 사람과 지상천국에 살 수 있는 외적 사람이 사랑을 중심삼고 공명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명할 때는 음파가 같아야 엮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돕니다. 도는 데는 그냥 도는 것이 아니라 핵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영인체와 육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어울리게 될 때는 영적 세포, 육적 세포가 완전히 작동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완전작동할 때는 천상천하, 지상천하가 다 보이는 것입니다. 완전 작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도 그렇잖습니까? 성능이 좋으면 100퍼센트 울려 퍼집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힘으로 육신과 영인체가 일치되어 폭발할 수 있는 경지가 되면 천상세계, 지상세계, 하나님 할 것 없이 다 공명하게 되는 겁니다. (171-103)
共鳴とは、振動するときの周波数が同じことをいいます。
人間は、永遠に生きることができる我々の内的人と、地上天国に暮らすことができる外的人が、愛を中心として共鳴す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なりません。共鳴するときは、音波が同じであってこそつづられるのです。そうしながら回ります。回るには、そのまま回るのではなく、核を中心として回るのです。
同様です。霊人体と肉身が神様の愛を中心として調和するようになるときは、霊的細胞、肉的細胞が完全に作動するのです。
それゆえ、目が完全作動するときは、目を開くようになれば、天上天下、地上天下がみな見えるのです。完全作動をするためです。マイクもそうではないですか。性能が良ければ、一〇〇パーセント響きわたります。
同様に、愛の力で肉身と霊人体が一致して、爆発し得る境地になれば、天上世界、地上世界が、神様がすることなく、みな共鳴するようになるのです。(一七一―一〇三)
인간을 보게 되면 마음과 몸,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마음사람과 몸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를 합하면 네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라놓으면 네 사람인데, 이게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나님은 왜 이렇게 네 사람으로 만들었느냐?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는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으로 완전히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영적 사람,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영인체가 있고 육신이 있습니다. 영인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인체하고 육신이 언제 하나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이것은 음차(音叉)와 마찬가지입니다. 음차의 하나를 울리면 다른 쪽도 진동수가 같게 공명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하나님 사랑의 작용이 우리의 마음에 오면 자동적으로 몸에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100퍼센트 공명시키게 할 수 있는 권내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도 아니요, 능력도 아니요, 힘도 아니요, 오직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눈이나 코 같은 육적 오관이 영적인 오관과 바라는 하나의 초점, 이상적 표준점이 뭐냐? 하나님의 힘도 아니고 지혜도 아닙니다. 사랑이 모든 것의 초점, 표준점입니다. (138-254)
人間を見ると、心と体が二重構造になっています。男もそうであり、女もそうです。男も女も心の人と体の人から成っています。それで、男女を合わせれば四人だと言うことができます。分けておけば四人ですが、これがどのように一つになるでしょうか。
神様は、なぜこのように四人に造られたでしょうか。神様の真の愛を中心としては、完全に一つになるのです。真の愛で完全に一つになるのです。
皆さんには、霊的人、統一教会で言う霊人体があり、肉身があります。霊人体は我々の目に見えませんが、存在するのです。
では、霊人体と肉身はいつ一つになるのでしょうか。これが問題です。これは、音叉と同じです。音叉の一つを鳴らせば、他の側も振動数が同じように共鳴するのと同じ道理で、神様の愛の作用が我々の心に来れば、自動的に体に反応するということです。
それゆえ、体と心を一〇〇パーセント共鳴させ得る圏内に追い込むことができるのは、神様の知恵でもなく、能力でもなく、力でもなく、ただ愛です。(一三八―二五四)
第三節 人間の生命の本質
① 영적인 것이 인간의 본질
一 霊的なものが人間の本質
어떤 하나의 핵심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으로 도는 상대적인 존재가 반드시 있습니다. 양자(陽子)를 중심하고 전자(電子)가 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전자와 같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양자와 같은 하나님 마음의 핵심과 관계를 맺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여 복귀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찾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이 약동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이 화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의 길을 거쳐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찾아나가는 것이 가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내가 된 것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진리는 영원불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선악을 분별하면서 진리를 찾아가야 될 것인가? 자신을 중심한 마음을 버리고 항상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성서에서도 높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낮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나라에 가면 그러한 인간의 본질이 남을 위하도록 되어 있는 것임을 더욱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찌하여 자기만을 위하려는 마음으로 만사에 임하고 있는가? 이것은 모든 인간이 천륜을 배반한 천사, 다시 말하면 사탄과 혈통적인 인연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137)
ある一つの核心があれば、それを中心としても相対的な存在が必ずあります。陽子を中心として電子が回っているのと同じように、神様と人間との関係もこれと同じです。電子のような我々人間の心が、陽子のような神様の心の核心と関係を結んで作用しているため、神様が人間に対して復帰摂理をなさ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我々が真理のみ言を探せば、神様の生命が躍動すること、神様の愛が和動するのを感じることができす。このように、真理の道を経て、神様の生命と愛を探していくのが、価値あることです。
パウロが言ったのと同様に、世の中の光になることができる自分になったのも、中にある神様の愛のためです。
真理は、永遠不変です。では、我々はこの悪なる世の中で、どのように善悪を分別しながら真理を探していくべきなのでしょうか。自分を中心とした心を捨てて、いつも低い位置に下りなければなりません。聖書でも、「自分を高くする者は低くされ、自分を低くする者は高くされるであろう」(マタイ二三・一二)と言いました。
人間の本質は、霊的なものです。それゆえ、あの世に行けば、そのような人間の本質が人のためになるようになっていることを、もっと実感す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ところで人間は、どうして自分だけのためにという心で万事に臨んでいるのでしょうか。
これは、すべての人間が、天倫に背いた天使、言い換えれば、サタンと血統的な因縁をもっているためです。(二―一三七)
이제 우리는 영적인 밥을 먹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육적인 밥과 영적인 밥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맛있어야 되느냐? 내가 살아남고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서는 영적인 밥맛이 육적인 밥맛보다도 더 좋아야 합니다. 영적인 힘을 중심삼고 사는 생활의 맛이 육적인 힘을 갖고 사는 생활의 맛보다도 더 맛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31-211)
今我々は、霊的な御飯を食べなければなりません。皆さんは、肉的な御飯と霊的な御飯のうち、どちらがおいしく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か。自分が生き残って神様の側に立つためには、霊的な御飯の味が、肉的な御飯の味よりももっと良くなければなりません。霊的な力を中心として暮らす生活の味が、肉的な力をもって暮らす生活の味よりも、もっとおいし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一三一―二一一)
二 万物の霊長であるという意味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만물의 영장이 누구냐?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만물의 근본된 영장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영(靈)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인간에겐 영이 있습니다. 인간은 그 영(靈) 중의 장(長)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직결시켜서 영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만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인간도 피조물인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란 상대적 결과체입니다. 피조물만 되어 가지고는 원인을 통할 수 없고, 원인을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원인에게 점령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결과적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영장하게 되면, 장(長)은 영(靈) 가운데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본래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된 관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장은 하나님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서 모두가 영장이 아닙니다. 영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 영장이 될 수 있는 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자는 적어도 개인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체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중심삼고 소원을 이루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의 천국이 되느냐? 하나님의 천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32-136)
万物の霊長という言葉は、何を意味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万物の霊長とは誰でしょうか。「人だ」と言っていますが、万物の根本となった霊長は神様です。皆さんは、霊があるということが分かるでしょう。人間には、霊があります。人間は、その霊の中の長であるために、結局神様と直結させて霊長だと言うのです。
万物の霊長だというのは、人間自体だけではなり得ません。人間も被造物であるのに、どのように万物の霊長になるかということです。被造物とは、相対的な結果体です。被造物だけでは、原因に通じることができず、原因を占領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被造物は、原因に占領され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
皆さんは、結果的存在であることは間違いありません。霊長と言えば、長は霊の中で中心であるという言葉です。この言葉は、本来、神様と人間が一つになった関係について言う言葉です。
それゆえ、霊長は、神様と通じるのです。しかし、人間が万物の霊長だといって、すべてが霊長ではありません。霊長になり得る人は、別にいます。その霊長になり得るクラブに加入できる資格者は、少なくとも個人のために生きる人ではありません。全体のために生きる人です。神様は、そのような人を中心として願いを成そうとされるのです。そうなれば、誰の天国になるのでしょうか。神様の天国ではなく、その人の天国になるのです。(三二―一三六)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생해야 됩니다. 악한 세상에서 80년 정도 사는데, 개가 죽는 것이나 사람이 죽는 것이 다를 게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다릅니다.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다릅니다.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에? 늙지 않는 마음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물은 다 변할 수 있습니다. 순금도 변합니다. 풍화작용에 의해서 감소합니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데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159-278)
人は、どのようにすべきでしょうか。永生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悪なる世の中で、八十年ほど暮らしますが、犬が死ぬことや、人が死ぬことには、違いはないと考えるかもしれませんが、それは違います。人は霊長であるために違います。
万物の霊長になり得るのは、何のためでしょうか。年を取らない心のためにそうだというのです。万物は、みな変わり得ます。純金も変わります。風化作用により、減少します。ですが、心だけはそうではありません。変わらないところにおいて、最高の権威をもっています。(一五九―二七八)
만물의 영장이라 함은 무엇을 중심삼고 영장이라고 하느냐? 돈을 중심삼고, 지식을 중심삼고, 권력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210-309)
万物の霊長だということは、何を中心として言うのでしょうか。お金を中心として、知識を中心として、権力を中心として言う言葉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神様の最高の愛を中心として言うことです。(二一〇―三〇九)
三 内の人と外の人
인간 본연의 인연이 뭐냐?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권 내에서 서로 서로가 완성애로서 즐길 수 있고, 찬양과 존경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본연의 인연입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하늘의 인연과 땅의 인연이 몽땅 화합하여 하나로 조화되어 나타난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있고, 보이는 몸이 있는 것입니다. 본래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다면, 몸과 마음이 갈라져서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속사람과 겉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 것이냐, 한 십년쯤 지나면 끝날 것이냐, 죽어도 안 끝날 것이냐?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면 그 하나님은 하나의 목적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고 두 목적을 가진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혼돈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모든 법칙은 전후 좌우가 엇갈림이 없이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걸 볼 때, 사람은 본래 이렇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집어던지고 본연의 마음을 찾아야 됩니다. (44-194)
人間の本然の因縁とは何でしょうか。神様の絶対的な愛の圏内で、互いに完成した愛を楽しむことができ、褒めたたえることと尊敬の価値を現すことが、本然の因縁です。そうする中で、天の因縁と地の因縁が、すっかり和合して、一つに調和して現れたのが人間です。それゆえ、見えない心があり、見える体があるのです。
本来の因縁をもって生まれたなら、体と心が分かれて一つになるのです。
皆さんも、内の人と外の人が互いに闘っています。この闘いは、いつ終わるでしょうか。約十年ほど過ぎれば終わるでしょうか、死んでも終わらないのでしょうか。神様が人間をそのように造ったなら、その神様は一つの目的をもった神様ではなく、二つの目的をもった神様です。そのような神様は、混沌とした神様だというのです。
宇宙のすべての法則は、前後左右が行き違いなく秩序整然と一つのはっきりとした目的があります。これを見るとき、人は本来このように創造されたのではないのです。それで、体をほうり投げて、本然の心を探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四四―一九四)
