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Box: TP portrait 7 예절과 의식

3 예배와 교회 생활예절

 1)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

   교회는 말씀, 인격을 종합하는

 

교회가 가야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를 찾아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래 가지신 창조이상은 나라를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가야할 목적지는 나라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86-12)

 

앞으로 교회시대는 지나갑니다. 인류가 바라는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타락권내에서 복귀의 운명 길을 필요한 것이지, 새로운 때를 맞게 되면 교회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교회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사회에 적응하고, 사회를 개혁하고, 사회 확청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라와 민족, 또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인류가 하지 못하는 개척자의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길이 지금 여러분들이 가야 길입니다. (28-222)

 

교회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인연의 본거지입니다. 그런고로 탕감조건을 성립시키는 매개체요, 말씀과 인격과 심정을 종합하는 곳이 됩니다. (20-314)

교회는 천지를 연결하는 지성소입니다. 교회는 세계로 가는 문호이며, 모든 사람들이 상부상조의 인연을 갖게 하며, 국가 존망의 영적 지주가 됩니다. 교회는 영적 생활의 원천으로써 매일 매일 생활의 힘을 보급해 줍니다. (20-314)

 

가정에 충성하기 전에 교회에 충성하고, 사회에 충성하기 전에 교회에 충성해야 원칙입니다. 교회가 주체요 가정과 사회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디에 서느냐? 주체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주체의 자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대상은 동서남북 사방에 있어서 360 회전이 되어야 하지만, 주체는 중심 곳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권내의 자리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중심이 둘이 있어요? 이것이 왔다갔다하면 망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25-162)

 

기독교인들은 전지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천번 만번 죄를 지어도 용서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교회에서 기도하고 나오기가 무섭게 싸움을 합니다. 교회란 지은 후에 회개하는 회개당이 아닙니다. 그렇게 많은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지은 죄는 용서하지 못하시느냐는 말입니다. 그럴 아닙니까? , 사탄이 용서받을 있는 길이 있었다면 회개했을 것입니다. 천번 만번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했을 것입니다. (19-161)

 

교회가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고 둘에서 넷으로 갈라지고, 이렇게 번만 갈라지면 하나님은 떠납니다. 천리원칙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정적으로 모입니다. 은혜 있는 사람은 가정적으로 모입니다. 교회에 갑니다. 가정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렇게 되나 안되나 두고 보라구요.

통일교회의 목적이 뭐냐? 인류를 대해 가지고 하나님하고 메시아하고 지구성에서 춤을 추고 사탄까지도 복받게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길이니 얼마나 위대해요? 그곳까지 가자는 통일교회입니다. , 말을 들어 보니까 통일교회가 어떻고, 이단이고, 무슨 사교고 하지만, 우리는 콧방귀도 뀝니다. 거룩한 사람들이 가는데 동네 개가 짖더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80-257)

 

끝날인 시대에 통일교회가 하여야 사명은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뇨?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뇨? 인류의 사정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뇨? 인간들의 심정이 무엇이뇨?'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온 교회입니다. 그런 세계를 가르쳐 있고, 사람 사람 교육시킨다고 하게 되면, 이념권내의 세계는 통일이 되려야 수가 없습니다. (151-237)

 

   교회는 가정의 연장이다

 

'나는 누구 때문에 교회에 간다. 나는 사랑하는 아들딸 때문에 교회에 간다. 혹은 사랑하는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교회에 간다.' 하는 자들은 넘어 갑니다. 누구 때문에 가느냐 하면, 하나님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찾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8-162)

 

공적인 교회는 자기의 집보다 귀합니다. (15-271)

 

교회를 통해 천국은 연결됩니다. 가정은 교회를 통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 고로 교회는 가정이 승리할 기반이며, 가법(家法) 결실시키는 곳이며, 인격을 인정받는 곳이며, 천국생활의 훈련장이 됩니다. (21-350)

 

'얼굴이 생기고 젊은 사람이라야 전도한다.' 천만에요. 교회라는 것은 가정의 연장입니다. 가정의 연장이라는 알아야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어야 되고, 아주머니가 있어야 되고, 아저씨가 있어야 되고, 젊은 사람도 있어야 되고. 교회에 전부 젊은 사람만 있다면 이것은 병폐입니다. 이걸 빨리 시정해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윗사람을 모실 알아야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나님 대신이고, 어머니 아버지는 부모이고, 자기와 아들딸까지 4단계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 , 이렇게 되면 단계로 보면 3단계라는 것입니다.

운명권을 벗어날 없는 인생살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자기 부부, 아들딸, 이것이 3단계를 줄을 그어야 단계가 나오지요? 그러니까 7 기준이기 때문에 이것을 묶지 않고는 3단계가 나온다는 겁니다. 이걸 묶지 않으면 전부 제멋대로 엇갈리는데. 3단계가 나오려면 이걸 묶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인받을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하나님을 대신한 생활을 없습니다. 내적인 교회생활에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의 교회에 대한 관념을 생각해 보게 , 교회에 모여 집회하는 시간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공적 집회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기 때문에 뜻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에 대해서도 희박해지는 겁니다.

내적으로 자기가 있는 자리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외적 기준도 확실치 않다는 겁니다. (22-36)

 

어떤 사람을 보면 교회생활은 하는데 사회생활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사회생활은 하는데 교회생활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 사회생활은 하지만 교회생활을 못하는 사람은 열매를 갖출 있는 요인과 내용이 없습니다.

교회생활은 하지만 사회생활을 못하는 사람과, 사회생활은 하지만 교회생활을 못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나으냐 , 교회생활 하는 사람이 낫습니다.

결실의 요인을 갖춘 사람은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움직여 나갈 있지만, 결실의 요인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결실과 관계를 맺을 없는 것입니다. (36-20)

 

여러분은 혈통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 진리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할 있는 기준을 찾아 세워야만 합니다. 기준을 찾아 세우지 못하면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하는 것은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3-40)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삼각권(三角圈) 중심삼고 , 여러분은 가정을 중심한 생각이 강합니까, 교회를 중심한 생각이 강합니까? 아니면 사회를 중심하고 자기 출세하기 위한 생각이 강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것이 강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협조해 주고 동정해 주겠습니까? 교회를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대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42-169)

 

인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집단적인 교회생활을 통과하지 않으면 됩니다. , 전체적인 이념이나 제도를 통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런 관문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9-8)

 

여러분이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살아온 사회생활 전체와 교회를 중심삼고 생활한 전체를 놓고 , 어느 것이 내적이냐 하면 교회생활이 내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내적 생활의 가치기준을 세워 나왔느냐? 혹자는 뜻을 중심삼고 간다고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뜻이 것이다.'라며 자기 멋대로 생각합니다. 그런 곳에 하나님이 계실 있겠어요? (22-38)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이 교회에서 밥을 먹고 가더라도 웃으면서 보내라는 겁니다. 절대 먹는 가지고 인색하게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통일교인이 아닌데 와서 밥을 먹는다고 해서 누가 밥을 먹느냐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팔도강산의 누구도, 통일교인은 물론이요 통일교인이 아닌 누구라도 여기에 와서 밥을 먹고 갔을 것이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애기이고, 제일 싫어하는 것은 죽게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극과 극입니다. 하늘의 운동이 뭐냐 하면, 극과 극을 포섭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냐는 겁니다. 애들과 하나되려고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와서 놀다가 밥을 먹고도 가고, 이래 놓으면 그곳은 흥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친구가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여러분한테 미쳐 가지고 밤잠을 자고, 자기집 좋은 뜨락, 청마루, 고래등 같은 집을 남겨 놓고 교회 대청마루에 와서 자겠다고 하게 되면 그곳, 단체, 사람이 있는 곳은 흥청흥청 흥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할머니가 찾아와서 '여기 교회장 있소?' , 바라보면서 '없어요, 없어!' 하면 벌받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장 어디 갔어요?' ' 그래요, 할머니? 나이 많은 할머니는 필요 없어요.' 이래 보라구요. 하나님이 때에 '그놈의 자식, 너는 어디서 나왔어?' 이렇게 걸린다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나이 많은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를 봉양해야 효자입니다.

 

 2)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경외의식

 

   예배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목적은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를 찾고 인류를 구하는 목적을 두지 않으면 됩니다. 기독교가 안식일을 지켜 것은, 이날을 거룩히 지킴으로 자신이 승화돼 가지고 자신을 생각하는, 구원의 목적을 가중시키는 주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목적은 나의 구원의 길을 촉진시키는 것도 있겠지만, 나아가서 전체를 구원하고, 앞으로 하나님 섭리의 나라와 세계를 구하기 위한 목적을 가중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다 책임 높은 하나님의 소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69-240)

 

예배 드리는 시간은 제사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자기 과거를 하나님께 속죄해야 합니다. 고로 예배시간은 자유가 없는 시간입니다. (11-163)

 

예배시간은 밀려오는 사탄의 어떠한 권한도 막아내고 아버지 앞에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하는 시간입니다. (6-263)

 

예배드리는 시간은 원수와 일격전을 하는 것보다 심각한 자리입니다. (9-296)

 

예배시간에 일찍 만큼의 시간은 하나님을 위해 바친 시간이기 때문에 천금 만금을 주고도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예배시간만큼은 하나님께 바치는 시간이기 때문에, 시간에 늦게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을 도둑질하는 것이 됩니다.

예배는 제시간에 나와서 드려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만큼 하나님 앞에 면목도 세울 있고, 그렇게 되면 어제보다 나은 마음을 가지고 하늘 앞에 가까이 있지만, 늦게 오면 기도할 눈을 꿈벅꿈벅거리면서 선생님이 무슨 말씀하실까 하고 그렇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처량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36-125)

 

하나님을 찾아 나가 모시는 자리에 예복을 입고 참석할 있습니까? 겉모양의 예복이 아닙니다. 심정의 예복입니다. 이렇게 모인 여러분들의 마음에서 말씀과 더불어 찬송과 더불어 감격된 심정이 흘러 나온다면 하늘은 여러분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눈물 흘리며 쫓겨났지만, 여러분은 눈물을 흘리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웃는 얼굴로 하나님과 상봉해야 합니다. 슬픔의 눈물도 흘려 보지 못한 자가 기쁨의 눈물부터 흘리면 됩니다. (9-296)

 

예배시간을 위해 사흘 전부터 마음을 조여가면서 준비해야 됩니다. 만민의 행복을 빌어주고 만민이 소생할 있는 부활의 권한과 생명의 인연을 연결시키겠다고 몸부림치며 교회문을 들어서야 하고, 하나님 앞에 목이 메이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그래도 부족할 텐데 여러분은 오히려 장돌뱅이보다 뻔뻔스럽다는 것입니다. (20-284)

 

주일날 예배 때에는 목욕재계하고 하나님 앞에 경배 드리고, 성지에 찾아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찾아드는 사람이 없을망정 하나님이 부락을 굽어살피고 동역할 있는 심정적인 터전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혼자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자리는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같이하시니 절대로 외롭지가 않다는 겁니다. 3년이상 여러분들이 정성을 들였는데도 동네에서 찾는 자가 없다면 동네는 망하는 것입니다. (17-293)

 

예배에 오더라도 그저 생각없이 오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다하고, 하루 이틀 정성을 들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빛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이 클수록 하늘이 자기를 보호해 주고 지켜주는 것입니다. 아내가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남편을 하루종일 생각하다가 보이는 얼굴로, 입으로 웃게 영광의 빛이 난다는 겁니다. 웃는 얼굴은 남편을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앞으로는 예배드리는 것도 설교 형식이 아니라 보고 형식으로 해야 합니다. 보고의 내용은 가정이 자랑할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 전체가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잘한 가정을 보고는 본을 받고, 못한 가정을 보고는 잘되게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천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가정천국을 먼저 이루지 못하면 지상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먼저 교회생활에 철저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예배시간을 엄수해야 되겠습니다. 공식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시간에 모범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1-269)

 

하늘 앞에 나아가는데 약속은 절대적으로 엄수해야 됩니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무슨 은혜를 받겠어요? 그런 사람은 가다가 말아 버립니다. 앞으로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움직이는 대로 지도하겠습니다. 싫으면 그만두세요. 누가 망하나 보잔 말입니다.