우리 인간의 육신과 영인체 중에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육이 아니라 영이라는 것입니다. 육은 70, 80년의 시간권, 한계권 내에서 살다가 사라지고 말지만 영은 시간권을 초월하고 공간권까지 초월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책임을 깨닫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본의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육신을 중심삼고 잘살더라도 결국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육신은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기준과 육적인 기준 중에 어느 것이 보다 중요한 것이냐? 우리가 육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육은 영을 위하여, 영은 육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같은 입장에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육을 구원했다는 입장에서 영육이 합한 실체를 갖추어 보다 보람있는 자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20-326)
我々人間の肉身と霊人体の中で、より重要なものとは何でしょうか。肉でなく霊なのです。肉は七十、八十年の時間圏、限界圏内で生きては去ってしまいますが、霊は時間圏を超越し、空間まで超越する権限をもっています。したがって、歴史的な責任を悟って、責任を果たすことが人間の本務です。
皆さんがいくら肉身を中心として豊かに暮らしても、結局は死ぬようになるのです。どうせ肉身は死ぬ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す。その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す。では、霊的な基準と肉的な基準のうちで、どちらがより重要なものでしょうか。我々は、肉的な基準を中心として生きていくのではありません。肉は霊のために、霊は肉のために存在するのです。皆さんは、世の中の人たちが生きていくのと同じ立場にすがってはいけません。
皆さんは、肉を救ったという立場で、霊肉が合わさった実体を備えて、より甲斐のある立場から出発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二〇―三二六)
四 地上生活の目的は霊肉完成
뜻의 목적은 무엇이냐? 인간의 영육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과거는 영적이고 현재는 육적이라는 것입니다. 두 세계가 침범을 당했습니다. 현재의 입장이 사탄세계이니까 사탄세계를 이긴 육이 되어야 되고, 과거에 사탄세계를 이겼던 영적 기반을 닦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승리하면 영육을 가질 수 있는 기준이, 미래에 대한 축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73-96)
み旨とは何でしょうか。結局、人間の霊肉を完成させることです。自分自身を中心として、過去は霊的であり、今日は肉的です。過去は霊的であり、現在は肉的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二つの世界の侵犯を受けました。現在の立場がサタン世界だから、サタン世界に勝った肉になるべきであり、過去のサタン世界に勝った、霊的基盤を築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過去と現在に勝利すれば、霊肉をもつことができる基準が、未来に対する祝福に広がるのです。(七三―九六)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계가 주체가 아니고 육계가 주체라는 것입니다. 완성시키는 데는 영계가 주체가 아니고 육계가 주체입니다. 육계의 완성은 영계와 육계의 완성입니다. 그러니 육신 생활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91-178)
我々が知るべきことは、霊界が主体ではなく、肉界が主体だということです。完成させるのには、霊界が主体でなく、肉界が主体です。肉界の完成は、霊界と肉界の完成なのです。ですから、肉身生活が貴いというのです。(九一―一七八)
第四節 肉身生活の高貴性
① 육신생활은 영계생활을 위한 준비
一 肉身生活は霊界生活のための準備
하나님께서 만물과 인간을 지으시고 선하라고 하신 것은 서로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을 쳐서 마음 앞에 굴복케 하는 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악에서 선으로 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내 몸이 완전히 승리했다는 것은 사탄까지도 완전히 뿌리뽑아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사탄을 정복해야만 갈 수 있습니다. 사탄을 이기는 것은 육신을 벗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이 땅에서 사고가 났으므로 고치는 것도 육신을 쓰고 땅에서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면 영원히 지옥에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서 승리하여 하늘 편의 선한 입장에 서게 되면 영원히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65-294)
神様が、万物と人間を造られ、良しとされたのは、互いに闘うなということです。体を打って心の前に屈服させることが、宗教の教えです。悪から善に越えられなければいけません。
自分の体が完全に勝利したということは、サタンまでも完全にその根を抜いて征服したということです。天国へは、サタンを征服してこそ行くことができます。サタンに勝つことは、肉身を脱いではできません。なぜなら、肉身が地で事故になったので、直すのも肉身を使って、地で直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地上ですべきことをみなできなければ、永遠に地獄に行きます。
それゆえ、地で勝利して天の側の善なる立場に立つようになれば、永遠に天国に行くのです。(六五―二九四)
이 육신세계는 짧은 기간입니다. 길지 않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잠 자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밥도 걸어가면서 먹고, 잠도 걸어가면서 자고, 노는 것도 걸어가면서 노 것입니다. 그럴수록 세계의 그 누구도 받지 못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80-226)
この肉身世界は、短い期間です。長くありません。それを知るようになれば、寝る時間が惜しいのです。御飯を食べる時間が惜しいというのです。そうなると御飯を歩きながら食べ、寝るのも、歩きながら寝て、遊ぶのも、歩きながら遊ぶのです。そうであるほど、世界の誰も受けられない福を受けるのです。(八〇―二二六)
내가 비록 제한된 이 땅에서 80년 정도 있는다고 해도 우리의 무대는 세계의 제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만물은 세계의 만물이요, 내 몸은 세계 인류의 몸이요, 내 마음은 세계 인류의 마음입니다. 그런 심정은 하나님과 하나돼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 다 하나의 제단입니다. (75-166)
私がたとえ制限されたこの地で八十年くらいはいるといっても、我々の舞台は世界の祭壇です。それゆえ、ここにある万物は、世界の万物であり、自分の体は、世界人類の体であり、自分の心は、世界人類の心です。そのような心情は、神様と一つになっています。これが全部一つの祭壇です。(七五―一六六)
우연히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라는 것은 쉬운 준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두고 볼 때에, 소년시대는 청년시대를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장년시대는 노년시대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고, 노년시대는 영계에 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일생은 대우주의 인격을 갖추기 위해 하나의 훈련과정을 거치고 있는 수련기간입니다. 준비기간이라는 것입니다. (147-188)
偶然に物事が起きるのではありません。準備というものは、たやす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それゆえ、一生について見るときに、少年時代は青年時代のための準備です。壮年時代は、老年時代のために準備しているのであり、老年時代は、霊界に行く準備をするのです。一生は、大宇宙の人格を備えるために、一つの訓練過程を経ている修練期間です。準備期間であるというのです。(一四七―一八八)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가 있습니다. 세상과 영계는 두 세계가 아니고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곳,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곳이 어디냐? 물론 우리는 육신생활을 하면서 이 땅에 있지만 영원한 세계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 청춘시대를 지나고, 장년시대를 지나고, 노년시대를 거쳐 지는 해와 같이 일생을 끝마칩니다.
그러나 영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일생이라는 것이 잠깐이고 죽은 다음에 맞이해야 할 세계가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준비합니다. 때문에 일생은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학생을 예로 들어 말하면, 한 학년에 학점을 따야 할 학교에서 제정한 학점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 얼마만큼 도달하였느냐 하는 비준에 의해서 학교에서 인정받는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점에 미달하게 되면, 학교가 세운 가치기준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표준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측정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육신세계에서 사는 것은 마치 학교에서 정한 학점기준에 맞게 준비하는 기간과 같습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에 쌓아야 할 실적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책임을 추구하는 어떤 기준 앞에 얼마만큼 일치되느냐 하는 기준치를 중심삼고 생애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140-121)
我々は、この世に暮らしていますが、この世の中だけがあるのではなく、霊界があります。世の中と霊界は、二つの世界ではなく、一つの世界につながるべきです。
では、我々が行くべき所、我々が行って暮らすべき所とはどこでしょうか。もちろん、我々は肉身生活をしながらこの地にいますが、永遠の世界に向かって行っているのです。一般の人たちは、世の中に生まれ、青春時代を過ぎて、壮年時代を過ぎて、老年時代を経て、沈む日のように人生を終えます。しかし、霊界があるという事実を知る人たちは、一生というものがしばらくの間であり、死んだ次に迎えるべき世界が永遠だということを知り、準備するのです。ゆえに、一生の期間は、永遠の世界に入るための準備する期間です。
学生を例に挙げて言えば、一学年に単位を取るべき、学校で制定する単位の基準があるのです。その基準にどれくらい到達したかという対照によって、学校で認められる学生になるのです。
しかし、単位に達しなければ、学校が立てた価値基準から遠ざかるのです。それゆえ、ある標準を中心として、すべてを測定するようになります。
我々が肉身世界で暮らすのは、まるで学校で定めた単位基準に合わせようとして準備する期間と同じです。我々は、一生の間に積むべき実績を追求しているというのです。言い換えれば、責任を追及するある基準の前に、どれほど一致するかという、その基準値を中心として生涯路程を行っているのです。(一四〇―一二一)
여러분은 모든 것을 나를 위해 소화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소화하고, 내 나라와 내 종족과 내 가정과 내 상대를 위해서 소화한다, 하는 생각을 해야지, 나를 위해서 한다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일생을 자기 중심삼고 살면 전부가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위해서 살게 되면 모든 것이 내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꾸 위하다 보면, 나는 진공상태로 되기 때문에 참이 찾아들어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자랑이 뭐냐? 첫째가 참사랑이고 둘째가 참부모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에만 있는 말입니다. 사전에도 없습니다. 셋째가 참자녀이고, 넷째가 참종족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4대 목표입니다. (203-101)
皆さんは、すべてを自分のために消化してはいけません。神様のために、天地のために消化し、自分の国と自分の氏族と、自分の家庭と、自分の相対のために消化するということを考えるべきであって、自分のためにしてはいけないのです。
一生の間、自分を中心として暮らせば、全部が心配です。しかしながら、「ため」に暮らすようになれば、すべてが自分の友達になるのです。絶えず「ため」にしてみれば、自分は真空状態になるために、真が訪ねて入ってきます。
我々統一教会の誇りとは何でしょうか。第一が真の愛であり、第二が 「真の父母」です。これは、統一教会にだけある言葉です。辞書にもありません。第三が真の子女であり、第四が真の氏族です。これが我々の四大目標です。(二〇三―一〇一)
二 肉身生活の貴重性
내가 해방받으면 하나님이 해방받습니다. 가정이 해방받으면 하늘나라의 가정이 그렇고, 이 지상이 그러면 하늘나라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이중구조의 일체성으로 해명됩니다.
여러분은 육신을 쓴 이 기간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부활시킬 수 있고, 우주도 부활시킬 수 있고, 모든 천하를 통일시킬 수 있는 것은, 육신을 쓰고 있는 이 기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물을 합하더라도 이 육신세계와 바꿀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과 이 우주를 합하더라도 육신을 가진 인간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성경의 '우주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하는 말도 그래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91-191)
自分が解放されれば、神様が解放されます。家庭が解放されれば、天国の家庭がそうなり、この地上がそうなら、天国がそうなるのです。それゆえ、聖書に「あなたが地上でつなぐことは、天でもつながれ、あなたが地上で解くことは天でも解かれるであろう」(マタイ一六・一九)とあるのです。このような二重構造の一体性で解明されます。
皆さんは、肉身を使ったこの期間が、どれほど貴いかを知るべきです。神様も復活させることができ、宇宙も復活させることができ、すべての天下を統一させることができるのは、肉身を使っているこの期間しかありません。
神様と万物を合わせても、この肉身世界と換えることができません。なぜでしょうか。神様とこの宇宙を合わせても、肉身をもった人間がいなければ、完成されないからです。人間の体がどれほど貴いかを知るべきです。我々の肉身は、宇宙とも換えることができません。聖書の「全世界をもうけても、自分の命を損したら、なんの得になろうか」(マタイ一六・二六)という言葉も、それで成立するのです。(九一―一九一)
육신생활은 80년 정도밖에 안 됩니다. 80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생애노정에서 역사적으로 엉클어진 모든 선의 권을 수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짧은 육신생활에 인연맺어야 할 선한 권이 방대하다는 것을 아는 이 마음, 양심이 얼마나 재촉하겠습니까? 죽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본향 땅을 찾아야 하고, 조국 광복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늘 주권자를 모시고 그 나라에서 살다가야만 천상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155-27)
肉身生活は八十年ほどにしかならない短い生涯路程で、歴史的に絡んだすべての善の圏を収拾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この短い肉身生活に因縁を結ぶべき善の圏が膨大だということを知るこの心、良心は、どれほどせきたてるでしょうか。死ねばできないのです。生きている間に本郷の地を訪ねて、祖国の主権回復をすべきです。そのようにして天の主権者に侍り、その国で生きていってこそ、天上天国に行くのです。(一五五―二七)
영계, 무한한 세계는 영원한 곳입니다. 그런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체를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육신생활을 하는 동안에 수습해야 합니다.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이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바로잡는 것은 절대 나를 위해서 바로잡는 법이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 바로잡는 법이 있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절대 고생 안 했습니다. (59-50)
霊界、無限の世界は永遠です。そのような世界に行くためには自分自体をどのように収拾すべきでしょうか。そんなことを考えてみましたか。肉身生活をする間に収拾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れを正すことができるのは、この時しかないのです。それを正すのは、絶対自分のためにしては正す方法はありません。自分のためにして正す方法があるなら、統一教会の文先生が、今まで絶対苦労しなかったのです。(五九―五〇)
통일교회가 제시한 원리의 길은 천년만년 지나도 가야 합니다. 살아생전에 못가게 되면, 영원한 영계에 가서도 가야 합니다. (135-297)
統一教会が提示する原理の道は、千年、万年過ぎても行くべきです。生きている間に行けなければ、億千万年の永遠の霊界に行ってからでも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一三五―二九七)
三 習慣性が重要である
오늘 우리는 사탄세계의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자 하는 것입니다. (213-19)
今日、我々はサタン世界の習慣を捨てて、神様の新しい秩序を確立しようというのです。(二一三―一九)
습관성을 타파한다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여러분이 사탄세계에서 자기 중심삼은 습관성을 지니고 살았는데, 그 습관성이 고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착되어 버린 그 습관성은 한국 사람들이 김치?된장?고추장을 먹는 습관성보다도 더 고질적입니다.
이것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악마가 출발한 그날부터 뿌리가 박힌 습관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빼 버리느냐? 구덩이를 파고 뿌리까지 묻으려 해도, 묻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듭니다.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습관성을 지녀야 됩니다. (213-20)
皆さんは、キムチとコチュヂャン(注:とうがらしみそ)が好きでしょう? (はい)。西洋人たちは、キムチとコチュヂャンが好きですか? 見ただけでも逃げるのです。(笑い)このごろも、優れているという輩のアメリカ研修を続けていますが、今回も二百三十名ほどが行きました。行って、ホテルでキムチを出しておいて食べるから、西洋人たちが、「ああ7 これは何のにおいだ。何かのにおいより、もっとひどい」と、こう言っては逃げていくのです。しかし、韓国の輩はどうですか? 「ああ7 蜜の味よりいい」と言って、舌なめずりをするのです。
習慣性を打破するということは、とても大変です。その言葉は、今まで皆さんがサタン世界で自分を中心とした習慣性をもって生きてきましたが、その習慣性が固着したものです。そのように固着してしまったその習慣性は、韓国人たちがキムチ、味噌、コチュヂャンを食べる習慣性よりももっとひどいのです。
これは歴史性をもっているのです。悪魔が出発したその日から、根が刺さった習慣性をもっているますが、これをどのように抜いてしまいますか。
穴を掘って根まで埋めようとしても、埋められないのです。深刻な問題です。天国に行くには、神様を中心とした習慣性も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二一三―二〇)
四 肉身生活の標準
선생님의 생활은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생활입니다. 이 세계를 위해서 사는 생활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산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참부모, 인류를 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참부모와 인류를 묶기 위해서는, 자기를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참사랑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도 참사랑을 원하고, 참부모도 참사랑을 원하고, 인류도 참사랑을 원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참된 이 우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이걸 언제든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분이 얼마나 하늘이 바라는 생활과 일치되었느냐 하는 것을 비교해야 됩니다. 그리고 인류를 대표한 내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를 대표한 내가 되고, 하나님을 대표한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산 사람은 영계에 가나 세상 어디를 가나 경계선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천 명의 친구와 같이 먹고 싶을 경우 그러한 환경도 사랑을 통한 세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의 능력을 행사할 때 그 사랑을 중심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영적세계에서는 참사랑이 연결되면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이상향입니다. 참사랑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다 허사라는 것입니다. (147-115)
先生の生活は、神様のために生きる生活です。この世界のために生きる生活です。自分のために生きるという考えをしてはいけません。それで皆さんは、神様と「真の父母」と人類のためにしなければなりまん。
神様と「真の父母」と人類を結ぶためには、自分を中心として四位基台をつくるためには、真の愛がなければなりません。神様も真の愛を願い、「真の父母」も真の愛を願い、人類も真の愛を願います。真の愛を中心として、真なるこの宇宙を相続することができる人に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れをいつでも考えなければななりません。
それゆえ、今まで皆さんがどれほど天が願う生活と一致したかということを、比較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して、人類を代表した自分になるべきです。父母を代表した自分になり、神様を代表した自分になるべきです。そのように生きた人は、霊界に行っても、地上のどこへ行っても、境界線がないのです。
自分が千名の友達と共に食物を食べたい場合、そのような環境も、愛を通じた世界でだけ可能なのです。神様が創造主の能力を行使するとき、その愛を中心として造ったのです。
霊界の世界では、真の愛がつながれば、すべてを調節することができ、すべてを創造することができます。それが我々の理想郷です。真の愛と関係を結ばなければ、みな不可能なことなのです。(一四七―一一五)
五 肉身を使って記録される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서 3분의 2 이상이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하면, 그 3분의 2의 생활을 모두 떼어 버릴 수 있느냐? 떼어 버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34-139)
皆さんの生涯の中で、もし三分の二以上が口で言えない悲惨な生活をしたとするなら、その三分の二の生活をすべて取り除いてしまうことができますか? 取り除くことができません。必ずついて回るのす。(三四―一三九)
탕감이 왜 필요하냐?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복귀란 재창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치 있는 생애를 남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고, 나이가 많아졌을 때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 가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늙으면 무엇이든지 바로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래서 스무 살에 들어오는 것보다 열다섯 살에 들어오는 것이 좋고, 열다섯 살 때보다도 아기 때부터 알고 컸다 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물이 꽉 차 있다면 맑은 물이겠습니까, 흙탕물이겠습니까? 거기에 모래알이 끼어 있고, 돌멩이가 끼어 있습니다. 큰 장마가 지나간 다음에 강이나 하천에 별의별 더러운 것들이 걸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 속에도 별의별 더러운 것들이 끼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휘저어 다 걸러내야 합니다. 여과장치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있으면 걸립니다. 물 자체에 모래알같이 더러운 건더기가 있으면 흘러 보지도 못하고 걸리게 돼 있습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그런 장치, 엑스레이 사진기 같은 것에 비칠 것이라고 생각 안해봤습니까? 하나님도 그러한 여과장치를 거친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97-60)
蕩減、なぜ必要ですか。復帰するためです。復帰とは、再創造でもあります。それゆえ、皆さんは価値のある生涯を残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ある人は、「ああ、年を取ったらイエス様を信じて、死んだら天国に行こう」と、このように言っています。しかし、年を取れば、何かを正すことは難しいのです。
それゆえ、若い人で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それで、二十歳に入ってくるより、十五歳に入ってくるのが良く、十五歳のときよりも、赤ん坊のときから知って大きくなったというのが、もっと価値があるのです。
皆さんの中に、水がいっぱいになっていれば、それは清い水ですか、泥水ですか。そこに砂粒が混じっているし、小石が混じっています。大雨が過ぎたのちに、川辺にありとあらゆる汚いものが引っ掛かっているのと同じで、皆さんの中にもありとあらゆる汚いものが混じっているのです。
ですから、振り回して、みな排泄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濾過装置を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したがって自分があってはいけないのです。自分があれば、引っ掛かります。水自体に砂粒のように汚い 塊 が混じっていれば、流れることもできず、引っ掛か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
霊界に行くようになれば、そのような装置、レントゲン写真のようなものに照らされるだろうと考えてみませんでしたか。神様も、そのような濾過装置を経た人たちを必要とします。(九七―六〇)
六 地での暮らしがあまりにも重要である
여러분은 영계에 가 가지고 보호관 생활을 해야 됩니다. 몇천 년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가정들의 수준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가는 데도 다 자기 급에 맞는 곳에 가서 오랫동안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조상들이, 아들딸들이 '왜 그랬어? 왜 그렇게 잘 하지 못했어? 그게 뭐야?'하면서 참소합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해당되는 만큼의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땅에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라는 것을 다 해야 됩니다.