주일날 공적 집회 출석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 출석에 자녀들이 부러워서 따라오고 싶도록 부부가 정답게 같이 와야 합니다. 10 이전에 교회에 와서 주일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회보 1-3)

 

예배시간은 사탄과 싸움하는 때입니다. 단독 결판하는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잠을 자서 되겠어요? 그런 자가 있으면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하셨듯이, '옆구리에 한방 때려 넣어라.' 그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예배 자는 자가 있으면 그냥 두지 않습니다. (15-121)

 

정성들여야 사람들이 예배시간에 늦게 오면 되겠어요? 그런 사람은 부끄러워서 얼굴도 없는 죄인 중의 죄인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시간을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남보다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시간도 지키면서 '! 하늘이시여!' 있어요? 정성은 남이 알게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 정성을 들이려면 차를 타고 것이 아니라 걸어와야 합니다. 여기 와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고 와서 간절한 기도를 해야 됩니다. 정성은 이렇게 들이는 것입니다. (42-235)

 

하늘은 간절히 사모하고 애쓰는 사람을 대해 주십니다. 아무나 찾아가서 대해 주시는 하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만은 절대로 엄수해야 합니다. 앞으로 시간을 어기면 앞에 세워 놓고 창피를 겁니다. (11-133)

원래는 예배 시간이 넘으면 문을 잠가버려야 됩니다. 늦게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여러분들을 모아 놓고 어느 기준까지 끌어 올리려니 시간 시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내가 하늘 앞에 기도하고 각오했던 심정적인 기준에 연결될 있는 것입니다. (11-132)

 

하나님 앞에 나가는데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때를 맞추면 망하는 겁니다. 때를 찾으면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성별된 환경을 요구하고 성별된 마음을 요구하는데, 시간도 못지켜 가지고 뒤꽁무니에서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하늘은 그런 찬송 원치 않으십니다. (11-133)

 

공식적인 예배시간은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발전합니다. (31-271)

 

   밤예배, 새벽집회, 철야정성

 

밤예배에 주력하라. (10-249)

 

토요일 밤엔 교회에서 철야를 해야 한다. (17-347)

 

앞으로 집회는 밤에 많이 것입니다. 어둠의 세계를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선 간절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11-247)

 

밤예배는 전도를 가지고 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위신이 섭니다. 예배 시간에는 인도자보다 먼저 있어야 합니다. (10-250)

실컷 자고, 먹을 먹고 편안히 앉아 가지고 예배보면 좋을 텐데 새벽같이 예배봐? 새벽같이 예배보겠어요? 남과 달라야 된다 이겁니다. 어떠한 종교 집단이나 신앙자들과 같아서는 됩니다. 달라야 됩니다. (84-194)

 

내가 새벽 시에 모아 놓고 일년이고 몇년이고 전통을 세워 잠을 재우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나태해지면 됩니다. 편안해지면 되는 것입니다. 편안한 세계에서는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국가든지 새로운 부흥이 벌어져 거기에 자만하고 도취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51-280)

 

낮에는 일해야 되기 때문에 종교 일은 밤에 해야 됩니다. 밤이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새벽에 가르쳐 줘도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왔던 사람이 없어서 집에서 도망을 있게끔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자신이 그렇게 돼야 됩니다. 동기가 없는데 결과가 있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했으면 보다 열심히 하고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을 연구해서라도 하라는 겁니다. (97-196)

 

12시가 넘어 첫닭이 우는 소리 들을 때까지 말씀을 전해 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비스러운가. 조용하고 고요한 밤에 동네의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말씀을 전해 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광명한 햇빛을 찾아 새로운 인생 길을 타개하고 가는 것과 같고, 등대빛을 찾아 새로이 항해하는 선장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주위가 온통 신비로 꽉찬 세계를 혼자 가는 듯한 용감한 모습, 씩씩한 모습, 장엄한 모습을 느끼게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적인 유대를 가지려면 시간을 중심삼고 지도하라는 것입니다. 밤이나 새벽에 이러한 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29-196)

 

, 깊은 밤은 신비성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흥회를 낮에 부흥회를 하는 것보다 밤에 부흥회 하는 것이 은혜롭습니다. 그러냐 하면, 낮에는 우리의 모든 감정이 분산되기 때문입니다. 시청각은 오관으로 느낄 있는 모든 감각이 전부 분산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밤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집중됩니다. 모든 것이 나를 포위해 나를 두드러지게 하고, 그런 권내에 내가 자동적으로 서기 때문에 밤에는 하나님과 더불어 은혜 역사를 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역사를 잘해 있다는 것입니다. (29-196)

 

새벽에 일어나면 나의 하루 생활이 아버지 앞에 감사의 실체가 되게 달라고 기도하면서 꽃이 피어 있는 봄동산처럼 자유스런 동산에서 아버지께 나를 세워 섭리하실 있는 소망의 결실체가 되겠다고 하고, 낮이 되어 일터에 나가면 소망의 결실체가 자라나는 여름절기와 같이 발전하여 하나님께서 같이하는 가치로 나타날 있는 존재가 되겠다고 해야겠습니다.

저녁이면 모든 전체를 집약시켜 하나의 결심을 아버지 앞에 바칠 있는 가을절기와 같은 때이기 때문에 제물될 있는 자리에 서겠다고 하고,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밤이면 생명력을 지녀서 하나님과 내재적(在的) 부자의 기원을 맺어 모든 가치를 받아들일 있는 자신이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1 365일을 승리의 날로 만들면서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사람은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사는 생활이 보람있는 생활이라는 것을 느낄 있을 것입니다. (29-340)

 

여러분이 시간 가는 모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밤새워 말씀을 듣고 말씀하는 것이 일쑤였습니다. (97-209)

 

잠자는 시간을 계산해 가지고 '오늘은 잤으니 내일은 많이 자야지.' 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그러지요? '주일 아침은 금식이니 토요일 밤에 밥을 많이 먹자.' 그렇게 하는 금식은 하나마나입니다.

오히려 금식을 안하는 낫다는 것입니다. 금식을 한다고 전날 밥을 많이 먹게 되면 배가 고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먹어 위를 늘렸다가 별안간 비우게 되니 배가 고프지 있어요? (44-161)

 

 3) 교역자가 가져야 자세

 

   교역자는 공적(公的)이어야 한다

 

사람 이상을 거느리는 사람은 영계의 감정을 받고 세워진 사람입니다. (18-223)

 

자신을 갖고 책임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도 내가 자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에 앞서 하나님이 좋아서, 하나님이 찾아가는 사람을 좋아해야 것을 알았기 때문에 심정을 어떻게 갖고 나서느냐 그게 문제였습니다. 심정만 통하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좋게 하고 슬픈 사람을 위로할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70-175)

 

참목자는 자기가 참목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나 묵묵히 하나님의 뜻과, 모든 만상을 자신의 마음에 품고 나아갈 뿐이지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지 않습니다. (3-210)

공적인 일을 위해 피곤한 모르고 뛰다 언제 자는지 모르게 늘어져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얼마나 거뜬한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보게 되면 ', 하늘 길은 이렇게 가는 것이 원칙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아이고, 어저께는 시간밖에 잤으니 오늘은 다섯 시간, 여섯 시간은 자야 할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잠을 자고 일어나게 되면 허리가 아프고 몸이 천근 만근 되는 같습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책임자는 아무리 피곤해도 먼저 눕는 아닙니다. 뉘어 놓고 누워야 됩니다. 기도를 때에도 나중까지 해야 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있어서도 먹고, 입고, 살면서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 책임자의 입장입니다. 그렇게 하면 망하라고 해도 망할 없는 것입니다. (33-169)

 

선생님은 정성 들이는 사람에게는 꼼짝 못합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지도해 나오면서 사람이 있으면 사람 가운데 누가 잘났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때에는 얼굴이 잘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어디로 향하느냐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사적이냐 보다 공적이냐 하는 것을 것입니다. (31-260)

 

아침에 첫발을 내디딜 때에도 공적인 발걸음인지 사적인 발걸음인지 반성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루의 일을 끝내고 자리에 누울 공적인 하루를 보냈는지 사적인 하루를 보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혹은 일년을 중심삼고 공적인 생활을 했는지 사적인 생활을 했는지, 일생을 중심삼고 공적이었는지 사적이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39-76)

 

공직에 있는 사람은 불쌍합니다. 있는 정성을 했지만 행여 앞에 실수를 나로 말미암아 천년 공적이 틀어지면 어떻게 것이냐? 그런 심정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46-55)

 

지나가는 세월과 더불어 흘러가선 됩니다. 새로운 날을 준비해 전진하는 무리가 되지 못하면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됩니다. 우리는 역사적 개척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개척자는 어려운 환경을 뚫고 내일을 향한 소망 앞에 준비태세를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1986.5.6)

 

일단 책임을 지고 나면 다음에는 전투요 투쟁입니다. 네가 꺾이느냐, 내가 꺾이느냐 하는 싸움을 해야 됩니다. 싸움에서 여러분은 여러분 일대에 적어도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 이상을 자연 굴복시킬 있는 터전을 다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우선 이론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되고, 다음엔 된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의 생각이 미치지 않고, 자기의 신념이 미치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되지 못하고 남에게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가 실천을 해서 다져진 기반은, 뿌리를 단단히 박고 이룬 터전은 이상의 힘을 가하고, 이상의 신념을 가하기 전에는 절대 빼앗을 없습니다. (19-39)

 

책임을 지기 전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생명과 바꾸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는 해결점이 생기게 됩니다. (19-142)

 

'인간으로 있는 최대 노력을 다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일체의 모든 마음, 지극 정성을 바쳤습니다.' 있는 자리, 하늘이 봐도 이상 없다고 하는 자리에서 떠나게 되면 사람이 자리에서 일을 못했더라도 일한 가치 이상을 하늘은 보답해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56-33)

 

교회장은 지방의 제사장입니다. 잠을 자면서도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뭇사람을 살려 주기 위해 제물(祭物) 다루어야 하니 정성들이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제사에는 실체(교회장) 주인(하나님) 하나(一體)되어야 응답이 있습니다. (9-80)

 

제사는 누가 관리하느냐? 제사장이 관리합니다. 제사는 () 관리해선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회합 자리를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발전을 못합니다.