볼트가 있으면 이것에 맞는 너트를 만들어서 채워야 합니다. 너트가 맞아야 채워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것이 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땅 위에서 하고 있는 생활이 얼마나 중요하냐? 한 번밖에 없습니다. 순간인데 한 번밖에 없습니다. 지상생활을 영생에 비유하면, 이것은 한 점에 불과합니다. 너무나 짧은 순간입니다.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육신생활을 넘어 영계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그런 주류사상을 가지고 센터에 서서 일체를 조절하고, 일체를 정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성완성을 이룰 수 없습니다. (207-99)
皆さんは、霊界に行って、保護官生活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何千年も待た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皆さんの家庭の基準がみな違います。それで、行くのにも、みな自分の級に合う所に行って、長い間とどまるのです。では、皆さんの先祖たちが、息子、娘たちが、「なぜそうしたの? なぜ、そのようにうまくできなかったの? それは何?」と言いながら讒訴します。皆さんは、そこに該当するほどの長い時間、そこにとどま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のように易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それで、地ですべきなのす。先生が「しなさい」と言うことをみな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ボルトがあれば、これに合うナットを作って満た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ナットが合ってこそ、満たされるのです。分かりますか。それが合わなければいけません。
この地上にいる生活がどれほど重要でしょうか。一度しかありません。瞬間ですが、一度しかありません。地上生活を永生に例えれば、これは一点にすぎません。あまりにも短い瞬間です。これは重要ではありません。肉身生活を越えて、霊界のために準備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いつもそのような主流思想をもって、センターに立って一切を調節し、一切を征服す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うでなければ、個性完成をなすことができません。(二〇七―九九)
七 肉身を使って責任分担遂行
여러분이 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참부모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랑에 의해서 심신이 원만한, 안정된, 만족스러운 권내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한 사람은 영계에 가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지상에는 내면적으로 확대된 생활이 있는데, 내면적으로 확대된 그 기준은 영계에 가면 표면화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류가 한 몸의 세포와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 세포들 중 하나가 되는 세계가 영계입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틀림없이 자기 마음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고 부르면, 자기의 마음속에서 '어떤 녀석이 나를 불러? 왜?'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책임분담이 그만큼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책임분담이라는 원칙을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아침 거울을 볼 때, 남자로서 여자로서 책임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관이 책임분담을 완성한 사랑에 취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감각의 모든 것은 사랑의 실체권에 서기 위한 것입니다. (218-128)
皆さんは暮らしながら、神様を思い、「真の父母」を思わなければいけません。そうすることで、愛によって心身が円満で、安全な、満足な圏内に暮らすようになるのです。
そのような生活をした人は、霊界に行けば、そのままになるのです。地上には内面的に拡大した生活がありますが、内面的に拡大したその基準は、霊界に行けば表面化されるのです。愛が内面化されているために、神様と人類が一つの体の細胞と同じです。自分自身が、その細胞のうちの一つになる世界が霊界です。そのような境地に入れば、神様が間違いなく自分の心の中に入ってくるのです。「神様7」と呼べば、自分の心の中で「誰が私を呼ぶのか。何だ?」と言うのです。すなわち、神様と共に暮らしていく世界です。
責任分担は、それほど重要なのです。それで先生が責任分担という原則を立てたのです。皆さんが毎朝鏡を見るとき、男として女として生まれて、責任分担をどのように果たすかを考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は深刻な問題です。五官が、責任分担を完成した愛に酔っていると思うのです。感覚のすべては、愛の実体圏に立つためのものです。(二一八―一二八)
책임분담을 수행하려면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책임분담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의 정, 사탄의 핏줄을 받아서 태어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139-256)
責任分担を遂行するには、皆さんはどの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か。責任分担を果たすことができる人になるためには、どのようにすべきでしょうか。サタンの情、サタンの血筋を受けて、生まれたすべてを否定する立場に立つべきです。(一三九―二五六)
인간이 영계에 가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몸이 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과 고린도전서에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전 된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기록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 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어떻게 닮아지느냐? 책임분담 완성단계에 이르러 하나님이 임해 일체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30-22)
人間が霊界に行けば、どのようになるでしょうか。神様の体になります。アダムは、神様の体になるのです。コリント人への第一の手紙に、「あなたがたは神の宮であって、神の御霊が自分のうちに宿っていることを知らないのか」(三・一六)と記録されているのと同様に、神様が臨在し得る聖殿、家です。
では、神様とどのように似るのでしょうか。責任分担完成段階に至って、神様が臨んで一体化がなされるのです。(一三〇―二二)
第五節 祝福と永生
① 영생문제를 알아야 할 이유
一 永生問題を知るべき理由
왜 지금 세상 가정들이 깨져 나가고 있느냐? 또 어머니 아버지 자녀가 원수가 되느냐? 참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영생입니다. 그런데 영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영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이 죄를 지으라고 해도 안 짓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살라고 해도 안 삽니다. 이것을 모르면 기성교회를 믿든, 무슨 종교를 믿든 절대로 천국에 못 갑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에 못 가는 것입니다. 참사랑, 생명을 투입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205-261)
なぜ今、世の中の家庭が壊れていっているでしょうか。また、お母さん、お父さん、子女が、怨讐になるでしょうか。真の愛がないためです。
一番重要なものは永生です。しかし、霊界があるか、ないかということを知らずにいます。
間違いなく永生するということを知るようになれば、他の人が「罪を犯せ」と言っても犯さないのです。「自分のために生きろ」と言っても生きません。これを知らなければ、既成教会を信じても、何かの宗教を信じても、絶対に天国に行けません。神様の理想世界に行けないのです。真の愛、生命を投入せずには、駄目なのです。(二〇五―二六一)
우리 교회가 원리로 무장해 놓으면 영생문제가 확실해집니다. 이 영생문제와 연결 안 되면 사회혁명도 불가능합니다. 현재 입장에서 살고 있는 것보다도 더 피폐(疲弊)하고 몰락된 환경으로 떨어진다면, 누구나 그 자리를 안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문제, 영원한 생명문제라고 하게 될 때는 환경적 여건을 모두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영생문제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영생의 개념만 딱 지어 놓으면 됩니다. 지금까지 종교가 습관성으로 엮어진 문화배경을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영생이라는 개념을 지어 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환경이 변하면 변할수록 왜 흔들리느냐? 영생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생문제에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환경을 넘어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다 거기에 소속되어 사방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생활로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영생개념을 안 집어 넣으면 중간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개념을 집어넣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이건 통일교회만이 완전히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신앙길은 육신생활의 준비가 아니고, 영원한 세계의 생활을 위한 준비입니다. 이런 신념만 가지게 되면, 그건 내버려두어도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40이 넘고 50이 넘어 죽을 날이 가까워 오면, 영생문제에 대해 심각해진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심각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희박해지지만, 영생개념을 집어넣으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점점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이념만이 앞으로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환경이 빈번히 변하며 희비극이 부딪쳐 오더라도, 영생개념만 철저하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영생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집어넣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습니다. 그건 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을 이루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만이 아니고 실감해야 됩니다. 또 체휼해야 됩니다.
참사랑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지 말라고 해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 개념만 집어넣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집어넣는데도 이론적으로 맞을 수 있는 때에는 마음에 꽝 울리고, 몸뚱이까지 제일 가까운 급으로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청소년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여섯 살 이전에는 타락 전의 본성 기준을 100퍼센트 활용할 수 있는 때입니다. 열여섯 살 이전에는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기 이전이니까, 본성기준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시기에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앎으로써 자기와 하나님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아는 것입니다. 그 관계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영생개념을 집어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집어넣게 되면 우리 통일교회 2세들에게 다른 길로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빨리 구해 모두 하늘나라에 데려가야 됩니다. 그것이 자기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져간 모든 것으로 저나라에서 등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는 지금 완전히 비어 있습니다. (1992. 4. 15.)
我々の教会が原理で武装しておけば、永生問題が確実になります。この永生問題とつながらなければ、社会革命も不可能です。現在の立場で暮らしていることよりも、もっと疲弊して没落した環境に陥るなら、誰もがその場に行かないのです。
しかし、永生問題、永遠の生命の問題となると、環境的与件をすべて克服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宗教は、それで偉大なのです。永生問題が懸かっているのです。永生の概念だけしっかりと立てておけばできます。
今まで宗教は、習慣性で結ばれた文化背景を消化できませんでした。越えられませんでした。なぜそうでしたか。永生という概念をつくっておけなかったからです。
キリスト教は、環境が変われば変わるほど、なぜ揺らぐのでしょうか。永生という概念がないからです。永生問題に自信がないのです。生命を差し出して、環境を越えていくことができるかという問題について見るとき、皆そこに所属して、四方を見回しながら現在の生活に落ちていっているのです。
その人たちに永生の概念を入れなければ、中間に落ちるのです。では、永生の概念を入れるのは何でしょうか。人です。これは、統一教会だけが完全に入れ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信仰の道は肉身生活の準備ではなく、永遠の世界の生活のための準備です。このような信念さえもつようになれば、それはほっておいてもいいのです。人は、四十を越え、五十を越え、死ぬ日が近づくと、永生に対し、深刻になるのです。年を取るほどに、だんだん深刻になるのです。
愛というものは、年を取るほど希薄になりますが、永生の概念を入れれば、年を取るほど、だんだん深刻になるのです。それゆえ、宗教理念だけが、これから世界を料理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環境が頻繁に変わっても、悲喜劇がぶつかってこようとも、永生の概念さえ徹底すれば問題にならないのです。
それゆえ、問題は、永生という概念をどのように入れるかということです。
神様はアダム・エバを、愛の対象として造りました。それは間違いありません。そのために、愛の対象となって生きるべきなのです。それを言葉だけでなく、実感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また、体恤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真の愛の力が偉大だということを知れば、「行くな」と言っても、行くようになっています。
それゆえ、永生の概念だけ入れれば、みな終わるのです。これを入れるにも、理論的に一致し得るとき、心にどかんと響き、体まで一番近い級で一つになり得る時が、青少年期だというのです。
そして、十五歳以前は、堕落前の本性基準を一〇〇パーセント活用し得る時です。十五歳以前は、アダム・エバが堕落する以前だから、本性基準が生きているのです。それゆえ、青少年の時に、神様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神様を知ることによって、自分と神様との不可避の関係を知るのです。その関係が不可避だということを分からせるためには、永生概念を入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これさえ入れれば、我々統一教会の二世たちに、「他の道を行け」と言っても行きません。それゆえ、世の中を早く救い、すべて天国に連れ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が自分の所有になるのす。その持っていったすべてで、あの世での等級が決定されるのです。ですから天国は、今完全に空いています。(一九九二・四・一五)
二 永生の道
㉮ 일생과 영생문제
1 一生と永生問題
여러분은 얼마나 살 것 같습니까? 전부 다 '70년, 80년은 살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전에는 죽는다고 생각 안 합니다. 여러분은 욕심쟁이입니다. 일생을 사는데 80살에 죽거나 100살에 죽을 거라고 믿는다 해도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에는 '아, 내가 젊었으니까 앞으로 적어도 40년, 50년은 산다' 그런 욕심을 다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 하나님한테 보증받았습니까? 여러분은 될 수 있는 대로 1년 이내에 죽을 것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짧은 기간에 다 준비해야 됩니다. 이런 관념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잡을수록 행복합니다. 짧게 잡을수록 손해를 안 본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에 참되게 준비하는 그 내용이 자기의 영원한 생명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짧은 기간에 하나님을 사랑해 봤느냐? 하나님과 하나돼 사랑을 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하길 '사랑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 죽으면 그것이 영원한 생명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2년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심각합니까? 공동묘지도, 장사(葬事)지내는 데도 가 보는 것입니다. 이건 신앙생활에 절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죽는 것이고,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는 것입니다. 원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 짧은 기간에 뜻을 위해 죽겠다고, 하늘을 위해 죽겠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총각 때 죽는다 생각하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맞이하게 되면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까? 결혼하지 못하고 죽은 남자가 부활해 결혼할 수 있는 날을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몇 살까지 살다 가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당장에 죽을 자리로 나간다면 어떡하겠습니까? 하늘이 나를 칭찬할 수 있는 무어가를 남겨야 됩니다. 그러면 자는 시간이 아깝고, 먹는 시간이 아깝게 생각됩니다. 걱정할래야 걱정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일생과 영원의 문제에서 일생을 짧게 잡을수록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씨족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 온 인류를 사랑하기 위한 교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저세계에 가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교재라는 것입니다. (102-122)
皆さんは、どれくらい生きそうですか。全部「七十年、八十は生きるだろう」と、このように考えているでしょう。その前には死ぬと思いません。皆さんは、欲張りです。一生を生きるのに、八十歳に死ぬとか、百歳に死ぬだろうと信じるとしても、あす死ぬか、きょう死ぬか分からないのです。皆さんの考えには、「ああ、私は若いので、今後少なくとも四十年、五十年は生きる」と、そんな欲をみなもっているでしょう。それが神様に保障されましたか。皆さんは、できるだけ一年以内に死ぬものと思いなさいというのです。この短い時間にみな準備すべきです。このような観念をもって生き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きるだけ短くつかむほど、幸福です。短くつかむほど、損害を見ないのです。その期間に真になるように、準備するその内容が、自分の永遠の生命の家を建てるのです。
では、その短い期間に、神様を愛してみましたか。神様と一つになって愛したいのに、愛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神様は、「愛せよ」と言われるのです。そのように生きて死ねば、それが永遠の生命の主体になるのです。
皆さんが、二年後に死ぬと思うならば、どれほど深刻ですか。共同墓地にも、葬式をする所にも行ってみるのです。これは、信仰生活に絶対必要です。それゆえ、「生きよう」と言う人たちは死ぬのであり、「死のう」と言う人は生きるのです。その短い期間にみ旨のため死のうと、天のため死のうと思えば、永遠に生きるのです。同様な道理です。独身のときに死ぬと思って、愛する妻を迎えるようになれば、どれほど有り難く思うでしょうか。結婚できずに死んだ男が、復活して結婚することができる日をもつようになれば、どれほど喜ぶでしょうか。
さあ、皆さんは、何歳まで生きて逝きますか。神様の命令によって、すぐに死ぬ立場に進むならどうしますか。天が自分を褒めることができる何かを残すべきです。そうなれば寝る時間が惜しく、食べる時間が惜しく思われます。心配しようにも、心配する間がないのです。
一生と永遠の問題で、一生を短くつかむほど価値があるのです。個人を愛し、家庭を愛し、氏族を愛することとは何でしょうか。全人類を愛するための教材なのです。彼らを愛するのは、全体を愛するための教材なのです。そして、時間と空間を超越したあの世界へ行って、すべての人を愛するための教材だというのです。(一〇二―一二二)
2 人間は永遠の生命を追求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더불어 영원한 사랑과 일치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느낄 수 있는, 결착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개체가 얼마만큼 전진적 사랑과 생명력을 지니고 사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오관을 통하여 느끼는 감각 일체가 생명, 사랑과 어느 정도로 관계를 맺고 사느냐 하는 데에 따라, 인간으로서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명력과 가중된 사랑의 마음으로 사회 생활을 해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자리에 서 있지 못하다 할진대, 그것은 정지하거나 아니면 후퇴하는 것입니다. (32-19)
永遠の生命の世界を追求するのが、信仰生活です。永遠な神様の愛を追求するのが、信仰です。永遠の生命とともに永遠の愛と一致するために、神様の喜びを自分の喜びとして感じられる決着点を探していくのが、信仰の道です。それゆえ、信仰生活をする我々の個体が、どれほど前進的愛と生命力をもって生きるかというのが、何よりも重要な問題です。
五官を通じて感じる感覚の一切が、生命、愛とどの程度の関係を結んで生きるかということによって、人間としてどれほど価値をもっているかという問題が左右されるのです。それゆえ我々は、我々自身が生命力と加重された愛の心で社会生活をしてきたかという問題を考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もし、そのような立場に立っていられないならば、それは停止したり、でなければ後退するのです。(三二―一九)
3 永生と宗教
사람은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지금까지 지구성에서 없어지지 않고, 문화배경과 풍습이 다른 모든 환경을 거쳐오면서 세계적인 판도를 확대시켜 나왔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일생이 문제가 아니라 영생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는데는 우주와 더불어 생활해야 합니다. 일생이 100년 정도의 짧은 생애이지만 생애의 한계로써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한계선을 극복하면 한계로 삼던 지구촌을 넘어 초연한 자리에서 생존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연히 영생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고통 가운데에서 신음하며 사는 인류를 동정해 돕기 위해서는 가상적인 영생이라도 주장해야 하고, 가상적인 신을 중심삼은 이상국가 형태를 추리해 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도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영생문제와 더불어 하나님 문제까지 해결해야 됩니다. 이런 제반 문제가 연결돼 있습니다. (162-264)
人は永生するのです。宗教は、今まで地球星でなくならず、文化背景と風習が異なるすべての環境を経てきながら、世界的な版図を拡大させてきました。それは、人の一生が問題ではなく、永生すべきであるためです。
人が生きるには、宇宙と共に生活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一生は百年くらいの短い生涯ですが、生涯の限界でそのままなくなるのではありません。その限界線を克服すれば、限界としていた地球村を越え、超越した場で生存を続け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それゆえ、厳然と永生しますが、そうでないとしても今まで苦痛の中でうめいて生きてきた人類に同情し、助けるためには、仮想的な永生論であっても主張すべきであり、仮想的な神を中心とした理想国家形態を推理し抜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そのような面でも、宗教が必要なのです。
それで、皆さんの永生問題とともに、神様の問題まで解決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のような諸般の問題がつながっているのです。(一六二―二六四)
4 永生しなければならない理由
하나님이 사람을 어떠한 존재로 지었느냐? 하나님의 절대 유일의 가치가 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자로 지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요즘 한 인간의 생명 가치가 얼마나 됩니까? 몇 푼 안 됩니다. 본래 그런 무가치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였습니다.
오늘날 모든 문학세계를 두고 보더라도 그 골자는 사랑입니다. 사람은 사랑에서 나서 사랑에서 살다가 죽습니다. 그런데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영원?불변?유일하니까 그 앞에 대상 사랑의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영생하는 겁니다. 영생이라는 이론이 여기에서 발발하는 것입니다. 생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142-143)
神様は人をどのような存在として造ったのでしょうか。神様の絶対唯一の価値になり得る、愛の対象者として造りました。これは驚くべき事実です。このごろ、一人の人間の生命の価値がどれほどになりますか。何文にもなりません。本来、そのような無価値な人間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宇宙とも換えることができない高貴な価値がありました。
今日、すべての文学世界について見ても、その骨子は愛です。人は、愛から出て、愛で生きて、死にます。しかし、そのままなくなるのではありません。主体であられる神様が、永遠、不変、唯一なので、その前に対象の愛の立場に立つようになるときは、永生するのです。永生という理論が、ここから出発するのです。生命から始まるのではありません。(一四二―一四三)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과 안팎으로 하나되어 자녀 입장에서 완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을 참다운 인생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최고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간이 최고의 자리에 가게 되면 하나님은 내 것입니다. 또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 자신도 되니, 우주도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하루 혹은 10년이나 100년쯤 같이 지낸 후에 집어던지게끔 지었겠어요, 영원히 같이 있게끔 지었겠어요? 영원히 같이 있게끔 지었습니다. 영원히 함께 있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영생해야 됩니다. 왜냐? 절대자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루나 이틀 혹은 10년, 100년 좋아하다 던져 버린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함께 있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는데, 아내의 손수건을 갖고 독신으로 살았던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인도의 네루 같은 분은 자기 아내가 젊어서 죽었는데, 그 아내가 장미를 좋아한다고 해서 일생 동안 장미꽃을 차고 다니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지극히 귀한 아들딸을 지을 때 100년 쯤 산 다음 망하게 지으셨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영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영생하려면 보다 강한 힘이 배출될 수 있는 작용의 기반 위에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힘은 시일이 가면 갈수록, 주고받으면 주고받을수록 소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지고 커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기뻤다면 기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쁨이 확장되어 무한한 기쁨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우리가 이상하는 나라요,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영생을 바랍니까, 바라지 않습니까? 막연하게나마 영생을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귀한 물건이 있으면 피난가게 될 때 그것을 가져갑니까, 안 가져갑니까? 가져갑니다.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합니까, 안 하고 싶어합니까?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하루이틀 자랑하다가 말아요?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가 죽게 되면, 그것을 자기 후대에 영원히 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영생하시는 절대자라면, 그분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도 영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고로 영생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인 하나님은 영생의 가치를 지닌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39-42)
真なる人とは、どんな人でしょうか。神様と内外で一つの体になって、子女の立場で完全に愛されることができる人が、真なる人です。そのような人が暮らしていく生活を、真の人生の道だというのです。
人は、誰彼を問わず最高を願っています。人間が最高の立場に行くようになれば、神様は自分のものです。また、自分は、神様のものです。そのようになれば、自分は神様の息子になり、神様自身にもなるので、宇宙も私になるのです。
神様が一番愛して、貴く考える物があるなら、それを一日、あるいは十年や百年ぐらい共に過ごしたのちに、ほうり投げるように造りましたか、永遠に共にいるように造りましたか。永遠に共にいるように造りました。永遠に共にいるように造られたのです。人も同じです。
人は永生すべきです。なぜでしょうか。絶対者の神様が、絶対的な愛を中心として、喜ぶことができる対象であるためです。一日や二日、あるいは十年、百年喜んで、投げてしまうなら、それは愛ではありません。愛すれば愛するほど、共にいたがるのです。愛する妻が死んだので、その妻のハンカチを持って独身で生きた人もいませんか。インドのネルーのような方は、自分の妻が若くして死にましたが、その妻がバラを好んだといって、一生の間バラの花を身に着けて歩きながら暮らしたといいます。
それなら神様が、一人しかいないこの上なく貴い息子、娘を造るとき、百年ぐらい生きたのちに滅びるように造られたのでしょうか。違います。それゆえ、人は永生するのが原則です。永生するには、より強い力が排出され得る作用の基盤の上に立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ゆえ、愛の力は、時日が過ぎれば過ぎるほど、授け受けすれば授け受けするほど、消耗するのではなく、もっと強くなり、もっと大きくなるのです。そこでは、うれしかったらうれしいものとして終わるのではなく、その喜びが拡張して、無限の喜びとして発展し得るのです。そのような世界が、我々が理想とする国であり、神様がいらっしゃる天国です。
では皆さんは、永生を願いますか、願いませんか。漠然とですが、永生を願っています。自分に貴いものがあれば、避難する時それを持っていきますか、持っていきませんか。持っていきます。それを誇りたがりますか、誇りたがらないですか。誇りたがります。では、それを一日、二日誇ってやめますか。やめません。自分が死ぬようになれば、それを自分の後代に永遠に残したがるのです。
それは、神様も同様です。神様が永生される絶対者なら、その方が愛する対象も永生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で人々は、昔から永生するのを願うのです。それゆえ、絶対者である神様は、永生の価値をもった愛する息子、娘を探さざるを得ないのです。(三九―四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걸작품으로서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우리도 영원한 성품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늙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영생해야 됩니다. 영생해야 그 걸작품의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靈長)입니다. 여기서 영(靈)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생해야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80년 정도 살다가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159-281)
我々人間は、神様が造られた傑作品として、神様に似ました。神様が永遠であられるので、我々も永遠の性稟をもたなければいけないために、我々の心は老けないのです。
それゆえ、人は永生すべきです。永生してこそ、その傑作品の存在価値をもつことができるのです。それで万物の霊長なのです。ここで、霊が出てくるのです。人は、永生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すから、我々が八十年ほど生きて、死ねば終わりだとは考えられません。(一五九―二八一)
5 永生のための人生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기 나름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생활'이란 하루하루 사는 것을 말하고, '생애'는 일생의 삶, 일생을 두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영생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일생이 아니요, 영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생애노정을 영생에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걸 해야 하는 것이 생애의 책임입니다. 또 일생이라는 것은 하루하루의 생활을 연결시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생이라는 것은 나날들이 연결된 것입니다.