제물 앞에 제객(祭客)들은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이 천법(天法)입니다. 제단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오늘 제단 앞에 나는 정열과 모든 힘과 노력을 바친다 하게 때에는, 자기 일생에 없는 성심성의를 다해 가지고 입을 때는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제물은 심각한 자리에서 바쳐지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진탕 먹고 웃고 춤추며 살다가 무덤에 가면 복이 있어요? 그런 사람의 무덤에는 풀이 뿐이겠지만,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리고 죽은 사람의 무덤에는 나라가 살아 있는 꽃이 것입니다. (46-347)

 

통일교회 선생 되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같이 죄수의 옷을 입고 형장길을 걸어가는 그런 기분이지만,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형무소 생활 해봤기 때문에 모를 것입니다. 호화스러운 집에 살고 있지만 내가 그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초막에도 있는 사람입니다. 초막에도 있는 훈련이 있습니다. 옷을 벗어 쥐고 노동판에 가면 일등 노동자가 있는 훈련을 사람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서 붙들고, 환경을 전부 수습해 가지고 거기에서 눈물을 짓고 친구가 있는 이런 심정적 훈련을 사람입니다. (85-43)

 

   식구 지도는 정성으로

 

교인(식구) 그리워하기를 첫사랑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1981.11.19)

 

핵심요원은 밤을 새워서라도 정성을 들여 길러야 합니다. 그렇게 3일간만 정성들인다면 사람은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은혜의 인연을 맺습니다. 시간이 늦어 피전도자가 돌아가게 되더라도 전도자가 오히려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면 영계에서 협조해 줍니다. (23-249)

 

먼저 자기 자신이 뜻에 취해야 그것이 상대방에게도 전달되는 것입니다. (23-249)

 

선생님이 식구를 기르기 위해 천신만고(千辛萬苦)하던 놀음을 여러분도 하라는 것입니다. 밤에 손님이 있거든 무릎 꿇고 하늘의 복을 빌어 주고, 낮에 손님에 대해서는 안방으로 초대해 자기 친척보다 반가운 손님으로 대해 주고, '우리 집은 이런 집이다.' 하는 가풍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풍을 세워 놓으면 사람들이 누구를 위하겠어요? 다른 사람 대접하는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 교역자 밥을 굶기겠어요? 교역자에게 밥을 굶기고 복받겠다는 녀석들은 입에 모래알이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22-342)

 

밤을 새워 가며 이야기해도 재미있게 해야 됩니다. 12시가 넘어 새벽 2, 3시가 되었는데 '가면 좋겠다. 자야 할텐데' 이런 마음 있으면 도망가는 것입니다. 새벽 3, 4시가 되더라도 ' 갔으면 좋겠다. 시계가 멎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인연되었다가 가면 () 압니다. () 미안해서 밥을 먹자마자 궁둥이가 돌아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일을 했습니다. (56-51)

 

누구를 만나도 만난 그것으로 끝나서는 됩니다. 더욱이 하늘을 중심삼고 만난 사람이면 절대 인연을 잊어버려서는 됩니다. 교회에 나오다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잘라버리거나 저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떨어져 나갔다고 해도 사람과 맺었던 인연만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42-136)

 

식구가 떨어져 나갔다고 낙망해서는 됩니다. 이상한 것은 식구가 나가면 사람과 성격도, 말하는 것도, 걸음걸이까지도 비슷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신기할 정도로 나간 사람과 너무도 닮은 사람이면서도 모든 면에서 월등히 나은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그런 것을 , 정성들인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42-136)

 

만일 나쁜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을 당장에 처리하지 말라는 겁니다. 나쁜 것이 있더라도 나쁜 것을 좋을 있는 조건을 찾아가면서, 나쁜 것을 보류해 가지고 처리할 있는 여유를 가져야 됩니다. 만일에 1 전에 잘못된 것을 보고 잘라버렸다면 사람은 완전히 죽었겠지만, 1, 2, 3 잘라버리지 않고 보류해 두어 그것을 가외로 생각하면서 처리하게 된다면 1, 2, 3 이후에는 사람이 있는 길도 있는 것입니다. (72-313)

 

새로 들어온 식구를 사랑하면 탕감조건을 빨리 세울 있습니다. 교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은 식구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18-40)

 

교회 초창기 한국에서 식구 기를 때에는 잠도 자지 않았습니다. 일대일(一對一) 작전을 했습니다. 사람을 놓고 강의할 사람, 사람 놓고 강의하는 것과 같은 생각으로 했습니다. 사람에게 수천, 수만 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명령을 해도 들을 있는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정성들여 그럴 있는 동기를 만들어 주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흠모의 심정을 지닌 식구들을 얼마나 만났어요? 선생님은 그런 사람 수두룩하게 만났어요. 끝에서 찾아와 선생님께 경배하잖아요! 그건 ? 선생님이 땅끝까지 사랑의 심정적 줄을 던졌기 때문에, 벌써 전기를 통해 봤기 때문에 방향을 안다는 겁니다. 그래야 됩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진정으로 병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입장이 되어야 됩니다. 병든 사람의 심령 상태가 저하될 때에는 밤이나 낮이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더불어 눈물을 흘리면서 심령을 치료해 주기 위해 노력해야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지도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살려주기 위해 며칠 밤을 새워 봤느냐?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바쁜 걸음을 봤느냐? 그런 것이 앞으로 영계에 가면 표창의 대상이 것이고 인격적인 기준이 것입니다. (42-169)

 

   남녀 문제와 공금에 엄격해야 한다

 

남녀 문제에서 잘못되면 앞으로 용서가 없습니다. 용서보다도 하늘이 원치를 않습니다. 타락이 뭐예요? 성문제를 자아주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아니예요? 남자에게 있어 제일 문제가 의식주 문제, 성욕, 다음에는 물질에 대한 욕망, 욕심, 이런 것들이 죄악의 뿌리입니다. 그걸 주관 못하는 사람은 책임자가 못되는 겁니다. (194-72)

 

남녀 문제가 원수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망치고 천지법도를 어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축복의 자리에 나가서는 된다는 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이 파탄시켜 저나라에서 걸리게 때에는 모릅니다. 책임이 아닙니다. 걸리는 날에는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겁니다. 이를 악물고라도 탈선해서는 된다는 것입니다. (120-202)

앞으로 남녀 문제에 대해서는 각별히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둘이 좋아한다는 남기는 사람은 앞으로 절대 책임자가 됩니다. 그건 해주면 되게 있습니다. (67-55)

 

남녀 문제에 대해 확실히 해야 되겠습니다. 책임자는 원칙에 엄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받는다는 겁니다. 변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한번 문제에 걸려버리면, 영원히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66-220)

 

종교 배후에는 언제나 남녀 문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령한 집단이 반드시 남녀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그거 부딪치느냐? 해와가 타락할 자기 남편 아담과 천사장을 상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날에 가지고 여자는 남자를 대해 선악을 판단하지 않으면 운명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종교에 입문하여 수도하게 되면, 남자에게 최후의 고개에서 미인이 나타나서 유혹하는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 넘어가는 날에는 천길 만길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138-240)

 

교역자들은 지금 아들딸들을 키우고 있는데, 비양심적인, 양심의 가책을 받는 놀음을 하고, 혹은 공금을 함부로 쓰고. 차라리 굶는 낫다는 겁니다. 굶으면 하늘과 땅이 동정합니다. 굶는 사람을 동정 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식도 굶을 먹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게 사람을 언제나 동정해 줘야 하는 것이 인정의 원칙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범이 형장에서 사형을 당하게 , 그에게 ' 마지막 소원이 뭐냐?' 물으면서 그때만은 들어주잖아요? 그러니 슬프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동정해 줘야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6-146)

 

통일교회 간부들 가운데 공금이나 물질에 대한 것을 잘못 다루고 인정에 의해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공금을 쓰며 심정적으로 유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아들딸 앞에 독약을 배급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사탄세계에서 이것이 걸리는 것입니다. 공금에 대해서는 어떻게 것이냐? 공적으로 어떻게 결정해서 처리할 것이냐? 앞으로 통일교회 교역자들은 일대 혁신을 해야 합니다. (46-61)

 

영계법(界法) 가운데서 제일 무서운 공금 횡령과 공적인 사람 푸대접하는 것입니다. 제일 무서운 그겁니다. 책임자라든가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푸대접하면 나라가 걸리고 세계가 걸리는 겁니다. (96-130)

 

인간 생활에 있어서 물질을 소홀히 하지 말고, 공금을 다뤄야 됩니다. 자기가 출세했다고 해서 사람을 마음대로 인사조치할 없는 겁니다. 공금을 잘못 다루면 하늘나라의 헌법에 걸리는 겁니다. 자기가 출세해서 들어간 곳에 자기 원수의 아들딸이 있다고 해서 데로 뽑아 돌려서 죽을 자리에 보내게 되면 문제가 벌어집니다. (196-213)

 

선생님이 공금을 때에는 전체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19-266)

 

앞으로는 공사(公私) 문제를 철저히 해야 되겠습니다. 공금은 사탄이 풀어 놓은 독약입니다. 그런 공금을 잘못 사용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공금으로 일은 벌어지는 것입니다. 간신도 거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것 때문에 나라가 망하기도 하고, 나라를 팔아먹기도 하는 것입니다. (33-125)

 

내가 피땀을 흘려 벌어놓은 돈을 함부로 씁니다. 함부로 쓰는 날에는 팔족(八族) 아니라 자기 선조까지 걸립니다. 무서운 겁니다. 하나님이 ()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들이 나라의 국고금(國庫金) 잘라먹으면 벌을 받지만 하나님의 공인을 받은 하늘공금을 잘라 먹으면 천벌 받는 겁니다. (85-141)

 

 4) 설교는 은혜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

 

   설교의 실제

 

설교는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을 느끼는 것과 같은 자리에서 설교해야 합니다. 정신을 전부 거기에 집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설교 단상에 때는 해산부(解産婦) 산실(産室)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경지에 가면 준비가 필요없습니다. 설교 내용이 문제가 아니고 그런 심정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96-168)

 

설교하는 시간은 어떤 사람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느냐 지옥에 들어가게 하느냐 하는 경계선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대해 궁금했는데 가보자!' 하고 교회에 왔는데 ' 설교가 뭐야?' 그렇게 되면 사람을 완전히 모가지 자르는 것입니다. 공판정에 판사가 선고하는 시간보다 심각한 자리가 설교하는 자리입니다. (96-168)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하기 힘든 것이 앞에 나와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나와 얘기를 하면 모든 사람이 주목합니다. () 갑대로, () 을대로, () 병대로, 혹은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자기들 나름대로 전부가 듣고 비판이나 판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 앞에 나와 말하는 사람은 힘들다는 겁니다. (39-150)

 

교역자는 설교에 대한 것을 보충하고, 특히 교인들에게 필요하고 도움될 있는 것을 언제든지 공급해 주어야 됩니다. (56-12)

 

영적 지도자는 체휼신앙이 없어 가지고는 일을 못하는 것입니다. 책을 가지고 설교 준비하고, 책을 가지고 설교하고 그러는데 가운데 하나님이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신령을 통하지 않고는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76-151)

 

여러분이 설교할 , 제목으로 옛날에 했다는 것을 식구들이 알면 기분 나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춘하추동 사계절에 따라 변화를 느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라고 해서 기분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 걱정 없는데도 유난히 우울한 날이 있다는 겁니다.

아침 햇살도 밝고 상쾌한 날씨인데도 자기 스스로 우울할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결되느냐 ? 갑자기 이것을 변동시키는 자극적인 것이 없거든 우울한 자리로 찾아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반대적일 있는 새로운 자극을 준다든가, 혹은 그것을 극복할 있는 직접적인 새로운 자극을 일으켜서 보충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해결 방안을 세워 하루 하루의 생활을 조절해 나가지 못하면, 앞으로 인간들의 심령을 지도할 없을 것입니다. (56-12)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기도를 해서라도 보충해야 됩니다. 그래서 되면 생명을 걸고서라도 담판을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30-126)

 

준비 못한 설교를 가지고 은혜를 때는, 안간힘을 다하고 되게 때는 돌아들어와서 그저 대성통곡하는 시간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부끄러운 겁니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발전하는 것입니다. (96-168)

 

아침밥을 먹을 새밥 먹지요? 새맛이 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설교할 때에도 새것으로 해야 됩니다. 영적인 면에서 새로운 무엇, 보양제(補養劑) 할까, 그런 것을 공급해 가지고, 거기에 가미(加味)시켜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미료를 쳐서 신맛이라도 내고, 짠맛이라도 내고, 그렇지 않으면 쓴맛이라도 가지고 새맛을 내야 합니다. (75-176)

 

은혜를 주고는 설교를 시간 하고 왔으면 시간 회개해야 됩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설교를 잘못해 은혜 주고 그럴 때는 3 이상 회개해야 됩니다.