생애의 가치적인 내용이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생애를 다 살고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삶의 날들이 결정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잘 사는 것이 무엇이냐? 잘 사는 것은 생애의 모든 노정을 대표할 수 있는 나날들을 뜻 있게 보내는 생활입니다. 오늘 잘 살았다고 하는 것은, 자기 일생에서 자랑스러울 수 있는 기억의 날입니다. '잘 산다' 하게 되면 생애노정에 있어서 반드시 제일 가치 있게 사는 날일 것입니다. 가치 있게 산 날이 있다면, 생애에서 그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입니다. (197-186)
人は誰でも、各自自分なりに生活しています。「生活」するとは、一日一日暮らすことを言い、「生涯」は、一生の人生、一生を生きることを言います。さらには、宗教をもった人たちは、永生という言葉を使っています。永生というものは、一生ではなく、永遠の人生を生きることです。
生涯路程を永生にどのようにつなげるかということが重要ですが、それをすべきなのが、生涯の責任です。また、永生ということは、一日一日の生活をつなげてこそ決定されるのです。皆さんの一生というものは、日々がつながったものです。
生涯の価値的な内容は、どこから決定されるのでしょうか。生涯をみな生きて、決定さ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一日一日の暮らしの日々が、決定す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それゆえ、うまく暮ら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では、いったい、うまく暮らすこととはどういうことでしょうか。うまく暮らすのは、生涯のすべての路程を代表し得る日々を、意味深く送る生活です。きょうをうまく暮らしたというのは、自分の一生で誇らしくあり得る記憶の日です。「うまく暮らす」ようになれば、生涯路程において、必ず一番価値があるように暮らす日でしょう。価値があるように暮らした日があれば、生涯の中でその日は、忘れられない日になるでしょう。(一九七―一八六)
6 永生論理とは
하나님은 지혜로운 분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랑 이념을 안 세웠으면, 하나님은 고독 단신이 됩니다. 희로애락을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이 사랑을 잃어버리신 하나님은 역사 이래 그 누구도 체험할 수 없는 심각하고도 기막힌 자리에, 절대적으로 비참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누가 영원히 위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연의 바라던 아들딸을 희생시켜 당신이 꿈꾸던 소원의 이상형태를 재현시킨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품고 천리만리 이동하면서 더 빛나게 단장하고 아름답게 표시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우주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204-101)
それで、永生の論理をどのように探しますか。神様は、知恵深いお方です。もし、神様が愛の理念を立てなかったら、神様は孤独単身です。喜怒哀楽を感じることができない神様だというのです。
絶対的なこの愛を失われた神様は、歴史始まって以来、誰も体験することができない、深刻で、あきれる、絶対的に悲惨な立場に立ったのです。誰も永遠に慰められないのです。本然の願いだった息子、娘を犠牲にして、御本人が夢見た希望の理想形態を再現させたものとして満足するのではなく、それを抱いて、千里、万里移動しながら、もっと輝くように装って、もっと美しく表示す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万宇宙をそのように造ったのです。(二〇四―一〇一)
대기가 100퍼센트 절대 저기압권이 되면, 고기압권이 자동적으로 생겨 순환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왕입니다. 그런 자동적 순환원리를 통해서 영원 회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영생논리가 논리적으로 설정된다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 영생의 논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위하는 데는 망하지 않습니다. (204-107)
大気が一〇〇パーセント絶対低気圧圏になれば、高気圧圏が自動的に生じ、循環運動が起こるのです。神様は、知恵の王です。そのように自動的循環原理を通じて、永遠の回転が始まるために、永生論理が論理的に設定されるのです。
投入して、投入して、また投入するところから、永生の論理が繰り広げられるのです。「ため」にするところは、滅びません。(二〇四―一〇七)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의 파트너를 구한다고 하면, 그 대상은 틀림없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지중에 유인최귀(萬物之衆 惟人最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주의 영원한 사랑과 하나된 사랑의 파트너도 영생한다는 논리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자동적인 산물입니다. 영생은 여기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중심삼고 영생 논리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종교에서 지극히 귀중한 얘기입니다. 남자에게 영생이 있고 여자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218-211)
神様が絶対的な愛のパートナーを求めるとすると、それは間違いなく人間です。それゆえ、「万物之衆、唯人最貴」という言葉が出てくるのです。これは何でしょうか。創造主の永遠な愛と一つになった愛のパートナーも、永生するという論理が生じるようになるのです。永生というのは、自動的な産物です。永生は、ここから繰り広げられるのです。愛の関係を中心として、永生論理をどのように立てるかという問題は、宗教において極めて貴重な話です。男に永生があり、女に永生があるのではありません。神様に永生があるのではありません。神様の愛に永生があるというのです。(二一八―二一一)
7 一番重要な永生問題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기를 '예수 믿으면 영생한다'고 합니다. 영생하려면 계속적인 작용을 이어나가야 됩니다. 인생길을 영원히 가려면 심장의 동맥과 정맥 같은 순환기관이 정상적으로 움직여야 되고, 신경계가 정상적으로 움직여야 되고, 대뇌와 소뇌의 모든 작용이 정상적으로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막대한 소모가 벌어집니다. (121-172)
今日、キリスト教徒たちは、「イエスを信じれば永生する」と言います。永生は、継続的な作用を続け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人生の道を永遠に行こうとすれば、心臓の動脈と静脈のような、循環器官が恒常的に動かなければならず、神経系が恒常的に動かなければならず、大脳、小脳のすべての作用が恒常的に動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そうするには、莫大な消耗が繰り広げられます。(一二一―一七二)
잠자리에 들 때 벗어 놓은 신발을 다음날 아침에 다시 신을 자신이 있는가? 아무리 바쁘다고 하여도 영생 문제 이상 중요한 것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영생 문제를 결정짓는 것 이상 심각한 게 없습니다. (10-249)
寝床に就くとき、脱いでおいた靴を、次の日の朝に再び履く自信がありますか。いくら忙しいといっても、永生問題以上に重要なものは、この世にありません。それで、この世の中で永生問題を決定づけること以上に深刻なことはありません。(一〇―二四九)
8 結局人間は永生に帰結すべし
새로운 조수 물결인 참부모의 사랑의 도리를 심어 타락의 한을 해소하고, 하나님이 군림할 수 있는 참사랑의 가정을 이루어야 천국에 직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레일이 같아야 합니다. 레일이 같아야 기차가 달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과 천상세계의 레일이 맞아야 합니다. 지상천국에서 천상천국을 연결시키기 위한 길이 참사랑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가는 길, 가정이 가는 길이 전부 연결되어야 합니다. 방향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동안 자기가 하는 모든 일들은 전부 참사랑을 위한 실적으로서, 자기 뒤꽁무니에 영원히 고착되기 때문에, 저나라에 가게 되면, 일생 동안 남겨진 공적에 맞는, 그 급에 자연히 머무는 것입니다. (211-288)
新しい潮流の波である「真の父母」の愛の道理を植えて、堕落の恨を解消し、神様が君臨することができる真の愛の家庭を築いてこそ、天国に直行し得るようになるのです。
地上天国と天上天国のレールは同じ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レールが同じでこそ貨車が走ることができるのと同様に、地上と天上の世界のレールが合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地上天国から天上天国をつなぐための道が、真の愛の道です。それゆえ、個人が行く道、家庭が行く道、全部つなが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方向が一致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です。
それゆえ、一生の間、自分がするすべてのことは、全部真の愛のための実績として、自分の後ろに永遠に固着されるために、あの世に行くようになれば、一生の間残された功績にふさわしいその級に自然にとどまるのです。(二一一―二八八)
9 信仰と永生問題
어떻게 영생하느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한다,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칙으로 볼 때에 참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의 동반자이기 때문에, 참사랑을 가지면 영원히 살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 사랑권 내에 들어가 있으면 영계나 지상에 살게 될 때에 자기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대양을 다니는 큰 배가 파손될 위험이 생기게 되면, 그 배 안에 살던 쥐들은 전부 육지로 도망갑니다. 미물에 지나지 않는 동물도 자기 생사권을 가려갈 줄 아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어떻습니까? 왜 그렇게 되었느냐? 타락 때문입니다. 이 타락의 탈을, 악마의 사랑과 악마의 생명과 악마의 핏줄을 어떻게 해탈하느냐? 해탈이란 말은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벗어나 관계없는 자리에, 자주적인 입장에 선다는 말입니다. (215-53)
どのように永生するでしょうか。キリスト教徒たちは「イエス様を信じれば永生する、救われる」と言うが、とんでもないというのです。愛でだけ救いを受けるのです。神様の創造原則から見るとき、真なる人だけが神様の愛の同伴者であるために、真の愛をもてば永遠に暮らす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その愛の圏内に入っていれば、霊界や地上に暮らすようになるときに、自分がどこで暮らすべきか分かるようになります。
大洋を通う大きな船が破損する危険が生じれば、その船の中に暮らしていたねずみたちは全部陸地に逃げるというのです。微々たるものにすぎない動物も、自分の生死圏をわきまえていくすべを知るのに、ましてや万物の霊長である人間はどうでしょうか。
なぜ、そうなったのでしょうか。堕落のためです。この堕落の仮面を悪魔の愛と、悪魔の生命と、悪魔の血筋をどのように解脱するでしょうか。この解脱という言葉は、抜け出すという意味です。完全に抜け出して、関係ない立場に、自主的な立場に立つという言葉です。(二一五―五三)
90살이 넘은 어머니는 70살이 넘은 아들이 어디 나가게 되면 '차조심 해라. 잘 갔다 와라.' 합니다. 70살 난 아드님이 있는데 아들보고 어디 나갈 적에 '얘, 오늘 차 주의 해라.' 그런 말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90살의 노년이 되도록 그렇게 매일같이 되풀이 합니다. 그것은 영원히 계속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부모 사랑도 그런데 본연의 세계인 하나님 사랑에 속해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참된 하나님의 대상권을 확정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불변한 것을 알게 될 때, 우리 인간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생의 논리를 타당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영생하는 것입니다. (143-230)
九十歳を超えた母親は、七十歳を超えた息子がどこかに出掛けるとき、「車に気をつけて、いってらっしゃい」と言います。九十の老年になるほど、そのように毎日のように繰り返しても、疲れません。それは、永遠に続いても疲れません。そのようにさせる原動力とは何でしょうか。愛です。堕落した世界の父母の愛もそうなのに、本然の世界である神様の愛に属していればどうでしょうか。
このようになるとき初めて、真なる神様の対象圏を確定づけることができます。神様の愛が永遠不変なことを知るようになるとき、我々人間の愛を中心として、永生の論理を妥当化させ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愛を中心として永生するのです。(一四三―二三〇)
10 統一教会と永生
선생님이 통일교회 교인들을 고생 많이 시키려고 합니다. 고생시켜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왜 도망 안 가느냐? 영생이 있기 때문에 도망을 안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것은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204-82)
先生は、統一教会の教徒たちに、苦労をたくさんさせようとします。苦労させても逃げません。なぜ逃げていかないのでしょうか。永生があるために逃げないのです。統一教会で離れられないのは、永生があるためです。(二〇四―八二)
사람들에게는 다 욕망이 있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고 합니다. 손자도 싫고, 하나님 사위도 싫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욕망을 성취하는 곳은 가정입니다. (221-25)
人々にはみな欲望があります。全部神様の息子、娘になろうとします。孫も嫌で、神様の婿も嫌で、神様の息子、娘になりたいのです。誰でも欲望を成就、完成する所は、家庭なのです。(二二一―二五)
11 永生に必要な観念
여러분은 '나는 영생하는 사람이다. 참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라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영생을 위한 것이다, 영생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영생과 참사랑이라는 관념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영원히 필요한 것입니다. (216-127)
皆さん、「自分は永生する人だ。真の愛を実践する人だ」という姿勢で生きるべきです。ですから何をするのでしょうか。「永世のためだ」と「永世を訓練することだ」と、考えなさいというのです。皆さんには、永生と真の愛との観念は、いつも必要です。永遠に必要なのです。(二一六―一二七)
三 愛と永生
㉮ 사랑과 직결된 영생
1 愛と直結した永生
우리는 영생을 바라고 있습니다. 영생을 바라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다른 것은 다 변합니다. 환경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왜 변하지 않느냐? 사랑은 모든 생명력의 중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상적인 요건의 중심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중심은 그 주위가 전부 다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주의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과 하나되면 하나님이 남아 있는 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157-267)
我々は、永生を願っています。永生を願うのに、変わらないものとは何でしょうか。愛です。他のものはみな変わります。環境的に変わるのです。では、愛はなぜ変わらないのでしょうか。
愛は、すべての生命力の中心であるために、変わらないのです。愛は理想的な与件の中心に位置を占めるためです。中心は、その周囲が全部なくなる前には、なく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愛は宇宙の中心になっているために、愛と一つになれば、神様が残っている限り残っているのです。(一五七―二六七)
2 真の愛と永生
참사랑이 무엇이냐? 결혼할 때 결혼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랍니다.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거 누구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우리 인류의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는 절대적으로 행치 않고, 그 아들딸에게만 절대적으로 행하라고 명령할 수 있느냐?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시는 원칙으로 볼 때에 인간의 가치가 최대의 가치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보다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은 최고의 것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만민 평등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가능한 것입니다.