생명을 위해 생명의 물을 주어야 되고 가꿔 주어야 될텐데, 물을 것이 아니라 물을 빼앗고 땅을 뒤집어 놓고 왔다면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오늘의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은혜를 베풀어야 된다는 겁니다. (1969.5.12)

 

주일날만 되면 '성경은 어디를 볼까? 찬송가 나오너라, 성가 나오너라!' 그래서는 됩니다.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사람들에 대한 재료를 중심삼고, 성경에서 그와 같은 역사를 가지고 사람의 일과 성경의 내용을 대조해 가면서 재미있게 설교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이 자기 일을 말하니까 홀딱 반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겁니다. 책보고 하려고 생각지 마십시오. 사람에게서 책도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 자체가 책의 원본(原本)이란 것을 알아야 됩니다. (46-265)

 

교역자는 고생을 많이 해야 됩니다. 인생 수련을 많이 해야 됩니다. 불쌍한 노동자로부터 거지, 혹은 고급 관리, 혹은 권세권(權勢圈) 있는 자리까지 경험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런 상황을 중심삼고 그런 때에 공적 입장에서 겪었던 사실, 그런 놓고 자기가 체험한 얘기가 실감이 나는 겁니다. (1969.5.12)

 

   참아버님의 설교

 

선생님은 설교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보다도 식구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갖습니다. '아버지! 이들을 이끌어 올려야 되겠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것입니까, 저것입니까?'하고 정성을 모은 다음 마음의 명령대로 설교합니다. (9-81)

 

선생님은 설교를 위해 준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체험으로 사실을 말할 때는 모두 감동되지 않을 없는 것입니다. (16-345)

 

선생님은 함흥에서 굴을 뚫는 일을 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픈 가운데 일을 하니 곡괭이를 움켜쥔 손이 올라가지 않고 정신마저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다!' 하는 소리를 들었을 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때의 ! 밥을 먹기 위해 곡괭이를 땅에 박고 돌아서는 순간의 기분, 선생님에게는 그와 같은 역사의 재료가 헤아릴 없이 많습니다. (30-152)

 

비참했던 복귀의 사연들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청사(靑史) 길이 빛날 자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간직한 보화를 끌어모을 있는 그날까지 가야 됩니다. 그런 수난의 사실을 세계 만민 앞에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다른 내용으로 시간 설교하는 것보다 내용으로 10분만 이야기하면 통곡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좋은 설교 내용이 어디에 있겠느냐 이겁니다. (30-152)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면 설교 준비 하지 않았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 훈련도 필요합니다. 내가 유명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하루에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때는 장소에 따라 내용이 다른 이야기를 해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준비해 가지고 하나요? 그럴 때의 마음은 완전히 제물로서의 자각을 하는 겁니다. ''라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소유관념도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바쳐지는 자리에 서면 하늘이 같이해 주는 겁니다. (60-348)

 

여러분들이 언제나 주의해야 것은 선생님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통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는 것이 여러분이 설교하는 있어 제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은사를 베풀 있는 동기가 되는 겁니다.

선생님이 시간에 무엇을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고 하고, 상대적으로 심정적 기준을 선생님과 일치시키기 위해 마음을 끌어올려서 선생님 마음을 어떻게 대신할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 앞에 상대적 입장에서 움직이게 되면 천운(天運) 거기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60-349)

 

주일날 설교할 때는 심각할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 같으면 밤잠을 잡니다. 어떻게 잠을 있어요? 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주사(注射) 놓는 것입니다. 강장제 주사 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식구들에게 일주일 동안의 약을 주고 강장제 주사를 놓아야 되는 겁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람에게 주사할 심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입장에서 지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 나설 때는 형장(刑場)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59-33)

 

설교할 때는 땀을 흘려야 됩니다. 뒷골에 땀이 흘러야 된다는 겁니다. 눈물과 땀이 없으면 됩니다. 그건 철칙입니다. (1969.5.12)

 

설교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일생 동안 설교한 200권이 넘는 설교집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서 문답하게 ' 보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했소.' 그러겠어요? 영어로 아예 번역을 시킬 것입니다. 이거 읽고 가면 큰일납니다. 지도자들이 이걸 읽으면 큰일나는 겁니다. (173-76)

 

 5) 헌금은 법도에 맞게 드려야 한다

 

   십일조 드리는

 

공금에 대해 엄격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철저히 해야 합니다. 자기 총수입에서 () 일조(一條) 반드시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됩니다. (11-218)

 

십일조는 소유하고 있는 물질 중에 십분(十分) ()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전체를 바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전체를 바치지는 않지만 가운데 하나를 정성들여 바침으로써 남은 아홉도 거룩한 물건으로 취급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십일조를 바치며 사는 사람은 절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창고가 불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31-239)

 

정성들여 십일조만 해보면 절대 굶어죽지 않습니다. 후손이 물질에 대한 궁핍을 당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십일조 드리기 위해 정성을 들여라,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적당히 하면 되겠거니 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제물은 생명 대신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귀한 것을 바쳐야 됩니다. (63-338)

 

탕감을 하기 위해 물건을 조건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늘 앞에 바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9수는 타락세계의 (), 10수는 이것을 벗는 수요, 하늘세계의 수입니다. (10-217)

레위 족속이 치리(治理)하는 교회 제단 앞에 열한 지파는 전부 십일조를 바쳐야 됩니다. 앞으로 십일조 바치면 교인이 아닙니다. 원래는 () 삼조(三條) 바쳐야 됩니다. 하나는 자기 나라를 위해서, 하나는 세계를 위해서, 하나는 교회를 위해서. 십의 삼조를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는데 생활의 십일조를 내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그걸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침범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냐 하면 9 삼삼은 (3×3=9), 이것을 사탄이 지금까지 지배했다는 겁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위에 9수를 하늘앞에 맡겨 연결시킴으로써 하나님이 주관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10수를 찾아 놓을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믿고 9수를 끌고 들어가면 9수권(九數圈) 내의 모든 소유권을 사탄세계에서 분리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십일조라는 말이 나왔다는 겁니다. (150-299)

 

복귀도상을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우리는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삼조까지 각오를 해야 됩니다. 하나는 나라에 바치고, 하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복귀과정에서는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는 하늘나라에 바쳐야 됩니다. 십의 일조라는 것은 하늘의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절대 침범해서는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효성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헌금할 사먹다 남은 돈으로 헌금하겠다고 해서는 됩니다. 그런 돈은 더러움을 것입니다. , 시장에 가서 사다가 남은 돈으로 헌금을 하게 되어도 하나님은 거기에 같이하시지 않습니다. (48-86)

 

제물은 남이 남긴 가지고는 됩니다. 그것은 더러움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면 대번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곳에는 가게 하는 겁니다. (30-133)

 

앞으로의 모든 물건은 최후로 세계의 물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하나님의 것이요, 세계적인 참부모의 것이 되고, 세계적인 참자녀의 물건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물건을 그런 물질로 복귀시켜야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철저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23-336)

 

자기가 쓰는 데서 얼마 헌금해 가지고 그것으로 교회를 지탱한다는 것은 지극히 좋은 같지만 나쁜 겁니다.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은 자기 생활보다, 자기 전체보다도 먼저 해야 텐데, 그거 퍼센트 바친다는 관념으로 인해 자기 생활이 위주요, 하나님이 다음 단계에 서는 것이 상습화 되기 쉽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둘째가 되고 꼴래미로 버립니다. 그럴 같아요, 그럴 같아요? (96-101)

 

여러분이 헌금을 하게 때는. 아이들이 주일날 아침에 교회에 '엄마, 아빠, 연보, 연보!' 하게 되면 얼마짜리 주면서 '야야, 연보다. 주일학교 연보 해라!' 이래요. 하나님이 거지예요? 교회 목사가 거렁뱅입니까? 그런 목사, 그런 교회는 안됩니다.

헌금은 자기 재산의 () 드려야 됩니다. 자기 금고의 제일 깊은 곳에 넣어두고 정성들여 준비해야 됩니다. 추수하는 가을이 되어 모든 곳간에 곡식을 거둬 들일 때도 십일조를 따로 쌓아 둬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일년동안 아들딸 일가가 합해 가지고, 정성을 들여서 사랑의 마음을 겸해 가지고 제물로 바쳐야 되는 겁니다. (166-71)

 

제물 드렸다가 제물 찾아가는 법은 없는 겁니다. 찾아가는 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높은 데를 위해, 책임자가 높은 데를 위해 쓰면 그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낮은 데를 위해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써도 된다 그말입니다. (125-188)

 

우주를 창조하고 절대전능하신 하나님에게 거지한테나 던져 주는 그런 가지고 좋아하면서 ' , 복받을 패들이여! 너희들은 사랑스런 종교인이다.' 하고 내세울 있어요? 사탄 앞에 위신이 서겠느냐 말입니다. 연보대를 돌리면서 돈내라고 합니다. 그건 간판 붙은 거지나 마찬가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96-101)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헌금을 하고 그러지만 선생님은 돈을 받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받는 주의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모으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느냐? 그것을 내가 알고 그것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주체적인 입장에 서지 않고는 받는 것입니다. 마음 자세가 그렇기 때문에 주고 나서도 주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에게 깃드는 것입니다.

정성들인 헌금이나 예물을 대할 가치를 모르고 대하다가는 정성들인 예물에게 심판당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군왕도 자기 처신을 잘못하다가는, 정성들인 사람을 함부로 대하다가는 망하게 됩니다. 정성드리는 사람을 잘못 대하다가는 하늘의 역적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정성 드리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8-143)

 

사적인 물질을 공적인 물질보다 중요시하는 사람은 천도에 위배되는 사람입니다. 사적인 자기의 인격을 공적 인격보다 중요시하는 자리는 뜻에 위배되는 자리입니다. (51-291)

 

기성교회에서 헌금하는 뭐라 그러나요? 주머니 가지고 다니지요? 우리 교회도 헌금을 그렇게 받아? 무슨 조리대 가지고 받아? 나갈 헌금함에 모아 놓는 겁니다. 정성들이고 은혜받고 가는 대가로서 감사헌금 하게 말입니다. 안낼 사람들은 돌아가고. 시시한 받아 가지고, 그것 하늘이 원치 않습니다. 정성어린 , 어머니 아버지 주머니에 있던 그냥 못합니다. 전부 자기 몸에 3 이상 지녀 가지고 성별하고 헌금해야 됩니다. 점심 한끼 값도 되는 것을 어디에 헌금을 해요? 자기 생명 재산을 전부 털어넣어야 텐데도 불구하고. (166-319)

 

처음 것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숫것은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숫것이 없는 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습관을 그렇게 나가야 됩니다.

십일조는 제일 정성들인 숫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물입니다. 제물을 드리는데는 숫것을 드려야 합니다. 아들을 제물로 드린다면 어떤 아들을 제물로 드려야 되겠어요? 미운 아들? 소망이 없는 아들? 그런 아들은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아들이어야 합니다. 그러냐? 제물은 '' 대신이기 때문입니다. (48-85)

 

지금 자기가 갖고 있는 물건, 혹은 자기 소유의 재산은 자신이 잠시 관리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관리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관리해서 봉헌해 드려야 만물은 참부모의 품을 거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것임과 동시에 참부모의 것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23-334)

 

복귀노정의 원칙적인 기준으로 , 만물은 먼저 인류 시조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이 인간 앞에 내려주신 축복의 기준을 중심삼고 , 인간 시조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타락하지 않은 () 부모의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3-332)

 

타락은 자기 것을 만들려 하고 자기가 소유하려고 데에서 연유됩니다. 하나님과 메시아가 오시는데 이와 같이 했다가는 반드시 사탄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의 도리를 통해야 하는데, 언제나 번번히 타락한 세계의 그러한 고질된 사연이 남아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유를 하나님을 위해 쓰자고 어떻게 하겠어요? 나는 꿈에도 내가 벌어들인 것을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30-10)

 

' 것은 것이요, 것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은 나의 것이다.' 하는 이것이 우리의 주류사상입니다. 먼저는 물질 축복시대를 거쳐 인간 축복시대가 오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위주로 심정 축복시대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12-59)

 

지금까지 인간이 복귀되는데 만물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지 모릅니다. 또한 만물과 인간이 하나되지 못하면 아버지 앞에 없습니다. (20-326)

 

   생활에도 십일조가 있다

 

교회의 십일조 생활도 식구가 가정이 있으면 인도자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천민권(天民權) 가질 없습니다. 사람이 살면 하늘 사람 사람을 부양(扶養)하여야 합니다.

십일조는 모든 면에 있습니다. 학교도 교실 중에 교실은 불쌍한 자녀들을 위한 무료 봉사의 교실로 써야 되는 겁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 시간까지도 십일조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무슨 물질만이 아닙니다. 만일에 가족이 사람 있으면 사람을 놓아야 됩니다. 그런 기준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 식구는 십일조 못하면 됩니다. 십일조 못하는 사람은 식구가 아닙니다. 이건 의무적입니다. 천적인 의무란 말입니다.

주일은 십일조의 날이니 나의 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명령대로 복종할 날인 것입니다. 하늘의 것을 것으로 쓰고자 하는 것이 죄입니다. 자식 중의 하나를 하늘 앞에 바쳐야 하며, 그럴 없으면 남의 자식이라도 공부를 시켜 하늘 앞에 드려야 합니다.

국수 그릇을 먹더라도 혼자 먹어서는 됩니다. 하늘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자로서 혼자 먹기 미안하거든, '동반해 계신 아버지 앞에 혼자 먹을 수밖에 없으니 민망합니다' 하며, 아버지가 같이 참여하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반드시 부모를 먼저 대접하는 입장에 세워 놓고 살아가야 된다 이겁니다. 옷을 입어도 혼자 사입습니다. 그런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50-301)

 

   탕감기금

 

타락인간이 부모를 죽인 , 자녀를 죽인 , 만물을 잃어버린 죄를 어떻게 탕감할 것인가. 유다가 예수님의 몸을 팔아 나그네의 묘지를 샀습니다. 고로 탕감기금으로 성도들이 머물 있는 집을 마련해야 됩니다. 원래는 본부를 사야 합니다.

열두 제자가 팔았기 때문에 4년에 12,000원을 헌금해야 합니다. 탕감기금은 중에도 제일 귀한 돈을 바쳐야 합니다. 기금 헌납은 아버지와 (아벨) 죽인 죄를 대신 탕감기금(기본적인 )으로 대신하는 것이고, 자녀들에게 있어서는 아버지와 형의 피값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기금에 보태어 성전(聖殿) 지어야 합니다. (1964.5.12. 본부교회)

 

탕감기금은 정성을 들여서 갚아야 합니다. 탕감기금은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입을 것을 입지 않고 정성을 들여, 남의 손을 거치지 말고 자신이 직접 내야 합니다. 탕감기금을 전통으로 하여, 우리의 후손들도 전부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이것을 다하게 되면 국가의 운세는 넘어갑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천길 만길 속에 샘이 끓고 있어 구멍만 뚫으면 폭발할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모르는 가운데 이러한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제관(祭官)으로서의 책임을 지고서 제물을 바칠 있어야 합니다. (14-97)

 

사람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참아버지로 오신 예수님을 지상에서 몰아낸 입장이 되어 하나님의 섭리는 사방 팔방으로 완전히 막혀 버렸습니다.

이것을 탕감하는 조건으로 4년간 3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예수님을 팔아먹은 실체 값으로 하나님께 되돌려 드려야 합니다. 4년간이라는 것은 동서남북에 맞먹으며, 한국에서는 1년에 3천원 4년간에 걸쳐 낸다는 조건으로 1 2 원을 헌금합니다. (1966.2.2. 동경교회)

 

우리는 하늘과 땅의 원한을 풀고 땅에 막혀 있는 성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자리를 닦아 나오며 희생한 도인들을 중심한 본부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탕감기금은 세계적인 탕감을 하는 것입니다. 탕감기금은 피와 땀을 흘리며 정성을 모은 것으로 내야 합니다. 은행에 저금했던 것을 찾아서 내면 됩니다. (14-977)

 

주님은 역사의 탕감조건을 세우고 피흘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하늘 땅의 원한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한을 풀었으니 이것을 풀도록 하기 위한 조건이 탕감기금입니다. 부모는 승리하였으나 자녀들이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승리하신 부모의 기반 위에 부모를 팔았던 한을 해원성사해야 합니다. 탕감기금을 납입해야 비약적 발전이 옵니다. 자녀가 아무리 부모를 맞이했고 하늘 땅을 가졌다 하더라도 참부모가 흘린 피의 한을 풀지 않으면 됩니다. (1964.6.14. 대구교회)

 

식구들은 탕감기금을 솔선해서 납부해야 합니다. 눈물과 땀과 피의 한을 탕감할 조건을 세워 승리해야 새로운 섭리가 있게 됩니다. 민족적인 기반 위에 국가적인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한국 민족이 가장 불쌍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가장 비참한 위치에 있어야 주지 않고 탕감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14-73)

 

탕감기금은 중에서 제일 귀한 돈입니다. 기금에 일화가 많아야 합니다. 비참한 일이 많아야 합니다. (14-69)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던 피값으로 나그네의 묘지를 샀습니다. 고로 탕감기금으로 성도들이 머물 있는 집을 마련해야 됩니다. 원래는 본부를 사야 합니다. (14-69)

 

 6) 하나님은 공적 기도를 받으신다

 

   인사하는 데도 인사법이 있지 않느냐?

 

신앙자는 보다 것을 위해 공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28-271)

 

선생님은 흥남 감옥에서 3 가까운 세월을 보냈지만, 가운데에 몇몇 식구들을 위한 기도는 밥먹을 때부터 잠잘 때까지 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설령 떨어져 나간 사람일지라도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선생님을 찾아와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며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약해 어쩔 없이 선생님을 떠나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며 떠나는 비참한 정경은 동정하지 않을 없습니다. 그렇게 떠나갔어도 사람 위해 기도해 주지 않으면 됩니다. 왜냐?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계승자가 나올 때까지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정성의 토대만 남아 있으면 아무리 식구가 떨어져 나갔다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뜻있는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42-163)

 

내가 고문을 당해 피를 토하며 쓰러지더라도 '하늘이여, 피를 보고 때문에 눈물 흘리지 마시옵소서. 이것은 부끄러운 피가 것이고, 탄식에 젖은 원한의 눈물이 것이어늘 여기에 하늘이 동정하는 것을 원치 않사옵니다.'라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심정세계에 있어서는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6-20)

 

세상에서 인사를 하는 데는 법이 있지 않느냐? 기도하는데도 연구를 해서 하라. (뜻길)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기도하게 되면 먼저 하나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을 위해 기도할 알아야 역사적인 심정을 압니다. 다음에 천지 창조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계의 훌륭한 뜻을 대신해 싸워 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기도해 줘야 합니다.

타락 이후 아담 해와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걸음걸음을 나가면서 '그들에 맺혀진 한을 해원하는 제물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고 이것이 끝난 후에 사랑하는 아들딸을 위해 기도하고 다음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겁니다. 천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959.10.8)

 

눈물을 흘리며 뼛골이 녹아나는 심각한 경지에 들어가서 일대 일로 판가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눈물지을 하나님이 눈물짓고, 하나님이 눈물지을 내가 눈물짓는 그런 자리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주고받을 있는 경지에 들어가야 됩니다. 무슨 일이든 그래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기도를 해야 합니다.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뿌리가 기도입니다. (31-290)

 

정성을 들이는데는 '절대 믿습니다' 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절대 믿습니다' 뜻이면 뜻을 대해 '절대 믿습니다' 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만 하나님이 협조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도 시시하게 기도가 이루어질지 이루어질지 의심해 가지고는 됩니다. '아버지여! 나만 남았나이다. 내가 아니면 나라가 없어지고 세계가 없어질 것이온데, 아버지여, 당신이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신 경지에, 경계선에 혼자 남았나이다.

당신이 성취시킬 가까이 있는 자가 나밖에 없잖습니까?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중요하지만 저는 아직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러한 저에게 명령하셨으니 제가 그럴 있는 조건, 그럴 있는 기반을 갖추어 전체 민족을 대신하겠습니다. 이것이 복귀섭리가 아니옵니까?'라고 있어야 됩니다. 기도는 목적 완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9-197)

 

기도할 때는 처음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음은 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해방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편안한 자리에 계신 알아요? 자기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상의 운세가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면서 ' 주님, 천국 보내 주소서' 하고 있습니다. (14-65)

책임자로서 본질적인 원리적 궤도를 어떻게 가야 되느냐 하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기도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느냐? , 식구를 위해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내가 식구와 더불어 얼마나 관계를 맺느냐? 이것이 둥그래지게끔. 그걸 위해서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복받으면 하나님을 버립니다. 복받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살게 되면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찾아드리겠다는 관점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에 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1983.5.1)

 

스승을 스승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아버지 앞에 기도를 하더라도 떳떳하게 '아버지여, 당신의 아들딸이 왔사옵니다. 당신이 만나고 싶어하시던 아들딸이 왔사옵니다.'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 보든지 보든지 일은 내가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약속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전체를 위해 기도해야 그것이 기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기도가 달라지고 제목이 달라지면서 발전하는 겁니다. 지금 때가 어떤 때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이면의 생활을 기도생활을 통해 갖춰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04-111)

 

선생님도 자연을 좋아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고요한 밤을 좋아해요. 그러나 그런 얘기를 하지, 선생님에게 그런 없겠어요? 여러분들에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생활의 풍부한 저변 기반을 닦을 있는 것도 기도 이외에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04-111)

 

복이 따로 있는 아닙니다. 자기의 심정적 자세에 따라 복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정성 들이는 뭐예요? 정성들이고 '아멘' 하고 나와 가지고, 우는 애기 있으면 궁둥이를 발길로 차고 들이 제기고 이런다면 집안을 암만 해도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기도, 간절한 기도를 했으면, 간곡한 마음과 아름다운 마음으로 환경을 처리해 가지고 기도하는 기준의 상대적인 자리에서 결실을 맺을 있는 자세를 준비해야 됩니다.

오늘날 기성교인들, 찬송 부르고 예배 보면 하늘나라 가요? 천만에! 교회에 갔다 가지고 싸움질하고 주먹질이며 별의별 하고는 하늘나라 가겠어요? (233-210)

 

   참부모님 이름으로 기도한다

 

기도할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데 참부모가 뭐냐? 말을 선생님과 어머니만을 두고 생각지 마십시오. 보다 높은 차원에서 세계를 품고 민족 감정이나 국가 감정을 넘어서 만민을 진실하게 하나같이 사랑할 있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경지의 참부모 기준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33-143)

 

지금 때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는 때가 아닙니다. 지금 때는 이름 구원시대가 아닙니다. 실체 구원시대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지 예수님의 이름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있습니다.

그러나 실체는 하나뿐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하늘나라에는 예수님 실체를 타고 가야지, 이름을 타고 가겠습니까? (13-63)

 

통일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어이쿠, 참부모가 뭐야? 뭔데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 참부모가 뭔지 알아요? 참부모란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천세 만세에 자랑할 있는 조상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세워진 인류의 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새로운 조상이 있어야 하나님 또한 새로운 조상을 중심삼고 섭리하기 때문에 새로운 조상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치가 맞는 것입니다.