높고 귀한 자리에서 이 우주를 바라보고 관리하고 주도하게 돼 있지, 끌려다니고 복종하고 그렇게 돼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그렇습니다. 해방된 마음입니다. 어느 누구의 지배를 받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만민 평등입니다. 참사랑의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의 자리, 하늘나라의 보좌에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인간을 지었다 할 때는 하나님이 영원하고 절대적이므로 인간 자체도 영생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논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은 영원합니다. 영생하려면 그 참사랑권 내에서 살아야 합니다. (211-272)
真の愛とは何でしょうか。結婚するとき、結婚相手が自分より良い人を願います。自分の息子、娘が、自分より良いことをを願わない父母はいません。それは誰に似たのでしょうか。神様に似たのです。神様が愛の相対が自分よりより良いのを願うのです。
絶対的な神様が我々人類の父なら、その父は絶対的に行わないで、その息子、娘にだけ、絶対的に行えと命令できるでしょうか。できません。神様が愛の相対を自分よりより良いのを願われる原則から見るときに、人間の価値が最大の価値です。愛は中心として神様より高い価値があるということです。
それゆえ、皆さんの心は、最高のものを願っているのです。それが不可能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万人平等に可能なことです。堕落しなかったなら可能なのです。
高く貴い立場で、この宇宙を眺めて管理して主導する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あって、引かれて回り、服従するようになっていませんでした。皆さんの心がそうでしょう? 解放された心です。誰の支配も受けたがりません。これは、万民が共通です。真の愛の位置にいれば、神様の位置、天国の宝座に自由に行くことができます。神様の友達にな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愛のために人間を造ったというときは、神様が永遠で、絶対的であるがゆえに、人間自体も永生をもつというのです。これは、自然的な論理です。それゆえ、真の愛は永遠です。永生するには、その真の愛の圏内で暮ら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二一一―二七二)
참사랑에 의해서 영생이 가능합니다. 왜냐? 창조의 출발 동기?과정?목적 등 모든 것이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과정을 통해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몸 마음의 완성은 참사랑에 의해 근본적으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상의 결실을 맺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에 의해서 하나님도 영존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사랑에 의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의 환경을 이루는 데는 사랑의 환경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의 실체권을 갖는 데는 사랑을 중심삼고 실체적인 체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218-134)
真の愛により、永生が可能です。なぜでしょうか。創造の出発、動機、過程、目的などすべてのことが、愛を中心として完成するからです。過程を通じて結果が出てくるのです。
自分の体と心の完成は、真の愛によって、根本的に可能になっています。理想の結実を結ぶものは、愛しかありません。真の愛しかないのです。真の愛により、神様も永存しています。
永生は、愛によりつながるのです。それで、永生の環境を成すには、愛の環境を中心として生活しなければいけません。愛の実体圏をもつには、愛を中心として、実体的な体恤をし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す。(二一八―一三四)
3 絶対必要な真の愛
하나님은 영계 어디에 계시느냐? 절대적인 센터, 사랑의 센터에 계십니다. 그 사랑은 참사랑이고,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여러분은 첫째 하나님을 알아야 되고, 둘째 영생을 알아야 되고, 셋째 참사랑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투입입니다. 100퍼센트 이상 투입입니다. 100퍼센트 이상 투입하는 데에 영생이 있습니다. 참사랑을 가지지 않고는 영생이 없습니다. 영생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205-129)
神様は霊界のどこにいらっしゃるでしょうか。絶対的な中心、愛の中心にいらっしゃいます。その愛は真の愛であり、直短距離を通じます。
皆さんは第一に、神様を知らなければならず、第二に、永生を知らなければならず、第三に、真の愛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れは投入です。一〇〇パーセント以上投入します。一〇〇パーセント以上投入するところに永生があります。真の愛をもたなくては永生がありません。永生しない人は、神様に会うことができません。(二〇五―一二九)
앞으로 세계를 어떻게 수습하느냐? 첫째는 이타주의(利他主義), 둘째는 참사랑, 셋째는 영생으로 세계가 수습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뭐냐? 자기의 생명 이상 투입해야 됩니다. 생명 이상 투입하지 않는 곳에는 참사랑이 없습니다. 생명 이상을 투입하는 데서부터 참사랑이 성립됩니다. 참사랑이 성립 안 되면 영생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여러분이 사탄의 피를,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 했습니다. 이 말은 뭐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고 한 것은 생명까지 다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1계명입니다.
제2계명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게 뭐냐? 생명을 걸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 생명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느냐? 첫째는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고, 둘째는 사탄의 환경을 벗어날 수 없고, 셋째는 사탄의 혈통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환경은 벗어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탄의 혈통은 어쩔 수 없습니다. 참사랑은 생명을 초월합니다.
남자 여자가 태어난 것도 이타주의입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영원한 진리입니다. 왜 그렇게 생겨났느냐? 참사랑 때문입니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둘이서 영원히 하나되고 싶다.'고 하는데 둘이 하나되어서 뭘 할 것이냐? 하나님을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아니면 하나님을 점령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집안에 주인이 누가 되느냐? 그 집안 전체를 위해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부모 대신 중심자가 됩니다. 100명의 친구가 있다 할 때, 그 100명을 위해서 일생 동안 살면, 친구 100명의 추앙을 받는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히 위하는 주인이 있으면 영원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에 모든 우주가 '나'와 더불어 있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영생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데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죽음을 넘어서야지 넘어서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205-258)
これから、世界をどのように収拾するのでしょうか。第一は利他主義、第二は真の愛、第三は永生に世界が収拾されるのです。
真の愛とは、何でしょうか。自分の生命以上の投入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生命以上を投入しない所には、真の愛はありません。生命以上に投入するところから真の愛が成立します。「真の父母」が成立しなければ、永生はないのです。
なぜそうなのでしょうか。皆さんがサタンの血を、サタンの血統を受け継いで生まれたからです。それで、聖書には、「『心をつくし、精神をつくし、思いをつくして、主なるあなたの神を愛せよ』。これがいちばん大切な第一のいましめである」(マタイ二二・三七、三八)とあります。この言葉の意味は何でしょうか。心を尽くして、思いを尽くせと言ったのは、生命まで懸け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これが第一の戒めです。
第二の戒めは、「自分を愛するようにあなたの隣り人を愛せよ」(マタイ二二・三九)ということです。「隣り人を自分を愛するように愛せよ」というのはどういうことでしょうか。生命を懸けて愛し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生命を投入しなければいけません。なぜ、生命を懸け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しょうか。第一は、サタンを屈服させることができず、第二は、サタンの環境から抜け出すことができず、第三は、サタンの血統から抜け出す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す。
サタンの環境からは抜け出すことができるとしても、サタンの血統は仕方がありません。しかし、真の愛は生命を超越するのです。
男女が生まれたのも、利他主義です。男が生まれたのも女のためです。これは、絶対的な真理です。永遠の真理です。なぜ、そのように生まれたのでしょうか。真の愛のためです。
男もそうであり、女もそうです。世の中では、「二人で永遠に一つになりたい」と言いますが、二人が一つになって何をするでしょうか。神様を占領しようというのです。真の愛でなければ、神様を占領できません。
皆さんの家の中で、主人には誰がなるでしょうか。その家の全体のために、一生を生きていく人が、中心者になるのです。神様の代わり、父母の代わりに中心者になるのです。
百名の友達がいるとき、その百名のために一生の間を生きれば、その友達百人からあがめられる中心になるのです。ですから、永遠の世界で、永遠に「ため」にする主人がいれば、永遠の主人になるのです。その方とは誰でしょうか。神様です。ところで、その方は我々の父であるために、すべての宇宙が「私」と共にいるというのです。そこに永生があります。そうでなかった所には、永生がありません。
それで、聖書に、「死なんとする者は生き、生きんとする者は死なん」とあります。それはどんな言葉でしょうか。死を越えるべきで、越えなければ生き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言葉です。(二〇五―二五八)
4 愛と関係した死後の世界
우리는 결국 어디로 가느냐? 영계입니다. 사후의 세계라고 말하지만 사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왜 사후의 세계가 될 수 없느냐? 사랑과 관계돼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관계돼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참된 사랑의 자리에 서 있게 될 때는, 지금 여기가 영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구형운동을 해야만 상하?전후?좌우가 화합할 수 있습니다. 종은 종이고, 횡은 횡이 되어 화합이 안 되면 상하?전후?좌우 전체가 화합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사랑만이 통일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참사랑을 중심삼은 통일이상세계를 논하는 것도 원리관에 있어서 일치된 결론입니다. (144-199)
皆さん、考えてみなさい。神様がおられますか。(はい)。神様には時間があるでしょうか、ないでしょうか。(ありません)。なぜありませんか。時間がなければ、永遠に終わると同時に永遠に始まるという、そういう言葉ではないですか。過去も、現在も、未来も、同じだということです。そのようになっても、嫌であり得ない作用を引き起こすことができる、神様が安息され得る本来の基礎とは何でしょうか。そのようなことが問題になります。
それは何でしょうか。全知全能であられる能力をもって可能でしょうか。駄目なのです。神様の知恵、全知全能、分からないことがないことをもってしては、駄目だということです。何にもならないのです。愛の力だけが可能なのです。神様も、「愛」と言えば「そうか7」と言うのです。それ以外は、神様に必要ではないのです。
我々は結局、どこへ行くのでしょうか。霊界です。「死後の世界」と言いますが、死後の世界ではありません。なぜ、死後の世界になり得ないのでしょうか。愛と関係している世界であるためです。愛と関係している世界であるために、死後の世界ではありません。真なる愛を中心として出発したものであるために、自分が真なる愛の立場に立つようになるときは、今ここが霊界です。それゆえ、愛は偉大なのです。
球形運動をしてこそ、上下、前後、左右が和合することができます。縦は縦で、横は横になって和合ができなければ、上下、前後、左右全体が和合できないのです。統一が繰り広げられません。愛だけが統一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それゆえ、統一教会が、真の愛を中心とした統一理想世界を論ずるのも、原理観において一致した結論です。(一四四―一九九)
하나님이 인간을 끌어 주시려고 합니다. 하나님도 숨을 쉽니다. 사랑의 호흡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우주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영생이 있습니다. 사랑도 숨을 쉽니다. 우주의 맥박이 이렇게 되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가 '아! 나, 싫어!' 할 수 없습니다. 박자가 어울리려면 서로가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 방향입니다.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한 한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201-191)
神様は、人間を率いてくださろうとします。神様も息をするのです。愛の呼吸をされるのです。愛を中心として、宇宙が永遠に続くのです。愛に永生があるのです。
愛も息をするのです。宇宙の脈拍がこのようになっているために、男や女が「ああ7 私、嫌だ」と言えません。拍子が合えば、互いが愛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一方向です。全部神様を中心とした一方向だというのです。(二〇一―一九一)
5 「ため」に生きてこそ永生する
할아버지 할머니도, 천년만년 후대의 후손도,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도 영생할 수 있는 그 공식적 노정은 같습니다. 영생은 위해서 살던 사람들만이 패스할 수 있습니다. (203-193)
おじいさん、おばあさんも、千年、万年後代の後孫も、霊界に行っている霊人たちも、永生できるその公式的路程は同じです。
永世へは、「ため」に生きた人たちだけがパスすることができるます。(二〇三―一九三)
四 祝福と霊界
㉮ 사랑의 위력
1 愛の威力
영계도 육계도 사랑을 따라 움직입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환경적 여건은 박자를 자동적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l85-20)
霊界も肉界も、愛によって動きます。真なる愛を中心として、環境的与件は拍子を自動的に合わせるのです。(一八五―二〇)
과거 사람도, 현재 사람도 영원할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이냐? 우리 인간 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그 모든 욕구의 요인이 뭐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데데한 사랑이 아니라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종횡을 통해 어디든지 90도가 맞는 것입니다. 동양 집에도 맞고, 서양 집에도 맞고, 남쪽 형 집에도 맞고, 북쪽 형 집에도 맞고, 오색 인종?문화 배경?모든 종교 배경이 전부 다 다르더라도 맞아야 됩니다. 그런 것이 참사랑입니다. (180-86)
過去の人も、現在の人も、永遠にできる資格とは何でしょうか。我々人間世界で必要とするそのすべての欲求の要因とは何でしょうか。それは愛です。つまらない愛ではく、真の愛です。