예수님 분으로는 통하지 않기에, 예수님과 성신을 통해야 합니다. 예수는 아버지 신이고 성신은 어머니 신이니 타락한 인간들은 누구나 부모의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 안합니다. 부모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부모도 참부모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뜯어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뜯어고쳐야 되는 모르고 있으니까 주춧돌을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이걸 비뚤게 놓고 거기에 들어가서 살자고. 태풍이 불었다간 옥살박살이 납니다. (48-228)

 

 7) 전도는 사랑찾기 운동이다

 

   전도는 2 나를 만드는

 

전도가 뭐예요? 길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니 얼마나 위대한 겁니다. 본성의 인간을 보고 ' 어디로 거야?' 하고 물으면, '아이구! 세계를 통해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되겠다' 그런다는 겁니다. 길을 개척해 주니 얼마나 멋지냐는 겁니다. 핍박을 받고 그저 받고 받고. 언제나 세계를 통해서 하늘로 돌아가는 겁니다. (117-102)

 

내가 생명을 바쳐 악을 굴복시키면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옵니다. 이것은 공식적입니다. 저울 추와 마찬가지입니다. 쪽이 내려가면 다른 쪽은 올라가게 되는 겁니다. 악을 많이 제거하면 선이 올라가고, 악을 많이 갖게 되면 선이 내려가는 것입니다. 악을 제거하는 만큼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라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했으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40-243)

 

여러분이 봄을 맞이하는데, 전도하는 뭐예요? 전도해서 하자는 거예요? 여름날을 맞자는 겁니다. 좋은 날에 있어 가지를 뻗게 하고 잎을 뻗게 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때요? '아이구, 3년동안 전도했기 때문에 이제 집에 돌아가 가만히 있어도 되지.'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것이 열매맺더라도 열매를 증거할 있는 생명의 여력을 갖지 않으면, 동삼삭(冬三朔) 북풍한설(北風寒雪) 몰아치게 때는 말라붙어 쭈그러드는 것입니다. (1968.3.1)

 

전도는 2 나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18-186)

 

아무리 시대적인 하루의 생활이라도 전도하는 하루는 영원과 관계를 맺는 겁니다. 그런 질서의 기틀 위에 우리의 조각 조각의 행동이 전체, 혹은 영원과 관계를 맺고 그것이 없어지지 않고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152-219)

 

전도하면 기쁩니다. 반면에 전도하지 않으면 기쁨이 오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일을 하면 괴롭기 때문에 합니다. 전도를 하면 욕먹고 나서도 기쁜 것입니다. (19-22)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체험하게 되면, 전도하지 말래도 전도하게 됩니다. 전도하는 일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놓고 진지하게 대화하면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고 나서 교회에 와서 기도해 보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발전할 , 반드시 자신도 발전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올라가는 겁니다. (30-154)

 

영계에 가면 자랑할 것이 전도밖에 없습니다. 영계는 돈많이 가졌다는 것은 자랑할 거리가 됩니다. 세상에서 권력을 가졌다고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생명을 얼마만큼 살려 주었느냐, 이것이 자랑이 됩니다. 갑이면 , 을이면 , 혹은 종족을 초월하여 수많은 민족을 새로운 생명과 관련시켜 얼마만큼 살려 주었느냐? 그것이 재산이 됩니다. 재산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30-148)

 

영계에는 없는 것이 없어서 그리울 것이 없지만, 가장 그리운 것이 있다면 참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람을 양육하기 위해 공을 들인 공신은 천상세계에서 당연히 영광의 아들딸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랑할 것은 전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30-148)

 

여러분은 전도 대상자를 놓고 밤을 새워 통곡하며 기도해 봤어요?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가 죽은 이상으로 슬퍼하면서, 혹은 사랑하는 애인이 죽은 이상으로 슬퍼하면서 통곡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해봤으면 해봐야 됩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통곡을 해야 합니다.

하나의 생명을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도 아까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옷이나 집이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을 사랑하기에 미쳐야 합니다. (34-270)

 

여러분이 교회 나올 때는 자기 부모 처자를 전부 데리고 나오라는 겁니다. 형님 누나 데리고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 사촌이나 사돈의 팔촌까지 전도하기 위해 얼마나 피눈물을 흘려 봤느냐? 생명을 끌어주기 위해 밤을 새우면서 정성을 들여 기도하면서 얼마나 몸부림쳐 봤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처한 환경에서 중심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 나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41-90)

 

전도를 하려면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해야 합니다. 표정이나 걸음걸이만 보고도 사람이 좋아하겠는지, 싫어하겠는지 알아야 됩니다. 사람의 감정을 공식적으로 감정(鑑定)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42-174)

 

전도 나가게 돈이 없어서 나간다는 얘기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갖고 나왔어요?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갖고 했어요? 생명을 갖고 겁니다. 갖고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는 피로 탕감한 역사입니다. 갖고, 생명을 갖고 것입니다. 갖고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런 마음을 갖고 나가면 하늘이 역사하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154-210)

 

전도 나갈 때에는 돈을 가지고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심정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27-267)

 

여러분이 전도를 하러 나간다 그냥 가지고는 됩니다. 얼마만큼 정성을 들여 가지고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을 전도하는데 일주일이나 , 혹은 일년, 이년, 삼년은 걸릴 것이다 하면 기간 동안 정성들여야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밥을 먹으나, 자나 깨나, 오나 가나, 혹은 쉬거나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일체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 앞에 완전히 전부 주어 보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면 완전히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42-228)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얼마만큼의 정성을 통해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데 있어 얼마만큼의 정성을 통해 사랑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영계에 가서 인격이 되는 것이요, 영광의 터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42-228)

 

전도하기 위해 밤을 새워 봤어요? 선생님은 밤도 많이 새워 봤습니다. 저나라에서 물어볼 것입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밤이나 새워 봤느냐고. 여러분은 모든 힘을 바쳐 전도해야 합니다. (10-252)

 

투망으로 고기잡을 , 추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마리라도 잡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추와 같은 입장이니 사탄권 내에 있는 사람을 사람이라도 하늘편으로 이끌어오고 싶은 마음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12-19)

 

다른 사람을 전도할 있는 정도까지 길러 놓아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은 전도한 사람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29-196)

 

정성들여서 얼마나 하늘이 협조하는가 보십시오. 땅에서 자기의 친척과 친지를 전도하지 않으면 저나라에 가서 그들의 참소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18-134)

 

전도를 하는데도 장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라는 겁니다. 효과적으로 하라는 겁니다. 옛날에는 전도를 가든가 어디 가더라도 아무 준비 없이 다녔지만 이젠 준비하고 다니라는 겁니다. 정성들이고 다녀야 합니다. 옛날과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102-45)

 

여러분은 ' 인간' 철학을 탐구해야 합니다. 항상 내가 어떻게 하면 사람을 선생님한테로 또는 여러분에게 인도해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로 끌려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한 오직 가지 방법이 있는데, 선생님이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정신입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쪽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52-276)

 

사람을 찾기 위해서 절기와 같은, 여름 절기와 같은, 가을 절기와 같은, 겨울 절기와 같은 지방에 가서 눈물과 피땀을 흘리겠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절기의 사람, 여름 절기의 사람, 가을 절기의 사람, 겨울 절기의 사람, 춘하추동의 사람을 사랑하고 가겠다. 겨울 절기의 사람, 소련 사람까지도 사랑하고 가겠다.' 해야 합니다. 그러고야 자기 상대를 사랑할 있는 겁니다. 그게 복귀의 프로세스(process:과정, 방법)라는 겁니다. (96-152)

 

정성을 들여 주었는데 그가 말을 듣는다고 외로워 하거나 슬프게 생각해서는 됩니다. 천리원칙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서럽거나 외롭지 않습니다. 때가 가까워 오기 때문에 봄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그러나 정성을 들여 주었는데 그것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을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때가 가까워 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42-174)

 

   수련과정과 7 금식

 

통일교회는 2 수련과 7 수련, 21 수련, 40 수련을 합해서 원칙은 6개월 이내에 70 수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이요, 조항입니다. 그래야 통일교회가 어떻다는 것을 압니다. 120 수련을 받으면 통일교회의 위신과 체면을 세울 있는 정회원이 됩니다. 2일부터 120 수련까지를 제도화해 놓았기 때문에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공통입니다.

끝날에는 3 심판을 거쳐야 합니다. 3 심판은 진리 심판과 인격 심판과 심정 심판입니다. 여기서 교리는 진리입니다. 3 심판을 거쳐야 참부모와 인연을 맺는 자리에 참석할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영계에 , 일주일 이상 하늘을 위한 금식을 하지 못했을 때에는 저나라에 가서 입적을 못하게 됩니다. ? 하나님은 6천년 복귀역사 노정에서 수고했으니 그것을 생각하면서 금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7 금식기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을 고생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앞에 육신을 쳤다는 조건을 세우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육신을 쳐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 원수의 , 놈의 고깃덩이야! 속에 피가 준동하고 있구나' 하면서 칼로 찔러야 것을 고맙게도 예수님께서 대신 찔림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셨습니까? 예수님의 피와 살을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을 대신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7-182)

 

 8) 탕감과 봉사와 헌신 생활

 

   탕감길을 가야 한다

 

통일교인들은 탕감의 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복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나는 복귀하는 것은 좋지만 탕감은 싫어!' 이런 말은 없습니다. 어떤 것이 먼저예요? 복귀가 먼저예요, 탕감이 먼저예요? 여러분은 복귀를 좋아하고 탕감은 싫어 하지만 하나님은 반대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입니까? 하나님 편이예요, 사탄 편입니까? 이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복귀를 좋아하지만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복귀를 좋아할 없다는 겁니다. 탕감을 통과한 후에 복귀됩니다. (116-127)

 

탕감이라는 말을 알면 모두가 제일 좋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탕감이 없으면 복도 없습니다. 통일교회에 무한한 황금덩이가 뭐냐 하면 탕감입니다. 탕감은 죽음을 무릅쓰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있는 놀라운 낱말입니다. (1978.2.26)

 

책임분담과 탕감은 하나는 오른쪽 입장이고 하나는 왼쪽 입장인데, 하나는 오른다리와 같고 하나는 왼다리와 같은 것입니다. 양다리와 같은 책임분담과 탕감복귀를 연결해 놓지 않고는 전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해 봤어요? 탕감 싫지요? 하나님도 섭리도 싫지요? 오늘부터는 새로이 밥먹는 것을 잊어버리더라도, 자는 것을 잊어버리더라도 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잊어버리더라도, 이걸 잊어버려서는 된다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걸 통하지 않으면 되고, 레버런 문도 이걸 통하지 않으면 되고, 전세계도 이것을 통하지 않으면 간다는 겁니다. 통한다는 겁니다. 모두 그냥 통과하고 싶지요? 박사나 교수 자리를 그냥 해먹을 있어요? 코스를 거쳐서 박사가 돼야 박사를 해먹지, 그냥 해먹을 있어요? 거치지 않으면 그건 가짜입니다. (124-106)

 

탕감조건은 자기 자신이 세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세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은 주관권을 잃은 것을 의미합니다. 복귀를 위해서는 남들이 어떤 관심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확고한 주체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남들은 어떤 길을 가든지 길은 바쁩니다. 옆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거기에 신경 겨를이 없습니다. 밤에 잠잘 시간이 없습니다. 자리잡고 편히 앉아서 밥을 먹을 여유도 없습니다. 그와 같은 절박한 심정을 갖지 않고서는 복귀의 길을 수가 없습니다.

병난 사람이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약이 써서 먹기 싫더라도 먹어야 됩니다. 우리가 약을 살펴보면 좋은 약은 맛이 씁니다. 것이 진짜 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은 약을 먹는 것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복귀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을 절대적인 중심으로 모시고 그를 통해 사랑의 인연을 맺고 사는 곳입니다. 근본을 바로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원섭리를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내세우게 되면 절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은 탕감하여 복귀하는 길입니다. 탕감이란 타락한 경로를 따라서 거슬러 가는 것입니다. 거꾸로 가는 것입니다. (216-16)

 

   봉사와 헌신

 

참사랑의 길은 어떻게 닦을 있는 것이냐? 헌신, 봉사, 그리고 희생을 통해 닦을 있습니다. 이것은 재창조 코스임을 뜻하는 겁니다. 재창조 코스에서 여러분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데, 그런 탕감의 길이 봉사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희생의 길을 통해야 합니다. 우리가 탕감의 길을 걸어 가야만이 하나님 편에 수가 있습니다. 탕감의 기대 위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편에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탕감의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146-264)

 

어느 쪽이 주체이고 어느 쪽이 대상이냐? 누가 따라가야 자리에 있고 누가 이끌고 가야 자리에 있는 것이냐? 하나님은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게 하나님 편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내려다보니 항상 둘이 싸우고 있는데, '어느 것이 편이 것이냐?' 하면 이미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 허허허' 하십니다. ' 편이 되는 사람은 항상 희생하고 헌신 봉사하는 자리에 서는 사람이다. 그런 편에 있는 쪽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쪽이며, 나는 무리를 선택할 것이다' 하십니다. 항상 중심은 희생하고 봉사하는 겁니다. (147-87)

 

통일교회는 위해서 가는 길을 취해라, 위해서 살라, 위해 태어났다 하는 천리(天理) 가르치는 곳입니다. 천국 가는 공식은 간단합니다. 하늘과 땅을 사랑하였다는 조건만 있으면 됩니다. 이것을 위해서 고생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진정으로 일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선한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희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생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하라!'하는 것이 이익보는 아니라 희생입니다. 자기 투입입니다. 투입하는 데는 극단에 달할 있는 기준까지 투입하라는 겁니다. 생명까지도 바치라는 겁니다. (78-61)

 

통일교회 주류 사상이 무엇이냐? 위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위해 존재하는 날에는 민족이 반대하더라도 세계를 위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77-302)

 

손님 대접 많이 하고 외부 사람에게 신세 많이 지워준 사람이 있는 자리는 사탄이 넘어올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37-329)

 

여러분을 희생시키고 여러분을 고생시켜서 사랑에 공헌할 있는 공헌자를 만드는 것은, 세계를 대표한 사랑의 결실을 가져오는데 공헌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있고, 인류의 사랑을 받을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운동을 지금 하고 있다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만들고 인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통일교회의 목적입니다. 인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82-53)

 

세계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거지와 같은 모습이라도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통일교회 무리는 빵떡을 먹든, 보리떡을 먹든, 물을 마시면서도 ' 오늘 아침 냉차가 진수성찬보다 맛있군!' 하며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도 '감사합니다' 하게 되면 천하가 운다는 겁니다. 천하를 위해 그런 입장에 서면 주체가 없으니까 천하가 자기보다 낮은 것이기 때문에 천하가 달라붙는 것입니다. (61-210)

 

옛날에는 소를 붙들고 '이랴낄낄' 가지고 기분 나쁠 때가 많잖습니까. 궁둥이를 갈기며 '이놈의 소야, 이래? 내가 있는 정성을 해서 때를 먹으려고 길렀는데 이거 말을 들어?' 하면서 회초리로 사정없이 갈기고 그렇게 하는 것보다도 ', 겨우내 쉬던 너를 인사도 하지 않고 봄날에 끌어내어 가지고 먹이지도 않고 시켜서 미안하다.' 생각하고, 소보다 참는 마음을 갖고 '철버억 철버억' 하면 도리어 하늘이 보게 사람을 가까이 한다는 겁니다.

약삭빠르게 싹싹하고 임시 처변을 잘하는 것보다도 순정을 가지고 복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복된 마음을 갖고 복된 생활을 해야만 복이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127-89)

 

세계는 보다 섭리를 위해 탕감의 목적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한다고 생각하게 , 자기 일족이 아사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보다 이상으로 그것을 알고 하나님을 받아들여야 것입니다. 그러한 날에 있어 어떠한 십자가의 길이 오더라도 십자가상에서 기도하고, 누구보다도 고생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해야 것입니다. 투입하고 투입하며 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229-208)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폭발적이고도 자극적인 힘을 가지고 뜻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가고자 하는 여력이 있습니까? 그런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힘이 없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분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32-21)

 

역사 이래 하나님의 뜻을 따르던 수많은 종교들은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놀음을 했습니다. '희생 봉사하라!' 이게 그런지를 지금까지 몰랐다는 겁니다. 그것은 본연의 세계가 위할 있는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곳에 있는 훈련과 준비를 갖추지 않으면 됩니다. 따라서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희생 봉사를 강요한 것은 역사시대에 하나님이 역사과정을 통해 섭리해 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임을 여기에서 공인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공인할 있습니다. (77-270)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솟구치고 인류와 더불어 자기 생명을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늘에 속해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로되, 자체를 위주한 사랑과 자체의 가치를 자랑하는 생명력으로서 끝난다면 자신에게서 이미 하나님은 이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길은 하늘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위주한 한계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32-21)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탄의 작전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맞고 빼앗아 나오는 길이 아벨이 가는 길입니다. 사탄은 먼저 치기에 이긴 같지만 나중에는 가지고 있는 자기의 선한 것까지 플러스시켜 가지고 돌려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악한 편이라는 것은 상대를 쳐서 점령했더라도 흥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가운데 있는 선한 것까지 빼앗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찰떡을 가지고 넘겨 주었다가 그것을 찾아올 때에는 찰떡에 보숭이(고물)가루를 묻혀 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때에는 악이 성해 선을 치는 자리에 서지만 그런다고 하늘이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56-85)

순간 순간 필사의 결의를 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 오신 때를 무의미하게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되겠습니다. 이것은 천년사를 두고도 바꿀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니, 이것을 놓치면 큰일납니다.

세상을 모두 잃어버리고 찾았던 것을 놓치더라도 이것만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생명이 없어지더라도 이것만은 남기고 가겠노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온갖 정성을 들이며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26-14)

 

 9) 식구간의 법도와 예절

 

   식구는 천정으로 맺어진 인연

 

통일교회 교인들을 우리는 식구라고 말합니다. 식구라는 것은 형제의 인연을 갖춰야 되고, 부모의 심정을 같이 물고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식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부모를 갖고, 같은 형제의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의 생활과 습관과 전통을 그냥 그대로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기뻐할 있는 가정형태를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만 식구가 이뤄진다는 겁니다. (155-211)

 

오늘날 우리들은 손에 손을 쥐어잡고 모였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생소한 남남끼리 모였습니다. 우리들에게는 피가 통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천정(天情) 통하고 있습니다. 출발이 거룩했기 때문에 결과도 거룩해야 것이 아니냐! (67-325)

우리가 갖고 나온 인연은 입체적인 인연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역사상에 있었던 어떠한 사상을 기조로 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기조로 해서, 본성의 인격을 표준으로 해서 시작된 인연인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연의 핵심이기 때문에 절대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49-206)

 

우리는 다른 인연을 따라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가 아닌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형제가 아닌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육신의 형제들을 지배해야 합니다. 그게 다르다는 겁니다. 형제 아닌 사람들이 자기 육신의 형제를 지배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의 집은 여러분과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자기가 직접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형제들에게 보다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49-209)

 

식구를 대할 때에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주의하고,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해서는 됩니다. (18-43)

 

식구가 어떠한 어려움이 있고, 어떠한 환경에 부딪쳐 고난을 당할 서로서로 자기가 당한 것과 같은 심정으로 동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식구를 비난하고 식구를 모해하는 것을 보고는 견디는 사람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사랑을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우리끼리부터 해야 되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에서 가려져 가지고 하나의 인연을 따라 모인 우리 끼리끼리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보지 않으면 못사는 것입니다. 만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그래도 악한 세상과는 다른 무엇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49-62)

 

우리는 멋진 사람들입니다. 세계가 부러워하고 하늘땅이 부러워하고 영계의 모든 성인과 현철들이 부러워할 있는 당당한 삶의 생애를 걸어 가고 있는, 하늘이 버릴 없고, 하늘이 칭찬할 뿐만 아니라 찾아와서 사랑하겠다고 있는 그런 배경과 내용을 지니고 사는 멋진 사나이들입니다. (171-29)

 

선한 조상을 가진 후손이 여기에 있으면 선조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여러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이 신나고 멋지게 싸워 가는 곳곳마다 백전백승의 전적을 세울 때에 영계에서는 영원히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분이 되면 잡신(雜神) 나오다가도 놀라 자빠질 겁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선조들은 여러분을 상감마마 모시듯이 모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느낌을 느껴야 합니다. (14-21)

 

6 년의 결실체가 낙과처럼 익지 못하고 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그저 바람 불까 걱정하면서 '아이구, 내가 떨어질 같다. 조금만 불면 떨어지겠는데, 선생님, 흔들지 말고 가만 두어야 됩니다.' 해서 되겠습니까? 여기에 그런 패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선생님이 도끼로 들이치고 가지를 마음대로 흔들어도 가지가 찢어져 나가기 전에는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는 무리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패에 속합니까? 바람 불까 걱정하는 패들입니까? 흔들어도 떨어지는 패입니까? (46-155)

 

여러분이 여기에 목적이 무엇이냐? 그것은 어떠한 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명하고 절대자로부터 인정을 받고 확정을 받아 절대자 앞에 있기 위하여 것입니다. (11-224)

 

   식구간에 가인 아벨 관계가 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이 누구냐 하면, 횡적으로 먼저 들어온 사람이 아벨이고, 종적으로 새로 들어온 사람이 아벨입니다. 종횡관계를 두고 , () () 중요시 해야지, 종이 횡을 중요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49-214)

 

아벨이 되는 비결이 뭐냐? 전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면서도 반발하지 않는 사람이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를 어린양이라고 했지요? 그러니 설사 찔림을 당하더라도 반발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49-214)

 

아벨은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자연 굴복시켜야 합니다. 피눈물로써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누구보다 높은 사랑을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굴복시킬 없으니 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성교회를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이북을 위해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이북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34-283)

 

아벨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3 복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첫번은 가인을 복귀하지 않으면 됩니다. 다음에는 부모를 해방시켜 줘야 됩니다. 다음에는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3 사명이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세계를 해방시켜 주지 않고는 부모가 나오지 못하고, 부모를 해방시켜 드리지 못하면 하나님이 해방을 받습니다. 3 해방권의 책임을 해야 것이 아벨의 사명입니다. (58-68)

 

교회를 중심삼아 누가 아벨이고, 누가 가인인가를 분별할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사람은 아벨이요 사람은 가인이라는 ,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아벨도 있고 가인도 있는데, 가장 중심적인 아벨과 가인이 있다는 ,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분별할 있어야 되겠습니다. (3-206)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 갈라져서는 됩니다. 한편은 바른손이고 한편은 왼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인 동시에 하나님이시요, 나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입장에서 서로서로 아벨적인 존재를 찾아 모시며 가인적인 입장을 피해 최대의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어느 때든지 번은 하늘의 심판에 걸리고 만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3-206)

 

가인과 아벨은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되느냐? 가인과 아벨은 편안하고 좋은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이 필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탕감복귀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탕감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34-91)

 

하나님은 아벨을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하느냐?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는 하나님과 일체된 자리인데, 자리는 기쁜 자리가 아니라 가장 슬픈 자리, 가장 어려운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고자 하는 자리,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34-51)

 

   누가 아벨이고 누가 가인인가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 내가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아벨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가인이니, 나를 섬겨라!' 하는 이런 미치광이들이 있습니다. 아벨은 어떠한 것이 아벨이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보다 공적인 사람이 아벨입니다.