では、真の愛とは何でしょうか。縦横を通じて、どこでも九〇度に合うのです。東洋の家にも合い、西洋の家にも合い、南型の家にも合い、北型の家にも合い、五色人種、文化背景、すべての宗教背景が全部違ったとしても、合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が何でしょうか。真の愛です。(一八〇―八六)
오늘날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축복이라는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 축복이라는 말은 통일교회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말이고, 그 말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축복행사를 해 나왔습니다. 앞으로 모든 인류는 축복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기성교회를 믿지만, 그 기성교회 자체도 축복이라는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로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기성교회에서는 통일교회 레버런 문은 독선적인 말을 많이 한다고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축복은 타락한 인류가 필시 가야 할 길입니다.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영계와 육계를 연결해 들어가야 할 중차대한 문제가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오늘날 일반 종교를 믿는 사람은 '구원' 하게 되면 개인구원만을 생각합니다. 자기가 잘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의 하나님의 이상을 두고 볼 때, 천국은 혼자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부부,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143-235)
今日、この世には、多くの人たちが暮らしています。その人々の中で、統一教会で言う祝福という意味を知る人は、多くありません。この祝福という言葉は、統一教会で初めて始まった言葉であり、その言葉を中心として、今まで祝福行事をしてきました。
これから、人類はどこに行くのでしょうか。すべての人類は、祝福の門を通らずしては、天国に行くことができません。数多くの人たちが、既成教会を信じますが、その既成教会自体も祝福という門を通らずには、天に行く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
このように言うと、既成教会では、「統一教会のレバレンド・ムーンは独善的な言葉をたくさん言う」と言うでしょう。統一教会で言う祝福は堕落した人類が、必ず行くべき道です。いくら反対したとしても、霊界と肉界をつなげて入らなければならない、非常に重大な問題になるのが、この祝福です。
今日、一般の宗教を信じる人は、「救い」と言うと、個人の救いだけを考えます。自分がよく信じれば、天国に行くと信じるというのです。しかし、本来の神様の理想について見るとき、天国は一人で行くようになっていません。愛する夫婦、愛する家族が共に入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一四三―二三五)
2 夫婦の霊人体
우리는 사랑이상을 찾아가는 무리들입니다. 그러니까 영계의 대변자로 서기 위해서 사랑이상을 횡적인 세계에 부식시켜야 합니다. 씨로서 뿌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자라는 것입니다. 크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사랑의 열매를 맺어 그 부부가 영계에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권 내에 품겨 하나님과 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144-224)
我々は、愛の理想を探していく群れです。ですから、霊界の代弁者として立つために、愛の理想を横的な世界に扶植させるべきです。種として蒔くべきです。ここで愛の心を授け受けしながら育つのです。大きくなるのです。
こうして、愛の実を結んで、その夫婦が霊界に入るようになるとき、神様の永遠の愛の圏内に抱かれ、神様と一つの体になるのです。神様と一つになるのです。(一四四―二二四)
여러분은 참사랑의 논리를 많이 배워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영신(靈神)들은 50살이 됐는데도 얼굴을 보면 40대 같습니다. 50살이 넘었는데 사람들로 치면 한 3O대밖에 안 되어 보입니다. 그러니 사랑할수록 젊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땅 위에서 껍데기가 늙어가지만 부부생활을 하고, 사랑하면 할수록 영인체는 젊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이 사랑으로 오래 살면 살수록 내적 인간인 영인체는 최고의 원숙한 미남 미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껍데기는 옷과 같이 벗어 버려야 하는데, 젊어서 달라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늙으면 외적인 껍데기는 전부 다 망쳐지지만, 내적인 알맹이는 단단해져 미래의 상속자가 되고, 미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을의 밤송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어 단단하던 밤송이가 익으면, 껍질은 물렁물렁해지고 갈라져서 밤알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164-102)
皆さんは、真の愛の論理をたくさん習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我々統一教会の霊神(注:草創期からいるおばあさん)たちは、五十になったのに、顔を見れば四十代のようです。五十歳を越えたのに、人々でいえば大体三十代しかならないように見えます。ですから愛するほど若返るのです。
人はこの地上で、殻(体)は老けていきますが、夫婦生活をして愛すれば愛するほど、霊人体は若くなるのです。どういう意味かというと、人間が長く生きれば生きるほど、内的人間である霊人体は、最高の円熟した美男、美女になるのです。その殻は服のように脱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が、若返ってくっついたらどうしますか。
ですから、外的な殻は、老ければ全部駄目になりますが、内的な中身は、丈夫になって未来の相続者になり、美人になるのです。それゆえ、秋の栗のいがのようになるのです。秋になり、丈夫だった栗のいがが、熟れれば、殻はぶよぶよになって割れ、栗の実が落ち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それと同じです。(一六四―一〇二)
3 結婚と霊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은 둘째 되는 계명이다.'고 했습니다. 그거면 다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여러분이 먹는 음식을 사랑해야 합니다. 만물을 사랑하고, 몸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제1의 부모는 여러분을 낳아 준 부모지만, 제2의 부모는 지구입니다. 이 땅입니다. 여러분은 땅으로부터 여러분의 몸이 클 수 있게끔 요소를 공급받습니다. 땅이 몸의 제2의 부모입니다. 제2부모를 거쳐서 제3부모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죽는 것입니다. 제3부모에게로 가는 데는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3부모에게 돌아가려면 본래의 부모였던 하나님의 모양을 닮아야 됩니다.
따라서 결혼은 왜 하느냐? 하나님의 모양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이 합체화(合體化)한 일률적인 존재이고, 그 하나님의 분성적(分性的) 자체들이 남녀이기 때문에 그들도 합성일체화하여, 씨와 같이 되어, 하나님의 본성의 자리에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씨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나면서도 사랑받고, 자라면서도 사랑을 목표로 해서 자라고, 살면서도 사랑을 중심삼고 살며, 가면서도 사랑에 돌아가기 위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위하는 목표를 중심삼고 찾아가지 않으면 방향이 틀려집니다. (138-98)
キリスト教では、神様を愛すると言いますが、漠然としているのです。聖書で言うには、「『心をつくし、精神をつくし、思いをつくして、主なるあなたの神を愛せよ』。これがいちばん大切な、第一のいましめである。第二もこれと同様である、『自分を愛するようにあなたの隣り人を愛せよ』」(マタイ二二・三七~三九)とあります。そうなればいいのです。
神様を愛する前に、皆さんが食べる食物を愛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万物を愛し、体を愛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皆さんの第一の父母は、皆さんを生んでくれた父母ですが、第二の父母は地球です。この地です。皆さんは地から、皆さんの体が大きくなれるよう、その要素を供給してもらうのです。地が体の第二の父母です。第二の父母を経て、第三の父母に入るのが死ぬことです。第三の父母に行くには、そのまま入るのではありません。第三の父母に帰るには、本来の父母だった神様の形に似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したがって、結婚はなぜするのでしょうか。神様の形に似るためです。神様は、二性性相が合体化した一律的な存在であり、その神様の分性自体が男女であるために、彼らも合性一体化して種のようになって、神様の本性の位置に帰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しかし、その種をつなげるためには、愛の道を通じなくてはいけないために、生まれながらも愛され、育ちながらも愛を目標として育ち、暮らしながらも愛を中心として暮らし、行きながらも愛に帰るために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その道は、「ため」にする目標を中心として訪ねていかなければ、方向が異なってしまいます。(一三八―九八)
4 祝福家庭の霊界の立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영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많은 체험을 통해서 부정하려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기반을 형성할 때까지 많은 영적 체험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통일교회 교인들입니다.
영계는 절대적 신을 중심삼고 구성된 세계입니다. 그 절대적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우주의 기원이 되는 분입니다. 그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에 속한 전체는 그와 더불어 느끼고, 그와 더불어 인연을 갖고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권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사탄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는 자기 중심삼고 사랑하는 겁니다. 하늘이 제일이 아니라 자기가 제일입니다. 하늘을 부정하고 땅을 부정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하늘을 인정하고, 땅을 인정하고, 부모의 평균적 사랑 밑에서 하나되면, 사탄이 주관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연의 아담의 자리입니다. 그 기준을 회복해야 됩니다.
한 동네에 축복가정 부처가 살게 되면 그 동네에서 화제가 되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어디 가든지 화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 부부는 이 동네에 참 잘 왔다. 저 색시는 이 동네의 모든 남자들이 좋아하고 아줌마들이 다 좋아해. 아이들까지 좋아해!' 그래야 됩니다.
그것이 안 되면 영계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됩니다. 돌아오는 데는 선생님이 사인을 안 해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이 땅에 마음대로 올 수 있습니까? 선생님이 기도를 해줘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간 사람들이 다 매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축복가정들 다 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이 문제입니다. (140-123)
我々統一教会の信者たちは、霊界が確実にあ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ます。信じているのではなく、知っているのです。多くの体験を通じて、否定しようとしても否定できないのです。今日、統一教会が世界的な基盤を形成するまで、多くの体験過程を経てきました。それゆえ、霊界がないと言うことのできない立場にいる人たちが、統一教会の信者です。
では、霊界の中心とは何でしょうか。霊界は絶対的神を中心として構成された世界です。その絶対的神がいるなら、その神は、宇宙の起源になる方です。彼によらないものがありません。彼に属しているために、彼に属した全体は、彼と共に感じ、彼と共に因縁をもって過ごしているのです。
そのような愛の圏が成される所には、サタンはいません。それゆえ、サタン世界は、自分を中心として愛するのです。天が一番ではなく、自分が一番です。天を否定し、地を否定して始まるのです。
しかし、その反対に、天を認めて地を認め父母の平均的愛のもとで一つになれば、サタンが主管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見るのです。それが本然のアダムの位置です。その基準を回復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ある町内に、統一教会の夫妻が住めば、その町内で話題になければなりません。先生がどこへ行っても話題になるのと同じです。「あの夫婦は、この町内に実によく来た。あの奥さんは、この町内のすべての男たちが好み、おばさんたちがみな好む。子供たちまで好む」と、そう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れができなければ、霊界に行って再び帰ってこ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帰ってくるには、先生がサインをしてあげ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す。祝福を受けた家庭たちが、地に勝手に来ることができますか。先生が祈祷をしてあげてこそ、可能なのです。それで、まず行った人たちが、みな縛られています。今まで統一教会の祝福家庭は、みな縛られているのです。
それゆえ、地が問題です。(一四〇―一二三)
5 祝福は約束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은 축복받을 때 영원한 가정으로 살겠다고 선생님하고 약속했습니다. 선생님은 영원한 가정을 치리하는 사람이요, 영원한 나라를 치리하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나라의 가정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가정은 물론이고, 영원한 나라를 인계받는 것입니다. (205-359)
統一教会の祝福家庭は祝福を受けたとき、永遠の家庭として暮らすと約束しました。先生は、永遠の家庭を治める人です。永遠の国を治める人です。永遠の国の家庭を設定するのです。その約束を守る人が、家庭はもちろん、永遠の国を引き継ぐのです。(二〇五―三五九)
6 祝福の栄光
참된 여자는 어떠해야 하느냐? 참된 남자를 중심삼고 남자가 하자는 대로 해주어야 합니다. 가정을 위해 봉사하고, 종족을 위해 봉사하게 되면 그 주위가 전부 박수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느냐? 고생하면서도 여러분을 살려 주고 인류를 해방시켜 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고생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영계에 가서 억만 년을 기다려도 축복을 못 받습니다. 불가능한 것인데, 선생님이 고생해서 가치 있는 축복의 판도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계와 이 지상세계에 영광스러운 것이고 영화로운 것입니다. (162-68)
真なる女は、どうあるべきでしょうか。真なる男を中心として、男がしようというとおりにしてあげなければなりません。家庭のために奉仕して、氏族のために奉仕するようになれば、その周囲が全部拍手するようになります。
皆さんは、先生が好きです。なぜ好きでしょうか。苦労しながらも皆さんを生かしてあげようと、人類を解放させてあげようとするからです。先生が苦労しなければ、皆さんが霊界に行って、億万年待っても祝福を受けられないのです。不可能なことなのに、先生が苦労して、価値ある祝福の版図が繰り広げられたというのです。これは天の霊界とこの地上世界に、栄光なもので、華やかなことです。(一六二―六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