가인은 무엇이냐? 사탄편입니다. 사탄은 자기를 생각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아벨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58-68)

 

먼저 들어왔더라도 자기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가인입니다. 자기 생각이 앞서는 사람은 가인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원칙에서 사람을 대합니다. 아무리 오래 식구라도 심통이 자기를 위하게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지금은 없이 내가 그냥 두지만 때가 되면 보따리를 싸게 해서 쫓아낼 겁니다.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아벨이 아닙니다. 사적인 기준이 앞서는 것은 가인이요, 자기보다 공적인 문제,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 아벨입니다. (58-68)

여기 통일교인들 끼리끼리 형제를 결정하는데 먼저 들어온 사람은 아벨의 입장인 동시에 가인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가인의 입장인 동시에 아벨입니다. (24-348)

 

원리적인 입장에서 아벨은 중심입니다. 중심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들어가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벨이 되었습니까?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일체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하지 못하면 아벨이 되지 못합니다. 아흔 아홉 가지를 했더라도 가지를 못하면 아벨이 된다는 것입니다. (34-46)

 

통일교인 가운데 어떤 사람이 가인이냐? 머리를 치켜들고 남을 시켜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인입니다. 그러면 아벨은 누구냐? 책임 다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본래는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가인인데도, 먼저 들어온 녀석들이 아벨 노릇을 하려고 꺼떡거립니다. 그것은 자승자박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별의별 놀음을 해도 원리원칙대로 하면 선생님이 써주는 것입니다. (49-214)

 

아벨은 어떠한 존재이고 가인은 어떠한 존재냐? 원리로 보아 단적으로 말한다면, 가인은 자기에게 걱정이 있으면 걱정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사람이요, 아벨은 자기 걱정도 있지만 남의 걱정까지 도맡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차입니다. (62-189)

 

어떠한 사람이 아벨이고 가인이냐 하면, 침해(侵害) 받는 사람이 아벨이고 가해(加害) 하는 사람이 가인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 앞에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은 나이가 많고, 작은아들은 나이가 적다고 합시다.

그런데 부모의 의논상대라든가 모든 면에 있어 부모를 대신할 있는 아들은 맏아들뿐이라 하더라도, 맏아들이 작은아들이 아무 실수도 하지 않고 잘못도 없는데도 작은아들에게 손을 대면 부모는 큰아들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작은아들 편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회에서 적용되는 선악의 비판기준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를 입히는 사람이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56-85)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을 보고 ' 사람 남달리 유난하게 저게 뭐야?' 하며 흉을 보면 벌써 그는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가인 아벨은 그렇게 갈라지는 것입니다. 없는 자리에서 비판받는 사람,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벨이 되는 것이요, 비판하는 사람, 가해를 하는 사람은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56-85)

 

말을 하더라도 남에게 이익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벨이 되는 것이요, 해를 끼치는 말을 하는 사람은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이익을 끼친다는 것은 이익을 주는 것이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은 해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이익 되게 하는 자리는 공적인 자리요, 자기 이익을 위한 자리는 사적인 자리입니다. 이렇듯 () () 중심삼고 아벨과 가인, 선과 악은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56-85)

 

보다 공적인 존재가 아벨입니다. 통일교회 교인 중에 먼저 들어왔으니 아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먼저 들어왔어도 공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면 가인입니다. 틀림없이 가인입니다. 가인도 자기가 먼저 태어나긴 했지만 아벨보다 공적인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아벨을 따라야 했던 것입니다.

통일교인 가운데에도 먼저 들어왔다고 버티고 앉아서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아벨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들어온 사람보다 공적인 자리에 서지 못하면 가인입니다. 아벨적인 존재는 보다 공적인 입장에 사람입니다. (31-165)

 

선생님이 생애를 바쳐 자기의 이익보다 공적인 이익을 위해 희생했고, 그런 재료면 재료, ()이면 양을 많이 투입한 것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자연히 추앙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원리이고 천운입니다. (64-81)

 

아벨의 완성은 개인적 아벨의 완성, 가정적 아벨의 완성, 종족적 혹은 민족, 국가, 세계적 아벨의 완성의 터전을 이어 나가지 않고는 세계천국 복귀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것을 아는 우리들은 밤이나 낮이나 찾아오는 그날그날들을 원칙을 적용시키고, 원칙의 발전을 연결시키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 하늘의 사람이라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64-81)

 

 10) 타인과의 관계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1970년까지 본부에서는 누구든지 지나가다 배고픈 사람은 밥먹고 가라고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은 인간의 도리입니다. 얻어 밥이라도 나누어 먹는 것이 도리입니다. 쌀독에 쌀을 두고 지나가는 배고픈 사람이 밥을 얻어먹는다고 타박하면, 집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기 위해 모든 것을 갖다 주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주고 싶은 마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욕심을 갖게 때에는 하나님도 찬양하십니다. 자기만 먹고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좋게 하기 위해서, 현재는 고통스럽더라도 미래에 살게 해주기 위해 욕심을 내는 것은 좋은 겁니다.

공밥 많이 먹여서는 됩니다. 공밥을 먹이는 동시에 공적인 마음을 많이 써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복받는 놀음입니다. 공밥을 많이 먹임과 동시에 공적인 마음을 많이 사람, 그런 사람은 누구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56-37)

 

사람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했지요? 그건 반드시 그런 것입니다. 죽을 한을 품고 원망하는 원망을 받는 사람은 오래 가는 겁니다.

사람 대하는 것을 시덥잖게 해서는 됩니다. 의무적인 과정에서는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재미가 나야 됩니다. 가는 것도 모르고 밤을 새고, 천국이 이곳밖에 없다 하는 곳에서만 천국 있는 가치가 발견됩니다. 그렇잖아요? 나무도 완전히 밀착돼야 접붙여지지 않느냐 말입니다. (75-177)

 

선생님은 우리가 굶더라도 찾아온 사람들에게 잘해 주려고 합니다. 그들이 만큼의 기준의 도를 닦았으면 기준 이하로 해주다가는 우리가 막혀버립니다. 심판받는 겁니다. 그럴 때는 이상 , , 이상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주었다고 해서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늘이 탄복한다는 겁니다. ' 녀석 하늘보다 낫구만!' 그런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되는 집은 개가 똥을 싸도 마당 귀퉁이에 와서 쌉니다. 그런데 주인이 '아이고 이놈의 개새끼들, 동네 개들은 전부 우리집 뜰안에 와서 똥을 싸노?' 이렇게 불평하는 사람은 복을 쫓는겁니다. '어서 와라 싸라, 어서 !' 그래야 되는 겁니다.

싸우지 말라는 아닙니다. 좋게 때는 싸우는 겁니다. 하나가 망할 때는 싸워서는 된다는 것입니다. 싸우더라도 편을 만들고 교육을 시키기 위해 싸워야지, 원수되기 위해 싸워서는 되는 겁니다.

때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주어야 합니다. 자기의 욕망과 야심을 가지고 주어서는 됩니다. 아버지께서 그러셨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래야 합니다. (11-268)

 

사람을 사랑하는데는 아까워 하지 말라, 무엇을 투입했는지 기억하지 말라, 주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먹을 것이 좋은 생겼을 , 숨어 혼자 먹는 사람이라면, 에이, 급살맞을 자라는 겁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그걸 먹지 않고 두었다가, 내가 먹지 못하더라도 주고 싶고, 혼자 먹겠다고 하며 식구들을 생각하고, 그럴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러한 부모의 마음을 갖춘 자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70-166)

 

주는데는 어떻게 줘야 되느냐 ? 먹다 남은 찌꺼기를 줘서는 됩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면, 먹고 나서도 기분 나빠 침을 뱉습니다. 떡을 주더라도, 다섯 개가 있으면 다섯 가운데 이것 저것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때는, 차라리 주는 것보다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주는데 다섯 개가 있으면 절반쯤 그냥 집어 주면 그래도 고맙다고 하지, 이것 저것 집었다가 주면 신세를 지는 사람이 신세지고 나서 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는 데에는 하나님과 더불어 부모의 마음으로 주라는 겁니다. (60-170)

 

   타인과의 관계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횡적 관계에 있어 횡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서로 존중하는 일이 적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에 대해 전부 귀찮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귀찮아지면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일치된 사람이 가지고 만물 세계, 혹은 세계 앞에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자로서 전체를 대해 정서적인 기준에서 횡적 관계를 넓히고 맺어 나가는 것이 신앙인들이 해야 생활이라고 보는 겁니다. 생활에서 이것이 맺어져야 합니다. 생활에서 이것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 가지고 대인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82-275)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뭣인가 당구를 치게 되면 다마끼리 마주쳐 가지고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하지요? 그것이 재미입니다. 사람 사람의 만남도 그와 같은 작용을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마주치면 잡아당겨 하나되었다가 밀어내는 그런 기분이 든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축구공을 차더라도 공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이렇게 변화무쌍해야 좋지 않아요?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우리가 오관을 통해 느끼는 감각의 일체를 통합하여 생명, 또는 사랑과 어느 정도로 관계를 맺고 사느냐 하는 것에 따라 인간으로서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이 생명력과 가중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대인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자리에 있지 못하다 할진대 그것은 정지하는 것이 아니면 후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32-19)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나오시는 데에는 우리 대한민국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인류를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우리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인 무리라 하면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관심을 가지고 대할 알아야 됩니다. 모든 사람들을 대할 욕심을 가지고 대해서는 됩니다. (33-143)

 

선하게 되기 위해서는, 악을 남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아픔으로 느끼고 밤을 새워 가면서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고, 그들의 죄를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악한 사람에게 본성의 중심존재가 되지 않을 없는 것입니다. (34-130)

 

좋은 사람은 소년도 좋아하고, 청년도 좋아하고, 장년도 좋아하고, 늙은 사람도 좋아할 알아야 됩니다. , 자연을 대해 사람이 주체적인 입장에 섰다면, 주체적인 사람은 봄도 좋아하고, 여름도 좋아하고, 가을도 좋아하고, 겨울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72-102)

 

사랑하는데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고 공경해야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입니다. 젊은 사람은 만나기만 해도 되겠지만, 활동하기도 부자유스럽고 힘도 부족해 제삼자의 신세를 져야 노인들에게는 사랑도 해주어야 하고 동정도 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풍조를 사회에서는 없습니다. (25-289)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젊은이만 사랑해서는 됩니다. 사랑하는 데에는 나이 많은 사람부터 어린 사람까지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요즈음 청년들을 보게 되면, 나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래서는 됩니다. 나이 많은 사람도 사랑해야 되고, 젊은 사람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데에 있어서 어떠한 단체보다도 강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모임이라 할진대는 반드시 세계에 사랑의 열매로 남아질 겁니다. 나무들이 무성하게 동산을 덮었을 때에는 어느 것이 소나무이고, 어느 것이 사철나무인지 분간하기가 힘듭니다. 그렇지만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드러납니다. 겨울에 앙상한 가지와 줄기만이 보이는 가운데 푸른 나무가 보인다면 그것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 이웃 사랑하기를 몸과 같이 하라!' 것입니다.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 계명은 인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 동네가 아닙니다. 인류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인류가 형제요, 이웃입니다.

교만은 원수입니다. 교만과 고집은 사탄의 본질이요, 사탄의 요소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교만 대신 겸손, 고집 대신 화합을 해야 합니다. 화이유친(和而有親)입니다. 사람도 좋게 해주고, 사람도 좋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여기에서부터 모든 일이 통하게 되는 겁니다. 사람 사람 둘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것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화합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사탄의 본질에는 시기와 질투 같은 것들도 있지만 교만과 고집은 우리에게는 용서할 없는 것입니다. (37-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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